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영화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별세했다. 향년 63세. 100세 시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쉬운 삶이다. 영화 속 그는 유쾌하고 따뜻했다. 인간미 넘치는 역할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참 스승의 길을 보여준 존 키팅 선생님의 역으로 진한 인상을 남겼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로빈 윌리엄스라는 본명보다 키팅 선생님이라는 영화 속 인물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영화에서 참 스승의 길 보여준미국배우 로빈 윌리엄스의 죽음 인간의 길 대신 성공 강요하는잘못된 교육에 대한 반성 필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는 1
영화 명량의 상승세가 무섭다. 7월30일 개봉한 이후 불과 2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역대 신기록이다. 영화 명량은 단 12척의 배로 왜선 330척을 물리치고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다. 영화 명량은 결말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알고 있고 진부하기도 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왜 명량에 열광하는 걸까?책임지지 않는 정치지도자들이이순신 장군에 대한 향수 불러충의 대상은 백성이라는 명대사대통령만 쳐다보는 관료에 일침 영화 속에는 사람들의 가슴을 울리는 명대사가 등장한다. “무릇 장수된 자의 의리는 충을
검찰이 마곡사 주지 원경 스님을 기소했다. 주지선거에서 돈을 주고 표를 산 혐의라고 한다. 돈을 주고 표를 사서라도 주지를 하겠다는 스님이라니, 무소유와 청빈을 지향하는 승가가 언제 이렇게 타락해버렸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불가에서는 ‘중벼슬은 닭벼슬만도 못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주지를 맡게 될 낌새라도 보이면 조용히 길을 떠나는 절집의 풍속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이제 이런 겸양은 찾아보기 어렵다. 선거 때마다 금권선거 의혹이 끊이질 않고 상대에 대한 비방 또한 세간 못지않다. ‘중벼슬이 더 이상 닭벼슬’이 아닌 각박해진 승가의
조계종이 학인염불대회를 열었다. 종단 차원의 염불대회는 처음이다. 7월17일 열린 염불대회는 전국의 승가대학에서 300여명의 학인 스님들이 참여했다. 조계종 경내는 스님들의 경연대회를 구경하려는 불자들로 넘쳐났다. 조계사를 들렀다 그 자리에 눌러앉아버린 외국인도 많았다. 응원열기는 뜨거웠다. 승가대학 동문들은 플래카드, 피켓을 흔들며 치열한 응원전을 펼쳤다. 참가자들이 선보인 염불은 다양했다. 불가의 전통적인 염불에서 랩과 같은 현대적 운율이 가미된 신세대 염불도 선보였다. 장중하면서도 발랄하고 감동적이면서도 재미있는, 감동과 즐거
“저희는 종교가 없습니다. 저희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조용히 어떤 믿음을 갖고 사는 것까지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니 저희를 괴롭히지 말아주세요.”서울대 캠퍼스에 기독교인들의 전도를 거부하는 카드가 등장했다. 지난해 일이다. 얼마나 선교에 시달렸으면 이렇게까지 했을까. 측은한 마음이 인다. 돌아보면 기독교인들의 막무가내 선교로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이 없다. 전도는 말 그대로 성스러운 가르침을 전하는 것인데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으름장에 가깝다. 천국이 아닌 지옥을 들먹이고 축복보다는 저주를 퍼붓는다.
