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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월결사 인도순례 23일차] 아름다운 낙조의 길 ‘대열반’, 위대한 가르침 여정

‘차별 없는 순례’ 23일차부터는 매일 조별로 돌아가며 순례단 이끌어
자승 스님, 전날 환대해 준 다르파리 주민과 우호증진 기원 보리수 식수
이태경 불자 “순례가 곧 움직이는 불교”…시관 스님 “하심 실천의 자리”

상월결사 인도순례 ‘생명존중, 붓다의 길을 걷다’는 3월3일 23일차 일정을 진행해 케사리야에 도착했다.

바이샬리에서 쿠시나가르에 이르는 길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열반의 길인 동시에 싯다르타 태자가 스승을 찾아 나선 새로운 여정의 공간이다. 이 길은 시작과 끝이 하나인 길이다. 마치 생과 사가 하나인 이치를 알려주는 것 같다. 불교와 다른 종교의 차이점은 싯다르타가 스승을 찾아 나섰다는 점이다.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등 오늘날 인류의 정신문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종교 가운데 그 창시자가 스승을 찾아 나선 종교는 없다. 이들 종교의 창시자로,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들은 대부분 신의 계시를 받거나, 혹은 스스로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싯다르타는 스승을 찾아 나섰다. 스승이란 전 시대의 모든 지혜와 지식을 후대에 전해주는 연결고리와도 같다. 그래서 부처님은 당대 최고의 스승들을 통해 그때까지 전해지는 모든 수행을 직접 체득하고 이에 관한 모든 지식을 섭렵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고행이나 명상 등 당시까지 확인된 수행법을 통해서는 완전한 해탈에 이를 수 없음 또한 명확히 정의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부처님께서는 중도의 길을 찾았고 마침내 무상정등정각에 이르실 수 있었다. 바이샬리에서 쿠시나가르로 이어지는 이 길은 이러한 수행의 과정, 즉 깨달음의 여정을 오롯이 보여주는 부처님의 발자취이며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인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보여주는 가르침의 길이다.

회주 자승 스님은 전날 숙영지를 내어준 다르파리 지역의 공무원, 경찰, 학교 등 관계자들에게 순례단을 대표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고려대장경 반야심경 동판과 함께 관계자 모두의 손목에 하나하나 단주를 선물했다. 한국·인도의 우호증진을 기원하며 보리수나무를 식수하고 있는 자승 스님과 다르파리 지역 관계자들. 
회주 자승 스님은 전날 숙영지를 내어준 다르파리 지역의 공무원, 경찰, 학교 등 관계자들에게 순례단을 대표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고려대장경 반야심경 동판과 함께 관계자 모두의 손목에 하나하나 단주를 선물했다. 한국·인도의 우호증진을 기원하며 보리수나무를 식수하고 있는 자승 스님과 다르파리 지역 관계자들. 

상월결사 인도순례 ‘생명존중, 붓다의 길을 걷다’는 3월3일 23일차 일정을 진행해 케사리야에 도착했다. 전날 숙영지를 마련한 다르파리 학교에는 지역의 공무원, 경찰, 학교 등 관계자들이 찾아와 순례단을 환영하고 한국·인도의 우호증진을 기원하며 보리수나무와 망고나무를 함께 식수하는 기념행사를 가졌다. 회주 자승 스님은 순례단을 대표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고려대장경 반야심경 동판과 함께 관계자 모두의 손목에 하나하나 단주를 선물했다.

다르파리 주민들의 환대와 지원 속에 휴식을 취한 순례단은 새벽 2시40분 아침예불을 모시고 23일차 목적지인 케사리아를 향해 출발했다. 순례단이 오늘 행선한 거리는 26km로 대부분 곧게 뻗은 제방 길을 따라 진행됐다. 지원단에 따르면 이날 순례길은 지난 1월 3차 답사 때까지만 해도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울퉁불퉁한 비포장길이었다. 그러나 인도정부와 비하르주정부가 순례단의 일정에 맞춰 도로를 정비하고 차량도 통제해 순례단은 편안하게 행선에 집중할 수 있었다.

