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것은 무엇일까요? 그건 아마도 시간일 것입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물론이고 단단하고 뾰족한 모든 물질들마저 무상하게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시간이니까요. 세월은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붉거나 푸르거나 샛노랗던 모든 욕망을 속절없이 무력화시켜 흙으로 되돌립니다. 시간이라는 그 무한궤도의 열차는 모든 육중한 산맥의 예리한 능선과 거기에 박힌 화강암과 금강석 따위의 단단한 모서리마저 무뎌지게 만들어냅니다. 고저장단(高低長短)의 사연과 경과만 있을 뿐 모두를 흐트러뜨려 마침내 부드러워지게 합니다. 과학은 그것을 엔트로
해마다 동지가 다가올 즈음이면 나의 몸은 아팠습니다. 신기하게도 요맘때 기필코 몸살을 앓고 나서야 내 몸은 대한과 소한의 무거운 추위를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건너냈습니다. 이렇게 겨울 입구에서 호되게 한 번 앓고 나면 겨우내 아픈 일 없이 그토록 멀게 느껴지는 입춘을 아주 가볍게 맞을 수 있었습니다. 해마다 그렇게 반복되는 몸살이 하도 신기하고 정확해서 나는 그 몸살에 ‘동지앓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각자 넘어서야 할 혹독한 시간죽음 맞아도 다음세대 지켜내동지 무렵에 꼭 앓고 넘어가는 내 몸의 체험을 최근 몇 년은 걸렀는데 그래
무당벌레는 어떻게 겨울이 오는 것을 아는 걸까요? 그들은 이미 달포 전부터 겨울을 건널 거처를 찾고 있었습니다. 숲 기슭에 흙으로 지어놓은 나의 산방 창문에, 문틈에, 처마 밑에 넘치도록 달라붙어서 방 안으로 들어올 틈을 찾고 있었습니다. 산방 안으로 들어와 나의 빈한한 가재도구 어디 후미진 곳에라도 들러붙어 겨울을 나보려는 시도를 하는 것이지요. 한 여름에 더욱 분주한 개미의 생태 역시 신기합니다. 그들이 살아가는 땅 속에는 기상청 예보 따위는 없을 텐데 어둠 속을 살아가는 그 개미들이 어떻게 큰 비가 올 것을 미리 알고 개미굴
인간에게 숲은 그 자체로 치유의 공간이자 평화의 장입니다. 색이며 소리며 공기며 향기며 맛이며 무엇 하나도 뺄 것 없이 숲을 이루는 모든 것은 인간의 지친 삶을 회복케 하고 다친 영혼을 치유합니다. 그래서 인간에게 숲은 어머니의 품을 닮았고, 그래서 우리에게 숲은 평화의 공간으로 인식됩니다.다툼 속 조화 이뤄사는 숲 생명들평화는 자신 드러내는 데서 출발진면목 안놓치는 존재만이 주인돼 하지만 자세히 살피면 그곳에 사는 생명들에게 숲은 어느 전쟁터보다 치열한 전장입니다. 물리적으로 주어진 자기 삶의 자리를 제 스스로 움직여 벗어날 수
요즘은 한 달에 두어 번 서울에 올라갑니다. 강연을 위한 일정이 있어서이기도 하고, 서울로 대학생활을 떠난 외동딸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곳은 복잡해 차를 가져가기 보다는 오송역에서 기차를 타는 방법을 주로 택합니다. 오송역에서 KTX를 타면 40분 남짓한 시간 만에 서울역에 도착합니다. 나는 서울이 불편해서 괴산으로 떠나온 사람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서울로 들어서는 관문에서 나는 늘 호흡을 가다듬고 걸음을 놓습니다. 이런 습관은 아마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나서야 서울에서 몇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들이 가까운 누군가를 미워하는 까닭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걸까요? 부부의 예부터 보겠습니다. 부부는 대개 지극히 서로를 사랑해 함께 살기로 결정한 인연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 주변을 둘러보면 아내가 남편을, 혹은 남편이 아내를 참으로 미워하며 깊은 골을 사이에 두고 살아가고 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서로를 미워하며 사는 관계에 있는 가족의 예도 많습니다. 한 어머니에게서 난 형제자매 대부분은 유소년시절을 보내면서는 살가움을 나누고 살지만, 성장해 각기 가정을 이루고 살면 남보다 못한 인연으로 살아가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심
