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중앙종회가 3월29일 팔공총림 동화사 방장에 임담의현 대종사를 만장일치로 추대했다. 의현 대종사의 삶은 파란만장했던 현대한국불교사와 궤를 같이한다. 열세 살 되던 해 향곡 스님을 만나 봉암사결사에 참여했다. 당시 봉암사에는 청담, 성철, 자운 스님 등 당대를 대표하는 선지식들이 꺼져가는 한국불교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분투했다. 옛 선사가 ‘땅에서 쓰러진 자, 땅을 짚고 일어서라’고 했듯, 부처님 법이 퇴색된 곳에서 ‘부처님 법대로 살자’를 외치면서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 스님은 일찍이 봉암사결사를 통해 출가수행자의 본분이 수
팔공총림 방장 의현 스님과의 대담은 4월11일 동화사 동별당에서 진행됐다. 때마침 이날 세간의 관심은 온통 동화사에 쏠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대구로 귀향한 후 첫 나들이로 동화사를 찾은 것이다. 언론들은 박 전 대통령이 그동안 각별한 친분을 유지해 온 의현 스님이 팔공총림 동화사 방장으로 추대된 것을 축하하고 봄기운이 가득한 동화사에서 의현 스님과 차담을 나누기 위해서라고 전했다. 이날 대담은 자연스레 박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시작됐다. 스님은 박 전 대통령과의 첫 인연이 2012년 말 제18대 대통령 선거 무렵이었다고 했다.
팔공총림 동화사 방장 의현 대종사는 현대한국불교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스님은 봉암사 결사, 불교정화운동, 1970~80대 종단사태, 10·27법난 등 ‘격동의 조계종사’를 대변하는 주요사건들을 지켜본 목격자였고, 때론 그 중심에 서기도 했다. 혼란이 극심했던 1980년대 중반, 총무원장에 취임해 통합종단조계종 출범 이후 처음으로 4년 임기를 채웠으며, 재임까지 이뤄냈다. 총무원장 재임기간 불교방송 개국과 중앙승가대 4년제 인가, 불교텔레비전 개국의 초석을 다지는 등 당시 한국불교의 수많은 숙원과제들을 해결하는 성과도 냈다
조계종 제25대 총무원장 의현 스님은 취임과 동시에 “불교의 자주화”를 기치로 내걸고 정부와 대척점에 섰다. 1986년 9월7일 해인사에서 승려대회를 개최해 “불교 자주성 회복과 불교관련 악법 철폐”를 요구했다. 이날 승려대회에는 조계종 총무원 집행부를 비롯해 전국에서 2000여명의 스님이 참석했다. 조계종이 불교 내부문제로 승려대회를 개최한 적은 많지만 정부의 불교시책을 두고 승려대회를 개최한 것은 이례적이었다.승려대회에서는 △불교재산관리법·자연공원법 등 불교관계 악법 즉각 철폐 △사원의 관광유원지화 중지 △1980년 10·27법
의현 스님은 1990년 6월22일 조계종 중앙종회 100차 임시회에서 제26대 총무원장으로 당선됐다. 1962년 통합종단조계종 출범 이후 의현 스님이 26대 총무원장에 당선되기 전까지 총무원장 평균임기는 1년2개월에 불과했다. 1980년대 들어서는 6개월이 멀다하고 총무원장이 바뀌는 혼란이 이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4년 임기에 이어 재임까지 이룬 것은 조계종사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의현 스님은 이날 “불교방송 지방국 확대, 불교회관 건립 등 교세 확장과 중흥을 위한 사업추진을 약속”하며 새로운 임기 4년의 첫발을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