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전신 마비됐지만천일기도하며 불사 도와전시회 열어 모금활동도 언 땅이 녹아내리고 빈가지에 생명의 태동소리 들려오는 삼월, 나는 커다란 솥에 죽을 쑤고 있다. 멀리서 정토마을 소의경전인 법화경 기도소리가 들려온다. 어디로부터 흘러나오는지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눈물이 출렁이는 곳을 바라보니 그곳에는 나의 도반이 살고 있었다. 12년 전, 겨울눈이 펑펑 오던 날 동안거 중에 쓰러져 의식불명에 빠졌던 비구니스님. 불치의 질병을 진단받고 죽음을 준비하기위해 정토마을에 입원했다. 정토마을이 문을 열고 1년이 흘렀을 때였다. 의사는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내렸지만, 나는 그것과는 상관없이 코에 삽입된 호스로 날마다 죽을 넣어드렸다. 나는 고민했
폐암 걸려 치료 포기하고 움막서 홀로 죽음 기다려 전 재산 300만원 보시 “늙은 산승입니다. 정토마을 스님 맞습니까?” 전화벨이 울렸다. 지리산 골짜기 어드메의 토굴이라 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윤기 없이 갈라진 목소리에는 폐에서부터 올라오는 병의 기운이 완연했다. “내가 스님을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지는 못하겠네요. 혹시 지리산에 오실 일 없나요?” 죽음 앞에 선 생명의 가냘픈 떨림이 느껴졌다. 사람의 한평생이라는 것이 오직 허무할 뿐이지만 죽음이라는 생소한 경험을 앞두고는 누구나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당장 기차를 타고 구례로 향했
떡을 빚고 나물을 볶으며가족·고향 이야기 나누던훈훈했던 ‘설날의 기억’ 설날을 앞두고 청원군에 있는 호스피스센터 정토마을에 다녀왔다. 그동안 언양 자재병원 불사에 매진하느라 정토마을을 자주 방문하지 못했다. 미안한 마음에 병실을 둘러보며 환자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증상이 깊어져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에서 언양 자재병원에 갈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는 환자까지 다양한 삶과 죽음이 길게 드리워져 있다. 정토마을은 여전히 삶과 소멸이 바람에 일렁이는 파도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시린 바람 불어오는 뜨락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노라니 눈이 허리만큼 쌓였던 어느 설날이 생각난다. 그때 우리는 모두 모여 찰떡을 만들었다. 환자들의 고향과 추억은 물론
고요하게 떠난 보살님폐암으로 투병했지만수행정진의 힘으로평화롭게 임종 맞아 생명을 다한 이파리는 푸름을 떨구고 빈가지 위에 새들은 외로이 지저귀던 아침이었다. 말간 얼굴의 보살님이 생명을 놓았던 그날의 기억이 지금까지 선명하다. 그때, 날씨는 겨울답지 않게 참으로 포근했다. 모든 것이 텅 비어버린 듯한 겨울의 정토마을, 처마 끝 풍경이 바람을 타고 노닐던 아침에 보살님은 평화롭게 삶을 마감했다. 맑게 뜬 눈을 살며시 감으며 몸을 놓아버렸던 보살님…. 중학교 선생님이었던 그는 불교가 좋아 결혼도 하지 않고 수행을 해왔다. 방학 때마다 남방불교 수행센터에 가서 수행했고 직장에 돌아와서도 수행의 끈을 놓지 않았다. 폐암을 선고받고 약 3년을 투
군인인 남편을 내조하며자식들 박사 만들었지만암투병 오래되자 무관심 밤하늘에 별이 빛난다. 별빛 내리는 산에 하얀 눈은 소복이 쌓여있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언젠가는 또 겨울이 찾아오듯 시시각각 삶과 죽음이 이어지는 자연의 오묘한 조화도 생과 멸을 거듭하고 있다. 그러나 만물의 질서 앞에 저항하는 존재는 사람밖에는 없는 것 같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절망과 분노를 느낄 때마다 삶의 무상함을 생각해 본다. 과연 어떻게 죽는 것이 잘 죽는 것일까? 차가운 바람이 쓸쓸하게 대지를 스쳐지나가는 지금, 문득 암으로 삶을 마감했던 보살님이 생각난다. 보살님의 남편은 군인이었고 자식 모두를 박사로 키워낸 여장부였다. 종합검사에서 예기치 않은 암
