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세가 된 쿠스마 데벤드라는 그가 건립한 아이야 케마 명상센터에서 노년을 보내고 있다. 1996년 비구니가 된 후 쿠스마 데벤드라는 스리랑카에서만 1000여명의 비구니들을 지도해왔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스리랑카의 불심이 깊은 젊은 여성들은 비구니가 되어 평생을 불교에 헌신하기를 소망하고 있다.하지만 불행하게도 이 비구니 제도는 아직도 스리랑카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불교계에서 터부시 되고 있다. 스리랑카 대통령에 의해 정치적으로는 승인됐지만 불교계 내에서는 아직도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쿠스마 데벤드라는 이
쿠스마 데벤드라(Kusma Devendra)는 스리랑카 출신으로 불자들에게 큰 존경을 받고 있던 안다웨라 데바시리 스님에게서 인도 북부 바라나시 근처 사르낫에서 2년간 집중적인 지도와 가르침을 받아 비구니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1996년 인도에서 열린 수계식에서 부처님과 함께하며 불자들을 앞장서 도울 것을 다짐했다. 수계식이 열리기 3개월 전 한국 강화도에 있는 보문사를 찾았던 그는 보문사 주지스님 지도로 삶의 행동 규범을 다루고 있는 비나야 피타카 즉, 율장을 공부했었다. 보문사에서 한국 불교를 접한 쿠스마는 한국 불교 절차들이
디파마는 얼마 후 기다리던 남자아이를 출산했지만, 아이는 세상 빛을 본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숨을 거뒀다. 두 번이나 아기를 잃은 디파마는 슬픔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자신의 소중한 딸 디파에게 울고 있는 엄마 모습은 좋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에 사원으로 들어가 명상을 배우고 그의 상처 받은 마음을 달래겠다고 남편을 설득했다. 하지만 남편은 허락하지 않았고 디파마는 다시 극한 우울증과 더불어 심장병과 고혈압 증세로 눕게 된다.남편은 이런 아내를 가엾이 여기며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면서도 딸을 돌보고 또 밖에 나가 엔지니어로 일
나니 바라 바루아는 1911년 3월25일 미얀마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인도 뱅갈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치타공 지역은 다양한 인종과 여러 종교들이 섞여있는 곳이었다. 힌두교, 무슬림, 불교 신자 모두가 갈등과 분쟁 없이 살아가는 평화로운 지역이었다. 치타공 지역의 불교 신자들은 부처님이 인도에 머물렀던 시대부터 그곳에 뿌리 내리고 살아온 사람들의 후손이다. 바루아 집안도 인도 최초 불교 가문 중 하나로 깊은 불심을 가진 가문이었다.여섯 형제 중 장녀였던 그는 불교에 입각한 교육을 강조했던 부모님 때문에 아주 어릴 때부
직업을 바꾼 잠양 다그모 쿠쇼는 놀라운 재능과 능력으로 하루하루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14대 달라이라마 강연이 열리던 날, 강연을 여는 초청강사로 초대받았다. 그는 수준 높은 강연을 펼쳐 불교 교육자로서 명성이 날로 높아져 갔다. 학문적인 내용이나 지식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인생 문제나 개인적 고민으로 찾아와도 그는 그들 상황에 맞는 부처님 말씀을 제시했고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나갔다. 강연으로 바쁜 중에도 캘리포니아주 산가브리엘과 산타바바라, 애리조나주의 플래그스태프, 하와이의 코나, 멕시코 멕시코시티에 ‘
잠양 다그모라 사키아(Jamyang Dagmola Sakya)는 티베트 동부 캄(Kham) 지역에서 태어났다. 가족들 대부분이 명망 높은 의사나 지위 높은 라마승인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부족할 것 하나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불교를 바탕으로 질 높은 교육도 받았다. 당시 티베트에서의 교육은 스님이 되려는 사람들을 우선으로 이뤄졌다. 일반 어린아이에게 기본교육을 제외한 체계적 불교 철학 공부 기회가 주어진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그는 20세기에 가장 존경받는 사키아 마스터 중 한 명인 데즈훙 린포체 3세의 조