잘 노는 것이 목표인 나인데, 요새는 평일의 하루도 빈 날이 없습니다. 빼곡한 일정으로 전국을 떠돌며 강연을 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마도 도래하고 있는 가을 탓이겠지요. 사람들이 숲이 전하는 자연과 삶의 중요한 상징과 지혜들을 들어보고 느끼기에 더없이 좋은 계절을 봄과 가을로 여기고 있는 탓이겠지요. 그렇게 사색하며 공부하기에 참 좋은 계절 가을을 맞으며 뜬금없는 질문 하나 드려보겠습니다.나와 외부 구별하면 에고 싹터성장하며 자기중심적 인식 강화자아 벗어나면 진리 보이기 시작그럴 때 인간 삶 훨씬 깊어져이 시절처럼 ‘여름
숲에 기대어 사는 기쁨 중 하나는 ‘저 스스로(自) 그러한(然) 것’들을 가만가만 바라보고 느끼는 것입니다, 내 자신에게 찾아오는 삶의 시간이 내 밖으로 흐르는 시간들과 흐름을 같이할 수 있도록 조정해 나가는 즐거움이 있습니다.조화 벗어난 삶 결국 대가 치러미국 강타한 태풍 부조화 결과인간만 자신 바라볼 수 있지만능력 사용하지 않아 자연 파괴그것이 생명과 그 생명을 품고 있는 우주 질서와의 ‘조화(調和)’일 것입니다. 조화에서 벗어난 모든 삶은 어떤 형태로든 그 대가를 치르도록 돼 있는 것이 ‘자연의 법(法)’입니다. 연달아 미국을
이러다가는 언젠가 이 땅의 기후를 건기와 우기로 나눠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전문기관에서는 한반도에 장마가 이미 끝났다고 밝혔지만 중부지방에는 길고 긴 비가 계속 내리고 있습니다. 예년의 흐름과 달리 이토록 길게 비가 내리면 숲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한 쪽에 양달이 생겼다면 다른 쪽에는 응달이 생기는 것이 만사의 이치, 긴 비는 숲의 어떤 생명에게는 기회가 되고 다른 어떤 생명에게는 위협이 됩니다.빗속에서 떨어지는 과일 보며 길찾는 본질 잃어버림임 알아스스로 길찾는 건 주인된 삶붓다의 자취 따르는 첫 걸음나의
말복의 더위를 통과하고 있지만 여름은 이미 기울었습니다. 감각을 깨워두고 사는 이라면 이미 가을이 내 곁에 도착하고 있음을 느낄 것입니다. 혹시 나무 곁에서 들려오던 매미의 소리가 차츰 멀어지고 낮은 풀 섶에 찾아와 제 노래를 시작한 풀벌레 소리를 들으셨나요? 가까이는 그렇게 소리로부터 가을 소식이 올 때, 멀리는 창공의 배경과 구름의 모양으로부터 또 그 소식을 보게 됩니다. 서서히 비구름을 지워가는 높고 푸른 하늘이 자주 배경을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구름의 색과 모양도 바뀌고 있습니다. 잿빛 구름들이 새하얀 옷으로 갈아입고 다채로
지난해 설립한 ‘자연스러운삶연구소’에 얼마 전 새 제자들이 여럿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모두 지금까지의 삶보다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청춘이거나 중년입니다. 2년 과정인데 단 한 푼의 수업료도 받지 않습니다.‘자연스러운삶연구소’의 제자갑작스러운 업무전환으로 고통가장 끌리는 길 선택하라 조언충실히 걸어내면 자신 찾을 것대신 과정은 엄격합니다. 지원자는 모두 나의 질문에 맞춰 스물두 쪽이 넘는 자기 이야기를 작성해 지원서로 내고 서류심사를 통과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 달 간 매주 한 권씩의 두꺼운 책을 치열하게 읽고 한 편의 글을 기한
여기저기 다니다 보면 지역에 이런 현수막이 이따금 걸려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경축, 아무개의 자 또는 여 누구, ○○대학교 ○○학과 입학’ ‘경축, 아무개의 자 또는 여 누구, ○○고시 합격.’ 혹은 ‘아무개 장군 진급’, ‘아무개 무슨 박사학위 취득’…. 사회적으로 특별한 성취라고 여겨지는 것을 축하하는 이웃의 마음이 그렇게 내걸리곤 합니다. 한편 학원들은 그 학원 등록 학생이 학교에서 이룬 성적의 성취를 현수막으로 내걸어 자랑합니다. 지역 사회만이 아니라 학원과 학교에서도 성적의 향상과 그 특별한 성취를 현수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