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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분쟁을 중재한 붓다

기자명 마성 스님

붓다, 온갖 방편 동원해 전쟁 막으려 했다

불교승가 존재 이유, 대중이익·행복…미얀마 승가, 사명 망각했나
대다수 미얀마 승려의 시위 외면은 군부 살상 행위 동조하는 것
승가 지도자 나서 미얀마 군부 설득해 폭력진압 막도록 노력해야

미얀마 양곤에 위치한 쉐다곤 파고다의 웅장한 모습. 높이는 98m이며 루비 1383개, 다이아몬드 5451개로 장식된 미얀마에서 가장 규모가 큰 불교사원이다. 사원의 승려들은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위에 동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시위 군중이 사찰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문을 걸어 잠갔다고 한다.
미얀마 양곤에 위치한 쉐다곤 파고다의 웅장한 모습. 높이는 98m이며 루비 1383개, 다이아몬드 5451개로 장식된 미얀마에서 가장 규모가 큰 불교사원이다. 사원의 승려들은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에 반대하는 시위에 동참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시위 군중이 사찰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문을 걸어 잠갔다고 한다.

“악을 보고도 침묵하는 것은 그 자체가 악이다. … 악에 맞서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은 악에 동의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악에 맞서 행동에 나서지 않는 것은 악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에릭 매택시스의 ‘디트리히 본회퍼’ 전기에서) 필자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도 ‘디트리히 본회퍼’의 말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할 모략을 꾸밀 때 독일 안에서부터 나치를 무너뜨리려고 은밀히 움직였던 소수의 독일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는 히틀러 암살 공모에 가담했다가 1945년에 플로센뷔르크 강제수용소에서 처형당했다. 그는 “악에 맞서지 않는 것은 악에 동의하는 것이며 악을 위해 일하는 것”이라는 자신의 신념대로 살다가 목숨을 잃었다.

지난 2월1일 미얀마의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미얀마군 최고사령관 민 아웅 흘라잉이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집권 국민민주연맹(NLD)의 정치 지도자들을 구금・체포하고 정권을 찬탈했다. 이에 반대하는 시민들의 시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미얀마의 경찰과 군인들이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차별 발포로 많은 사망자와 부상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미얀마 군부는 전 세계인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폭력적인 시위 진압을 멈추지 않고 있다. 불교도의 한 사람으로서 불교국가에서 시위 군중에게 무차별 총격을 가하는 군부의 야만적 행위를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미얀마에서 전개되고 있는 시민불복종 운동은 대한민국 광주에서 일어났던 5・18 민주화운동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유사하다. 당시 권력을 장악한 신군부가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화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공수부대를 파견하여 시위 군중을 향해 무차별 발포함으로써 수많은 사상자를 낳은 전대미문의 사건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5・18 민주화운동을 경험한 바 있는 한국인들은 미얀마 군부가 시위 군중에게 발포하는 것을 보고 치를 떨며 분개하고 있다. 특히 미얀마와 관련이 있는 불교단체들은 물론 개인들도 미얀마 시위 군중과 연대하여 군부에 강력히 항의하고 있다. 그러나 미얀마 승가의 지도자들과 대다수 미얀마 승려들은 시위에 동참하지 않고 있다. 큰 사찰들은 문을 걸어 잠그고 시위 군중을 외면하고 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나의 페이스북 친구 미얀마 승려들도 아무 일도 없는 듯 예전에 탁발하던 모습이나 평화로운 일상의 사진들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있다. 미얀마의 승려들보다 한국의 승려나 불자들이 더 분개하고 있는 것 같다. 미얀마 승가의 지도자들이 미얀마 군부의 야만적 살상 행위에 침묵하는 것은 군부의 야만적 살상 행위에 동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미얀마에서는 1988년과 2014년 두 차례 민주화 투쟁이 있었다. 그때에도 젊은 승려들은 시위에 앞장섰다. 그러나 군부와 결탁한 승가 지도자들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미얀마의 민주화운동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번 군부의 쿠데타를 반대하는 시위도 마찬가지다. 승가 지도자들은 목숨을 걸고 시위하는 군중들을 못 본 체 외면하고 있다.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은 폭력으로 시위를 진압하는 군부 독재자에게 분노를 표출함과 동시에 승가에 대한 원망이 분노로 변하고 있다.

불교승가의 존재 이유는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이다. 그런데 미얀마의 승가는 중생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있다. 미얀마의 승가는 너무나 오랫동안 군부 독재 정권으로부터 공양을 받으며 편안하게 생활해 왔다. 그 때문인지 승가 본연의 사명을 잊어버린 것 같다. 불교사에서 승가가 권력과 결탁하여 민중의 아픔을 외면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권력의 속성 자체가 무상하다. 시대가 변하면 권력에 기생했던 집단은 반드시 보복을 받게 된다. 그것이 곧 폐불(廢佛)이요 법난(法難)이다.

현재 젊은 승려들을 중심으로 군부에 반대하는 시위에 동참하는 숫자가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앞으로는 더 많은 승려들이 시위에 동참할 것이라고 예상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미얀마 승가의 지도자들이 깨어나 군부의 지도자들을 설득시켜 폭력 진압을 멈추도록 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군부의 공양을 거부하는 복발갈마(覆鉢羯磨)를 실시하는 용기를 보여주어야 한다.

붓다는 온갖 방편을 다 동원하여 전쟁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붓다는 만년에 마가다국의 아자따삿뚜(Ajātasattu, 阿闍世王)가 왓지(Vajjī)를 정복하고자 대신(大臣) 왓사까라(Vassakāra, 禹舍)를 붓다께 보내 자문을 구하도록 했다. 왓사까라 대신은 “고따마 존자시여, 마가다의 왕 아잣따삿뚜 웨데히뿟따는 왓지를 공격하려 합니다. 그는 이와 같이 말했습니다. ‘왓지가 이처럼 크게 번창하고 이처럼 큰 위력을 가졌지만 나는 왓지를 멸망시킬 것이고, 왓지를 파멸시킬 것이고, 왓지가 참극을 당하게 하고야 말 것이다.’라고.” 그러자 붓다는 시자 아난다(Ānanda) 존자에게 왓지들이 일곱 가지 쇠퇴하지 않는 법, 즉 칠불퇴법(七不退法)을 잘 지키고 있느냐고 물었다. 아난다 존자가 그렇다고 답변했다. 그때 붓다는 “왓지들은 번영할 것이고 쇠퇴란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말씀은 칠불퇴법을 지키고 있는 왓지를 공격해도 이길 승산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해서 붓다는 큰 전쟁을 막았다.

원래 같은 종족이었던 사꺄족(Sākyan)과 꼴리야족(Koliyan)은 로히니(Rohiṇī) 강을 경계로 분리되어 있었다. 강을 가로질러 건설된 댐의 물을 이용하여 양쪽의 국민들이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었다. 5월과 6월에 가뭄이 들어 물이 부족했다. 강물을 서로 사용하기 위해 두 종족 간에 격렬한 싸움이 일어났다. 붓다는 물 때문에 두 나라 사이에 전투가 임박한 것을 보고, 그곳으로 달려가 적은 양의 물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고 양쪽을 설득시켰다. 이렇게 해서 붓다는 전쟁을 막았다.

전 세계의 정치 지도자들도 미얀마 군부의 폭력적 진압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그런데 미얀마의 승가가 군부의 편에 서서 침묵을 지키는 것은 붓다의 제자로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행위다. 이제는 붓다의 제자인 미얀마 승가가 나서야 할 때이다.

마성 스님 팔리문헌연구소장 ripl@daum.net

 

[1579호 / 2021년 3월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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