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제11교구본사 불국사 차기 주지후보로 현 주지 종우 스님이 단독 입후보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격심사를 통과하면 재임이 확정된다.제11교구선거관리위원회가 8월25~27일 불국사 차기 주지후보 등록을 접수한 결과, 종우 스님이 단독으로 입후보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9월3일 오후 2시 불국사 주지후보 자격심사를 실시할 예정이다.종우 스님이 자격심사를 통과하면 불국사 주지 재임에 성공한다. ‘산중총회법’에 따라 단독 후보로 주지후보 선출을 위한 산중총회가 열릴 경우 성원 여부와 관계없이 당선이 결정된다. 불국사 주지후보 선출
갈수록 불자들이 감소하고 정체성마저 희박해진다는 지적이 잇따르는 가운데 불교학자들이 대안모색에 나섰다.(사)한국불교학회(회장 김성철)는 8월16·17일 동국대 경주캠퍼스에서 2018년 하계워크숍를 열고 재가불자의 신행지침 마련을 위한 대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워크숍은 김성철 한국불교학회장은 한국 재가불자들이 준수해야할 공통된 신행지침의 제정 필요성을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됐다.김 회장에 따르면 우리나라 스님들의 출가 의식에 사용하는 규범집인 ‘사분율(四分律)’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래 존속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율(律)
화엄석경의 조성 시기는 7세기, 8세기, 9세기 등 여러 견해가 도출되어 있고 이에 대한 연구사 정리도 되어 있는 상태이다. 근래 제출된 견해로 화엄석경을 ‘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의 변상도와 비교하고 ‘금강경’ 석경과의 유사한 서풍을 들어 8세기 전반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여러 전거를 들어 8세기 전반으로 올려보고 있으나, 필자는 이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9~10세기 설을 주장하는 입장임을 밝혀두고자 한다.신라에는 불교유입 이후 중국으로부터 많은 불경들이 들어왔다. 명관의 전래에 이어 자장의 전래로 대장경이 대부분
허준의 ‘동의보감’ ‘잡방문(雜方門)’에는 투명인간이 되는 약을 만드는 은형법(隱形法)에 대한 처방이 수록되어 있다. 이게 뭔 소린가 싶겠지만,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결과는 명백한 허구다. 이로 인해 ‘동의보감’의 합리성을 비판할 때 은형법은 단골메뉴로 등장하곤 한다.그런데 ‘삼국유사’에는 이보다도 더욱 놀라운, 경주에 실재했던 용궁에 대한 기록이 있다. 그것은 ‘아도기라(阿道基羅)’에 등장하는 ‘용궁의 남쪽 황룡사, 용궁의 북쪽 분황사’라는 언급이다. 이는 용궁을 기점으로 남쪽에는 황룡사가 위치하고 북쪽에는 분황사가 존재한다는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상동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불좌상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되어 있다. 광배만 파손된 채 불상과 대좌가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었으나 1989년 10월20일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 사이에 불상의 머리만 도난당했다.(사진 1) 불상 머리의 도난 과정이나 범인들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내용이 없다.현재 불신만 남아 있는데 대체로 신체비례가 적당하며 양감 있고 부드러운 조형감을 보여준다. 도난당한 불상의 머리는 높이 43cm로 굵은 나발(螺髮)이 표현되어 있고 그 위에 큼직한 육계(肉髻)가 놓여
한국 재래의 무격신앙(巫覡信仰)은 불교와 같은 일정한 경전이나 체계적인 교리가 없으며, 주술적인 내용이 중심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리고 조직화된 교단도 없으며, 그 제의(祭儀)가 사회적 공동체와 밀접한 관련을 갖고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삼국시대가 되면서 공동체의 성격이 변하였고, 또한 교의체계를 갖춘 세계종교인 불교가 들어오게 되면서 무격신앙이 차지했던 지위를 불교에 넘겨주지 않을 수 없었다. 교의체계가 없는 무격신앙세계종교 불교에 지위 넘겨불교는 무신론의 종교지만토착신을 호법신으로 포용스님, 현세이익 축원하는 건무격의 기능
