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나름대로 열심히 살려고 하지만 현실이 따라주질 않으니, 짜증의 연속입니다. 어디 좋은 해법은 없을까요? A. 당연히 있습니다. 염불이 그 답입니다. 맞닥뜨리는 현실의 괴로움이란 자신의 참생명을 직시하지 않는데서 말미암습니다. 그러므로 요행수나 비방을 좇아 헤맨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닙니다. 마치 글 읽을 능력이 있는 사람이 문맹자로 사는 것과 같습니다. 글을 배우는 이유는 글을 깨치는 것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글을 깨쳤어도 전혀 글을 읽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애당초 글을 모르는 사람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자신의 삶과 현실이 주객으로서의 실체가 따로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서로에게 관계하면서 주객의 관계로 나타나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런 관계성을 일러 연
삼성(三聖. 임제 의현의 제자) 스님이 설봉 화상에게 물었다. “그물을 찢고 나온 황금빛 물고기는 무엇을 미끼로 잡아야 합니까?” “그대가 그물을 찢고 나오면 말해 주겠다.” “1천5백 대중을 거느리는 화상께서 말머리도 알아듣지 못합니까?” “노승이 절 일에 바쁘다 보니...” ‘황금빛 물고기’를 모르는데 ‘미끼’를 어찌 알 수 있을 것인가. 다음 송(頌)을 엿보면 짐작이나마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물을 찢는 황금빛 물고기/물속에 조용히 있을 리 없다./하늘을 흔들고 땅을 휘저으며/지느러미를 떨치고 꼬리를 흔드네./고래가 뿜는 파도는 천길이나 나르고/우레소리 진동하니 회오리 바람인다./이 호쾌한 소식을 아는 이 몇이나 될지.” 일체번뇌의 그물을 찢지 못하면 물이 마를때까지도 그
40여년 수행정진 혜국 스님 일화 곁들며 인연법 펼쳐 우리는 수행에 대한 큰 발심을 내지 못하고 있다가 한 순간 마음을 돌려 정진의 길로 들어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한 선사의 법문 한마디를 듣고 발심을 한 불자, 경전 한 구절에 깜짝 놀라며 좌복을 가까이 한 불자 등 참으로 다양하다. 『인연법과 마음공부』는 한 선사의 짧은 ‘할’과 같은 책이요 금강경의 한 구절과 같은 책이다. 152쪽 분량의 이 책은 크기도 손바닥만해 아무리 읽는 속도가 늦은 사람이라도 2시간이면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한 번 읽고 나면 다시 책의 첫 장을 들추게 하는 매력을 갖고 있다. 두 번을 읽으면 다시 첫 장을 열게 되고 급기야는 가장 손쉽게 꺼내 볼 수 있는 곳에 놓아두게 된다
현재 태국과 미얀마 불교의 눈에 뛰는 차이점을 보면, 태국이 계율을 엄격히 지키는 일을 중시하고, 미얀마는 아비담마 교학에 바탕을 둔 지혜 계발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수행 전통에서 보면 태국불교는 사원의 일상생활 속에 스며있는 승려들의 자연스런 수행 가풍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고, 미얀마는 다양한 방식의 위파사나 수행을 출가자는 물론 재가자도 수행처에 모여 집중적으로 수행하는 모습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찬 차 스님이 수행하던 쿠티(오두막) 아만 버려야 평온 찾아 현대 태국불교의 대표적인 선지식 가운데 한분인 아찬 차 스님은 특별한 수행의 기법을 강조하지 않았다고 한다. 매일 반복적이며 정기적인 좌선을 통해서 마음이 고요해 지도록 자신의 호흡(들숨과 날숨)을 관찰
붓다도 목욕 즐겼던 온천정사 마하카샤파 토굴 모습 그대로 칠엽굴 바위엔 결집 감동이… 아라한과를 성취한 500명의 비구가 모여 결집을 했다는 칠엽굴. 붓다라는 큰 기둥을 잃은 이들 제자는 비통함과 그리움으로 이곳에서 삼장을 하나하나 결집해 나갔다. 마하 카샤파가 머물렀던 동굴. 법현과 현장스님은 이곳에서 붓다가 수행했다고 전한다. 라즈기르에서 붓다가 설법을 할 때, 그 위세는 참으로 대단했다. 붓다가 라즈기르에서 전법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곳 사람들 사이에서 심각한 동요가 일어날 정도였다. 양가의 자제들이 다투어 붓다의 교단에 출가를 하자 졸지에 자식을 떠나보낸 부모들 사이에서 차츰 원망이 일기 시작했다. ‘붓다가 아들(남편)을 다 빼앗아 갔다’는 원성이 높아지고 사람들 사
