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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카디타 세계대회 개최기념 특별기고] 4.  진보하는 여성불자의 미래

건전한 불교 여성관 확립·교육 통한 정예화가 한국불교 미래 관건

사회 젠더 관점 급격히 변화했지만
교계 여성들 여전히 통제·규율 느껴

양성 평등적인 종교로 시작된 불교
여성능력 활용 불교 미래와 직결돼

부정 인식 벗어나 사회 도움 주려면 
여성들의 특별한 서원·각오 필요해

티베트불교 까규파의 지파인 드룩빠까규파의 종주국인 부탄에서 지난해 6월21일 144명의 여성수행자들이 비구니계를 수지했다. 티베트에는 비구니계맥이 전래되지 못해 사실상 비구니승가가 인정받지 못해왔다. 부탄서 이뤄진 비구니 수계와 승가 구성은 티베트불교계에서 여성출가자에게 비구니계 수계가 이뤄진 첫 사례로 꼽힌다.

 

 

‘샤카디타 세계대회’는 이미 많은 분들에게 익숙한 이름이 된 것 같다. 이 중요한 대회가 또 한 번 한국에서 열린다. 2004년 중앙승가대학에서 열린지 19년 만에 한국의 중심부인 서울 코엑스에서 두 번째 대회가 열리게 된 것이다.

샤카디타 세계대회는 여성불자들에게 큰 자부심과 기대를 주는 행사다. 1987년 인도에서 세계여성불교협회(The Sakyadhita International Association of Buddhist Women. 약칭 샤카디타)가 결성된 이래 격년으로 나라를 돌아가면서 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개최지를 정할 때는 그 국가가 이러한 큰 대회를 치를 수 있는 조건이 되는지 등을 따져서 선정하게 된다.

물론 한국이 이번 개최지로 정해진 것은 한국의 경제와 사회적 수준이 반영된 것이다. 하지만 이곳 한국이 경제 대국이고 전 세계인이 열광하는 한류의 본산임을 넘어서 1700년 불교의 역사와 천년고찰 그리고 그 속에 오랜 수행문화가 현재도 이어지고 있는 곳이며 무엇보다도 여법한 모습으로 사회적으로 존경과 신망을 받으며 활동하는 많은 비구니스님들과 여성불자들이 있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샤카디타 국제본부가 추구하는 목표는 불교계에 양성 평등한 문화를 정착시키고 여성의 복지를 향상시키며, 국제적 연대를 강화해 세계 평화를 증진시키고 자비로운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비구니승단이 부재한 국가에 교단을 복원하거나 세우는 일을 돕는 것도 이런 취지의 연장선상에서 추구하는 사업이다. 올 초에 부탄에서 구족계 계단이 이루어져서 144명의 비구니스님이 탄생한 일도 샤카디타의 역량과 큰 관련이 있다. 

불교계 내의 양성평등 문제는 샤카디타 세계대회의 논문 발표 세션에서 다루는 주요한 주제이다. 세계의 여성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런 주제를 공론화함으로써 사회적 임팩트를 주고 나아가 여성들의 삶에 변화가 일어나기를 도모한다. 그 외에 워크숍, 토론, 문화공연 등 대회 참가자들간의 교류와 ‘시스터후드’라 불리는 여성들 간의 연대가 깊어져서, 이제 샤카디타 세계대회는 세계 불교여성의 진정한 축제의 장으로 자리잡고 있다. 

샤카디타 세계대회에 참여할 때마다 느끼는 바이지만 한국의 비구니승단은 다른 어느 나라 보다 교육과 수행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고 비구니스님의 지위도 높다. 하지만 그 내적으로는 강고한 한계가 여전히 존재한다. 마치 대학 내 여성 교수 문제와 유사하다. 여성 교수 비율이 낮은 것도 문제이지만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것이 더 문제다. 스님 간의 남녀 비율은 거의 같고 사회 내에서 또는 교단 내에서 요구되는 활동의 정도도 높은데, 주어진 자원의 양은 무척 낮고 전체 승가 내에서 의사결정에 참여할 기회는 더욱 적다.

한국 여성의 역량은 세계 어느 곳보다 우수하다. 그러나 불교계 내에서 재가 여성의 활동에 뚜렷한 유리 천장이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사찰에서 우리 여성들은 ‘보살’이라 불리는데 이 시대의 보살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리더가 될 수 있도록 평등한 시각을 갖고 그 활로를 열어주어야 할 것이다. 신행 활동과 참여를 통해 여성 신도들의 종교적 욕구를 충족시킬뿐 아니라, 여성이 사회적 자아를 실현하고 능력을 발현할 수 있는 장을 불교계가 제공해야 한다. 이들이 앞으로 불교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진정한 주체가 될 수 있도록 격려해주어야 한다.

