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산동성 태안시 태산 기슭에 위치한 보조사를 중창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져 있는 만공선사탑비. 1417년 7월4일 명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공조판서 신개의 급보에 조선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신개의 보고에 따르면 우리나라 승려 11명이 몰래 북경에 들어가 명 황제를 알현했고, 성조(영락제, 1360~1424)는 이들을 남경의 사찰로 보내 머물게 했다는 것이다. 이 소식에 태종(1367~1422)은 물론 조정대신들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치밀한 폐불 정책으로 승려와 사찰 수를 대폭 줄였고, 승려들의 중국 구법 순례도 국법으로 엄격히 금지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조선의 승려가 중국으로 건너갔고, 또 이들이 명의 황제를 만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