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 이상의 스크린에 개봉된 영화는 천만 관객이 지지한다. 하지만 천개 이상의 스크린을 제공받은 모든 영화가 1000만 관객의 지지를 받지는 못한다. 천만관객 의 지지를 받은 영화는 문화적 현상이다. ‘신과 함께1-죄와벌’(2017)은 개봉 첫 주에 1500개 이상의 스크린에 개봉되어 천만의 지지를 받았다. 이 영화는 대중성의 요인이 호박떡 속에 들어있는 호박만큼 풍부하다. 그 요인은 CG로 보여준 지옥의 스펙터클, 의인의 환생을 돕는 저승 삼차사의 변론 재미, 가부장의 희생과 불가피한 과오에 대한 염라대왕의 면죄부를 들 수 있다
빈 의자는 기다린다. 빈 의자가 기다리는 것은 단지 손님만은 아닐 것이다. 의자는 달빛과 태양과 소낙비를 차별없이 받아내고 고단한 인간과 집잃은 고양이의 휴식과 같은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연을 기다림의 주머니에 담는다. 인간은 숙명처럼 기다린다. 시골의 노인은 모처럼 고향집을 내려오는 아들을 도착 시간 몇 시간 전부터 시골 정류장의 의자에 앉아 기다린다. 방학만을 기다리는 학업에 지친 초등학생들, 합격 통지서를 기다리는 반지하의 좁은 방에 거처하는 청년실업자들, 평화를 기다리는 전쟁터의 난민들의 절박함도 있다. 기다림은 인간이 죽
‘아제 아제 바라아제’는 소설가 한승원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며, 한승원이 각색한 영화다. 모든 시대는 그 시대의 고유한 색과 음이 존재한다고 한다. 영화도 동시대의 풍경과 공기를 프레임에 담는다. 시대적 풍경과 분위기를 담는다는 명제에 충실한 영화가 바로 ‘아제 아제 바라아제’다.이 작품은 두 개의 화두를 담아낸다. 하나는 작품 속에서 제시한 ‘달마 대사는 왜 얼굴에 수염이 없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1980년대 시대적 화두인 ‘역사의 변화와 세상의 구원을 위해 지식인과 종교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이다. 이 영화가 1989년에 제
북경의 청화대 교정에 소 조각상이 놓여있다. 강인한 돌로 된 조각상의 옆면에 크게 새겨진 네 글자는 유자일우(孺子一牛)이다. 이 구절은 노신의 시 ‘자조(自嘲)’를 인용하면서 한자를 첨언한 글이다. ‘부수감위유자우’(감히 달게 머리를 숙여 백성을 위하는 어린 소같은 일꾼이 되고자하네)에서 소는 국민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중국 혁명을 이끌었던 모택동도 민중을 위한 일꾼인 유자우의 자세를 거듭 강조했다고 전해진다. 여기서 소는 국가의 근간인 민중을 표상한다. 노자가 등장하는 그림에는 늘 소를 타고 있거나 옆에 소가 누워
중국 감독인 루촨의 ‘커커시리(可可西里)’(2004)는 밀렵꾼으로부터 티베트의 양을 지키는 민간 산악순찰대원의 활동과 희생을 담은 영화다. 이 작품은 사실적인 기사를 토대로 다큐멘터리적 사실성을 살렸다. ‘커커시리’는 티베트의 대평원이며 이곳에서 서식하던 100만 마리의 티베트양이 1만 마리로 줄어든 상황에서 티베트양을 지키기 위한 산악순찰대원의 의기로운 활동을 담아낸 영화지만 동시에 티베트양과 인간은 모두 귀한 생명이며 양과 인간 또한 형제라는 불교적 윤회관이 배어있다. 첫 장면에서 산악순찰대원이 밀엽꾼들에게 끌려간다. 밀렵꾼들은
한 편의 영화는 거대한 화물선과도 같다. 화물선 안에 선적된 물품이 다종다양하듯이 영화도 이야기와 무수한 문화, 철학과 종교를 싣고 관객의 바다로 항해한다. 워쇼스키 형제가 연출한 ‘매트릭스’는 공상과학영화의 장르에 신화와 문학과 종교에 철학을 적재하여 수많은 논쟁과 담론을 생산하였다. 한 편의 영화가 생산한 담론의 양은 ‘매트릭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작품이 많지 않을 것이다. ‘매트릭스’는 소재와 주제의 풍부함으로 해석의 길도 다양하게 펼쳐져있다. 워쇼스키 감독에게 ‘이 작품은 종교적 상징을 의도적으로 사용했느냐’는 질문이 제기
장선우 감독은 신명의 카메라를 주창하면서 필명을 얻었으며 그 후 감독으로 입문하여 ‘우묵배미의 사랑’ ‘경마장 가는 길’을 거쳐서 ‘거짓말’과 ‘화엄경’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작을 연출하여 코리안 뉴웨이브를 이끌었다. 하지만 그는 2002년 한편의 작품을 끝으로 충무로에서 멀어져 제주도 바닷가의 물고기 카페를 운영하면서 다음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마지막 작품이 바로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며 상업적 실패와 비평적 수모를 감당해야했다. 그가 운영하는 카페의 이름이 ‘물고기’인 것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서 고등어 총을 연상하