세계 각국의 불교계는 계속 변화하고 진보하고 있다. 불교는 내적으로는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게 하고 외적으로는 소통하는 리더십을 길러주는 종교로 세계인들에게 자리잡고 있다. 샤카디타는 이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하고 양 날개를 펴는데 도움을 주는 대표적 기관이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동양에서 온 내게 한국의 불교계에서 여성의 지위가 어떠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귀국한 후 스님들에게 한국에서 여성 불자의 위상을 물어보면 돌아오는 답변은 비슷했다. “부처님 법에 무슨 여자 남자가 있냐?” 또는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차별상을 여의지 못해서 그렇다”는 꾸지람이었다. 한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 중 가장 두드러진 영역이 젠더에 대한 관점인 것 같다. 하지만 아직도 불교계에서 만나는 많은 여성들은 여전히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 외적 또는 내적 통제와 규율을 느끼고 있다. 여성에게 자신을 낮추라고 가르치는 이 전통은 분명히 행동과 태도뿐 아니라 마음도 규제하고 있다. 그런데 초기불전에 보면 놀랍게도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소마가 어두운 숲속에서 혼자 수행하고 있었다. 이때 마라가 다가가 이렇게 말한다. “여자는 손가락 두마디 만큼의 지혜밖에 없는데, 어찌 도를 얻겠냐?” 이에 그녀는 “여자라고 무슨 차이가 있는가. 너의 그런 이야기는 남자냐, 여자냐 구분이나 하는 사람한테 가서 하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두려움과 자기 회의를 그녀의 마음속에 일으키려는 마라의 계획을 떨쳐내고 자신의 삶과 현재 수행의 길에 대한 당당한 믿음을 천명하고 있다.

불교는 그 출발에서부터 양성 평등적인 종교로 시작되었고 여성 수행의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그러나 교리적인 선진성이 실제 종교 관행에 있어서 그대로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 자기 비하감이 인격 성장에 가져오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스탠퍼드대학의 유명한 심리학 실험 결과가 있다. 한국 불교계에는 아직도 여성이란 뭔가 결여된 불완전한 존재라는 관념이나 업이 두터워서 여자로 태어났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다. 자기 자신의 가능성에 대해 이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해서 어떤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우리 자매 딸들에게도 이렇게 가르칠 것인가? 부처님은 아난다의 질문에 대해 여성도 수행하면 아라한과를 성취할 수 있다고 분명히 대답하셨고 그것은 초기불전에 뚜렷이 적혀있다.

신도의 대다수가 여성인 한국불교에서 여성의 능력을 어떻게 개발하고 이를 수행과 포교의 현장에 어떠한 방식으로 접목하느냐 하는 것은 한국불교의 미래와 직결된 문제이다. 궁극적으로는 그 실천 주체의 영적 잠재력을 키워주고 자아를 완성시키고 자신의 능력을 발현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종교의 순기능이 되어야 한다. 불교 인구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여성이 보다 성숙된 불교 신행문화를 가지고 조직적 활동을 펼칠 때 교계뿐 아니라 한국 사회 발전에 기여할 것은 명백한 이치이다. 건전한 불교 여성관 확립과 교육을 통한 여성들의 정예화가 한국 불교 발전의 관건인 이유다. 

샤카디타 코리아에서 활동하는 여성들 중에는 50대가 되도록 평생 가족과 집의 테두리 안에서 살다가 이 단체 속에서 여성들끼리 연대하고 활동하는 경험을 통해 자신의 인생이 바뀌었다는 분들이 있다. 일정한 교육을 받은 후 번역가도 되고 통역자도 되어 해외 불자들과 교류도 하고 이벤트 기획에 참여하며 한국을 대표해 국제 대회에 나가고 목소리를 내는 등 이전에는 생각지 못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샤카디타 세계대회가 한국불교계에 새로운 바람을 가져오기를 바란다. 미국불교의 여성 신자들 중에는 기독교의 가부장적인 신 개념에 반대하며 불교의 평등사상을 찾아 왔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소위 고등 종교에서는 종교 행위에 참여하는 사람의 대다수가 여성이고 그들이 교단과 성직자를 후원하는 주요 경제적 수급자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남성 성직자들에게 부정적인 존재로 취급되었다. 종교의 주요 인물들은 거의 남성이고 설사 소수의 탁월한 여성이 있었다 하더라도 자신을 드러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기에 역사 속에 파묻혀 존재조차도 알려지지 않은 여성이 허다했다. 남성 중심의 교단과 가치관 속에서는 중요한 의례나 조직에서 여성은 배제되고 주변화된다. 이런 가부장적 구도와 인식론 아래서는 여성 지도자들이 나올 수 없다.” 

바로 미국불교 여성을 깨우는 데 큰 역할을 한 불교여성학자 리타 그로스의 말이다.

현재의 한국불교에 대한 사회 일각의 부정적 인식에서 벗어나 사회에 도움을 주는 종교가 되기 위해서는 여성들의 특별한 서원과 각오가 필요하다. ‘승만경’의 10대 서원 중 세 번째가 섭수정법(攝受正法)이다. 정법을 받아 지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대지를 건너가는 것이다. 청하지 않아도 도와주는 친구, 세상을 위한 진리의 어머니[法母]가 되겠다고 서원한다. 세상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그들의 친구가 되겠다는 것, 얼마나 거룩한 맹세인가. 그 맹세를 지키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편견뿐 아니라 스스로의 편견도 점검해야 한다. 불교에서의 사회적 실천은 공과 무아의 입장에서, 전체와의 관계에 대한 고려 속에서 자신의 행동가치를 찾는 것이다. 나의 생각을 고양시켜 주체적인 눈으로 세상을 읽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마음을 내라는 것이 승만부인의 서원이 가르치는 바라고 생각한다. 정안수 떠 놓고 우리 자식들의 영화를 기원하셨던 어머니들이 요즘 세상에 태어나셨다면 이 시대 불자의 서원을 이루기 위해 분주히 애쓰는 대보살이 되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조은수 서울대 철학과 교수 (샤카디타 코리아 공동대표)

[1683호 / 2023년 5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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