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하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거룩하신 가르침에 귀의합니다!거룩하신 스님들께 귀의합니다!자비하신 부처님.부처님의 찬란한 진리의 광명을 찬탄하옵고부처님 전에 엎드려 지난 허물 참회하오며지성으로 발원하오니 섭수하여 주시옵소서!평생 사찰 공양간을 지켜왔습니다.사찰에서 받은 월급으로 홀로 자녀 둘을 양육하며 알뜰하게 살아왔습니다.무엇보다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을 짓고 일심으로 스님들을 섬기는 일이 천직처럼 느껴졌습니다.하지만 지극정성 기도에도 불구하고가정에 닥친 여러 가지 어려움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고설상가상으로 폐암 말기 6개월 시한부 판정
한 줌의 잿빛 가루 눈물 속에모두고 화장장(火葬場) 벗어날 제정토행(淨土行) 왕생(往生)의 길무탈(無頉)하게 보내려네.이제야 챙겨드릴 일 생몰일 때 향 공양그에 더불어 꽃과 음식과 육신 공양 몸소 해보리라.염부제 중생 위해 그렇게도 애지중지 머물더니말없이 한 줌 한 줌 섞여재회(再會)하신 금실이(琴瑟) 좋던 양친(養親)좋은(明堂) 터 들지 못하고관공서 봉안당 송학함(松鶴函)에 잠긴 것을귀의 하랍시고 또 귀의 하랍시고지장보살 계신 명부전에 모시려네.캄캄한 달그림자 깊은 산속 헤매다가동이 트니 온 하늘이 파랗게 물 들으며언제 적 아픔이
온 지구촌의 COVID-19와 전쟁들과 이런저런 난리통 가운데서도 바야흐로 불기 2566년 ‘부처님오신날’이 다가온다. 누구라도 이런 생각 들겠으나, 지금 여기에 부처님이 계신다면 당장 무엇을 하고 계실지가 몹시 궁금하다. 봉축 기념특집으로 하필이면 ‘재난’과 ‘구제’를 논하게 된 것이 한편으로 안타깝기도 하지만, 이 역시 인연법의 소산이라 생각된다. 과연 지금 여기서 우리에게는 무엇이 재난이고, 무엇이 구제인가.지난 2년여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는 코로나의 기습에 목숨을 건 불안감이 매우 컸다. 그 와중에 누군가는 예방주사를
우리는 법회나 행사를 마감하면서 늘 사홍서원을 봉행한다.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로 시작하는 이 네 가지 큰 발원은 대승불교의 근본이념이다. 즉 중생 제도에서 시작하여 번뇌를 끊고, 법문을 배워 불도를 이루겠다는 다짐은 우리 불교의 변하지 않는 최상의 가치이다. 이러한 중생 제도, 중생 구제의 정신은 삼국시대 불교를 수용한 이후 지금까지 불교가 한민족의 정신과 문화를 선도해 온 원동력이기도 하다. 깨달음을 위한 수행에 앞서 중생을 구제한다는 보살의 이타정신은 곧 민족과 국가를 위한 호국불교로 자리매김하였다. 특히 국가적 재난에 처했
인간이 심성적으로 가장 나약해진 시기 가운데 하나는 질병으로 고통을 받고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때이다. 이에 일찍부터 종교에서는 질병 치료를 중시해왔다. 한국고대 사회에서도 불교가 전파되는데 불교의학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신라 아도 화상이 눌지왕의 딸 성국공주를 치료한 인연으로 최초의 사찰 흥륜사가 건립되었다거나(‘삼국유사’ 권3), 해인사가 애장왕(788~809)의 왕비를 치료한 인연으로 창건되었다는 설화는 불교 의학이 불교 세력이 확장되는데 상당한 역할을 하였다는 당시 사람들의 인식을 보여준다.‘삼국사기’ 선덕여왕 5년 3월
동아시아의 종교의식을 살펴보면 재난을 대비하거나, 피해입은 개인과 사회를 치유하려는 종교의 노력이 산 자뿐만 아니라 죽은 자까지도 포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불의의 재난으로 죽은 영혼, 원한을 안고 죽은 망혼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종교의례는 교단을 불문하고 어느 종교나 자체적인 교의에 기반한 절차와 형식을 가지고 거행되며, 이러한 의례는 또한 사회에서 종교를 필요로 하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불교 역시 사십구재, 영산재, 생전예수재, 수륙재 등의 의례가 유주·무주고혼들을 위해 설행되어 왔다. 유교 또한 가뭄 발생을 원한을 품고
