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열반 전 하루 낮밤 동안의 마지막 법문 『열반경 |․||』운허 스님 번역/동국역경원 2500여년 전 부처님은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娑羅雙樹)에 대중들을 불러모았다. 그리고는 대중을 향해 자신이 곧 열반할 것임을 알리고 “모든 것은 무상하니 게으름에 빠지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고 당부하며 마지막 가르침을 전했다. 부처님의 입멸 예고를 받은 대중들은 슬퍼하며 자신들이 정성껏 마련한 공양을 바쳤으며 부처님은 대중들에게 마지막 질문을 할 것을 말하였다. 부처님이 입멸하기 전 마지막 가르침이라는 조바심에 제자들의 질문은 이어졌고 부처님은 이에 자세하게 제자들의 질문에 화답했다. 이렇게 시작된 법문은 하루 낮과 밤에 걸쳐 이어졌다. 『열반경 』은 부처님이 열
1963년 대한불청 주도로 교리·사상 한 권에 집대성 꼼꼼한 ‘경전 색인’ 백미 당대 한국 대표한 명저 1963년 법통사에서 간행된 『우리말 팔만대장경』은 방대한 대장경 가운데 교리, 사상적으로 정수만을 가려 뽑아 누구나 쉽게 대장경 전체의 내용과 가르침을 접할 수 있게 한 우리나라 최초의 ‘경전모음집’이다. 이 책은 1960년대 초에 엘리트 청년불자들의 신행단체인 ‘대한불교청년회’에 의하여 기획 간행되었는데 당시 그들로서는 불교청년운동의 구심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성전(聖典)이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이다. 불교에 대한 강렬한 지적욕구를 갖고 있었던 대한불교청년회의 핵심 멤버들은 우선 한 권으로 읽을 수 있는 ‘불교성전’이나 ‘경전 모음집’류의 필요성을 느끼고 법통사와 협의하여 불교성
감로사, 51년부터 쉼없이 기도…5층 1150평 자운-운허-성철 “참회로 국난극복” 유지 구현 부산 황령산 감로사(주지 혜총 스님)가 전국 제일의 3000배 참회 정진 도량으로서의 사격을 갖추기 위한 대작 불사인 ‘삼천불 삼천배 참회기도 회관’ 조성 불사를 오는 2005년 9월 회향한다. 불사가 원만하게 마무리 된다면 지난 51년 한국 전쟁으로 인한 혼란 속에서도 자운 스님을 비롯한 운허, 청담, 향곡, 성철, 벽안 스님 등이 감로사에 모여 “3000배 참회의 기운과 그 정진의 힘으로 동족상잔의 국난을 극복하자”는 큰 뜻을 발원한지 꼭 54년만의 일이다. 당시 큰스님들은 “팔만대장경을 정성스럽게 조성해 거란의 침입을 막았던 것처럼 전쟁을 피해 모든 국민이 몰려 든 부산을 내려다 볼 수 있는
1948년 2월 29일 입적 석전 박한영 스님은 선암사 금봉 스님, 화엄사 진응 스님과 함께 태고 보우 국사의 선맥을 잇는 태고 선종의 3대 강백으로 추앙 받는 인물이다. 삼장 강설을 주로 하면서 경사사집과 노장학설을 모두 섭렵하고 일제 강점기 만해 스님과 함께 불교 유신운동을 펼쳤는가 하면 올바르게 시대를 이끌 수 있는 후학들을 양성하기 위해 평생을 헌신한 근현대 대표적인 선지식이었다. 1870년 8월 전북 완주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석전 스님은 17세 되던 해 스님의 어머니가 전주 위봉사 금산 스님에게 들은 삶과 죽음에 관한 생사법문을 전해주자 크게 발심해 출가를 결심했다. 19세 되던 해 금산 스님에게서 계를 받고 정호라는 법명을 받은 스님은 이후 백양사 운문암에서 본격적인 수도 생활을
부산 감로사(주지 혜총 스님)가 지난 51년 한국전쟁 당시 자운, 운허, 청담, 향곡, 성철 스님 등 당대의 큰스님들이 모여 ‘참회 기도로서 국난을 극복하자’며 시작한 3000배 참회 기도를 쉼 없이 이어오면서 그 정신을 더욱 널리 알리기 위해 ‘삼천배 참회기도 회관’ 조성 불사에 진력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회관 조성불사는 전쟁으로 인한 고통을 참회로서 이겨내려 했던 큰스님들의 유지와 그 정신을 받드는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부산은 물론 다른 지역의 보다 많은 불자들이 참회와 수행에 동참할 수 있는 큰 길을 닦는 것이기에 그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이 회관은 계획대로라면 오는 2005년 9월 그 장엄함을 드러내 불자들을 맞이할 것이라고 한다. 부산 감로사는 회관 조성 불사와 동시에 해마다 알찬
1973년 3월 27일 입적 부처님의 제자 주리반특가는 머리가 둔한 데다가 배운 것도 없어 매우 무식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수행정진에 임해 마침내 아라한(阿羅漢)의 경지에 오른 인물이다. 평생을 가야산 총림에서 수행정진에 임했던 지월 스님은 해인사의 ‘주리반특가’로 불린 인물이었다. 서슬 퍼런 선기나 출중한 면을 겉으로 드러내 보이지는 않았지만 묵묵히 정진에 정진을 거듭해 마침내 선지식의 경지를 이룸으로써 모든 대중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은 인품과 생애가 주리반특가의 그것과 닮았기 때문이다. 1911년 2월 전북 남원에서 태어난 지월 스님은 16세에 출가해 오대산 월정사에서 지암 이종욱 스님을 은사로 득도한 후 상원사 한암 스님 밑에서 수학했다. 스님은 금강산 마하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