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백제・신라 3국 중 신라는 국가발전이 가장 늦었을 뿐만 아니라 불교를 공인한 시기도 다른 두 나라에 비해 150여년이나 뒤졌다. 그러나 불교를 공인하면서 왕권강화와 국가발전을 적극 모색하여 이른바 ‘불교왕명시대’를 연출하고, 불교적 신성화를 통한 ‘성골’이라는 신분 개념(실체가 없는 정치적 수사)을 창출하기도 하였다. 당시 승려들은 불교라는 특정 종교의 성직자 역할에만 그치지 않고, 중국의 선진문화를 수입하는 선각자로서 고대문화 건설의 주역을 담당하였다. 또한 승려들은 부족의식의 청산과 국가정신의 수립, 새로운 사회윤리의 제
“악을 보고도 침묵하는 것은 그 자체가 악이다. … 악에 맞서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은 악에 동의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악에 맞서 행동에 나서지 않는 것은 악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에릭 매택시스의 ‘디트리히 본회퍼’ 전기에서) 필자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도 ‘디트리히 본회퍼’의 말에 공감하기 때문이다.디트리히 본회퍼는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할 모략을 꾸밀 때 독일 안에서부터 나치를 무너뜨리려고 은밀히 움직였던 소수의 독일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히틀러 암살 공모에 가담했다가 1945년에 플로센뷔르크 강제수용소에서 처형
승이 기주(冀州)의 광교지(廣教志) 화상에게 물었다. 이것이 무엇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지가 말했다. 태어나보니 기주이더라.문답에서 말한 ‘이것이 무엇인가’라는 말의 원어는 시심마물(是甚麼物)이다. 심마물이라는 용어는 선어록에서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단적으로는 ‘무엇인가’ 하는 의미이다. 이 말에 대한 궁극적인 정체는 바로 확실한 자각을 겨냥하고 있다. 따라서 시간으로는 지금이고, 공간으로는 여기이며, 상황으로는 문답하거나 의심을 제기하고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무엇인가를 자각해야 할 것이 요구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선문
우리는 누군가를 평가하며, 동시에 평가받는다. 그 사람의 능력, 인품, 행위 등을 평가한다. 누군가를 평가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경전에 보면 부처님도 누군가를 평가할 때 평가한다. 평가하는 자체가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평가가 너무나 편협하며, 객관성을 결여한 것이라면 문제가 될 수 있다. 공동체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지면 공동체의 화합이 깨지기 쉽다. 그래서 평가의 방식과 태도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맛지마 니까야’ 110번경 ‘보름날 밤의 작은 경(Cūḷapuṇṇamasutta)’에서는 부처님께서 포살일에
총을 든 경찰과 군인들 앞에서 비폭력 저항운동을 하는 시민들은 얼마나 두려울까. 무자비한 발포로 이미 300명 가까이 목숨을 잃었다. 집안에 있는 어린아이들까지 비명횡사했다. 5·18민중항쟁 때, 이 땅의 군인들 또한 그랬다. 나라를 지키라고 쥐어준 총을 그 주인을 향해 들이대고 있으니 어찌 반역이 아니랴. 미얀마는 지금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 그러나 그 터널 끝에는 담마(Dhamma)가 구현된 자유와 평등, 정의와 평화의 햇살이 기다리고 있다. 알고 있듯이 미얀마는 불교의 나라다. 남부 몬 주는 옛날 인도에서 전륜성왕 아소카
꽃이 피었다. 둥실둥실 꿈무더기 같은 뽀얀 목련들이 망막에 들어와 알알이 꽂히더니, 여기저기 담벼락을 노랗게 물들이며 개나리들이 제 기색을 드리운다. 급기야 가지 끝마다 수다스럽던 벚꽃의 봉오리가 우수수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그들보다 부지런한 매화와 산수유가 인사를 청해온 게 벌써 수주 전이다. 꽃이 피었다. 봄꽃이 피었다. 일제히. 봄이다.그런데 얘들이 벌써 이럴 때가 아닌데. 달력을 본다. 3월 하순. 서울에서 나고 자란 내가 수십 년을 살아오면서 3월 안에 이 기세의 봄꽃을 보는 게 처음이다. 매년 두근거리는 마
