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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월결사 인도순례 : 김형규의 성지에서] 2. 성지순례 그 자체가 수행이다

새벽 2시부터 하루 일정 시작
물집과 상처 훈장처럼 생겨나
수행은 익숙함서 벗어나는 일
대중 모두 인욕하며 매일 정진

인도의 길은 걸음걸음에 집중하지 않으면 크게 위험할 수 있다.
인도의 길은 걸음걸음에 집중하지 않으면 크게 위험할 수 있다.

순례는 쉽지 않았다. 2주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매일이 버거운 날들이다. 길에서 자고 길에서 일어나, 걷는 것은 안락한 생활에 안주했던 몸과 마음이 편하게 받아들이기에 역부족이었다. 하루 일정은 새벽 2시에 시작됐다. 도량석에 맞춰 일어나 텐트 안의 짐과 침낭, 매트를 정리하고 의복을 갖추면 예불과 동시에 3시에 순례에 나선다. 빛이 들지 않은 길은 온통 칠흑 같은 어둠이다. 그 길을 오로지 대중들의 랜턴에 의지해 걸었다.

여러 길을 걸었다. 아스팔트길, 흙길, 골목길, 고속도로. 편한 길은 없었다. 아스팔트는 파이고 곳곳이 부서져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넘어지거나 발목을 다치기 쉬었다. 흙길은 먼지로 숨통을 조였고, 고속도로는 거대한 트럭들의 물결로 위험천만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런 길을 걸으면서도 수마(睡魔)는 수시로 밀려들었다. 빛이 들기 전이 가장 심했다. 주변이 온통 컴컴하니 오로지 앞 사람들의 발을 이정표 삼아 걷다 보면 눈이 절로 감겼다. 다리가 풀리거나 몸이 휘청거리면 그때서야 정신이 들었다.

순례지원단과 인도 경찰의 도움이 없었다면 크고 작은 사단들이 적지 않게 일어났을 것이다. 하루 걷는 평균 거리는 25km다. 그러나 이것도 길의 상태와 숙영지의 거리에 따라 들쭉날쭉해 많이 걷는 날은 30km에 가까웠다. 4만보가 훌쩍 넘는 걸음이다. 이렇다 보니 발에는 크고 작은 물집과 상처들이 훈장처럼 생겨났다. 

숙소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을 내 학교에 숙영지가 마련되면 행운이었다. 열악하지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고, 교실에서 뜨거운 더위를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천에 마련되면 땅을 파 급조한 간이화장실을 이용해야 했고, 이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으슥한 곳을 찾아 스스로 뒤처리를 해야 했다. 텐트는 뜨거운 태양에 불판처럼 달궈졌고, 순례단은 수행하는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참아내야 했다.

특히 현재 겨울인 인도는 아침과 낮의 기온 차가 심했다. 아침에는 춥고, 낮에는 견디기 힘든 더위가 찾아오는 바람에 감기 환자도 적지 않다. 풍토와 음식이 맞지 않아 수시로 배탈이 났다. 텐트 안은 먼지와 지푸라기로 가득하고, 습기를 잔뜩 머금은 침낭 안에서 새벽을 맞이해야 했다. 그러나 모두 불퇴전의 자세로 물러서지 않았다. 저녁 예불에는 매일 ‘금강경’ 독송과 108배 참회가 진행됐다.

회주 자승 스님은 연주암 주지 시절 산중을 오르내리다 연골에 손상을 입어 무릎이 좋지 않음에도 선두에서 대중들을 이끄는 것은 물론 108배 또한 솔선수범했다. 80세가 코앞인 전 호계원장 무상 스님을 비롯한 어른 스님들도 108배를 건너뛰지 않았다. 지금껏 순례단이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순례를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다.

간화선을 주창했던 대혜 스님은 “선 것은 익게 하고 익은 것은 설게 하라”고 했다. 수행은 익숙함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모든 것이 낯설고 불편하고 힘들었지만 조금씩 몸과 마음에 익히는 중이다. 인욕을 통해 대중들은 순례를 넘어 점차 수행으로 나아가고 있다.

김형규 대표 kimh@beopbo.com

[1670호 / 2023년 3월 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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