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어스름에 길로 나섰다. 길에서 자고 길에서 일어나, 다시 길을 걷는 순례는 차량을 이용해 관광하듯이 다니는 여정과는 확연히 다른 감회를 불러온다. 부처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 걸으며 부처님의 체취 가득한 성지로 향하는 길은 비록 고되고 험난한 고행과도 같지만 주마간산(走馬看山)처럼 성지를 스쳐지나갈 때와는 확연히 다른 감동을 전해준다.
부처님께서 걸었던 그 길에는 부처님의 삶이 점점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출가를 위한 결단과 수행에 대한 고뇌, 중생을 위한 연민과 아름다운 열반까지 그 모든 삶의 순간이 이어진 길은 그냥 길이 아니라 그 자체로 위대한 수행의 여정이었다. 버스로 지척인 거리를 길에서 잠들고 일어나며 며칠을 걸어 마침내 닿은 부처님 성지는 그냥 성지가 아니었다. 부처님의 얼굴이며 품이며 또한 가르침이었다.
팍팍한 다리를 움직이며 수고스럽게 걸어 순례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길 위에서 태어난다. 그래서 길은 구법의 과정이며, 전법의 실천이고 그 자체로 수행이다.
인도의 길에도 많은 가르침이 있었다. 부처님께서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을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며, 소똥을 땔감으로 만들기 위해 소중히 다루는 사람들을 보며 더러움과 깨끗함의 경계가 무너졌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갖고도 불행해 했는지 새삼 되돌아보게 했다. 신발도 신지 못한 아이들을 보며 연민과 자비심이 솟아났다. 직접 걸으며 들여다보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배우지 못했을 가르침이었다. 부처님은 더 많은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맨발로 바쁘게 걸으셨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가는 과정에서 순례단은 더욱 단단해졌다. 낯선 풍토와 환경, 그리고 힘든 여정에 배탈과 감기 등 많은 어려움들이 닥쳐왔다. 그러나 누구도 포기하지 않고 그 과정을 함께 이겨냈다.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며 걸었다. 사부대중이 하나가 되고, 각 조의 구성원들은 도반으로 거듭났다.
상월결사 인도순례 ‘생명존중, 붓다의 길을 걷다’는 3월4일 새벽길을 비춰주는 희미한 달빛에 의지해 케사리야대탑을 뒤로하고 24일차 일정의 발걸음을 옮겼다. 순례를 시작할 때 둥근 빛을 뿜어내던 보름달은 어느덧 그믐을 지나더니 다시 조금씩 차오르며 처음의 둥근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부처님의 향훈을 따라 출가와 깨달음, 전법, 대열반의 길로 나선지 벌써 한 달이 가까워오고 있음이다. 이제 며칠이 지나면 목표한 부처님의 7대 성지 가운데 5번째인 열반성지 쿠시나가르에 다다른다.
페이고 깨져있던 좁은 골목길과 제방길이 깨끗하게 정리됐다. 어두운 새벽 잠시 스쳐 갈 순례단을 위해 수고로움을 마다 않은 주민들의 고운 마음 덕분이다. 순례단은 오늘 행선한 두마리아와 카라스카트 주민들의 정성을 가슴에 담아 다음 숙영지가 마련된 사다우아로 향했다.
조금씩 어둠이 밀려나 사물의 윤곽이 선명해질 즈음 순례단은 강어귀에 도착했다. 대열반의 여정에 나선 부처님께서 그 뒤를 따르던 바이샬리 릿차위족 사람들과 이별한 간다키강이다. 릿차위족 사람들은 강을 건너 쿠시나가르를 향해가시는 부처님을 더는 뒤따르지 못하고 눈물로 배웅했다. 중생을 두고 떠나셔야 했던 부처님의 연민 그리고 부처님과 이별해야 했던 랏차위족의 탄식이 교차했을 그 자리에는 지금 다리가 놓여 있다. 곳곳이 부서지고 일부 난간마저 떨어져 나간 낡고 오래된 다리지만 그 다리 덕분에 순례단은 릿차위족을 막아섰던 간다키강을 단숨에 건너 열반성지를 향해 나아갔다.
제정 스님은 전날 케사리아대탑을 참배하던 중 눈시울을 붉혔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전생의 인연인지, 무슬림들에게 혹독하게 당한 성지에 와서 그런지 모르겠다”고 말문을 연 스님은 “부처님 당시 이곳도 불교가 융성했을 텐데 무슬림에게 공격당하고 힌두에 녹아 간신히 흔적만 남아 있다”며 “부처님께서 ‘내가 입멸 후 북쪽에서 법이 융성할 것’이라고 말씀한 내용을 새겨 더욱 정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스님은 또 “물질문명이 발전하면서 우리 주변에는 소외감, 스트레스, 우울감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늘고 있다.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데 불교의 수행법 외에 무엇이 있겠느냐”며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불교, 젊은 불교를 위한 방편을 제시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부처님의 길을 따르겠다”고 덧붙였다.
문종 스님은 15년간 미국 뉴욕에서 포교활동을 펼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3년 전 귀국했다. “강릉 등명낙가사에서 정진하던 중 삼보사찰 천리순례에 동행했다 인도순례 계획을 듣고 다시 없을 기회이기에 동참했다”며 “미국에 있을 때 국립공원 등에서 대중들과 캠핑, 만행을 자주해 즐거운 마음으로 동참하고 있다. 불교중흥, 생명존중의 화두를 어떤 방편으로 대중포교에 녹여낼 것인지를 화두로 순례 중”이라고 말했다.
지불 스님은 순례 중 어떤 생각을 가장 많이 했냐는 질문에 “똥”이라고 했다. “강원을 졸업하며 순례한 부처님 성지의 감동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어 동참하게 됐다”는 스님은 “나는 소똥을 밟지 않으려 겅중대고 있는데, 옆에 인도 보살님은 가족을 위해 쓸 연료를 만들려고 손으로 소똥을 치대고 있었다”며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고, 분별심에 대한 많은 생각을 했다. 최소한 똥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관대해질 것 같다”고 큰 웃음을 터트렸다.
정혜 스님은 인도순례 동참을 목표로 마곡사 예비순례부터 자비순례, 삼보사찰 천리순례까지 모두 함께했다. 환희와 감동의 순례길, 그러나 스님은 오늘 간다키강을 건너며 눈물을 보였다. 스님은 “간다키강에 이르러 사람들을 멈춰 세우고 아쉬워하는 이들을 위해 발우를 강물에 띄워 보낸 부처님. 당시 중생을 두고 떠나야 하는 부처님의 마음을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며 “지금 우리가 나를 내려놓고, 기득권을 내려놓고, 사부대중이 평등하게 정진하는 것처럼 모두가 부처님의 마음으로 대중을 살피고 포교에 나서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사다우아=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1672호 / 2023년 3월 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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