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났음에도 이 땅은 남과 북으로 나뉠 수밖에 없는 아픔을 갖게 됐고, 그 세월이 무려 75년에 이르고 있다. 그 세월동안 남과 북은 각자 서로의 길을 걸으면서 언어와 생활, 문화까지 상호 이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았다. 한편으로는 아직도 전쟁의 위험과 공포를 안고 살아가는 불행이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남북한 간에 형성된 긴장과 상호 다른 이질감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리고 해소하기 위해 노력했고, 종교인들도 그 과정을 함께 했다. 종교를 ‘민중의 아편’이고, ‘인민 계급의 투쟁력을 마비시
“우리에게는 필요한 것이 있고 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필요한 것과 원하는 것을 구별해서, 필요한 것은 구하고 원하는 것은 자제하라 했습니다. 필요는 충족될 수 있지만 욕망은 밑 빠진 항아리처럼 끝이 없기 때문이지요.”‘우리가 욕망을 모두 버리면 그 어떤 것도 얻거나 성취하지 못하게 되지 않는가’를 묻는 이들에게 담미카 스님이 내놓은 답이다. 담미카 스님은 1951년 호주에서 태어나 스리랑카 승단에 출가한 뒤 스리랑카 캔디에 ‘닐람베 명상센터’를 설립했다. 싱가포르에 있는 붓다 담마 만달라회의 영적 지도자이면서, 스리랑카와 싱가포르에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잠식하면서 그동안 당연하게 누려왔던 일상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그만큼 마음의 병을 앓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코로나블루(우울), 코로나레드(분노), 코로나블랙(좌절) 등의 신조어까지 생겨나는 등 급변하는 시기에 다양한 경험을 해온 현대인들조차 낯설기 그지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하지만 현대인들은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에도 크고 작은 마음의 병을 앓아왔다. ‘분노’ ‘자존감 하락’ ‘우울감’에서 비롯된 마음의 병은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으로 치료를 시작할 수 있지만, 있는
죽음 문제를 문헌 중심으로 연구하면 결국 ‘책 속의 죽음’에 머물기 마련이다. 그래서 1997년부터 한림대에서 ‘생사학’ 강의를 해온 오진탁 교수는 박제된 죽음이 아니라 죽음의 실제에 접근하기 위해 철학은 접어두기로 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생소한 분야인 생사학을 연구하면서 삶에만 치우치기를 거부하고 죽음에 편향되는 것 역시 배척했다. 그렇게 삶과 죽음의 균형을 이루고, 삶과 죽음의 정상적인 관계를 모색해온 그는 죽음 문제의 핵심이 “죽음, 삶의 끝인가? 새로운 시작인가?”에 있음을 강조한다. 이 책 ‘죽으면 다 끝나는가? -삶,
“적명 스님은 고집스럽게 자기 길을 걸어간 사람입니다. 수좌로 태어나서 수좌로 살다가 수좌로 죽는 것이 적명 스님의 꿈이었으니 스님의 꿈대로 된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 스님 같이 고집스럽게 수행자의 길을 걸어가신 분이 계셨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스님이 계셔서 행복했습니다.”충주 석종사 금봉선원장 혜국 스님이 기억하는 적명 스님이다. 우화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60년 해인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66년 해인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한 적명 스님은 출가한 이후 전국 제방선원에서 50년간
“(…) 나를 마치 돌덩이 쇳덩어리로 알고 치고 또 족친다/ 살지 못하도록 아니 죽지 않을 만큼 때리고 치며 계속 고문질한다/ 이제 아프다 못해 아프다는 말도 끊어졌다/ 아직 살아 있으니 아픈 것이지 죽으면 아플 수 있을까?/ 정말 그 아픔을 참다못해 기절을 했다/ (…) 아프다 못해 또 쓰러져 죽음에서 헤매이다가/ 또다시 모진 목숨으로 살아났다/ 온몸이 아프고 쓰리니 꿈이 아니고 생시인가보다. (…)”1980년 10월27일. 국민을 보호해야할 군을 앞세워 정권을 휘어잡은 신군부 세력은 사찰에 난입해 스님과 불자들을 연행했다. 그리
