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위·박영보 등 사대부차 문화 부흥 주역으로초의 스님의 공적 찬탄 ▲훗날 병조판서를 지낸 박영보가 1830년 초의 스님과 청교(淸交)의 증표로 지은 ‘남다병서’. 1830년 겨울, 상경한 초의 스님은 두어 해를 한양에서 지내면서 수종사와 다산 댁, 홍현주의 청량산방 그리고 신위의 북선원, 금선암을 오가며 홍현주의 지인들, 신위, 정학연형제 등과 교유하면서 그가 갈고닦은 선시의 시경(詩境)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1831년 정월 중순 초의를 위해 마련된 청량산방 보상암의 아름다운 고회(高會)는 홍현주가 주관한 시회(詩會)로, 윤정진, 이만용, 정학연, 홍희인, 홍성모 등, 장안의 명사들이 그의 별서에 모여 기량을 뽐냈다.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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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25 10:19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