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제법 춥습니다. 더우면 그늘로 피할 길이 있다지만 추위는 어디로 피할 곳이 없습니다. 강원도 인제서 군대생활을 했습니다. 영하 20도 아래로 내려가야 내무반서 근무할 수 있게 배려해줬고, 그보다 높으면 내무반에 들여보내주질 않았던 것이 기억납니다. 얼마나 추웠던지 추위를 이기기 위해 훈련했고, 열심히 작업해야 했던 장면들이 스쳐지나갑니다. 부산도 이렇게 추운데 서울 인근은 얼마나 추울까요. 더 위쪽에 사는 사람들은 또 어떻게 겨울을 보내고 있을까요. 그들을 생각하면 제게 주어진 편안한 잠자리가 미안하고 이렇게 밤을 보낸 것이
어제 신도 몇 분과 차를 마셨습니다. 매주 경전공부 하시는 분들이었습니다. 요즘 절은 한참 불사가 진행돼 시끄러운 소리를 피해 찻집으로 갔습니다. 따뜻한 생강차 한잔은 함께 한 사람들의 가슴에도 전해져 금방 훈훈한 기운이 감돕니다.정신없이 보낸 시절 후남편·자식들 떠나면삶에 대한 고민 밀려와엄마들 새 꿈 돕고싶어무슨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전날 밤 TV에서 본 ‘설레임’이라는 말을 떠올렸습니다. 오랜만에 듣는 반가운 어휘였습니다. 자신을 설레게 했던 일에 대해 대화하기로 했습니다. 어떤 이는 자식이 결혼을 준비하면서 며느리가 될 사람
어제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버스에 올라 보니 오랜 만에 보는 신도와 낯선 분들이 있었습니다. 모두들 새벽부터 나오느라 힘들어 보입니다. 순간 이 분들이 오늘 어떤 느낌으로 돌아가게 할 것인가를 고민했습니다. 잠이 덜 깨 눈을 비비고 있는 신도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습니다.휴식 필요성 알지만편히 쉬지 못하는 것뭔가 구하는 마음때문그것 알면 평온 찾아와“오늘은 여러분 자신에게 휴식을 주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쉬기 위해서 멀리 외국도 가고 맛있는 것을 먹고 비싼 옷과 좋은 집을 삽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휴식을 주고 평온
방바닥에 배를 붙이고 엎드려 있습니다. 군불을 땐 시골집의 아랫목에서 배를 바닥에 데고 있으니 온몸이 나른해 지고 어린 시절 평화롭던 느낌이 떠오릅니다. 왠지 고향에 온 듯합니다. 손에는 연필이 들려있고 바닥에는 어느 노트에서 찢어낸 3장의 종이가 하얗게 깔려 있습니다. 글을 쓸 종이가 없어서 이 집 주인의 노트를 찢어 밀린 숙제를 하고 있습니다.익숙한 도시서 벗어나산골집에서 보낸 하루자연 의지해 사는 주인행복의 참 뜻 알려줘고개를 돌려보니 장판은 얇고 군데군데 구멍이 뚫려있고, 벽지는 빛이 바래 원래의 색을 분간하기가 어렵습니다.
비가 이틀째 내립니다. 창문에는 어디서 날아왔는지 빗물이 방울방울 매달려 있습니다. 조용한 아침시간에 비 내리는 창문을 보고 빗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고요하고 평화로워집니다. 요즘 ‘육조단경’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육조단경’에는 도통(道通)이란 말이 나옵니다.피가 몸 곳곳에 흘러야아프지 않고 건강하듯도통은 정체된 마음을막힘없이 흘려보내는것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이 문득 떠오릅니다. 선생님께서 장래의 꿈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자신 있게 도통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는 도통이 무슨 의미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냥 어른들이 도통을 위해 참
오랜만에 은사 스님을 위해 시간을 내었습니다. 어찌 보면 처음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다른 일에는 시간을 잘 내면서 정작 스님을 위해서는 시간을 내지 못했습니다.모든 것 잘할 것이라는자만심으로 생활하지만실수투성인 내모습 보며부끄러움과 겸손을 배워 어린 저를 키우면서 애쓰셨을 것을 생각하면 부끄러울 뿐입니다. 저도 한 때 아이를 키워 볼까하며 생각도 해보았지만 아이가 너무 가까이 올 것 같아 부담을 느낀 적이 많았습니다. 강아지라도 키워 보고 싶다고 신도님들에게 조르면 모두들 고개를 흔듭니다. “누가 먹이고, 똥은 누가 치울 것이냐”는
어제가 초하루였습니다. 태풍에 비바람을 뚫고 불자님들이 법당에 오셨습니다. 감사하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이런 말씀을 잠깐 드렸습니다. 제가 주지라고 늘 따뜻하게 챙겨주셔서 고맙고 감사하다고요. 그리고 그럴 때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두렵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제가 정말 이런 대접을 받을만한 사람으로 스스로 착각에 빠지는 것입니다. 저는 본래 이렇게 존중받을 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주지라는 것도 다 포장이고 놓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기 때문입니다.포교 앞장섰던 스님경질되는 것을 보며예의·상식
