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종 스님이 되기 위한 첫 관문은 단일계단인 태고총림 선암사에서 매년 열리는 합동득도수계산림에 참여해 4주간 행자교육을 받고 계를 받는 것. 그렇다면 태고종 스님들에게 계를 주는 계맥(戒脈)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가.(계맥은 계법(戒法)을 전수한 계통맥락(系統脈絡)을 말하는 것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마하가섭, 아난 등을 거쳐 지금의 계사, 수계자에 이르기까지의 계통이 일관함을 표시한 것) 태고종에 따르면 태고종 단일계단 계맥은 묵담성우(默潭聲祐·1896∼1981) 스님으로부터 이어진다. 묵담 스님은 계율의 준수와 실천이 곧 삶이었던 해동율맥의 중흥조로서 대율사이자 선지식으로 통한다. 전남 장성 백양사에서 금해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묵담 스님은 대은-금담-초의-법해-제산-호은-금해로 이어
경남 양산의 영축산은 옛 이름이 취서산이었으나 인도의 영축산과 모양이 닮았다 하여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높이가 1,059M 에 달하는 명산으로 주봉이 따로 없이 길게 늘어선 연봉이 독수리가 날개를 편 모습과 흡사해 보입니다. 이 연봉이 잘 보이는 곳에 자장암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자장암은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 스님이 중국에 유학가기 전 기도를 하셨던 곳으로 통도사보다 역사가 깊습니다. 자장암은 국내 사찰 중 전망이 좋기로 소문이 났습니다. 프랑스 르몽드지 사장이 자장암의 다실에서 바라보는 경치에 넋을 잃고 시쳇말로 ‘뻑’ 갔다고 스님의 자랑이 대단합니다. 법당은 거북바위라는 암반 위에 지었는데 암반을 깨지 않고 그대로 건물을 지었기 때문에 법당 바닥에 바위가 살아있습니다. 법당 뒤쪽
하루 한 끼…만년에도 손수 세탁 수행-교화 진력…계율 강조한 선승 이 세상 저 세상 오고감을 상관치 않으나 은혜 입은 것이 대 천계만큼 큰데 은혜를 갚는 것은 작은 시내 같음을 한스러워 할 뿐이네 此世他世間 去來不相關 蒙恩大千界 報恩恨細澗 --------------------------------------------------------------------------------- 청화 큰스님 행장 △1947년 세납 24세에 백양사 운문암에서 금타 화상을 은사로 득도 △출가 이후 40년간 사성암 벽송사 백장암 상견성암 상원암 남미륵암 칠장사 등지서 수행 정진 △1985년 전남 곡성 동리산 태안사에서 삼년결사를 시작으로 회상을 이루고 대중교화 시작. 1
99년 11월 29일 입적 동곡당 일타 스님은 근·현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율사로 추앙 받는 인물이다. 계율을 지키는 것이 계·정·혜(戒定慧) 삼학의 시작이며 출가의 궁극적 목적인 완벽한 깨달음을 얻기 위한 덕목임을 스스로 실천하면서 강조했던 스님이기 때문이다. 일타 스님은 1929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나 14세라는 어린 나이에 외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양산 통도사의 고경 스님 밑으로 출가해 송광사 삼일선원과 속리산 복천암 선원 등지에서 참선을 하며 깨달음에 대한 수행을 시작했다. 오른손 열두마디 단지 1949년 통도사 불교전문강원을 졸업하고 비구계와 보살계를 수지한 스님은 이듬해부터 일대사 인연을 해결하기 위해 다시 운수 납자의 길에 들어섰다. 스님은 응석사 선방, 범어사,
조선 제7대 세조는 악행을 많이 한 왕으로만 알려져 있으나 불교 중흥에 큰 역할을 한 사실은 모르는 분이 많습니다. 세조는 불경을 한글로 간행하여 백성들에게 불법을 널리 알렸고, 원각사를 창건하였으며 상원사와 낙산사를 중창하였습니다. 일본에 팔만대장경을 전하여 해외 포교에도 힘을 썼습니다. 이런 세조와 인연이 깊은 사찰이 바로 오대산 월정사입니다. 단종의 어머니인 현덕왕후가 꿈에 나타나 저주를 퍼붓고 침을 뱉은 후 생겨난 피부병으로 크게 고생을 하던 세조가 상원사 계곡에서 목욕을 할 때 문수동자의 현신으로부터 은혜를 받아 피부병이 씻은 듯이 나았답니다. 세조는 상원사에 자신이 본 문수동자 상을 조성하였습니다. 국보 제221호인 문수동자상의 복장유물을 조사한 결과 조성연도가 1466년(세조12
화암사의 문화재 화암사에는 보물 663호로 지정돼 있는 극락전과 보물 662호로 지정돼 있는 우화루 외에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40호로 지정돼 있는 동종이 있다. 이 종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화암사를 광해군 때 중창 불사한 후 ‘호영’이라는 인물이 주조했다. 종의 높이는 1미터가 채 되지 않아 작은 편이지만 ‘자명종’, 즉 ‘스스로 울리는 종’이라고 하니 눈여겨 볼만하다. 스스로 소리를 내어 나라의 위험을 알렸다는 화암사의 동종. 나라에 불행한 일이 있을때면 스스로 소리를 내어 그 위급함을 알렸다고 하니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에 등장하는 ‘자명고’에 버금가는 영물인 셈이다. 산신각에는 1837년에 조성된 탱화가 한점 봉안돼 있는데, 산신 탱화로는 그 연대가 비교적 오래된 귀중한 문화재다.