‘삼국유사’ 신라시조 혁거세왕조에는 “최치원은 본피부사람이다. 지금 황룡사 남쪽 미탄사 남쪽에 옛 터가 있다 하니, 이것이 최치원의 옛 집이 분명하다”하는 구절이 있다.‘삼국유사’ 등장하는 사찰 중위치가 추정되는 귀한 사례일제강점기 제작 지도에는‘폐탑’이라고만 기록돼 있어1980년 흩어진 탑재 모아보물 1928호 삼층탑 복원불교문화재연구소 조사 때‘미탄’이라 쓰인 기와편 발견탑과 금당 등 가람의 형태와미탄사의 사역경계까지 확인올해 5월8일 다시 조사 착수사역 내부의 정밀 발굴 기대경주 황룡사지 남쪽 넓은 들판에는 장중한 석탑이 하나
“서기 413년 8월의 일이었다. 신라의 궁궐 동남쪽에 있는 낭산에 신비로운 구름이 피어올랐는데 마치 궁궐의 누각같이 보였다. 향기도 짙어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실성왕(實聖王)(402~417)은 이 광경을 보고 ‘저 곳은 분명히 신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노니는 곳이니 복 받은 땅일 것이다’ 라고 하였으며 이후 이곳에서 나무 베는 것을 금하였다.”‘삼국사기’ 권3 실성니사금조(實聖尼師今條)왕실에서 신에게 제사 지냈던신라의 진산 경주 낭산에 위치일제강점기부터 절터 정밀조사마애삼존불 등 4구의 불상 발견절터 문화재 외부 반출하면서지하
‘삼국유사’를 주제로 불교성지를 순례하며 한국불교의 새로운 신행문화를 선도해 온 법보신문이 월간 불교문화 후원으로 2018년 ‘불국토’를 주제로 성지순례를 실시한다. 첫 번째 순례는 3월24일 ‘석가모니의 불국토’를 찾아 통도사와 범어사로 순례를 떠난다.올해의 주제는 ‘불국토’불보살 원력 바탕으로이 땅에 구현코자 했던사찰 속 불국토를 조명 2016년부터 진행해온 ‘삼국유사 성지순례’는 사찰을 찾아 기도하고 둘러보는 단순한 형태의 순례에서 벗어나 역사서이자 불교문화사의 보고인 ‘삼국유사’를 지침 삼아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한국불교사
신라의 불교 공인은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하여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었는데, 그 시기에 대해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사이에 1년의 차이가 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서는 법흥왕 15년(528) 이차돈이 흥륜사 창건 공사의 책임을 지고 순교하였으며, 이어 그 이듬해에 살생(殺生)을 금하는 영을 내린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삼국사기’ 편찬 때에 신라본기 법흥왕조의 기년(즉위칭원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1년의 착오가 발생된 것에 연유한 것이다. ‘삼국유사’를 비롯하여 최치원 찬술의 ‘봉암사지증대사비’ 및 김부식 찬
의왕 청계사 향기법문 108선원순례단(단장 성행 스님, 이하 순례단)이 남해에 위치한 관음·지장·문수도량서 신심을 한 뼘 더 키웠다. 순례단(회장 유경희)은 11월7일 제21차 순례지인 남해 보리암, 용문사, 칠불사 운상선원을 참배했다. 청계사 주지이자 단장 성행 스님을 비롯한 33명 순례단원들은 남해 보리암을 먼저 찾았다. 보리암은 강화 보문사, 여수 향일암, 양양 홍련암과 더불어 대표적인 한국불교 관음기도도량이다. 신문왕 3년(683)에 관음보살을 친견한 원효대사가 보광사를 짓고 수행하면서 보리암이 시작됐다고 알려졌다. 원효대사
“고산사지 3층 석탑은 감은사지 석탑과 같은 시기에 만들어져 크기도 비슷합니다. 탑을 한 바퀴 둘러보면 상당히 크기 때문에 3층 탑신을 빼고는 옥개석과 탑신이 모두 여러 조각으로 짜 맞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1층 면석의 가장자리에 못 자국이 많이 나 있는데, 이는 청동판에 사천왕을 새겨서 붙였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햇살 좋은 날에 이 조각들이 반짝였을 것을 생각하면 인근 사람들이 부처님 보듯 합장했을 모습이 선연하게 그려집니다.”경주에서 옛사람들의 삶과 정신에 매료돼 아예 터 잡고 살고 있는 윤영희 경북문화관광해설사.