“스님, 요즘도 축구 하시나요?” “예, 일주일에 2번 정도는요.” 사람들이 자주 묻는 말입니다. 이젠 일상이 되어 갑니다. 사람들은 “축구가 그렇게 좋으냐”고 묻습니다. 그럼 “예, 그냥 넓은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것 자체가 너무 기쁩니다. 마치 묶여 있던 강아지가 고삐가 풀려서 넓은 들판에 나가 뛰어다니는 느낌”이라고 대답합니다. 운동장에 나가면 일상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은 느낌입니다. 관음보살 자비 닮겠다고 매번 원력을 세워보지만번번이 무심했던 것 참회중생 먼저 살피는 삶 발원절에 하루 종일 있다 보면 늘 이런 저런 생각으로 바
초등학교 6학년 시절로 기억이 됩니다. 누군가가 ‘이렇게 살아라!’라는 확실한 길을 알려준다면 ‘내 목숨을 다해 그렇게 살겠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 생각을 되짚어 보면 ‘어떻게 살아야 되는 걸까?’에 대한 고민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이 세상에 훌륭한 사람이 있다면 그의 삶과 같은 길을 걷겠다’고요. 이것은 중학교 때쯤 가졌던 생각이었습니다. 남 가진 것만 바라보고좇으려 꿈을 꾸지만잊고 있던 주변에 감사만족하는 삶이 참 행복 그런데 내 안에 다른 목소리도 들렸습니다. ‘아무리 명성이
며칠 전 다른 절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수능기도에 대한 안내가 크게 붙어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절 신도님들이 생각났습니다. 식구들도 챙기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들었습니다. 절 앞에 현수막이라도 붙이려다가 포기했습니다. 수능평가 앞둔 수험생에최선 다하라는 말도 부담힘들어 할 때는 공감하고 친구처럼 대하는 게 도움 ‘수능기도를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회의를 갖게 되었습니다. 자식이 수능을 앞두면 불안해지기 마련입니다. 세상은 수능생이라고 이름붙이고 본인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시험의 무대 위에 올라가라 몰아붙입니다. 그러나
요즘 절에서 청소년 명상 캠프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중학생을 대상으로 했지만 이번에는 고등학생을 참가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의 반응이 궁금하고 걱정도 되었습니다. 누구나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지만 성인이 되면 그 시기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까맣게 잊고 지냅니다. 오히려 부모 입장에서 학생을 바라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청소년 시절 겪지만어른되면 기억 잊어아이들과 소통 위해선이해·공감이 가장 필요 오후 무렵 한 남자 아이가 힘들어 합니다. 잘 하더니 거기까지가 스스로의 한계선이라고 정했던 모양입니다. 배가 아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이고, 어떻게 살아야 오늘 하루가 만족스러울까. 새삼 이런 생각을 가져봅니다.주지로 사는 것이 참 힘든 것 같습니다. 주지는 그야말로 사찰의 최종 책임자입니다. 또 모든 평가의 대상이 됩니다. 절이 잘되면 주지가 잘 한다고 하고, 잘못되면 주지가 능력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그러니 늘 불안합니다. 마치 시험관을 마주하고 있는 학생 같은 느낌입니다. 긴장하고 늘 무엇엔가 쫓기듯 초조해 합니다. 처음에는 다들 잘하고 싶어 합니다. 잘 한다는 것은 자기 기준에도 흡족해야 하고
며칠 전 저녁 공양 초대를 받아 한 신도 집에 갔습니다. 어린 남자아이 둘이 거실에 누어있었습니다. 양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인사할 겨를도 없이 벌러덩 누워서 게임에 집중합니다. ‘아이고 이래서 될까’하다가, 순간 ‘아니야 이 아이들도 성장하면 달라지겠지’라는 목소리가 내면에서 들려옵니다. 게임을 마치면 ‘원래대로 착한 아이들로 돌아갈 거야’라는 생각을 하며 바라봅니다. 잠시 후 호통을 치는 엄마의 목소리에 아이들은 게임에서 빠져나옵니다. 집착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깨우침의 소리였습니다. 그 시간이 10분 정도 걸렸습니다. 어떤 판단
서울에서 지하철을 탔습니다. 재잘거리는 이야기 소리가 들려 보았더니 여학생 세 명이 한참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두 아이는 서 있고 한 아이는 앉았습니다. 무슨 이야기들을 하는지 허리를 휘어가며 자지러지게 웃는 것입니다. 그 모습이 너무 좋아서 자꾸 곁눈질을 했습니다. 어떤 꽃을 보는 것보다 아름다웠습니다. 보는 것만으로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마음 한 구석에서 청량한 기운이 생깁니다.아이들이 저렇게 웃고 떠들고 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정화되는 듯한 느낌입니다. 해맑게 웃는 한 아이의 얼굴에서 백제의 미소라고 불리는 마
