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참 이상하다. 벌써 지도상에서 없어져야 할 나라처럼 보이는데 아직도 존속한다. 중국, 일본, 러시아 틈바구니에서 5000년 동안 망하지 않고 이렇게 성장했다는 것은 세계사의 기적이다.”‘강대국의 흥망’을 쓴 영국 역사학자 폴 케네디 예일대학 교수의 말이다. 이는 한국의 불교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숭유억불의 500년 암흑기를 빠져나온 불교계가 격동의 시기에 온갖 정치적 탄압과 편향을 딛고 급성장한 것은 기적이다.일제강점기 정확한 종교인구를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1930년대까지도 불자수는 30만명을 넘지
불교에 이해가 깊을수록 근현대 한국불교사를 긍정적으로 보는 이들은 거의 없다. 불교학자들조차도 대부분 비판 일변도의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그렇게 볼 이유는 충분하다. 일제강점기 불교계의 친일행위를 비롯해 1950~60년대 독신승과 대처승의 극렬한 다툼과 법정소송, 불교종단의 군사정권 예속, 1990년대 말까지 계속됐던 스님들간 폭력사태, 자기중심의 기복화 된 불교신앙, 비구·비구니 차별과 문중 대립, 깨달음 지상주의와 교학 외면, 만연된 금권·흑색 선거, 불투명한 사찰 재정 등도 그렇다. 이런 문제들은 불교가 근현대기를 거치며 나
조계종이 최근 제8기 국제교류위원회 위원을 새로 위촉했다. 이번에 단연 눈길을 끄는 것은 외국인 스님들이 국제교류위원에 처음 포함됐다는 점이다. 국내에 200여만명의 외국인 주민이 거주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시의적절한 결정이라 할 수 있다. 국제교류위원으로 선정된 서울 네팔 법당 주지 쿤상 스님과 아산 마하위하라센터 주지 담마끼띠 스님은 한국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스님들이다. 앞으로 국내에 활동하는 외국인 불자들과의 소통과 협력이 보다 긴밀히 이뤄질 수 있기에 새로운 차원의 한국불교 세계화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한국불교계에서
지난 5월24일 오후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는 뜻깊은 학술상 수여식이 있었다. 서울 삼천사 주지이자 전 한국불교학회장 성운 스님의 발의와 상금지원으로 한국불교학회가 제정한 제2회 성운학술상 시상식이었다. 이날 성운 스님이 인사말에서 밝혔듯 이 상은 불교신행과 실천에 대한 불교학자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연구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목적으로 마련됐다. 염불과 기도로 대표되는 타력신앙이 한국불교를 지탱해온 근간임에도 ‘불교는 자력종교’라는 틀에 갇혀 신행현장의 불교가 부정되는 모순을 학문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성운 스님의 원력에서 비롯됐
지난 4~5월 전국 곳곳에는 형형색색의 연등이 나부꼈다. 서울시 전역에도 5만여 가로연등이 내걸려 하늘 위와 하늘 아래 가장 존귀하신 석가모니 부처님이 이 땅에 오셨음을 찬탄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만나는 빛의 장엄은 불자들에겐 볼거리를 넘어 환희로움이다.우리나라 연등의 역사는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래됐다. ‘삼국사기’에는 866년 경문왕이 ‘정월대보름, 황룡사에 거둥해 연등을 구경하고 백관들에게 잔치를 열어주었다’고 기록돼 있다. 그 전통은 고려로 이어져 보름 연등회와 사월초파일 연등회, 팔관회로 성대하게 펼쳐졌다. 고
조계종 불자대상은 불교계 최고의 상 가운데 하나다. 이 땅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며 살아가려는 수많은 불자들 중 가장 모범적인 이에게 수여하는 상이기 때문이다. 조계종이 1만여명의 불자들이 참석하는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요식에서 불자대상을 시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올해 불자대상에는 홍윤식 동국대 명예교수, 이현세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 김병주 전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전원주 방송인이 선정됐다. 홍윤식 교수는 1970년 불교미술공모전 창설 주도를 시작으로 불교미술 및 불교민속 연구 업적, 불교의례의 국가
