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불교박람회가 열렸다. ‘자기들만 재미있는 거 하는 불교’라는 투로 입소문을 타던 것이 올해 완전 ‘대박’이 났다. 경불회도 법우들과 참관하러 갔다. 그런데 사람이 좀 많이 오는 수준이 아니라, 빼곡하게 줄을 서 있었다. 기다리는 내내 이런 얘기를 했다. “뭐가 그렇게 재밌길래 이렇게 사람이 많이 오는거지?”사실 동아리를 운영하면서, 대학동아리라는 정체성과 불교동아리라는 정체성 사이에서 많이 고민하고 있었다. ‘불교’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나에게 불교란 조용한 곳에서 가만히 명상과 참선을 하고 부처님 말씀을 공부
군대에 있으니 참 좋은 점이 많다. 나라에서 밥도 주고, 월급도 주고, 운동도 하라고 시간을 준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바로 정든 청년들이 하나둘씩 떠난다는 것이다. 일전에는 군종병이 전역한다고 찾아왔다. 밝은 얼굴로 인사하는데 전역을 축하하는 마음보다 이별의 아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요즘은 법회에 오는 청년들에게 전역해도 기쁜 일이든, 힘든 일이든 꼭 연락하라고 한다. 특히 결혼식을 하면 꼭 주례는 나에게 맡기라는 당부를 덧붙인다. 그날도 법회를 마치면서 주례사 당부를 하던 차였다. 그런데 한 용사가 “
근래 집 근처 절을 다녀왔다. 무언가를 자꾸 깨우치려고 애쓰는 나 자신이 답답했다. 언제부터였더라.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글에 자꾸 메시지를 담으려고 했던 것이. 약 한 달 정도 지나고 다시 나에게 주어진 이 글 작업을 앞두고 문득 이질적인 현상 속, 그 가운데에 당도했다. 글을 쓰는 나 자신을 바라본다면 내가 보는 내 표정과 근육의 움직임들은 어떨까 상상해 보았다. 미세하게 경직되어 있고 좁혀진 미간에, 사유한다는 것을 이유로 억지로 글 안에 무언갈 담으려고 하는 모습이었다. 그 현상을 눈과 마음으로 목도한 순간. 나는 집착과
겨울의 쌀쌀했던 궂은 날씨가 시나브로 지나고 꽃 피는 봄이 찾아왔다. 우리 학생들도 낯설었던 새 학교, 새 친구와 금세 적응했는지 온 교실에 웃음꽃이 만개했다. 처음 만났을 때 긴장과 걱정의 표정은 온데간데없다. 이제는 개강 법회와 신입생 환영 법회까지 마쳐서 법사실에 우르르 몰려와 간식을 달라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간식을 주느라 며칠 만에 준비해 둔 간식이 동나기도 한다. 이러한 하루를 보내면서 나 역시 마음 깊은 곳에 있는 행복의 씨앗이 싹을 틔운다.내 수업은 학교 법당인 정각원에서 진행한다. 과목은 ‘철학’이다. 학생들은 법당
회장으로서 처음 맞이하는 학기다. 두 달 간의 방학 동안 나름 회장이란 이름을 달고 실수도 경험도 쌓았으니 어려움이 닥쳐도 어떻게든 넘길 수 있겠거니 하는 생각이었다. 임원 법우들과 3월 동아리 활동 일정을 짜고, 동아리 가두모집을 준비하며 기다리는 새 학기는 걱정보다 설렘이 앞서기까지 했다. 하지만 막상 개강 법회가 닥치자, 갈 길이 멀다는 걸 새삼 느꼈다. 목탁은 박자를 맞추기 어려웠고, 법당 안에 있으리라 생각했던 물품들도 꼭 한두 개씩 없었다. ‘당연히 있겠거니’ ‘당연히 되겠거니’하는 안일함이 얼마나 큰 독인지 알면서도 또
‘열반경’에는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우화가 있다. 이 우화는 군대를 갇힌 공간으로 여기는 장병들에게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안내해 주는 이야기이다.어느 나라의 왕이 진리에 대해 말하다가 대신들에게 한 마리의 코끼리를 몰아오게 하여 여러 장님들에게 코끼리를 각각 손으로 만져보게 하였다. 그리고 왕은 그들을 불러 코끼리가 어떻게 생겼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이빨을 만져본 장님은 코끼리는 큰 무뿌리와 같다고 말하고, 귀를 만져본 장님은 코끼리가 키와 같다고 말하고, 등허리를 만져본 장님은 코끼리는 평상과 같다고
근래 일주일에 한 번씩 시니어분들의 글짓기를 도와드리는 수업을 하고 있다. 자신만의 글을 쓰고 각자의 글들을 취합하여 한 권의 책으로 제작하는 일이었는데 필자는 그 과정 안에 마음챙김 명상 시간을 넣었다.매 수업 갖은 번뇌와 걱정거리를 내려놓고자 시작한 명상은 글을 쓰기 전, 마인드컨트롤을 위함이었다. 걷기 명상, 눕기 명상, 호흡 명상 등등 정말 많은 종류의 명상을 이끌며 들었던 느낌은 ‘욕심과 집착’이었다. 학생들이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고, 자기만의 안온한 세계로 몰입했을 때 진행자인 본인의 세계가 오히려 깨지고 있다는 것
