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사찰에 온존하고 있는 전근대적인 관습이 한국불교를 전파하는 데 장애가 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오늘은 한인사찰에서 이루어지는 법문의 문제점을 지적할까 한다. 사실 법문은 기도나 명상보다 더 중요하다. 이민자들이 바쁜 생활 속에서 부처님 말씀을 통해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재충전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인사찰에서 이루어지는 법문은 한국 내에서 이루어지는 법문과 별 다를 바 없었다. 우연히 들렸던 한인사찰에서 젊은 비구 스님의 법문을 들은 적이 있다. 신세대적 감각을 갖춘 스님이었기 때문에 내심 큰 기대를 했지만 그날의 법문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법문의 요지는 많이 소유할수록 번거로운 일이 많아지니까 무소유가 좋다는 것이었다. 큰 집을 장만하면 좋을 것 같지만 실제로 잔디 깎을 일이
그동안 미국 주류사회에서 부는 불교 붐과 한국기독교의 정체성의 문제 때문에 이민 2세들에게 불교가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현재 한인사찰이 그런 역할을 해내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한인사찰은 이민 2세들이 한국문화를 배울 수 있는 좋은 장소이지만 한국 전통 중 불합리하고 전근대적인 요소가 온존해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 중 하나는 권위주의이다. 한국 유학생이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대체로 한국여자들은 미국에서 잘 적응하는 반면, 한국남자들은 적응을 잘 못한다고 한다. 이는 한국에서 여성들은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에 있다 보니 어디서든 적응할 수 있는 자생력을 갖춘 반면, 권위주의에 익숙한 한국 남성들은 낯선 문화에서 약자가 되어버린 자신의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날카롭
서양인에게 불교를 설명할 때 몇 가지 조심해야 할 점이 있다. 우리는 흔히 부처님이나 보살님의 대자대비를 어머니의 사랑에 비유하여 말한다. 그러나 서양에서 이렇게 했다간 낭패 보기 십상이다. 서양에서 어머니는 우리가 생각하듯이 사랑과 희생이 아니라 강한 고집과 냉정함으로 표상된다. 내가 만난 미국인 중 어머니에 대하여 동양인과 같은 감정을 갖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춘기 반항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머니와 심리적 갈등을 겪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 그래서 관세음보살의 자비를 설명하면서 “어머니처럼”이라고 말하면 서양 사람들은 감동은커녕 거부감을 보인다. 그러므로 서양에 불교를 전할 때 문화적 차이를 잘 고려해야 한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 오랫동안 미국에서 공부했던 스님을 만나 여러 가지 조언을 들었다. 그
불교가 명상을 통해 서양에 알려졌지만 최근엔 다양한 불교수행법이 소개되고 있다. 기복적인 성향이 강한 창가학회를 비롯한 일본 신흥종교들이 서양에서 교세를 확장하는 것을 보면 한국불교가 지나치게 간화선 하나만 고집한다는 생각이 든다. 간화선 이외에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수행법으로 108배 참회가 서양에 알려져 있다. 내가 있던 미국 동부의 작은 도시에는 위빠사나 수행센터와 일본 조동종 계열의 선센터가 있는데 그 중 선센터와 인연이 닿아 자주 그 곳을 찾았다. 어느 날 그 곳에서 108배를 하는 노신사를 만났는데, 그는 프로비던스에서 숭산 스님의 지도를 받은 뒤, 선센터에서 가르치는 다른 수행법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큰스님이 시킨 대로 매일 와서 108배를 한다고 했다. 몇 년 수행하면 바로 지도
스미스 칼리지에서 연수를 하는 동안 세계 각국에서 온 학생들을 만났는데 그 중 티베트 출신 학생들도 있었다. 이 대학에서 티베트불교를 가르치는 제이 가필드 교수의 배려로 특별 전형으로 들어온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중 한 명은 미국에서 태어난 학생이었다. 제이미 허버드 교수의 강의를 청강할 때 만났는데, 생김새도 분위기도 다른 티베트인들과 전혀 달랐고 유창한 영어에 자연스럽게 미국학생들과 어울렸기 때문에 ‘라마’라는 성에도 불구하고 티베트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나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미국학생들과 달리 나에게 무관심한 그의 태도 때문에 학기가 한참 흐른 뒤에 그 학생과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짧은 대화를 통해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뉴욕주에 있는 사원이 집이며 아버지가 티베트 스
새해 들어 반가운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다. 국제포교 인력양성을 위한 조계종 국제불교학교가 개원되었고 해외교구 설립을 위한 논의도 활발하다. 국제선센터의 설립과 국제포교 프로그램의 개발과 지원 등 다양한 사업이 추진되고 있는데, 이처럼 훌륭한 교육시설과 행정지원이 있더라도 교육과 포교현장을 연결하는 면밀하고 통일된 전략이 없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하여 현대사회의 흐름을 바로 알고 그에 맞는 포교전략을 개발해야 한다. 얼마 전 한국불교 세계화를 위한 방안으로 외국인을 위한 포교와 해외한인의 포교를 이원화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외국인 포교를 위해 해당 언어에 능통하고 그 문화를 잘 이해하는 외국인 스님들을 활용하고, 해외 한인을 위한 포교는 한국인 스님들이 담당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지금까지 몇 차례에 걸쳐 한인교회의 실상과 문제점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다. 