오랜만에 서울 부암동에 있는 성불사에 갔습니다. 늘 따뜻하게 맞아주시는 어른 스님의 반가움이 그리웠던 것 같습니다. 법당에 참배하러 갔더니 20대 아가씨가 절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르진 않았지만 맑은 피부와 눈망울에서 신선한 느낌을 받았습니다.아침에 지하철에서 만난 젊은 아가씨들과는 왠지 느낌이 다릅니다. 절을 하면서도 즐거운 표정입니다. 어린 아이가 절을 하는 것처럼 귀엽습니다.천배 하는 보살을 보며절 수행 참의미 되새겨한배 한배에 마음살피면묵은 때 씻듯 마음 정리어른 스님은 점심 공양을 하면서 그 젊은 보살이 절을 하게 된 사연
중학교 때 일이 생각납니다. 어릴 적 지리산 실상사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산 넘어 남쪽인 화개 쌍계사에서 중학교를 다녔습니다.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전학을 간 여름 방학기간으로 기억이 됩니다. 이름처럼 쌍계사는 양 옆으로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습니다. 동생하고 계곡 쪽으로 수영을 하러가는데 동네 아이들이 모여서 물고기를 잡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침 물고기를 죽이면 절대 안 된다는 신념으로 살고 있을 때여서 큰 소리로 “야! 너희들 모두 나가, 여기서 물고기 잡으면 안 돼”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이들은 순간 멈칫 거
어두운 창문 밖으로 비가 추적추적 내립니다. 오늘은 왠지 그 소리마저 귀에 거슬립니다. 바닷물에 갇혀 있는 어린 친구들이 추위에 떨 것 같아서입니다. 왜 이렇게 자꾸 슬퍼지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의 몸짓과 마음이 하나 둘씩 전해질 때마다 가슴이 시립니다. 사람의 소식은 없고 마지막 순간의 외침들만 뜨문뜨문 들려옵니다.물에 빠진 아이 생각하면슬픔 깊어져 가슴 시려와지금 책임 대상 찾기보다서로 슬픔 나눠야 할 때오늘이 마침 지장재일이라 위패를 하나 더 얹었습니다. 차마 영가라고 부를 수 없어 고민하다가 세월호의 친구들이라고만 적었습니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오는데 분위기가 예전과 다르네!”얼마 전 포교에 남다른 열정을 보이고 있는 스님들에게서 이런 우려 섞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동안 걱정했던 일이 이제 피부로 느낄 수 있을 만큼 가까이 온 것 같습니다.이런 분위기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예고됐지만 신중하고 진지하게 논의를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깔려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몇 해 전부터 우리나라를 이끄는 대기업 대표들은 앞으로 닥쳐올 경제 위기를 우려하면서 과감한 혁신이 필요하다는 말을 하곤 했습니다.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이번에 미얀마 성지순례를 다녀왔습니다. 노보살님들을 모시고 가는 길이라 걱정이 많았지만 생각보다 편안하고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지난해 겨울 다녀온 인도에 비해 불편함도 적었습니다. 인도는 부처님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지만 아쉽게도 그 곳을 지키는 이들은 불자가 아니었습니다. 반면 미얀마는 부처님에 대한 믿음과 신행이 그대로 옮겨온 곳이었습니다. 온 국민의 95%이상이 불교신자이고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절에서 교육을 하고 있었습니다.그런데 인도와 미얀마에서 들은 이들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가슴이 저려옵니다. 인도는
저희 절은 용두산 올라가는 언덕에 있어서 계단이 많습니다. 게다가 법당은 삼층 옥상 위에 있어서 오로지 계단으로만 이용해야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닙니다. 젊은 종무원도 절에 온 지 3개월이 지나면 3kg이 빠진다고 합니다. 어르신들이 다니기에는 더 불편해 가끔 ‘계단이 불편하다’는 말을 하시면 죄송스런 마음이 일기도 합니다.계단 고통스럽지만운동 여기면 고마운 것한 생각 좋고·싫음 결정알아차릴 때 변화해그런데 누가 그럽니다. 계단을 오르는 것이 다리 운동에 아주 좋다구요. 나이가 들면 장딴지 근육을 키워야 하는데 계단이 많은 것은 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