무문관 등 30여 납자 용맹정진 시민선방도 개원…70여명 수행 “제주도에는 절이 하나도 없다던데 맞나?” “예? 무슨 말씀이세요, 스님.” “참선할 곳이 없으면 절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 아이가! 니 고향 제주도지?” “예!” “그곳에 선방 하나 세우거래이.” 일천의 성인도 전하지 못한 언어 이전의 한 구절, 깨·달·음. 남국선원은 그 문 없는 문을 꿰둟고 완전한 자유를 찾으려는 수행자들의 열린 문이다. 70년대 중반 성철 스님과 혜국 스님이 나눈 대화다. 한국의 대표적인 수행도량의 하나인 남국선원은 이렇게 두 선사의 짧은 대화에서 탄생했다. 제주도에 여법한 참선도량 하나 없는 것을 늘 안타깝게 여겼던 성철 스님이 제주가 고향인 혜국 스님에게 선원을 건립할 것을 간
백차는 살청이나 유념(捻) 공정이 없이, 시들게 하는 위조(萎凋)와 건조 등 2단계만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 지는 가장 원시적인 차로 장시간 시들기 만으로 약간 발효되게 건조시킨 흰솜털이 많이 보이는 약발효차(微醱酵茶)이다. 백차는 어린 싹으로만 만든 백아차(白芽茶)와 1창 1~3기로 만들어 지는 백엽차(白葉茶)로 나누어지는데, 차인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백호은침(白毫銀針)이 백아차에 속하고, 백차지만 흰색으로만 보이지 않고 흰색 녹색 갈색 등이 어우러진 색인 백목단(白牧丹), 공미(貢眉), 수미(壽眉) 등은 백엽차에 속한다. 백차의 유래는 중국의 당(唐), 송(宋) 시기에 발견된 생엽 자체가 희게 보이는 백엽차나무(白葉茶樹)에서 따서 만든 것으로, 송나라 휘종 황제가 자신이 저술한『대관다론』에서 말
차를 사랑하는 불자들이 해인사에 모여 차를 통한 신심 고취와 불심 점검을 위한 차문화 수련법회를 개최한다. 해인사 다경원은 오는 8월 28일부터 29일까지 양일간 ‘2004 해인사 차문화 수련법회’를 ‘차와 나와 부처님과 인연’이라는 주제로 해인사 보경당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해인사 다경원은 차 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자 하는 학인 스님들의 모임으로 2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스님들의 차 모임이다. 사회적으로 차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면서 많은 이들의 요청으로 작년부터 문을 연 ‘차문화 수련법회’는 그동안 사찰에서 열린 수련회와 차별화 된 주제와 일정으로 불자들은 물론 일반인들에게까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일반인들에게 차와 불교의 이해와 문화를 폭넓게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열리는
25년간 한국 차를 연구해 온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장 박동춘(51·사진)씨가 ‘동춘차’ 시음회를 갖는다.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박동춘 소장은 오는 8월 26일 경기도 이천세계도자센터에서 열리는 시음회에서 ‘동춘차’를 한국의 차 대표차로 선보인다. 재단법인 세계도자기 엑스포와 IAC한국위원회가 공동 주관하는 IAC한국총회(IAC 2004 General Assembly) 개막행사에서 세계 각국 대표자를 대상으로하는 한국 차 시연은 이번이 처음. IAC한국총회 특별전은 ‘아시아의 숨겨진 유산’이라는 주제로 ‘한국의 도자'를 비롯해 한국의 전통문화예술’을 세계도자인들에게 알리는 행사다. 박동춘 소장은 “맑고 시원한 기운을 가진 한국 차의 우수성을 세계인들에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엄선된 차를 선택한
오늘날 사찰 법회에서 재가불자가 직접 법당에 차를 올리는 모습은 자연스러운 풍경이다. 그러나 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차공양은 스님이 올리는 ‘정수’로 대신했고 불자들은 뒤에 앉아 그저 지켜보는게 일반적이었다. 통도사 선다회(회장 류용숙)는 사원다례를 정착시키고 불자들의 참여를 확대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차회다. 통도사 선다회 회원들이 통도사 부조전에서 부도헌다의식을 봉행하고 있다. 한국다인연합회 최순애 부회장 등 부산 여란다회 출신 20여명은 1989년 통도사 강주 원산 스님, 중강 범해 스님을 지도법사로 모시고 선다회를 창립했다. 선다회는 전통고증을 거쳐 사원다례를 정립하고 수행을 위한 ‘선다’를 넘어서 포교를 위한 ‘행다’를 추구하는 양산의 대표적인 차회로 유명하다.