새벽 2시40분 아침예불을 모시고 23일차 목적지인 케사리아를 향해 출발했다.
새벽 2시40분 아침예불을 모시고 23일차 목적지인 케사리아를 향해 출발했다.
 순례단이 오늘 행선한 거리는 26km로 대부분 곧게 뻗은 제방 길을 따라 진행됐다.
순례단이 오늘 행선한 거리는 26km로 대부분 곧게 뻗은 제방 길을 따라 진행됐다.
붉은 목련이 아름다운 제방 길을 따라 걷고 있는 순례단.
붉은 목련이 아름다운 제방 길을 따라 걷고 있는 순례단.

가는 길은 전날과 마찬가지로 보리밭과 붉은색 목련이 찬연했다. 차도 오토바이도 없는 한적한 마을길은 붉은 목련이 점점이 가는 길을 안내했다. 목련은 시들지 않고 가장 찬란하게 피어났을 때 그대로 땅에 떨어졌다. 말 그대로 낙화(洛花)다. 시들어 저절로 떨어지는 꽃은 슬프지 않지만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낙화해 사람들의 발에 밟혀 사라지는 꽃은 묘하게 가슴 아프다. 우리 삶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가장 찬란할 때 더 높이 가려고 하지 말고 어떻게 아름답게 시들 것인지를 살피지 않으면 목련처럼 우리 인생 또한 급전직하할 것이다. 부처님께서 걸으셨던 열반의 길은 우리에게 또 다른 무설법문(無設法門)을 남기고 있다.

인도순례 23일차는 7조 우바이와 8조 우바새가 앞장서 순례단을 이끌었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모두가 주인공인 순례가 시작된 것이다.
인도순례 23일차는 7조 우바이와 8조 우바새가 앞장서 순례단을 이끌었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모두가 주인공인 순례가 시작된 것이다.
차도 오토바이도 없는 한적한 마을길은 붉은 목련이 점점이 가는 길을 안내했다.
차도 오토바이도 없는 한적한 마을길은 붉은 목련이 점점이 가는 길을 안내했다.

이날도 거리에는 순례단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축원과 환영을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이른 새벽 순례단을 기다리던 한 할아버지는 집에서 기르던 장미꽃을 따 선물했고, 아이들도 순례단이 모습을 보이자 뛰어나와 합장 인사하며 박수로 배웅했다. 전날부터 순례단은 앞선 차량에서 우리가 한국에서 온 순례단임을 밝히고 이번 순례의 목적 등을 설명하는 가두방송을 하고 있다. 아마도 그 영향이었을 것이다. 가는 내내 관심과 응원을 받으며 순례단은 루프차프라, 마도푸르하자리, 순다르푸르를 거쳐 케사리야에 들어섰다.

이른 새벽 순례단을 기다리던 한 할아버지는 집에서 기르던 장미꽃을 따 선물했다. 
이른 새벽 순례단을 기다리던 한 할아버지는 집에서 기르던 장미꽃을 따 선물했다. 
아이들도 순례단이 모습을 보이자 뛰어나와 합장 인사하며 박수로 배웅했다.
아이들도 순례단이 모습을 보이자 뛰어나와 합장 인사하며 박수로 배웅했다.

케사리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은 산처럼 우뚝 선 채 순례단을 맞이하는 케사리아대탑이다. 케사리아대탑은 둘레가 424m, 높이는 32m에 이른다. 19세기 영국에 의해 발굴이 시작됐으며 이곳에서도 아쇼카왕의 석주가 출토됐다. 탑 표면에 조성된 불감에는 각각 불상이 조성돼 있었으나 이슬람 침략 시기에 대부분 파괴됐다. 1934년 비하르주에 대지진이 발생하기 전까지만 해도 탑의 높이는 38m였으며, 조성 당시의 높이는 46m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현재 탑의 높이가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 유적보다 약간 높아 인도인들은 이 탑을 ‘세계 최고 높이의 불탑’이라고 한다. 1998년부터 이 탑에 대한 발굴과 복원이 진행되고 있다.