20세기에 들어 모든 분야에서 여성의 역할이 확대되며 위상도 격상됐고, 불교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패트리시아 젠은 1970년대 인도에서 오랜 기간 공부를 마치고 어떻게 해야 불교계 내에서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하도록 할 수 있을 지 자신의 역할에 대해 고민했다.그녀는 먼저 불교에 입문하려는 여성이나 비구니들을 돕기로 했다. 그 당시 티베트 불교의 여성 라마승 대부분이 글을 몰라 달라이라마 가르침을 제대로 공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녀가 먼저 시작한 일은 11명의 비구니들에게 3개월 간 글을 가르치는 것이었다. ‘부처님의 딸
미국에 있는 유명 해변 말리부 비치에서 파도를 타던 서퍼가 어떻게 모두에게 존경받는 스님이 됐을까? 캘리포니아에서 중학교를 중퇴하고 하와이 호놀룰루와 일본 요코하마를 돌아다니며 서핑을 즐기다 불교에 귀의해 한평생을 바친 패트리시아 젠(Patricia Zenn) 이야기이다.패트리시아 젠은 1944년 미국에서 태어났다.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이름 때문에 놀림을 많이 받았다. 그의 성은 ‘젠’이었고 친구들은 그를 선(Zen)불교 신자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는 선불교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다. 선불교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만나는 사람마다 그렇게
2006년 10월18일, 뉴욕 유엔 본사에서는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는 여성 불교인을 시상하는 행사가 열렸다. 주인공은 대만 출신 이파 스님. 유엔은 이파 스님이 비구니로써 불교계에서 오랜 기간 동안 훌륭한 모범을 보이며 종교와 종파를 초월해 좋은 세상을 만들자는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점을 주목해 왔다. 이점을 높이 사서 훈장을 수여하기로 한 것이다. 이파 스님은 그가 창시한 ‘인도주의적으로 살아가기’ 프로그램으로 특히 많은 이들로부터 칭송을 받았다.이 프로그램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불교에 관심 갖는 젊은이들이 쉽게 불교
1998년, 일본 교토와 나라 출신 비구니스님들이 미국 뉴욕시 세인트 폴 성당에서 세계 최초 선불교 여성 마스터였던 무가이 뇨다이(Mugai Nyodai)(1223~1298)가 세상을 떠난 지 700주년이 된 것을 추도하는 특별한 의식을 진행했다. 남성우월주의가 팽배한 선불교계 시각 전환을 위해 마련된 무가이 뇨다이 추도식은 선불교뿐 아니라 지역과 종파, 불교계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그녀는 순탄한 결혼 생활을 해나가며 종종 중국 출신 유 쉬에 쯔 유안 스님이 이끄는 사원을 방문했다. 당시는 여성의 사원 방문이 허용되지 않았지만 스
찬드라 코노키웅(Chandra Konnoky ong)은 1909년 태국 나콘빠톰주에서 농사 짓던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그는 학교에서 교육 받는 대신 농사일과 가사를 도우며 대부분의 어린 시절을 보냈다.자신에게 모진 말도 거침없이 했던 아버지가 12세에 세상을 떠난 후 우울증에 빠졌던 그는 몇 년 후, 톤부리 지역에 명상 교육자가 방문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찬드라는 명상을 배우고 다른 이들과 영적 교류를 갖기 위해 방콕으로 떠난다. 돈 한 푼 없이 방콕에 도착한 찬드라는 이모집에 짐을 풀고 생계를 위해 이웃집 가정부 생활을 시작
1978년, 조코 벡은 매주미 로시 스님의 세 번째 제자가 되며 삭발을 거행했다. 삭발식이 끝나자 그 순간을 함께 하기 위해 모인 그의 친구들은 새로운 길을 선택한 그를 축하했다.그 누구보다도 깊은 지적 호기심을 지녔던 조코 벡은 불교의 기본 철학과 율법뿐 아니라 불교의 전통과 역사, 서로 다른 종파들, 또 불교와 관련된 학문을 공부해 나갔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관심이 많았던 심리학을 차근차근 공부해 나가며 기본 심리학과 불교 심리학의 연관성을 진지하게 연구했다.1983년 가을, 조코 벡은 샌디에이고에 마련된 선불교 센터 주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