한 납자가 운문 스님에게 물었다. “화엄경에서 말한 진진삼매는 어떤 것입니까?” 운문 스님이 단숨에 답했다. “바리때 속의 밥, 밥통 속의 물이지.” 『화엄경』에 아주 멋진 말이 있다. ‘하나의 작은 먼지가 시방세계를 머금고 있다.’(一微塵中含十方) 즉 한 티글 속에 우주가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우주만 생각한다. 큰 것, 최고 멋지고 아름다운 것, 큰 집, 큰 차, 세계 최고의 건물 등등. 집착에서 나온 소산물일뿐이다. 이 집착만 버리면 작은 것의 소중함과 무소유의 진면목을 느낄 수 있는대도 말이다. 들에 핀 이름없는 꽃이나 강가에 구르는 돌은 진정 아무 쓸모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가! 집착을 버리면 우주를 헤매지 않고도 한 먼지 속에서, 가장 가까운 자신의 몸에서도 우주를 볼수 있다. 진진삼매라
Q. 수행에는 반드시 공덕이 따른다는데, 염불의 공덕은 과연 무엇입니까? A. 물음의 밑변에는 자신의 능력으로 살고 있다는 의중이 짙게 깔려 있군요. 허나 과연 그렇기만 할까요? 우선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은 나만이 사는 터전이 아님을 명심해야 합니다. 좁게 보자면 집이고, 넓게 보면 마을이나 사회 그리고 국가나 세계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땅에서 나는 식량을 먹고삽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이 땅은 살아 있는 모든 생명들의 공동 밥그릇입니다. 동시에 세상과의 인연이 다할 때 삶을 마감하는 공동묘지와 같은 곳이기도 합니다. 이 땅은 모든 생명의 근거지이며 회향처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자기 삶을 영위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조건화된 내가 따로 있어서 혼자의 힘만으로 먹고살 수는 없습니다.
법을 물어왔을 때 임제 선사는 ‘할’을, 덕산 선사는 ‘방’을 내린 사실은 너무도 유명하다. 법거량 한 번 해보려 맞섰는데 느닷없이 ‘할’하며 소리를 지르니 근기 없는 납자들로서는 얼마나 당혹스러웠을까? 그런데 당나라 구지 화상은 누가 찾아와 물으면 ‘할’도 아니고 ‘방’도 아닌 손가락 한 개만을 세워 보였다. 손가락을 처음 내어 보인 선사는 대매법상의 법을 이은 천룡 스님이다. 구지 화상이 천룡 화상에게 법을 물었을 때 천룡 화상은 빙그레 웃으며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였고 이 때 구지 화상은 큰 깨달음을 얻었다. ‘티끌이 하나 일어나니 모든 대지를 거두어 들이고, 꽃 한 송이가 피니 온 세계가 열린다’는 이치를 알면 구지 화상의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혹, 꿈에서도
Q : 염불을 하면 다시는 윤회하지 않으리라는 증거를 제시할 수 있습니까? A : 부처님이 부처님이신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분의 참된 생명 내용인 부처님생명 그대로를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염불이란 자신의 참된 생명 내용인 부처님생명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부처님의 본래 자리를 정토라고 이르고, 그 세계를 극락세계라고 이름 합니다. 즉 부처님생명이 머무는 본가가 극락세계입니다. 부처님은 이 극락세계를 본가로 삼으시고, 몸소 사바세계에 오신 분입니다. 오직 중생을 제도하려는 단 하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렇다면 염불행자가 이 세상에 태어난 까닭도 명확합니다. 오직 중생제도를 위해서입니다. 길을 가다 보면 갖가지의 체인점이 눈에 띄는데, 그에 따른 체인본부가 있으리
보복 화상과 장경 화상이 산천을 유람할 때 보복 화상이 손가락으로 한 봉우리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저것이 바로 묘봉정(妙峰頂)일세.” 그러자 장경 화상은 이렇게 응수했다. “그건 그렇지만 참으로 애석하네.” 나중에 보복이 이 얘기를 경청 화상에게 들려주었다. 그랬더니 경청은 이렇게 말했다. “장경 화상이 아니었으면 온 들녘에 해골이 가득했을 것이다.” 장경(章敬, 754∼815) : 천주 출신. 속성은 사씨. 법명은 희휘. 마조도일의 문하에서 심요를 깨치고 그의 법을 이었다. 황제로부터 대각선사의 호를 받았다. 보복(保福, ?∼928) : 복주에서 출생. 속성은 진씨. 법명은 종전(從展)으로 설봉의존의 법을 이었다. 묘봉정(妙峰頂) : 『화엄경』 「입법계품」에 나오는 덕운 비구가 머