“뛰어보라고 뛰어다니라고/ 다들 너 나이 때는 그런다고/ 글쎄요/ 다들 그런다고 그것이 맞는 거라고/ 말 좀 빠르게 말하라고 다들 답답해한다고/ 글쎄요/ 내가 말을 빨리하면 알아들을 자신 있으신지요/ 걷는 자세가 왜 이렇게 구부정하냐고 불량해 보인다고/ 글쎄요/ 그 사람들 세상을 보는 눈이/ 그렇게 보라고 시킨 머리가/ 탁한 건 아닌지…”사람의 생각에 따라, 혹은 마음의 깊이에 따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또 마음으로 보는 세상은 다 다르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세상 사람들은 마치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답이 정해져 있다는 식으로
우리가 매일 먹는 밥은 어떻게 내 밥상까지 올라오고, 입는 옷은 또 어떻게 나에게 왔을까? 당연히 많은 사람들의 노력 덕분이다. 우리의 삶은 그렇게 알게 모르게 ‘남’이나 ‘다른 것’들의 도움으로 인해 유지될 수 있음에도 대부분 다른 사람은 물론, 다른 존재들과의 상호의존관계 틀을 스스로 깸으로써 갈등과 재앙을 불러오는 어리석은 일을 반복하고 있다. 인간을 포함한 이 세상 모든 것들은 어느 것 하나도 본래부터 홀로 존재를 유지할 수 없음에도 말이다.법제처 법제관과 문교부 차관, 고려대 법대 교수 등으로 활동하다 나이 60에 이르러
조계종출판사가 개점 11주년을 맞은 ‘불교전문서점’의 새 이름을 공모한다.조계종출판사는 2020년 9월 불교전문서점에 다목적 회의 공간을 확보하고 기자간담회, 세미나, 차담 등이 가능한 복합문화공간으로 변화를 꾀하며 이에 걸 맞는 새 이름 찾기에 나섰다.조계종출판사가 운영하는 불교전문서점은 지난 2012년 온라인서점(www.jbbook.co.kr)을 개설해 전국 어디에서나 쉽게 불서와 불교용품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한데 이어, 2020년 9월 다목적 회의 공간을 마련까지 확보해 모든 대중이 기자간담회, 세미나, 차담 등의 장소로 활용
(주)불광미디어 양동민 상무가 10월13일 출판문화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제50회 한국출판공로상(기획편집 부문)을 수상했다.(사)대한출판문화협회는 10월13일 홍대 인근 청년문화공간 JU 동교동 5층 니콜라오홀에서 ‘제34회 책의 날’ 기념식 및 ‘제50회 한국출판공로상 및 출판유공자상’ 시상식을 개최하고, 불광미디어 양동민 상무를 비롯해 출판문화발전에 기여한 출판인들에게 정부 포상(29명) 및 출판공로상(10명), 유공자상(2명) 등을 수여했다.불광미디어 양동민 상무는 22년간 근속하며 월간 ‘불광’ 편집장, 불광출판사 단행본 편집
“不是物兮早騈拇(불시물혜조변무) 許多名相復何爲(허다명상부하위) 慣看疊嶂煙蘿裏(관간첩장연라리) 無首猢猻倒上枝(무수호손도상지) : ‘한 물건도 없다’ 해도 벌써 군더더기인데/ 허다한 이름과 모양은 또 뭘 하자는 건지/ 첩첩 멧부리 안개 낀 넝쿨 속을 잘 들여다보니/ 머리 없는 원숭이가 거꾸로 나무를 기어오르네.”경허선사가 ‘지리산 영원사(智異山 靈源寺)’라는 제목으로 지은 이 시를 그 옛날 중국 당나라 때 5조 홍인대사 문하의 신수와 혜능의 대거리까지 끌어들여 해설하고, “아무리 똑똑한 척 유난 떨어봐야 소란스러운 원숭이 꼴을 면치 못
일본에서 불교가 공인된 시기는 538년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일본에 불교가 전래되고 뿌리를 내리기까지 고대 한국 스님들의 역할은 우리가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지대했다. 경전을 전수하고 강설한 것은 물론, 지금은 코로나19로 가기 어렵지만 한국인들이 즐겨 찾던 여행지인 아스카‧나라‧교토의 많은 불교 유적들이 고대 한국스님들의 손을 빌려 탄생했다.일례로 세계 최대 목조건축물로 일본이 자랑하는 문화유산인 동대사(東大寺)는 백제계 양변 스님이 창건했음에도 이런 사실을 밝혀놓지 않았다. 때문에 이를 알지 못한 채 가게 되면 일본불
우리에겐 ‘우주소년 아톰’으로 이름을 알린 데즈카 오사무의 장편 만화 ‘붓다’ 전14권을 한 권으로 축약한 ‘데즈카 오사무의 붓다’가 출간됐다. 아동용 만화로 출판된 책은 저자가 “붓다의 전기가 아니”라고 부정했음에도, 일본에서 연재 당시부터 불교의 생생한 모습, 인간애에 관한 공감이 작품 곳곳에 스며있다는 평가 속에 주목을 받았다.작품은 사람들이 험난한 풍토와 가혹한 신분제에 신음하던 기원 전 6세기 인도를 무대로 전개된다. 당시 인도인들은 빈곤과 차별 속에서 구원과 희망을 가져다 줄 누군가가 나타나기를 기대하고 있었고, 그 누군