‘세계기록유산 우리문화의 자랑 직지’를 표방하는 청주고인쇄박물관이 최근 명칭 변경 등 중장기 발전계획 마련을 위해 연구용역을 추진한다고 한다. 13만1288㎡에 지정한 직지문화특구에 흥덕사지를 중심으로 고인쇄박물관, 근현대인쇄전시관, 금속활자전수교육관과 같은 시설이 들어서고 이를 아우르는 새로운 명칭 변경도 고려하고 있다는 후문이다.그러나 이번에도 흥덕사지의 새로운 복원은 고려치 않는 것으로 보인다. 흥덕사지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현존 금속 활자본인 직지가 만들어진 역사적인 장소다. 통일신라시대 창건돼 고려말 화재로 폐사됐을 것으
우파 지식인 단체 대표를 맡고 있는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직지’와 한글을 폄하하는 글을 올려 논란을 빚었다. 그는 ‘어거지 세계 최초 5G’라는 제목으로 5G개발을 ‘직지’ 및 한글 창제와 비교한 뒤 한국이 5G 세계 최초를 자랑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비꼬았다. 그의 글 중 논란이 된 부분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직지심경의 금속활자가 세계 최초라고 자랑하지만 세계는 구텐베르그의 인쇄술을 기억한다. 그것은 구텐베르그의 인쇄술이 성경을 보통 사람들 손에 쥐어주는 정보의 대중화로 종교개혁과 시민혁명의
우연은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이 뜻하지 아니하게 일어난 일’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우연이라는 단어를 들여다보면 인과 관계 없이 일어난 일을 지칭한다기보다 인과 관계를 파악하기 어려운 우리 인식 능력의 한계를 일컫는다. 예상했거나 헤아려 알 수 있다면 필연으로, 예기치 못했거나 가늠하기 어려우면 우연으로 돌리는 셈이다.우연은 문화재 발견과 관련해서도 자주 등장하는 단어다. 1900년 돈황석굴에 살던 도사 왕원록이 담뱃대를 벽에 대고 털었는데 울림소리가 들려 헐어보니 5만여의 불경과 관련 유물로 가득한 장경동(藏經洞)이
최근 서울 봉은사에 남성불교합창단이 만들어졌다. 1년여 준비과정을 거치며 선발된 50여명의 단원들은 3월8일 발대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봉은사 남성합창단은 여성 중심 불교계 합창 현실에서 남성 불자들의 독창적인 무대를 선사할 것으로 보인다.합창단 역사는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19세기까지도 남성들 독무대였다. 유럽 각국의 교회를 중심으로 한 합창단에서 여성은 철저히 배제됐다. 19세기 후반 독일의 브람스가 지휘한 함부르크 여성합창단이 출범하면서 여성합창단이 크게 늘었고, 20세기 이후에는 남성합창단을 압도할 정도로
1569년 음력 3월은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이 관직을 내려놓고 안동으로 내려간 해다. 고희를 바라보던 퇴계는 여러 차례 만류하던 선조의 허락을 받아 마침내 고향에 갈 수 있었다. 450년 전 경복궁을 나선 퇴계는 남한강을 타고 죽령을 넘어 안동 도산서원에 이르렀다. 800리에 이르는 그 길에서 퇴계는 벗과 제자, 지방관들을 만났으며 서로 시문도 주고받았다.안동 도산서원과 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은 퇴계의 마지막 귀향 일정에 맞춰 4월10일부터 21일까지 서울에서 도산서원에 이르는 350km을 걷는 행사를 마련했다. 여럿이
익숙한 것이 안정감을 주지만 오래되면 고루하고 편협해지기 십상이다. 간화선 주창자인 대혜 선사가 ‘서장’에서 “선 것은 익게 하고, 익은 것은 설게 하라(生處放敎熟 熟處放敎生)”고 강조한 것도 익숙함에 대한 경계다. 불교에서 제행무상을 강조하지만 변화를 자각하고 거기에 맞추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역사가 오랠수록 전통의 무게를 벗어나기는 더욱 어렵다.불상이나 불화가 그렇다. 전문가들이야 시대에 따른 변화를 알아차리겠지만 일반인이 보기에 불보살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엇비슷하다. 일반미술과 달리 불교미술의 변화 폭이 적은 것은 신앙
며칠 전 조계사 주지 지현 스님을 찾아뵀다. 음력으로 정월 막바지였기에 세배를 겸한 인사였다. 세뱃돈이라며 스님이 건넨 봉투에는 2달러 지폐 한 장과 부적이 담겨 있었다. 달러를 넣은 것은 화폐 가치보다 기념의 의미라고 했다. 달러보다 눈길이 더 간 것은 부적이었다.한때 정월이면 사찰마다 부적을 나눠줬었다. 시골마을이 슬레이트지붕과 네모반듯한 콘크리트로 획일화될 무렵 부적은 미신의 상징물로 간주돼갔다. 부적을 향한 지식인들의 비판이 자주 등장했고, 그들의 ‘일갈’이 반복될수록 부적은 음성화됐다. 부적을 전근대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근