Q. 흔히 극락에 간다고 하는데, 과연 극락이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A. 부처님은 『아미타경(阿彌陀經)』에서 “여기서 서쪽으로 십만 억 국토(國土)를 지난 곳에 한 세계가 있으니 이름이 극락”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곳을 향하는 출발지점에 대한 지적입니다. 곧 ‘여기서’가 무엇을 뜻하는가가 극락에 이르는 관건임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말하자면 ‘여기’란, 일상적인 삶으로서의 존재감을 느끼는 상대적(相對的)인 세계를 가리킵니다. 나라는 고정된 실체가 있다는 확신을 근거로 해서, 사람이나 사물 또는 사건과 대립(對立)을 그치지 않습니다. 이렇게 언제 어느 곳에서나 자신을 중심에 두지만 잠시도 편안치 못합니다. 상대적인 나로부터 괴로움이 생겨나기에, 그나마 견디고 살려
마조 화상이 몸이 편치 못해 누워 있을 때 원주가 찾아와 물었다. “요사이 화상의 건강은 어떠하신지요?” 원주의 문안에 화상은 이렇게 대답했다. “일면불 월면불이지.” 마조(馬祖, 709~788) : 사천의 한주에서 태어남. 속성은 마씨, 법명은 도일(道一)이다. 자주처적에게 출가한 후 남악회양의 제자로 그를 만나 크게 깨치고 그의 법을 이었다. ‘평상심이 곧 도(平常心是道)’ ‘마음이 곧 부처(卽心是佛)’를 표방했으며, 문하에 백장회해(百丈懷海), 서당지장(西堂智藏), 남전보원(南泉普願) 스님 등이 있다. 일면불(一面佛) : 『불명경(佛名經)』에 나오는 수명이 8100세에 이른다는 부처님. 월면불(月面佛) : 『불명경』에 나오는 수명이 하루 낮과 하루 밤에 불과한 부처님.
첫 염불위파사나 수행법 소개 ‘붓다’염송 호흡관찰이 기본골격 수행자 생생한 체험담 경이로워 1918년 태국에서 태어나 20세 비구가 되어 경율론을 공부했지만 5년 뒤 부친이 별세하자 삶의 무상함을 절감한 후 두타행의 길로 들어 선 프라 아찬 차. 수년간 맹수들이 들끓는 정글 속에서 목숨 건 용맹정진 끝에 마침내 지혜와 법력을 체득한 스님은 1954년 고향으로 돌아와 근처의 숲속에 정착했다. 이후 스님의 가르침을 받으려는 수행자들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그 결과 사원이 형성돼 대가람으로 번창했다. 단도직입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스님의 수행법은 서구서도 큰 호응을 얻어 많은 서구인들이 배출됐으며 스님이 주석했던 숲속사원 ‘왓 빠따 뿅’ 분원만해도 태국 전역과 서구에 50여 개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깨달음은 정확한 현실인식과 그 해결법을 이룬 상태이다. 즉, 괴로움을 완전히 이해하고, 그 원인을 제거하는 길을 따라서 괴로움의 소멸을 직접 체험한 내적인 사건이다. 깨달음은 따라서 흔들림 없는 마음의 자유(不動心解脫)라고도 한다. 깨달음을 이루면, 탐욕, 성냄, 어리석음(貪瞋痴)이라는 번뇌의 뿌리가 완전히 사라진다. 아찬 문의 스승 아찬 사오 이 경지에 도달한 이가 아라한이다. 부처님이 지니신 9가지 덕목 가운데 하나가 아라한이며, 부처님의 제자들도 아라한이 되는 것을 최상의 목적으로 수행한다. 고타마 부처님 당시 수많은 제자들이 법을 듣고 수행을 해서 탐진치가 완전히 소멸한 깨달음에 도달하였다. 이러한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아찬 문은 불굴의 수행을 통해서
아케미니안 양식의 아쇼카 석주 일품… 비구니 승원터 발견 돼 대림중각정사 구석진 곳에서 발굴된 비구니 승원터. 발굴이 한창이다. 카필라바스투를 벗어난 붓다는 어떤 이를 첫 스승으로 삼을까 고민했다. 수많은 수행자와 철학가들이 저마다 논리와 사유체계를 가지고 세상을 논하고 있었기에 올바른 스승을 선택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붓다는 오랜 생각 끝에 당시 번다한 철학 논쟁에 끼어들지 않고 바이샬리의 한 숲 속에서 오로지 명상에 전념하며 은거하고 있는 알라라 칼라마와 웃다카 라마푸트라 선인을 찾아 배움을 청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무상과 고뇌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란한 이론이나 공허한 추론보다는 마음을 관찰하는 공부, 즉 명상을 강조하는 스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것이 가장 적절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