61년 7월 17일 입적 용성 화상에게 인가 평생 무소유 삶 실천 인곡 스님은 평생 두타의 행각을 몸소 실천해 보인 수행자로 추앙받는 대표적인 인물이다. 당대의 선지식을 찾아 그 회상에서 정진 수행하며 두각을 나타냈을 뿐 아니라 일생동안 후학양성에 힘쓰며 수행정진에 몰두했기 때문이다. 1895년 전라남도 영광군에서 태어난 인곡 스님은 1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불문에 들어 “열심히 수행해서 반드시 부처가 되리라”고 결의할 정도로 비상한 인물이었다. 스님은 워낙 신심이 깊은 집안에서 태어나서인지 ‘창수’라는 속명 그대로 법명으로 사용하게 된다. 출가한 뒤 문수사에서 만난 금성 화상을 은사로 머리를 깎은 스님은 19세가 되던 해 백양사에서 1년 동안 교육과정을 마친 뒤 20살이 되던 해 금해 율
한중 양국 오대산이 자매결연을 맺었다. 월정사와 중국 오대산불교협회가 6월 26일 결연식을 갖고 있다. 해마다 20명 교환 방문해 안거에 동참 한중 불교문화-학술 조명 위한 세미나 한-중 불교계 최초로 교환 안거가 이뤄지게 됐다. 조계종 4교구 본사 월정사와 중국 산서성 오대산불교협회가 6월 26일 양국의 선 수행자들이 상호 교환하여 결제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결제 교류를 합의함에 따라 양국의 선 수행자들이 서로의 도량에서 함께 수행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이번 결연에 대해 중국 불교계는 문화혁명 이후 희박해진 간화선이 한국의 수행 전통에 힘입어 중흥의 기틀이 다져질 것으로 희망하고 있다. 636년 신라의 고승 자장 율사가 중국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신라로 돌아와
1. 부처님 생존시 마갈타국의 아사세 테자가 부왕인 빔비사라왕을 죽이고 어머니인 위제희 부인을 감옥에 가두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때 부처님이 위제희 부인을 위해 극락정토를 관하는 16관법을 설하는데 이 내용이 수록된 경전은? ① 『아미타경』 ② 『무량수경』 ③ 『관무량수경』 ④ 『반주삼매경』 2. 미륵전은 미래의 부처님인 미륵이 불국토인 용화세계에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상징화한 법당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표적인 미륵전은 3층 전각으로 안에는 통자로 터져 있어 미륵삼존불이 모셔져 있고 3층 전각의 편액은 1층은 대자보전, 2층은 용호지회, 3층 편액은 미륵전이라고 현판이 붙어 있는 사찰은? ① 법주사 ② 금산사 ③ 운주사 ④ 미륵사 3. 한 사찰에서 관세음보살을 모신 건물이
덕민 스님은 13살 때 우룡 스님을 은사로 동진 출가하여 65년 청암사 강원 대교과를 졸업하고, 고봉 큰스님과 우룡, 고산 스님 문하에서 정진한 학승이다. 절집에서의 정진에만 머물지 않고 공부를 위해 72년에는 태동고전연구원에서, 73∼87년에는 추연 권용현 문하에서 한학을 사사했다. 70년에 법주사 강사, 88년 쌍계사 강주를 거쳐 범어사 강주를 지냈고, 현재 석굴암에 주석하면서 불국사승가대학 학장으로 있다. 덕민 스님은 교육원장을 지낸 무비스님과 함께 세속적 학위는 물론 유학 등을 하지 않고 대강백에 오른 드문 경우에 해당되는 스님이다. 주로 산중에서 스님들만을 대상으로 강의를 해와 일반불자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 학문적 명성과 깊이가 스님들 사이에서는 정평을 얻고 있다. 선시와 당·송 대