1929년 5월27일 경기도 광주군 대본산 봉은사(현 강남 봉은사)에서는 아주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봉은사 주지 청호 스님(晴湖, 1875~1934)을 찬탄하는 ‘나청호 대선사 수해구제 공덕비’ 제막식이었다. 공덕비에는 ‘을축년 7월 홍수로 선리·부리·잠실의 뽕나무밭이 큰물에 잠기고, 708인 다급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목숨을 구해 달라 외쳤다. 나청호 대선사가 자비로움으로 이를 구제하니, 그 덕을 잊을 수가 없구나’라는 글이 쓰여 있었다. 공덕비 비용은 스님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708명이 그 은혜를 갚고자 십시일반 걷어 비용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불교계 구제·구호 활동도 2000년 이후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뤘다. 1990년대 5개뿐이던 교계NGO 단체가 25개로 늘어났고 국내뿐 아니라 국제무대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단체는 10여 곳으로, 각 단체는 특정 분야에서 도드라지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여기에 종단의 관심까지 더해져 보다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구호활동이 진행됐다. 신속한 인력파견이 가능해졌고 불교만의 특화된 심리프로그램도 주목을 받았다. 한국JTS(Join Together Society
2600여년 전, 사바세계에 나투신 부처님은 중생들에게 공덕과 회향을 알려주심과 동시에 자리이타행의 실천을 강조했다. 이후 불자들은 자비와 연민을 바탕으로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이러한 자리이타의 실천은 불교의 대사회적 역할의 바탕으로 자리잡았다. 다양한 국가의 불교단체들은 문화, 민족, 국경 등을 구분 않고 부처님 가르침, 자리이타를 실천한다는 일념으로 세계 곳곳에서 자비의 손길을 전하고 있다.‘불교도 지구촌 구제회(Buddhist Global Rlief, 이하 BGR)’의 역사는 미국의 불교학자이자 출가자인 보리
지난 2019년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에서 발표한 ‘소비자행태조사’에 보면 우리나라 10~20대 연령층이 가장 많이 보는 온라인 동영상 콘텐츠가 ‘먹방’인 것으로 나타났다. 바야흐로 ‘먹방’ 전성시대다. 개인이 자신의 입으로 무엇을 먹든지, 또는 얼마만큼을 어떻게 먹든 간에 남이 상관할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갖 온·오프라인 미디어에서 넘쳐나고 있는 먹방을 접하면서 과연 개인의 자유영역으로만 놔둬야 할지 고민스러운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먹방에서 음식을 대하는 공통적인 모습은 바로 ‘탐식’과 ‘폭식’, 그리고 ‘과식’이다
부처님께서는 어느 날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가 보시한 사위성의 기원정사에 1250명의 제자들과 머물고 계셨다. 식사 때가 되자 가사를 입고 발우를 지니고 사위성으로 들어가셨다. 성 안에서 탁발을 마친 후 계시던 곳으로 돌아와 공양을 마친 후 가사와 발우를 거두었다. 발을 씻고 자리를 펴고 앉은 후 경전을 설하기 시작하셨다.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着衣持鉢] 사위성으로 들어가서 걸식한[入舍衛大城乞食] 이야기는 ‘금강경’ 첫머리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유행(遊行)과 걸식은 부처님 당시 수행자의 중요한 일과였다. 걸식에 의존하지 않고 사
본인은 약 1년 남짓 공양주를 했다. 본래 3년을 하기로 했지만, 2001년 전쟁이 끝난 아프가니스탄의 긴급구호 및 개발지원활동으로 4년간 파견이 결정 나는 바람에 부득이 중단해야만 했다. 당시 사패산터널 개발 반대를 위해 농성 중이신 수경 스님에게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한철 공양주 생활만 잘해도 평생 먹고살 공덕이 쌓인다”는 격려의 말씀을 들었다. “3년 공양주 생활은 10년 수행한 것과 같다”는 불교 집안의 이야기도 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공양주 생활은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나 공양 준비하고 아침기도한 뒤 매일 40~50여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