Q. 남편이 떠난 지 일년이 됐지만 아직도 너무 힘이 듭니다. 작년에 갑작스레 사고를 당해 정신없이 보냈습니다. 한동안 남편 이야기만 나오면 가족들이 통곡을 해 그간 남편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첫제사를 지내니 남편 생각이 자꾸 납니다. 조금 더 잘해줄 걸, 그날 남편이 나가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에 후회스럽고 밤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친구들이 위로해주고 챙겨주고 있지만 시도때도 없이 나오는 눈물에, 입맛도 없고, 남편 생각만 하면 머리가 아파옵니다. 좋은 아버지였기에 자식들도 많이 힘들어 하는데 앞으로
나는 지금까지 책을 한 50권 정도 출판했다. 이 중 절반은 다른 분과 함께 한 것이고, 절반 정도가 단독 저술이다. 이렇다 보니 종종 “인세가 짭짤하시겠어요”라는 말을 듣곤 한다. 이때 드는 생각은 ‘저분은 참 책도 안 읽고, 책을 내본 적도 없는 분인가 보다’이다.치킨 한 마리 값도 안 되는 책의 인세라고 해봐야 7∼10%가 고작이다. 그럼 책을 치킨만큼 소비하느냐? 이러면 진짜 대박이겠지만, 실상은 1달에 1권 살까 말까 한 정도가 전부 아닌가!특히 불교 쪽은 더 안 좋다. 신도분들은 대부분 어른에 노안이시라, 독서 연령대를
불교에서 가장 큰 명절은 단연 음력 4월 8일 부처님오신날이다. 고타마라는 한 인물의 탄생을 기념하는 부처님오신날은 모든 불자들에게 가장 큰 의미를 주는 날이다. 출가재일은 수행자로의 삶으로 내딛는 두 번째 탄생을 뜻하는 날이다. 싯닷타 태자가 왕궁을 떠나 주어진 모든 현실을 버리고 더 나은 것을 위한 선택, ‘위대한 포기’를 결심한 역사적인 날은 또 다른 의미의 탄생이다.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부처님오신날이다. 성도재일은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의 탄생일이다. 진정한 의미의 ‘깨달은 자, 붓다’의 탄생이야말로 새로운 의미
인도에서 소는 가장 신성하고 유용한 동물이다. 힌두교 대표신 쉬바는 흰 소를 타고 다니고, 목동의 신 크리슈나는 모든 소를 보호한다. 종교적 이유로 힌두교도들은 소를 살해하거나 먹지 않지만 모든 소가 이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버펄로(Buffalo)라고 불리는 큰 뿔의 검은 물소(Bubalus bubalis)는 식용고기로 사용되거나 수출된다. 인도나 네팔 레스토랑에서 먹을 수 있는 값싼 스테이크가 바로 물소 고기다. 초식동물인 소는 성품이 순하여 길들이기 쉬운 동물이지만 물소는 야생성이 강하고 성미가 사나운 맹수로 꼽힌다. 인도신
역사적인 가치를 지니는 성보 문화재로서 불교미술품은 각각의 시대마다 장인들이 그들의 예술정신을 불어넣어 만든 것이다. 그리고 미술사학자들은 그러한 문화재 안에 담긴 시대적인 정신을 읽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그중에서도 마애불은 인위적인 화폭이나 건축적인 공간 대신 자연적으로 조성된 공간과 바위에 인간의 정신을 투사하여 조성하는 매우 독특한 표현기법이다. 즉 마애불은 산 속에 넓은 화폭 같은 바위가 있다고 해서 그 위에 작가가 새기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새기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그 바위를 보면 안에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다고 느끼게
법정 스님의 ‘말과 침묵’(1982)에는 사랑에 관한 아름다운 비유가 소개되고 있다. “몸에 그림자 따르듯이”라는 경구가 절실하게 다가와서 처음 독송한 이래 늘 잊혀 지지 않고 울림을 준다. 원출처가 ‘능엄경’으로 표시된 말씀을 스님의 번역문 그대로 옮겨 본다.“한 사람은 일념으로 생각하는데 다른 한 사람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다면, 이 두 사람은 만나도 만난 것이 아니요 보아도 본 것이 아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서로 생각하여 생각하는 두 마음이 간절하면, 이생에서 저생에 이르도록 몸에 그림자 따르듯이 서로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