케사리야대탑은 부처님의 발우를 묻은 자리로 알려져 있다. 부처님께서 열반을 향해 쿠시나가르로 향하실 때 바이샬리 릿차위족 사람들은 입멸을 위해 떠나시는 부처님과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눈물을 흘리며 계속 뒤를 따랐다. 간다키강에 이르러 부처님은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넜으나, 바이샬리 사람들은 강가에서 계속 부처님을 바라보며 눈길을 떼지 못했다. 이에 부처님은 릿차위족을 위한 이별의 징표로 발우를 강에 띄워 보냈다. 그 발우를 받아 바이샬리 릿차위족 사람들이 탑을 쌓았는데 그것이 지금의 케사리아대탑이다.

한편으로는 싯다르타 태자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른 삭발성지라는 설도 있다. 싯다르타는 출가를 결심하고 일곱 나라를 지나 이곳에서 스스로 머리를 깎고 출가해 이를 기념하기 세운 탑이 케사리아대탑이라는 것이다. 하나는 열반의 길을 기념하는 탑, 다른 하나는 출가의 길을 기념한 탑이라는 것인데 진위는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케사리아대탑을 향해 행선 중인 순례단.
케사리아대탑을 향해 행선 중인 순례단.
산처럼 우뚝 선 채 순례단을 맞이하는 케사리아대탑.
산처럼 우뚝 선 채 순례단을 맞이하는 케사리아대탑.

인도순례 23일차는 7조 우바이와 8조 우바새가 앞장서 순례단을 이끌었다. 전날 회주 자승 스님은 기자간담회를 통해 사부대중의 차별 없는 순례를 당부했다. 따라서 이번 순례부터 모든 조가 매일 돌아가며 순례단을 이끌게 된 것이다.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모두가 주인공인 순례가 시작된 것이다.

7조 조장인 이태경 불자는 “처음 앞장서 걷다 보니 더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특히 순례단을 환영하기 위해 나온 주민들의 맑은 눈망울이 기억에 남는다”며 “회주스님께서 말씀하신 움직이는 불교가 무엇인지를 느끼며 행선했다. 순례단의 걸음이 계기가 되어 한국불교가 중흥되고 인도에서도 사라진 불교가 다시 일어서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태경 불자는 또 “지난 3월1일 한국과 인도의 호국영령 그리고 우크라이나·튀트키예 희생자 등의 유주무주 고혼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추모법석이 마련됐고 마침 어머니의 1주기를 맞아 설판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며 “스님들뿐 아니라 순례에 동참한 재가불자들이 한마음으로 기도해 어머니도 기뻐하셨을 것이고,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것 같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순례대중 시관 스님은 봉암사에서 25안거를 성만한 수좌다. 인도순례를 발원하던 중 마침 산철에 기회가 찾아와 주저 없이 만행에 동참했다. 스님은 “많은 대중과 인도의 삶 자체를 접목해 생활하고 정진하니 내가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됐고, 삶이 안일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며 “내 안에 분명 행복이 있고, 부처님의 가르침이 있음에도 자꾸 밖에서 찾으려 했다는 사실을 매 순간 자각하며 많은 것을 내려놓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전을 통해 이해한 깨달음의 경지는 분명 내 안의 평화인데 아직 마음자리는 그렇지 못하다”며 “이 길에서 화두가 성성해 공성(空性)이 체득되면 저절로 마음에 평안과 행복을 발견할 터인데 여전히 생각이 앞선다. 그러나 인도순례 통해 내려놓은 공부가 절로 됐고 있으니 앞으로의 수행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웃음을 보였다.

케사리아대탑을 탑돌이하는 순례단.
케사리아대탑을 탑돌이하는 순례단.
상월결사 인도순례단이 케사리아대탑을 참배하고 있다.

케사리야=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1671호 / 2023년 3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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