영화는 관객과 세상에 보내는 편지이다. 배창호 감독은 관객에게 보내는 연애편지라고 했고 독립영화 감독들은 세상을 바꾸는 대자보처럼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영화는 때로 감독이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일기이기도 하다. 이지상의 ‘십우도’ 시리즈는 감독의 내면일기에 가깝다. 이지상 감독은 오래 전 필자와의 대화에서 ‘사찰과 스님이 등장하지 않은 불교영화’로 십우도 시리즈를 구상하고 작업했다고 넌지시 말한 적이 있다. 계획대로 이지상 감독은 2004년부터 ‘십우도’ 연작을 제작하기 시작하였으며 자신의 발언대로 소가 등장하지 않는 십우도 영화
‘서유기’는 단편적으로 전해진 이야기를 1592년 즈음 오승은에 의해 100회의 장편소설로 집대성된 작품이다. ‘서유기’의 판본은 다양하지만 담긴 이야기는 거의 비슷하다. 주된 이야기 줄기는 당나라 현장 스님이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과 함께 서역 천축으로 불경을 구하러 가는 이야기다. ‘서유기’는 다양한 형태의 문화콘텐츠로 재구성되고 창조되어 많은 관객층을 확보하고 있다. 만화영화와 극영화에서 다양한 ‘서유기’가 만들어져왔다. 중국 불교영화는 소림사를 배경으로 한 영화와 서유기를 원전으로 한 영화로 양분될 만큼 비중이 크다. 주성
한국영화는 1919년 영화 ‘의리적 구토’ 상영을 기점으로 올해 100주년을 맞았다. 부산국제영화제는 한국영화 100주년을 기념해 우수한 작품 10편을 선정했는데, ‘바보들의 행진’ ‘바람불어 좋은 날’ ‘하녀’ 등이다. 이 가운데 한 편의 불교영화가 포함되었으니, 그 작품은 배용균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다. 이 작품은 오랜 제작 기간 동안 안동 영산암에서 촬영한 순도 높은 불교영화이다. 이 작품은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한국에서 수만명이 관람하여 지지를 받았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김기영 감독은 ‘하녀’(1960)를 통해 독창적인 미장센으로 한국사회의 불균질성과 인간의 욕망을 포착하였다. 그는 기인, 그로테스크, 독특함이라는 수식으로 평가되었으며 1960년대 거장 감독으로 한국영화사에서 위상을 확보하였다. 김기영은 대학시절 연극 동아리 활동의 영향으로 기묘한 미장센과 섬세한 인간 내면을 전등으로 비추는 것처럼 적나라하게 포착해냈다. 그의 작품 이력에서 고은의 작품을 원작으로 한 불교영화 ‘파계’는 다소 파격적인 행보이며 자신의 스타일과 원작의 세계 사이에서 줄다리기 하면서 자신의 세계로 기울게 한 작품이다.
난세는 민초들에게는 지옥의 행군을 강요하지만 영웅에게는 대항해를 할 수 있는 물결을 만들어준다. 일제강점기의 힘든 터널을 통과하면서 김구, 김좌진, 홍범도와 같은 인물이 역사의 장에 등장했다면, ‘봉오동전투’의 홍범도 장군은 포수에서 역사의 부름을 받고 독립운동의 리더로 성장한다. 임진왜란은 의병의 봉기를 통해 백성의 자위권을 회복하고 왜구를 물리치는 과정에서 많은 의병장들이 역사의 물결 위로 떠오르는 계기가 됐다. 임진왜란의 대표적인 의병장은 승병을 이끈 서산대사와 사명대사이다. 특히 사명대사는 의병 뿐 아니라 외교에서도 굵직한
영화평론가 문학산(문관규) 부산대 예술문화영상학과 교수가 최근 ‘나랏말싸미’ 역사왜곡 논란과 관련한 글을 보내왔다. 문 교수는 “영화적 개연성은 영화적 해결이라는 창조적 상상력으로 인해 영화적 현실을 확장한다”며 “영화적 개연성의 부족은 상상력의 빈곤이며 영화적 해결이 없는 영화는 속없는 만두처럼 무미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팔만대장경에 대한 메타포를 받아들일 때 역사 왜곡의 안경은 폐기처분되고 세종과 신미 스님 그리고 소헌왕후의 애민과 자비심이 드러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편집자영화 제작 목적은 사실성보다 창의성에 방점영화