서울 조계사(주지 지현 스님)가 49일간의 ‘대한민국 국운융성을 위한 사리친견법회’를 7월25일 회향했다.조계사 대웅전 앞에 모셔왔던 사리는 6월9일 국립중앙박물관으로부터 장기대여 형식으로 이운해온 것으로 분황사 모전석탑 사리 4과, 무량사 김시습 사리 1과 등 40과다. 앞서 조계종 문화부는 2016년 5월26일 이영훈 국립중앙박물관장에게 수장고에 있는 사리들의 반환을 공식 요청하고 13건 총 129과의 사찰이운 결정을 이끌어냈다. 40과 외 나머지 사리들은 2019년까지 단계적으로 이운한다.조계사는 친견법회 회향식이 끝난 뒤 사
미국에 거주하는 교포 2세 청소년들이 한국 사찰 템플스테이를 통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발견하고 자긍심을 고취하는 시간을 가졌다. 미동부 해외특별교구(교구장 휘광 스님)와 한국불교문화사업단(단장 수암 스님)이 주최하는 ‘제9회 미동부 청소년 한국문화체험연수’가 7월6~15일 진행됐다.재미 청소년 15명이 참가한 연수단은 9박10일간 한국 사찰을 참배하고 불교문화를 체험하며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아갔다. 이 프로그램은 미 동부지역의 여타 고국방문프로그램과는 달리 고국의 사찰을 중심으로 전통문화를 배우는 유일한 청소년 모국
6월10일 낮 12시부터30분간 뚜렷하게 목격“경사” 불자들 환희심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서 돌아와 불자들의 예경을 받고 있는 조계사(주지 지현 스님)에서 햇무리가 나타나 불자들의 환희심을 일으켰다. 6월9일 사리들의 환지본처를 알리는 고불식에 이어 친견법회가 이어지고 있는 조계사에서는 이운 다음날인 6월10일 낮 12시경 햇무리가 나타났다. 햇무리는 햇빛이 대기 속 수증기에 비치며 태양 둘레에 무지갯빛 테두리가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날 조계사에서는 낮 12시경부터 뚜렷하게 햇무리가 나타나기 시작해 30분간 지속됐다.사리 친견을 위해
조계사, 6월9일 친견법회 봉행사부대중 1000여명 모여 축하“성보로 법답게 모시겠다” 다짐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잠들어 있던 사리들의 환지본처를 알리는 고불식이 조계사에서 성대하게 봉행됐다. 조계사에 모인 사부대중 1000여명은 유물로 치부돼왔던 사리들에 신앙의 숨결을 불어넣으며 “불교의 성보로 법답게 모시겠다”는 서원을 아로새겼다.서울 조계사는 6월9일 경내 대웅전 앞마당에서 ‘대한민국 국운융성을 위한 사리친견법회’를 열었다. 7월25일까지 일반에 공개되는 사리는 조계종이 국립중앙박물관으로부터 장기대여한 것이다. 조계종 문화부
경주 분황사 모전 석탑에서 출토된 사리 4과를 비롯해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서 불교계로 돌아오게 되는 사리 이운 및 친견 법회가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다.조계사는 6월9일 전통의례에 따라 사리를 고궁박물관에서 조계사까지 이운해 오는 사리 이운식을 진행하고, 오전 11시30분에는 대웅전 앞 특설무대에서 ‘대한민국 국운융성을 위한 사리친견법회’ 고불식을 봉행한다.사리 이운의식은 오전 10시 고궁박물관 별관에서 사리를 인계받아 연에 모시는 이운의식으로 시작된다. 이어 청룡, 황룡기 등을 앞세운 취타대를
얼마전 모 학회가 ‘원효의 사상이 한국 문화에 미친 영향’이란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왠지 원효와 문화, 혹은 원효와 예술은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든다. 반면에 ‘의상 스님과 예술’ 혹은 ‘자장율사와 예술’ 같은 개념은 다소 생소하게 들린다. 아마도 그것은 원효 스님의 삶이 다소 자유분방하고 기인의 행동을 보였다는 점 때문에, 그리고 그의 삶 자체가 파격이었다는 점에서 예술이 지향하는 바와 어떤 유사한 점이 있지 않을까 기대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의상, 자장 두 분 역시 불교미술사적으로는 중대한 영향을 남긴 분들이고 이에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있던 사리들이 대거 불교계로 돌아온다. 종교성을 상실한 채 유물로 치부되던 성보에 대한 인식을 신앙과 예경의 대상으로 복원하는 새로운 이정표가 돼줄 것으로 기대된다.국립박물관 사리 40과 이전설잠 스님 치아사리 등 포함“성보는 신앙대상” 인식 영향6월9일, 조계사서 친견 법회조계종(총무원장 자승 스님)과 조계사(주지 지현 스님)는 6월9일 오전 11시30분 조계사에서 ‘대한민국 국운융성을 위한 사리 친견 법회’를 봉행한다. 공개되는 사리는 조계종이 국립중앙박물관으로부터 장기대여한 것으로, 무량사 김시습 사리
부처님께서 열반에 든 후 부처님의 가르침과 공덕을 기리기 위한 불상과 불탑 등 다양한 형태의 상징물이 조성됐다. 특히 부처님의 체취가 그대로 남겨져 있다고 인식된 사리는 그 자체를 부처님이라고 믿었다. 사리를 마주한다는 건 부처님을 친견하는 것이고, 사리에 합장을 한다는 건 불법을 호지하겠다는 보리심의 발로였다. 탑은 그 진신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세워졌다.이 전통은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지 250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진신사리를 소장하고 있지 않은 불제자들도 절을 지을 때는 탑의 자리부터 잡는다. 부처님이 남긴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