티베트 서쪽 카일라스산〈사진〉으로 가는 길에서는 오체투지를 하는 순례자나 짐칸 밖으로 튀어나올 만큼 많은 사람을 실은 트럭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들은 카일라스산에 상주하는 부처님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난 수행자들이다. 티베트인이라면 누구나 카일라스산에 오르는 것을 소원으로 생각할 만큼 이곳에 대한 경외심이 크다. 그들은 카일라스산이 불교에 등장하는 수미산이며 이곳에는 부처님이 상주하고 있다고 믿는다. 티베트인들에게 이 산은 곧 우주의 중심이다. 하늘과 맞닿은 신성한 땅인 이곳은 삼라만상을 순환하게 하는 으뜸 산이요, 세계의 기둥으로 숭앙된다. 이 산을 오르는 순례자들은 카일라스산을 한번 순례하면 평생의 업보가 지워진다고 믿는다. 열 번의 순례는 한 시대의 업보를 소멸하고, 108번의 순례는
부산역 광장에 신라 화랑도 행렬이 등장했다. 마치 역사책에서 빠져나온 듯한 왕과 왕비, 신라시대의 고승인 원효대사, 원광법사, 자장율사가 장엄의 물결을 따라 거리로 나왔다. 이어 김유신 장군과 듬직한 화랑의 행렬이 이어졌다. 불기 2548년 5월 23일 부산역 앞에 등장한 화랑도는 금정중학교 연극반, 파라미타반, 범어수효반 청소년불자들이 준비한 특별 제등행진이다. 200만 불자가 함께하는 부산광역시봉축위원회 연합 제등행진에 매회 독특한 테마로 동참해 온 금정중학교의 올해 주제는 신라화랑도. 화랑도의 정신적 스승이며 훈련을 담당한 곳이 바로 불교였다는 사실을 알리고 화랑 행렬을 재현해 신라 불교사를 쉽게 이해하고자 마련됐다. 스님 역할 위해 ‘삭발’투혼 화려했던 신라의 문화를 재현하
1. 석가모니 부처님이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에서 열반하시면서 부처님의 사리를 설명한 내용으로 틀린 것은?① 부처님의 장례는 석가모니 유언대로 당시 쿠시나가라의 말라족이 맡아서 가섭존자의 참석하에 치러졌다.② 부처님 사리를 8개 부족이 나누어 모셨는데 이를 근본팔탑이라 한다.③ 인도 최초의 통일왕국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왕이 8개의 사리탑 가운데 1개를 제외한 나머지 탑을 모두 열어 전국에 나누어 봉안토록 하였다.④ 부처님의 사리를 전신사리, 쇄신사리, 법신사리로 설명할 수 있는데 이중 법신사리는 부처님의 화장 후 나온 구슬모양의 결정체를 말하는 것이다.2. 적멸보궁에 관한 설명으로 맞지 않는 것은?① 부처님이 완전한 열반을 이룬 그 몸에서 나온 사리를 모신 곳을 적멸보궁이라 한다. 이는 부처님이 열반에 들어
월정사-中 대표단, 화엄사상 대중화 발원 성지순례-학술대회…수좌 교환 안거 정진 한국과 중국의 대표적인 문수 성지인 오대산 월정사와 중국 오대산의 수상사가 4월 25일 월정사에서 자매결연을 맺는다. 4월 23일 현재 두 나라 문수 신앙의 예비 결연을 의미하는 이날 행사에는 한국의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 등 산내 사찰의 스님들이 동참하며 중국 대표로는 중국 산서성의 부성장(부시장)을 비롯해 중국불교협회 부회장, 중국 오대산의 대표적인 사찰 중 하나인 수상사 대중 등 36명의 중국 불자와 관계자가 함께 해 두 나라 문수 신앙의 결연을 축하하고 증명한다. 신라 자장 율사를 고리로 두 나라 문수 신앙이 그 맥을 함께 하며 화엄사상을 꽃 피운 역사를 따진다면 두 나라 오대산의 만남은 단순한
89년 1월 8일 입적 비구니 스님들에게 수행자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를 수행을 통해 몸소 실천해 보인 광호 스님(1915∼1989)은 비구니계의 큰 별로 평가받는다. 일생을 혹독한 수행과 무주상 보시를 실천하며 용맹정진에 힘써온 까닭이다. 스님은 1915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나 1923년, 우연히 어머니를 따라 경상북도 운문사를 방문했을 당시 어느 행자승의 삭발식을 유심히 지켜본 이후 스님은 출가하겠다는 발원을 세우고 본격적으로 비구니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 당시 나이가 아홉 살이다. 17세가 되던 1931년, 비구니 혜원(慧圓) 스님으로부터 사미니계를 수지하고 21세 때 통도사서 해담(海曇) 율사를 계사로 대소승계를 받은 스님은 23세에 영축총림 통도사 윤고경(尹古鏡) 대강백 회하에