어머니 긴 투병 생활에 간병비·치료비 이중고 국가차원의 지원 절실 얼어붙은 땅은 문을 닫고 차가운 바람은 대지를 가른다. 겨울이다. 모든 것이 움츠려든 듯 보이지만 저 대지 아래에는 이 순간에도 생명이 꿈틀거린다. 땅 위에서, 땅 아래서 펼쳐지는 모든 것들은 내 삶이 존재하는 동안 언제나 경이로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내 존재가 사라져버리는 죽음에 대해 진심으로 생각하는 삶이 아니었기에 그것에 대한 반항과 거부와 공포와 두려움과 불안이 극대화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본다. TV에서 난치성 불치병 환자들에 대한 대통령 당선자의 공약을 접했다. 장기 질환자의 간병비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고 당시 대통령 후보는 보호자들
‘못 배운’ 소외감 속에서 가정을 위해 헌신했지만 외로운 병실서 홀로 임종 자재병원 앞산 마루에 눈처럼 쌓인 구름이 눈비 되어 내린다. 고헌산은 눈물 나게 아름답고 그리움은 물안개처럼 피어오른다. 따뜻한 마음 담은 시를 내 손에 꼭 쥐어주시던 거사님. 낙엽 가득한 정토마을 숲길을 걸으며 어머니 품속 같은 흙에 묻히고 싶다고 말씀하시던 거사님의 그림자가 산마루에 드리웠다. 거사님은 8살이 되던 해에 해방을 맞았다. 어머니와 함께 고향 이북에서 내려와 전라남도 해남에 자리를 잡았다. 허기질 때마다 밥 대신 물로 배를 채워야 할 만큼 어려웠고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거사님은 16살에 서울로 올라와 일을 시작
투병하는 엄마 곁에서상처입고 지쳐버린 딸씩씩하게 세상 살기를 강물이 흘러 바다로 모이듯 다양한 인생을 걸어온 사람들이 모여드는 종착역, 회한의 눈물이 바람 되어 지나가는 곳, 정토마을. 삶에서 죽음으로, 죽음에서 탄생으로, 탄생에서 삶으로. 뒤죽박죽 엉키는 인연의 날줄과 씨줄의 출렁임이 있는 그곳에는 성성한 가르침 또한 굽이친다. 지난여름 유난히도 무더웠던 어느 날, 응급차 한 대가 정토마을에 섰다. 체구가 작은 사람 한명이 병실로 실려 들어가고 가녀린 여성과 초등학생 여자아이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소녀의 엄마는 뇌종양으로 4년간 투병했고 아빠는 그런 아내를 두고 떠나버렸다. 소녀의 이모는 오갈 곳 없는 처지가 된 이들을 자신의 집으
불치의 질병 걸리자 집 떠나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칩거가족과 떨어진 채 임종 맞아 행복한 가정에서 성장하는 아이는 자신의 감정과 정서를 잘 드러낸다. 그러나 결핍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스스로의 감정을 억압하고 욕구를 통제한다. 그렇게 진실한 모습을 숨기고 열등감과 피해의식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가다보면 내면에는 허무함과 고독, 슬픔이 자리 잡는다. 결국 늦가을 잿빛 같은 침묵 속에 자신을 가둬버리고 가슴을 닫은 채 살아가는 것이다. 불치의 질병에 걸리고 주변과 멀어지는 환자들은 대부분이 감정과 욕구를 억누른 채 살 수밖에 없었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가족, 사회, 종교 모두를 거부하며 폭발적 분노와 원망 그리고 적개심 속에 휘둘리는 사람이
췌장암 말기진단에 치료포기집에서 마지막 맞길 바랐지만가족 없이 병원서 세상 떠나 새벽이다. 바람소리는 커지고 가을은 깊어간다. 지난해 6월 착공한 자재병원은 아직도 60% 공정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언제 입원이 가능한지를 묻기 위해 현장을 찾는 환자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리다. 정토마을 전 직원들이 모금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모금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병원건립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낀다. 그래도 최선을 다 할 것이다. 자재병원 완공을 기다리시던 보살님이 며칠 전 세상을 떠났다. 보살님은 지난 7월, 처음 자재병원 현장을 찾아왔다. 까맣게 변해가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싫어