불교를 비롯해 브라만교, 힌두교, 자이나교 등 수많은 종교와 사상이 탄생한 인도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다양한 신들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리고 그 신들은 그저 존재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종교 세력의 변화에 따라 위상이 강해지거나 약해지고 역할이 교체되기도 한다. 일례로 인드라가 ‘신들의 왕’으로 여겨지던 시기를 지나 베다시대 말에 이르러서는 브라흐마가 ‘창조신’으로 받들어지고, 불교가 널리 중흥하던 시기에 이르러서는 브라흐마(대범천왕)와 인드라(제석천왕)가 부처님을 공경하는 식이다. 그래서 인도 신화는 복잡하지만, 그만큼
“아도화상이 태조산 도리사에서/ 저 곳이 급고독장자가 황금으로 동산을 장엄한/ 기원정사 터라고 가리키니 산은 황악이 되고/ 절은 직지인심 견성성불하는/ 직지사다.// 황금빛 장경루 대장경이 방광을 하면/ 머무른바 없고 말이 없는 가운데/ 봉황이 날아들어 불국토를 장엄하니/ 모두가 그렇게 그와 같을 줄로만 알았다/ 일주문 밖 노을이 붉게 지기 전까지.// 꿈이다. 꿈이었다./ 임진년 꿈이라고 했다./ 사명대사 신통묘용으로 그 꿈 깨워/ 잠자던 동해 밖 연못에 삼천 연꽃을 피워내니/ 지금은 산도 푸르고 강도 푸르고 하늘도 푸르러/ 푸른
‘1985년 7월 중순 처음으로 봉정암을 찾았다. 저녁을 해 먹고 양초로 불도 켰다. 밖에 나와 보니 겨울보다 더 추웠다. 씻으려고 물에 손을 넣으니 손이 오그라들 것처럼 시렸다. 화장실은 멀고 가는 길이 캄캄 절벽이었다. 저녁에 기도하려고 법당에서 준비를 하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스님은 겨울 추위에 기와가 동파돼 비가 오면 지붕도 새기 때문에 동기와로 교체해야 하는데 신도가 없어서 걱정이라고 했다. 이튿날 아침 사리탑에 올라 삼배를 올리고 주위를 돌아보는 순간 ‘아’ 소리가 절로 나왔다. 수려한 산과 장엄하고도 묘하게 자리
유교의 핵심 경전 중 하나인 ‘중용’에서는 ‘희로애락이 일어나지 않은 본래의 상태’를 일러 ‘미발(未發)’이라고 한다. 이 ‘미발’은 불교의 ‘대무심(大無心)’과 비슷한 개념으로 해석되고, 마음의 심처(深處)와 관련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언뜻 선불교 화두처럼 보여 지기도 하는 이 ‘미발’을 불교의 선지식들은 어떻게 바라봤을까?동국대 불교학술원 외래교수인 문광 스님이 이 미발과 관련해 중국불교의 감산덕청과 우익지욱, 한국불교의 퇴옹성철과 탄허택성 등 네 선지식들의 가르침 속에 담긴 ‘중화(中和)’ 담론을 통해 조명했다. 여기서 중
숭유억불의 조선시대를 불교 암흑기라 말하지만, 일각에서는 조선시대 들어서야 비로소 불교가 진정한 종교로 성장할 수 있는 출발점에 선 것이라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권력 중심부의 지지와 비호 속에서 성장했던 과거와 달리,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살아남으면서 민중을 제대로 보는 진정한 종교의 자격을 갖게 됐다는 시각이다.금강산 신계사 복원불사에 참여하면서 금강산을 80회 이상 방문하고, 전국 사지와 전통사찰 전수조사 사업에 참여하는 등 불교건축과 인연을 맺어온 홍병화 박사도 조선시대 불교를 그렇게 보고 있다. 그래서 그는 조선시대를
한국에서 차(茶)를 만들고 끓이고 마시는 차문화는 언제 어디서 시작돼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을까? 지난 20여 년 동안 한국 차문화의 자취를 따라 국내는 물론, 중국과 일본 등을 오가며 천 년간 이어온 차맥(茶脈)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최석환 월간 ‘차의세계’ 발행인과 김의정 명원문화재단 이사장(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제27호 궁중다례의식 보유자)이 ‘한국 차문화 천년의 숨결’에 그 기록을 담았다.‘한국 차문화 천년의 숨결’은 우리나라 차 역사에서 잊혀진 신라왕족 김지장 스님이 719년(성덕왕 18년) 중국 구화산에 들어갈 때 차씨를
어린시절부터 대학교수 시절까지 신심 지극하고 평범한 불자였던 방영준 성신여대 명예교수는 10여 년 전 불설‧비불설 논쟁을 보면서 내적 혼란이 생겼고, 이를 계기로 자신의 불교신앙을 재건축하기로 했다. 불교이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붓다의 지혜를 찾는 여정에서 불교의 실천성과 개방성을 체감했고, 붓다의 다르마는 항상 여실하면서 대상과 시절에 따라 연기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리고 붓다 다르마를 정치철학의 틀에서 재조명하고 체계화하면서 한국불교의 과제를 모색하겠다는 원을 갖게 됐다. 그렇게 불교의 정치철학을 한눈에 조감할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