오대산 월정사 신임 주지 정념 스님은 2월 26일 진산식을 열고 공식적인 주지 취임식을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조계종 원로위원 성수 스님,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 종회의장 지하 스님, 불국사 주지 종상 스님 등 스님 500여명과 신도 2500여명 등 3000여명의 사부대중이 동참해, 정념 스님의 주지 취임을 축하했다. 정념 스님은 취임사에서 “오대산은 자장 율사 개산 이래 수많은 고승대덕이 주석하며 우리 민족의 정신적 귀의처가 돼 왔던 성지”라고 밝히고 “(주지를 맡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무한한 영광이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문명의 전환기인 중요한 시점에 주지를 맡게 돼 더 한층 무거운 마음을 가눌 길 없다”며 “초심(初心)의 마음으로 산중과 교구발전, 종단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4월 24일 파계사 영산율원 사상 첫 전계식 철우-종진-성우 스님, 제자 10명 계맥 전수 오늘날 조계종을 대표하는 율사들이 신라시대 이후 내려오고 있는 한국불교 전통 계맥(戒脈) 복원에 나섰다. 조계종을 대표하는 율사 스님들이 계맥 복원에 직접 나섰다. 사진은 2003년 1월 23일~25일 파계사 영산율원에서 열린 수계의식 습의산림 법회 모습. 파계사 영산율원(율원장 철우 스님)은 최근 율원장 철우 스님을 비롯해 파계사 주지 성우, 영산율원 율주 종진 스님 등 대표적 율사들과 모임을 갖고, 4월 24일(음력 3월 5일) 오전 11시 영산율원에서 전계식(傳戒式)을 개최하기로 했다. 영산율원은 이에 따라 현재 국내에 남아있는 4대 계맥 중 자운 스님의 계맥을 우선 정립, 이를
“전계식은 율사들이 어떤 계맥을 잇고 있는가를 명확하게 알 수 있게 해 정통성을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전국의 율원이나 강원에서 계율의 중요성을 지도할 수 있는 인재들이 많이 배출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오는 4월 24일 대구 파계사 영산율원에서 전계식을 개최하는 영산율원장 철우 스님은 “한국불교의 계맥은 이어져 왔으나, 전계식은 그 의식이 대부분 사라지거나 스승과 제자간에만 서로 주고받아 율사들이 자신이 어떤 계맥을 잇고 있는가를 알 수 없게 했다”며 “이번 전계식은 율사들이 어떤 계맥을 잇고 있는가를 알 수 있게 해 계맥의 정통성을 찾으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2002년 11월 국내 첫 계율연구소 비니원의 초대원장을 맡았던 스님은 전문 율사들을 양성하고 출가자의 계율문제를 비롯해 재
한국불교에 있어 계맥은 중국 남산 도선 스님으로부터 출발한다. 중국에서 발간된 『불학인명사전』의 경·율·론 삼장에 관한 도표에 따르면 신라 시대 이후 한국불교 계맥은 남산 도선 스님에 이어 범여, 겸익, 자장, 숭재, 진표 스님으로 전수된다. 특히 자장과 진표 스님은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율사로 명성을 날렸으며 이후 영신, 심지, 고심 여향 스님으로 이어졌다. 고려시대에 대한 기록은 전무해 이 시기 어떤 스님에 의해 계맥이 전수되고 이어져 왔는지에 대한 자료는 없다. 고려시대 이후 조선시대에 들면서 현재 남아 있는 한국불교 4대 계맥이 형성되게 된다. 현재 남아 있는 계맥으로는 통도사 계맥, 동선 스님 계맥, 금강선 계맥, 자운 스님 계맥이다. 이중 영산율원에서 정리한 자운 스님 계맥은 조선시대 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