10년간 병원불사 발원하며 힘들때도 격려해주던 스님 스님 떠난 자리 아쉬움 커 자재병원 건축현장을 홀로 걸으며 가을 옷으로 갈아입을 채비를 하는 대지를 바라본다. 풍요와 결실의 계절이 어느새 성큼 다가왔음을 느낀다. 꿈을 가지고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온 사람들에게 가을은 희망의 계절이다. 저마다 가슴 속에 품은 희망을 성취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해 본다. 말법시대를 살아가는 중생들이 자재병원을 통해 지혜·자비심을 기를 수 있다고 믿는다. 삶과 죽음의 순환에서 벗어나는 가르침을 얻을 수 있는 수행처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자재병원이 온갖 번뇌와 갈등 그리고 욕망에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피안에 이르는 나침반 역할을 해 줄 것이
농사지어 동생들 챙겼지만 부동산 개발계획 발표되자 땅지분부터 요구한 동생들 정토마을은 여러 가지 상황들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다. 세상 떠날 날을 기다리는 사람들, 그들을 전문적으로 돌보는 사람들, 그리고 힘이 되고 싶어 머무르는 사람들까지…. 저마다 입장은 다양하지만 아릿한 아픔과 아쉬움, 한없이 베풀고 싶은 사랑의 마음이 한데 어우러지며 오롯이 담겨 있다. 민족최대의 명절 추석이다. 이맘때쯤이면 달처럼 둥근 얼굴 속에 깃들어있는 슬픔을 감추지 못했던 거사님이 생각난다. 췌장암 말기 67세 거사님의 슬픔이 내 기억 깊은 곳에 각인된 탓이리라. 육남매의 맏이인 거사님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아들 둘과 딸 한명을 키워냈다.
매미가 떠난 숲속은 고요하다. 들판의 나락이 하나 둘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계절의 변화가 성큼 다가왔음을 느낀다. 텃밭에 심은 고추가 발갛게 익어가던 어제 오후, 딸을 먼저 떠나보낸 보살님이 찾아왔다. 악성 종양으로 6년을 투병하던 연희는 2년 전, 16세의 나이로 가족 곁을 떠났다. 보살님은 지치고 메마른 얼굴로 언양 자재병원 현장에 나타났다.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는 그 모습에 내 마음도 함께 무너질 듯 내려앉았다. “아침에 딸아이를 묻은 자리에 갔지만 가슴이 먹먹해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49재를 치른 절에도 가봤지만 서글프긴 마찬가지였고요. 우리 연희 떠나기 전에 스님께서 임종기도 해주셨잖아요. 스님 보려고 이렇게 왔어요
“벽돌담의 존재 이유를 기억하세요. 그것은 우리가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 어떤 것을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 것인지 보여줄 기회를 주기 위해 그곳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췌장암을 선고받고 6개월 시한부 삶을 살던 랜디 포시(Randy Pausch) 카네기멜론대 교수가 강단에 섰다. 그는 학교를 떠나기 전 동료 교수들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마지막 강의’에서 ‘벽 이론(The Brick Walls Theory)’을 말한다. “벽돌담이 있어 우리가 최선을 다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그것은 어린 시절에 품었던 꿈의 달성을 원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분리시킵니다. 결코 중단하지 마십시오. 가장
한 달 전, 말기 위암으로 1년 정도 투병하던 거사님이 바싹 마른 몸을 이끌고 언양을 방문했다. 병원이 얼마나 지어졌는지 알고 싶어 왔다고 했다. 5년 전부터 매월 2만원을 후원하던 중 삶이 얼마 남은 것 같지 않다며 3시간을 달려오셨던 것이다. 가슴이 먹먹했다. 이놈의 병원은 왜 이렇게 빨리 지어지지 않는 걸까. 스스로를 자책하니 땅이 꺼질 듯 한숨이 나왔다. “비록 눕지 못할 곳이지만 훗날 나 같은 사람들이 편히 사용했으면 좋겠어요.” 나를 향해 환히 웃음 짓던 거사님. 물 한모금도 삼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거사님과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스님, 저는 이제 더 이상 태어나고 싶지 않습니다. 이 한세상 너무