어느새 2월도 훌쩍 지나고, 곧 개강이다. 두 달은 시작점에서 보면 긴 시간 같지만, 끝에 서서 보면 참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이다. 방학 동안 동아리에서 크고 작은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다 보니, 유독 이번 방학은 더 빠르게 끝난 것 같다. 두 달 동안 직접 부딪혀보면서, 생각보다 지레 겁먹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실수도 오히려 몇 번인가 해보니 다음엔 실수하지 않을 노하우가 생기기도 했고, 법우들의 도움을 받으며 나 혼자 동아리를 이끄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덕분에 올해 초보다 동아리에 대한 이런저런 걱정을
군대에서는 16시가 되면 어김없이 체력단련 시간을 가진다. 장병들의 체력 증진을 위해서 빼놓을 수 없는 일과 중 하나다. 군종장교인 나도 이 시간이면 어김없이 함께 3km를 뛴다. 늦어지는 나의 속도에 늘 인사과장님께서 보조를 맞추어 주시는데, 내 숨이 가빠질 때마다 인사과장님은 힘든지를 묻곤 하신다. 나도 변함없이 너무 힘들다고 대답하는데, 그때마다 과장님은 “그게 정상입니다” 하며 덤덤히 말씀하신다. 처음에는 내게 힘듦을 잊게 해주시려 위로를 가장한 아재개그를 던지신건지 싶어 멋쩍게 웃었는데 매번 듣다 보니 과장님의 저 농담 같
새해에 다양한 방법으로 올해 자신의 운을 미리 듣기 원하는 사람들을 주변에서 많이 보았다. 필자 또한 그동안 진심 반 재미 반으로 운세를 보기도 많이 보았지만 이제는 짧은 운세에 집착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기로 했다. ‘아함경’에서 숙명에 대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고 난 뒤로 말이다.그전까진 실망스러운 일이 일어나면 ‘이게 내 숙명이었나 보다’ 생각하고 넘기기 바빴다. 부정의 일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건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기대를 낮추곤 했다. 하물며, 긍정적인 일이 일어나도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난 거구나’ 생각하며 내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열심히 불교 동아리 활동하면서도 ‘금강경’을 읽어본 적이 없다. 변명해보자면, ‘경전’이라는 단어가 주는 압도감이 상당했기에 선뜻 읽어보자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이제 부처님의 가르침이 어떤 것인지 배워가는 참인데, 널리 쓰는 말로 ‘맨땅에 헤딩’ 식으로 읽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언젠가 읽어보겠노라는 목표만 간직한 채 아직은 때가 아니겠거니, 하는 식으로 미루어두기만 했다. 하지만 아는 구절이 딱 하나 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즉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어라’이다. 불자라면 익히
2023년 여름, 매주 법회를 어떤 주제로 해야 할까 고민하던 때였다. 임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군의 사정도 잘 모르고 군종병의 잦은 휴가로 모든 청소를 혼자 도맡아 했다. 청소가 끝나가던 어느 날, 창문이 눈에 띄었다. 두껍고 어두운 커튼이 쳐져 있어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창문을 닦으려 커튼을 열어젖히는 순간, 넓고 높은 통창 사이로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져 내렸다. 통창 사이로 비치는 청명한 하늘과 마당의 작은 나무, 이곳이 절임을 일깨워주는 탑이 수채화처럼 눈앞에 펼쳐졌다.이후 창문은 나에게 쉼터가 되고 위로가 되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