법보신문 직원들은 매달 책 한권을 선정해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는다. 며칠 전 읽었던 책은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였다. 이 책은 나치의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갇혔다가 살아 돌아온 빅터 프랭클 박사의 자전적 체험 수기다. 그는 아우슈비츠에서 가족을 모두 잃었다. 자신 또한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느닷없이 가스실로 보내지는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수용소. 잔인한 폭력과 죽음만이 난무하는 그곳에서 그는 인간에게 주어진 양심과 이성을 잃지 않았다. 그는 닥쳐오는 고통을 면밀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순
합장(合掌)하면 마음이 경건해진다. 두 손을 가슴에 모으는 행위자체로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기도할 때 합장을 하는 것을 보면 합장은 특정종교의 전유물이 아닌 원초적으로 타고난 성스러운 몸짓이라는 생각이 든다.합장은 특히 불교와 관련이 깊다. 불교는 합장의 종교다. 합장으로 시작해서 합장으로 끝난다. 예불을 모실 때도 기도할 때도 수행할 때도 인사할 때도 가장 먼저 하는 것이 합장이다.합장은 특정종교 전유물 아닌원초적으로 타고난 성스런 몸짓합장은 예배·수행의 시작과 끝갈수록 인식 가벼워져 ‘우려’합장은 원래
프란치스코 교황이 8월14일부터 4박5일의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한다. 그러나 이번 방한을 둘러싸고 가톨릭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단 교황 방한의 초청 주체가 모호하다. 초청 주체가 한국가톨릭이라지만 정부가 오히려 호들갑을 떨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초기부터 교황청에 친서를 보내 방한을 요청했다. 방한이 무르익자 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교황방한 정부지원위원회를 구성해 의전과 행사, 경호안전 3개 분야를 집중적으로 준비해 왔다. 최근에는 방한하는 교황을 위해 대통령 전용헬기까지 지원하겠다고 밝혔다.교황의 방한 목적
6·4지방선거에서 진보성향 교육감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전국 17개 시도에서 13명의 진보교육감이 당선됐다. 6·4지방선거의 최대 이변이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공평무사해야 할 교육에 진보와 보수가 있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엄연한 현실이다. 여기에 숭고한 철학적인 의미가 담겨 있지는 않다. 현 정부에 반대하면 진보고, 정부에 순응하면 보수다. 국민도 정부에 거슬리면 종북이고 좌파고, 빨갱이 딱지가 붙는 세상이니 진보교육감의 약진은 현 정부에 대한 민심의 준엄한 경고일 것이다. 13명의 진보교육감들은 당선과 동시에
6·4지방선거가 끝났다. 여야(與野) 모두 승리도 참패도 아닌 묘한 결과다. 이번 선거는 정부의 세월호 참사 부실대응이 최대이슈였다. 그러나 정부여당은 참패하지 않았고, 야당 또한 몰표를 얻지 못했다. 여야를 향한 냉엄한 민심의 회초리라는 시각도 있다.그러나 이 절묘한 결과가 오히려 불안하다. 성패가 압도적 차이로 가려진다면 분쟁은 줄어든다. 승자의 너그러움과 패자의 승복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 홀가분하게 인정하고 새롭게 출발하기가 그만큼 쉽다. 그러나 아쉬운 승부는 패자에게 진한 뒤끝을 남긴다. 상대에게 분노하고 결과
기억하건데 이명박 전 대통령은 종교편향적인 공직자의 정점이었다. 그는 서울시장 시절 기독교 행사에 참석해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했다. 시민들은 알지도 못하는 사이 하나님의 신민이 됐다. 대통령이 된 뒤에는 목사를 청와대로 불러 기도를 했다. 기독교 행사에 부인과 함께 참석해 무릎을 꿇었고, 국민들은 목사들과 함께 머리를 조아린 대통령을 보며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국정에는 소망교회 인맥들이 거미줄처럼 진을 쳤다. 고려대, 소망교회, 영남을 합친 ‘고소영’이라는 조어가 비웃음처럼 청와대를 향했다.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은공직자 종교
감사원이 문화재 보수와 관리 실태에 대한 감사결과를 내놓았다. 결과는 복마전이었다. 보수가 시급한 문화재는 방치하면서 주변정비에 거액의 예산을 배정했다. 사업비를 과다하게 지급한 경우는 비일비재했다. 자격미달 업체에 시공을 맡기고 자격이 없는 공무원이 감리하기도 했다. 문화재청과 9개 광역시·도를 대상으로 한 감사에서 밝혀진 내용이다. 소중한 혈세가 밑 빠진 독처럼 새어나가고 보수 이후 원형을 잃어버리거나 부실시공에 몸살을 앓는 문화재도 부지기수였다. 부실시공의 근본 원인 공개입찰손실분 보전위해 부실시공 유혹문화재 수리는 국가직영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꼭 한 달이다. 지난 한 달은 지옥이었다. 감당하기 힘든 슬픔에 가슴을 쳤다. 뉴스를 보는 자체가 고통스러워 애써 외면하려고도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부모가 되는 순간 한 아이의 부모가 아니라 모든 아이의 부모가 된다는 말처럼 내가 배에 갇힌 아이들의 부모였다. 그럼에도 죽음을 앞둔 아이들이 남겼다는 몇몇 동영상은 차마 열어보지 못했다. 너무 시리고 아파서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저 안타깝고 미안할 따름이다. 부패 관료와 무능한 정부는우리 함께 만든 공동의 업학연지연 떠나 선량 뽑는게비극 되풀이 않