정토마을 공동체는 전국 곳곳의 스님과 법우님들의 후원으로 불치병환자를 위한 의료사업을 펼치고 있으며 임상 전문가 양성기관도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정토마을과 인연을 맺고 후원하는 분들은 대부분 소중한 바람을 가슴에 품고 있다. 가족과 친척, 그리고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려 할 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 그리고 자신이 세상을 떠날 때 도움을 받고 싶은 마음이 그것이다. 이런 마음이 정토마을을 돕는 정성으로 이어지고, 또 그러한 정성이 모여 불교계 최초 완화의료전문 자제병원의 모습을 만들어가고 있다. 많은 후원자들이 있지만 특히 주변가족들에 대한 자신의 역할이 끝나면 정토마을에 들어와 살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봉사를 통해 삶을 회향하
죽음을 돌본다는 건 또 다른 수행이다. 돌보는 이는 죽음을 바르게 자각하고 죽음의 의미에 대한 통찰력을 갖게 한다. 자신의 죽음을 보살핌 받는 이는 자기잘못을 스스로 용서하며 내면의 행복을 일깨우고 사랑하게 한다. 말기위암으로 투병하던 환자도 죽음 앞에서 미움과 원망을 내려놨다. 그리고 미움, 원망 내려놓은 자리에 다시 사랑을 채웠다. 환자는 조용히 삶을 마감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마음속엔 남편에 대한 분노와 원망이 있었고, 시어머니도 미워했다. 꽃다운 열여덟. 환자가 결혼했던 나이다. 시골에서 시어머니를 모시고 남편과 과일 농사를 지으며 딸 둘과 아들 하나를 가졌다. 그렇게 15년, 위암을 알았고 암은 전신으로 퍼졌다. 죽음을 앞두자 암의 어두운 그
사람은 종종 죽음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남들 다 죽는데 나도 그때 죽으면 되는 것이지, 인연 따라 왔다가 인연 따라 가는 거지. 그러나 죽음에 대한 이런 태도는 죽기 전까지만 통용될 뿐이다. 죽음에 임박하면 그런 생각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만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세상이다. 죽음을 함부로 생각하지 말고 진정으로 죽음을 준비해야만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다. 그동안 죽어가는 사람들과 함께하며 참 많은 것들을 경험했다. 흔히 걸림 없는 수행자들의 죽음, 출가 장부의 죽음은 들길의 풀밭 언덕을 베고 하늘을 덮고 누우면 그만이라고 한다. 하지만 들길 풀밭에서 논두렁을 베고 임종을 맞이한 수행자가 있다는 이야기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삶을 살아내는 방법은 다양하다. 삶의 여정 중에서 마주치는 상황과 사람들 또한 다양하다. 무엇하나 같은 것이 있을까마는 질병을 얻게 되는 원인과 투병 그리고 몸을 벗게 되는 과정에서 특히 연기법의 깊은 고리를 발견하곤 한다. 요즘 들어 각 지역 대학병원에는 불치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들로 넘쳐난다. 여린 생명에 치유할 수 없는 질병이 깃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무엇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됐다는 것인가. 암을 비롯한 불치병을 앓는 유아와 아동, 청소년이 늘어난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조금만 숙고해본다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부모는 어린생명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임신 전부터 몸 상태에 각별히 신경써야한다. 결혼을 앞둔
아내와 이혼하고 아들 둘, 딸 하나를 둔 57세 폐암 말기 환자가 있었다. 막노동 하다 발병한 환자는 자식들이 간병의 어려움을 호소해 정토마을로 왔다. 작은 아들이 먼저 떠나고 28살 큰아들이 남아 하룻밤을 지내고 가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환자인 그의 아버지는 가난 속에서 술만 먹으면 폭력을 휘두르는 할아버지에게 무척 많이 맞으며 자랐다고 했다. 견디다 못한 아버지는 매일 매를 맞는 할머니를 남겨두고 고향을 떠나 객지 노동판을 전전하며 생활했다. 곧 어머니를 만나 가정을 꾸렸지만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어머니와 자기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고 했다. “아버지가 죽고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크면 복수를 하겠다고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