2월25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는 조촐하지만 뜻깊은 학술세미나가 열렸다. 지난해 2월24일 세상을 떠난 심원(心遠) 김형효 선생을 추모하는 자리였다. 심원 선생과 인연이 깊었던 이들을 중심으로 심원사상연구회가 만들어졌고 그 첫 주제가 ‘동서 사상의 만남’이었다.세미나 주제에서 드러나듯 심원 선생은 동서양 철학에 정통했다. 1940년생인 선생은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벨기에 루뱅대학에서 근대철학을 연구한 서양철학자다. 실존주의, 현상학, 구조주의 등 서양철학 전반에 정통했으며, 국내에 하이데거와 데리다에 대한 관
이달 초 출간된 ‘일묵 스님이 들려주는 초기불교 윤회 이야기’가 서점가에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교보문고와 예스24 등 대형서점에서 불교분야의 상위권에 링크돼 있으며, 이러한 흐름은 당분간 지속될 것 같다. 많은 이들이 궁금하게 여기는 윤회 문제를 초기경전에 근거해 세계의 구조, 업과 윤회의 관계, 죽음 직전의 모습과 재생연결, 윤회의 원리와 구조, 무아인데 윤회하는 이유 등을 쉽게 전달하기 때문이다.윤회는 다음 세상에 좋은 곳에 태어났으면 하는 불자들에게도 그렇지만 불교학을 전공한 학자들에게도 초미의 관심사다. 본질이나 실체를
반려동물 양육 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서면서 우리 사회에 큰 변화가 일고 있다. 집에서 기르는 동물과 이를 돌보는 사람은 더 이상 주종관계가 아니라 생김새가 다른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7년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구가 국내 593만 곳이라고 했으니 지금은 훨씬 늘었을 듯싶다.반려동물 관련 산업들도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반려동물 전문 양육사와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스타트업, 반려동물의 질병·사고에 대비한 펫보험, 반려묘의 배설물을 자동으로 청소해주는 스마트 화장실, 집안에 홀로 남겨진 반려동물을 위한 인
얼마 전 호은 스님에 관해 묻는 짤막한 이메일을 받았다. 2007년 6월 내금강을 다녀와 쓴 기사를 봤는데 여기에 장안사에 머물렀던 고승들 중에 호은 스님이 거론됐다며 관련 기록들을 찾아줄 수 없느냐고 했다. 당시 여러 자료들을 살펴보고 기사를 쓰기는 했지만 근대사 전공자가 아니다 보니 어려울 것 같다고 답장을 보냈다. 이를 계기로 몇 차례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의외의 사실들을 알 수 있었다.이메일을 보낸 분은 남해에 거주하는 박신조(65)씨로 호은(虎隱, 1850~1918) 스님 친동생의 증손이라고 했다. 기이한 인연으로 어릴 때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껍데기는 가라’ 전문)올해 서거 50주년을 맞는 신동엽(1930~1969) 시인은 1960년대 참여시를 확산시킨 선구자다. 1967년 1월 ‘52인 시집’에 수
최근 불교 원전을 공부하는 이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책이 있다. 가톨릭대학교출판부가 펴낸 ‘산스크리트어 통사론’이 그것이다. 초기경전이 주로 팔리어로 쓰였다면 대승불교는 산스크리트어(범어)로 쓰였다. 인도불교나 인도철학을 연구하는 이들이 산스크리트어를 모르고는 한 걸음도 나아가기 어려운 이유다.인도에서는 기원전 5~4세기 파니니라는 불세출의 문법학자가 출현해 고전 산스크리트 문법을 체계화했고, 놀랍게도 그것은 오늘날까지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통사론에 대한 언급은 상대적으로 부족해 그것을 보완하는 책으로 야곱 사무엘 스파이
세월이 흘러도 중요성이 퇴색하지 않는 것들이 있다. 일기가 그렇다. 기록과 성찰이라는 일기의 기본 속성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 개학을 앞두고 숙제로 내준 일기를 한꺼번에 써야할 때 날씨가 어땠는지 가물거려 당황스러웠던 기억 등 누구나 일기와 관련한 추억이 한둘쯤은 있을 듯싶다.2004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초등학교 아이들 일기장 검사는 사생활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며, 교육부에 일기 검사를 개선하라고 권고하면서 예전의 일기 검사방식은 사라졌다. 대신 담임 선생님과 부모들이 재량껏 일기 쓰기를 지도하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