윤회와 환생은 불교적 개념이지만 영화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소재이다. 외국영화는 환생한 달라이 라마를 찾는 ‘리틀 부다’, 환생한 달라이 라마를 보살피는 ‘다시 태어나도 우리’, 한국영화는 환생하여 연인을 찾는 ‘은행나무침대’가 대표적이다. 환생은 다시 태어나는 윤회를 반복한다는 불교적 사유다. 김대승의 ‘번지점프를 하다’는 멜로영화의 장르를 채택했지만 환생이라는 주제로 사랑의 당위성을 부여했다. 이 작품은 선생님 인우(이병헌 분)가 17년 전에 사랑했던 태희(이은주 분)가 환생한 남학생 현빈(여현수 분)을 사랑하는 이야기다.첫 장
소크라테스는 외모는 추했지만 내면이 아름다웠다고 한다. 아름다운 내면은 그의 추종자에게 인간적인 매력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라캉은 추한 외모의 소크라테스에 대한 매력을 설명하기 위해 ‘아갈마(agalma)’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아갈마는 흉한 조각상 속에 담긴 신들의 이미지와 신에게 바치는 봉헌물을 함축한다. 인간에게 아갈마는 타자를 욕망의 대상으로 만드는 치명적인 매력이다. 치명적인 매력은 결핍과 환상이 원인이다. ‘바라, 축복’은 인도의 단편소설 ‘피와 눈물’을 원작으로 각색하였으며 인도춤인 바라타나티암의 바라를 제목으로 택했다
고은의 ‘화엄경’은 장선우의 ‘화엄경’으로 옮겨지면서 영화와 소설의 거리가 어느정도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승려 생활을 토대로 집필된 ‘화엄경’은 세상의 구원을 위한 실천적 노력을 종교가 어떻게 수행할 수 있는가에 대한 영화적 관심을 지닌 장선우의 ‘화엄경’과 회수를 건너온 귤보다 더 큰 차이를 보인다. 장선우의 ‘화엄경’은 선재의 어머니 찾기라는 맥거핀을 표층에 드러내지만 이면의 심층에는 원작에 대한 재해석과 한국사회의 나아갈 방향 찾기, 종교를 통한 구원 가능성 모색 등이 층층이 쌓여있다. 영화평론가 유현미는 “‘화엄경’은
부처님오신날 기념으로 총무원장 원행 스님의 법문이 한 일간지에 실렸다. 스님은 중생들에게 주는 법어로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을 강조하였다. 이 구절은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서 견성하고 부처가 되게 한다’는 선불교의 종지이면서 대한불교조계종의 핵심 교리라 할 것이다. ‘직지심체요절’의 직지는 아마 여기서 유래했을 것이다. 우광훈 감독의 다큐멘터리 ‘직지코드’는 ‘직지심체요절’이 세계 최고 금속활자인가를 밝히는데 주력한다. 데이빗과 아네스는 세계 최초의 금속 활자본인 ‘직지심체요절’을 열람하기 위해 프랑스 국립도서관
1960년대 종교영화 제작은 도박에 가까웠다. 종교영화는 두 가지 측면에서 대중성이 떨어진다. 하나는 관객층이 협소하다. 특정 종교의 신도들은 지지하겠지만 비 신도는 외면하여 관객층이 제한된다. 다른 하나는 해탈이나 영생과 같은 주제의 무거움과 사상의 난해함이라는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자면 제작 과정의 어려움도 따른다. 종교영화는 대체적으로 2000년 전의 배경으로 제작해야하므로 역사적 고증을 통한 오픈 세트장이 필요하며 수많은 엑스트라와 의상도 마련해야한다.장일호 감독의 ‘석가모니’는 수많은 장애물을 통과하
곽암 화상은 ‘십우도’ 서문에서 “그 이법을 얻으면 종지와 격식을 초월함이 마치 새가 나는 데 자취가 없는 것 같고 그 현상만을 얻으면 언구(言句)에 걸리고 미혹되는 것이 신령스러운 거북이가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끄는 것과 같다”며 십우도의 의미를 명기해두었다. 십우도는 대웅전의 벽에 그려진 열장의 그림이며 이 그림을 통해 뭇 중생들에게 불교의 교리를 간명하게 시각적으로 전파한다. 이 그림은 소를 찾는 행위를 통해 불법의 종지를 깨우치게 하고 마음의 이치를 자연스럽게 체득하도록 안내한다. 십우도는 불교영화에서도 자주 소환되어 전면적으
벚꽃은 4월의 길목에 피어나서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잎에게 자리를 내준다. 겨울의 동토라는 두꺼운 저항을 뚫고 단단한 나무 가지의 견고함을 이겨내고, 싹은 결국 돋아나 마침내 꽃을 피운다. 봄이 아름답다고 하나, 그 아름다움 속에는 잔인함도 들어있다. 어느 시인은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다. 하지만 어느 감독은 4월을 아름다운 거짓말이 실현되는 달로 수정하려고 한다. 이민경의 ‘절간의 만우절’은 만우절의 기억을 담아낸다. 4월1일은 누구에게나 허용 가능한 거짓말의 날이다. 그동안 얼마나 정직하게 살았으면 하루를 정해 서로를 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