“불교의 목적은 인류에 공헌하는 것이다. 이교도를 불교로 개종시키는 것은 우리가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것에 비해 별로 중요하지 않다.”2008년 달라이라마는 한국불자들에게 봉축 메시지를 보내왔다. 불교의 참 의미를 일깨우는 말씀이다. 개신교의 공격적인 선교를 그대로 닮아가는 한국불교에 내린 경책이었는지도 모른다.만나는 사람마다 존대하고온화한 미소가 떠나지 않아종교를 떠나 부처님께 삼배국민 고통현장 누비며 위로 최근 달라이라마의 가르침이 새삼 ‘몰록’ 일어났다. 가톨릭 광주대교구 김희중 대주교와의 만남 때문이다. 4월15일 가톨릭 광주
대학시절, 캠퍼스에 화사한 봄기운이 차오르면 엄지와 검지가 울긋불긋 물든 학생들이 늘어갔다. 손끝을 물들인 색감이 최고조에 달할 쯤 교내 곳곳에 예쁜 연등이 등장했다. 음력 4월8일, 양력 5월의 부처님오신날은 그렇게 찾아왔다. 동국대 불교대학에 다니거나 불교학생회에서 활동하는 학생들은 학회실이나 동아리방에서 한 달 정도 연꽃과 연잎을 꼬았다. 색색의 종이들을 입으로 불어 낱장으로 만들고 끝을 모으면 연꽃과 연잎이 만들어졌다. 이것을 하얀 창호지로 바른 둥근 틀에 붙이면 아름다운 연등이 완성됐다. 형형색색 화사해진 손끝은 노고에 대
북한의 성명은 증오로 가득 차 있다. 말의 폭력성을 절감하게 된다. 어떻게 저런 못된 말들만 골라 쓰는지 놀랍기만 하다. 우리에게도 험한 말을 일상으로 쓰던 암울한 시절이 있었다. 당시에는 ‘때려잡자 공산당’이니 ‘초전박살’을 입에 달고 살았다. 솜털 보송한 아이들에게 반공 표어와 포스터를 강요하며 여린 가슴에 증오를 심었다. 시절은 어두웠다. 군인들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국민들의 생각과 입을 틀어막았다. 자유와 행복을 옥죄는 북한처럼 당시 우리도 그랬다. 정부는 무서웠고 거스르면 살아남기 힘들었다. 증오에 가득 찬 말로 반공을
조계종 총무원이 제1회 신행수기 공모전을 연다. ‘나는 그곳에서 부처님을 보았네’라는 주제로 열리는 공모전은 법보신문과 불교방송이 공동으로 주관한다. 과거를 돌아보면 사찰이나 단체, 신문사를 중심으로 한 신행수기 공모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단편적이고 진득하지 못했다. 조계종이 종단차원에서 신행수기 공모를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래서 의미가 크다. 신행수기 공모전이 알려지자 주관사인 법보신문에 신행수기들이 속속 접수되고 있다. 이메일도 있지만 원고지와 노트, 편지지에 손으로 직접 눌러 써 편지로 부친 것들이 많다. 어떤 수
경전을 살펴보면 드물지만 장애를 가진 수행자들이 나온다. 아나율과 주리반특이 대표적이다. 아나율은 천안통이 뛰어났다. 그래서 천안제일(天眼第一)로 불렸다. 천안통을 얻으면 진리의 실상을 낱낱이 알 수 있다. 나아가 우주와 천상계, 지옥계도 거울 보듯이 볼 수 있다. 부처님께서 돌아가신 어머니에게 설법을 하기 위해 도리천에 올랐을 때, 이를 천안으로 보고 알아차린 것도 아나율이었다. 그러나 정작 아나율은 시각장애인이었다. 그는 게으름에 대해 부처님께 꾸중을 들은 뒤로 잠을 자지 않고 정진했다. 결국 시력을 잃었지만 천안통을 얻어 가장
삶은 죽음으로 평가받는다. 말과 행동이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다면 예사롭지 않은 삶이다. 역사는 많은 삶과 죽음을 기록하고 있다. 고귀하고 바른 삶을 산 이들은 대체로 죽음 앞에서 초연했다. 그러나 탐욕과 욕망에 찌든 이들은 죽는 순간에도 비루했다. 삶에 대한 집착으로 버둥거리다 결국 황천으로 끌려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삶에 대한 애착,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생명을 가진 존재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일 것이다.이런 삶과 죽음의 두려움을 완벽하게 초월한 분이 있다. 부처님이시다. 부처님은 삶에 대한 애착은 물론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가이아 이론(Gaia theory)이 있다. 가이아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이다. 가이아 이론은 지구가 스스로를 조절할 수 있는 유기체 내지는 생명체라는 주장이다. 이 이론의 옳고 그름을 떠나 지구는 매우 위험한 상황에 놓여있다. 지구에 대한 인류의 착취와 학대가 도를 넘었다. 세균을 박멸하듯 인류의 학대에 견디다 못한 지구가 자기정화라라도 시작하면 인류는 아마도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돌이켜보면 지구는 인류에 의해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다. 나무를 함부로 베어내는 바람에 산림은 황폐해지고, 물도 말라가고 있다. 석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