한국불교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해놓고 지루하게 이웃종교 이야기를 하느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웃종교의 성공과 실패담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소중한 정보이다. 오히려 놀라웠던 점은 한인2세들이 한인교회를 떠난다는 이야기는 십여 년 전부터 공공연한 사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교계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만큼 우리들의 시야가 좁다는 이야기이다. 기독교나 가톨릭 교계에서 발행되는 신문이나 잡지, 학술지를 살펴보면 매번 불교 관련 기사와 논문이 빠지지 않는다. 그들은 끊임없이 불교의 현황을 살피면서 좋은 점이 있으면 바로 가져다 쓴다. 49재나 명상을 가톨릭에서 가져다 쓴 것이 어제 오늘의 일
한국문화와 미국문화의 차이 때문에 대부분의 한인2세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한다. 가정에서는 한국식으로 행동해야 하고, 학교나 사회에 나가면 미국적 가치에 따라 행동하기를 요구받는다. 간단한 예로, 미국학교에서는 선생님이든 학생이든 먼저 온 사람이 먼저 먹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지만 한국 가정에서 어른이 숟가락을 들기 전에 밥을 먹었다간 버릇없는 아이가 되어버린다. 반면, 집에서는 찌게나 반찬을 늘어놓고 함께 먹지만 미국인과 식사할 때 이렇게 행동했다간 비위생적이라며 기겁을 할 것이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생활했던 어느 소설가의 아들이 일본에서는 상대방에게 밥 먹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식사예절 때문에 그릇을 들고 식사하도록 배웠다가 한국에 온 뒤 그릇을 들고 식사하는 것이 쌍것들이나 하는 짓이
미국 내 한인교회가 미국사회에 섞여들지 못하고 섬처럼 고립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원인은 언어이다. 다른 인종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영어로 설교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한인교회가 소규모에다 아직까지 한인 1세들의 경제적 지원 없이 운영될 수 없기 때문에 교회의 주류인 이들을 위해 한국어 설교가 행해진다. 그러나 한국어로 설교하는 한, 한인교회가 다인종, 다문화의 미국사회로 침투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한국어 설교로는 한인 2세들을 붙잡아두지 못한다. 젊은이들이 한국어를 모르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인 2세의 한국어 구사력은 민족적 정체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한국어를 할 줄 아는 2세들이 한인교회를 떠나는 비율이 50%에 육박한다는 사실은 언어의 문제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한국어든 영어든
미국에 사는 한인 기독교인 중 한인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97%나 되고 미국교회에 나가는 사람은 3%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는 미국 기독교사에서 매우 독특하고 기이한 현상 중 하나이다. 더구나 한인교회는 대부분 성서와 개인적인 성령 체험을 강조하고 전도에 전력을 쏟는 복음주의 교회다. 선교를 위해서라면 아프리카, 몽고, 심지어 아프가니스탄까지 누가 말리건 개의치 않고 달려간다. 뉴욕에서 만났던 한국 여성이 자기 교회 목사가 ‘티베트에 선교하자’는 설교를 했다면서 어처구니없어 할 정도로 극성스럽다. 문제는 기독교의 본토인 미국에서이다. 기독교가 한인 집단 내에서 여러 종교들이 각축을 벌일 때 그 기득권 때문에 비교우위를 점하지만 미국 내의 다른 교회들과 경쟁을 벌일 때에는 무의미한 것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한인들이 미국사회에 정착함에 따라 한인교회도 함께 번영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부터 한인교회에는 심각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다름 아니라 젊은이들이 썰물처럼 교회를 떠나고 있다. 이것은 일부 한인교회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학계에서 “소리 없는 탈출(Silent Exodus)”이라고 명명될 정도로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한 통계에 따르면 한인2세들은 고등학교 졸업을 전후하여 70%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면서 90%가 한인교회를 떠난다고 한다. 이 변화는 미국에서 자라고 교육 받아 미국적 사고방식을 가진 영어에 능통한 이민 1.5세와 2세의 등장과 관계 있다. 이들의 등장과 더불어 지금까지 한인교회의 장점이었던 사회적 기능이 더 이상 장점이 아닌 상황이 초래되었다. 영어
재미 한인 중 기독교인 비율이 높은 이유는 애초에 기독교를 믿던 사람들이 이민을 간 비율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미국에 이민 간 후 현지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그 비율이 40%에 육박한다고 하니 그 중 불자가 개종한 경우도 상당히 많을 것이다. 주변에서 종종 그런 사례를 보는데, 내가 알고 있는 노보살님도 이민 간 자식들을 따라갔다가 교회를 다녔다고 한다. 처음에는 며느리가 교회 가자고 해도 거절했지만 운전을 해서 절에 나갈 수도 없고, 일요일마저 혼자 빈집을 지키기도 무료하고, 또 며느리와 사이가 틀어질까 걱정도 되어 결국 교회를 다니기로 결심하셨다. ‘교회를 나가더라도 마음속으로 부처님께 기도하면 되지’라고 생각을 고쳐먹고 몸은 교회에 나가지만 마음은 부처님 모시면서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