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니라마 셰랍상모는 여러 방면으로 뛰어난 여성이었다. 창양 기얌쵸 스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불교에 귀의한 그는 불교만을 위해 일생을 살았다. 그는 교육에 있어서 그 누구보다도 엄격하고 철저했다. 제자들이 부처님 말씀과 불교 기본 철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며 새로운 교육 방법들을 만들어 갔다. 제자 비구니들과 교육장을 벗어나 사적으로 대화할 때는 마치 어머니 같았다. 따스한 모성애로 그들을 다독이고 감싸 안았다. 힘든 상황이 벌어지거나 예상치 못한 일들이 발행할 때면 놀랄만한 지혜와 아이디어로 융통성 있게 상황을 헤
티베트 동부에 있는 낭첸(Nangchen) 고산지대는 사람의 발길이 잘 닫지 않는 오지 중의 오지이다. 하지만 이 작은 오지 마을이 유명해진 것은 이곳 낭첸에 티베트의 가장 크고 명성 높은 비구니사원이 설립됐기 때문이다. ‘겝착(Gebchak)사원’이라고 불리는 이 사원에는 700여명의 비구니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특히 여성 불자들에게는 명상 센터로도 유명하다.세상 떠나기 직전까지 명상겝착 사원 최장기간 머물며비구니에 조화로운 삶 강조불교에서는 남성과 여성 모두 똑같이 궁극적인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공통적인 목표를 가지고 수행에 전념
예술가이자 사업가인 오스카 프리드굿(Oscar Freedgood)을 만나 결혼을 한 모린 스튜어트 로시는 안정적인 가정을 꾸려 나갔다. 그리고 남편과 함께 콘서트를 열며 음악가로서도 성공적인 삶을 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봄날, 맨해튼에 위치한 학교에 세 아이를 등교시키고 웨스트 엔드 에비뉴(West End Avenue)를 따라 천천히 산책을 즐기며 걸어 내려오던 그는 ‘선불교연구협회(Zen Study Society)’라는 간판이 걸려있는 건물과 우연히 마주쳤다. 순간 이것이 그토록 오랫동안 찾아온 불교수행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열네 명의 여성들이 한방에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작은 방석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여성들은 모두 눈을 감고 평화로운 미소를 띠고 있었다. 여성들 사이에 모린 스튜어트 로시(Morin Stuart Roshi)라는 여성이 있었다.파리서 불교서적 접하고 매료이론만큼이나 실천 중요 강조미국서 불교협회 회장도 역임모린 스튜어트는 일본 선불교 임제종에서 로시(Roshi)라는 직책을 얻고 미 대륙에서 최초로 선불교 교육에 앞장선 인물이다. 케임브리지대학 내 불교협회장을 역임했다. 1982년, 그의 스승이었던 센 나카가와(Soen Nakag
여배우를 그만두고 광고 회사를 차린 천샤오쉬는 창업 당시에는 그저 성공한 커리어 우먼이 되고자 하는 욕심만 가득했다. 하지만 친 쿵 스님과 자주 만나며 또 부처님 가르침을 매일 되뇌이며 영적인 삶과 직업 사이에서 건강한 균형을 잡아가기 시작했다.물질적 욕망 부질없음 강조하고중도사상 중요성 역설하면 전법남편도 다른 사원서 발심 출가42세 세연 마칠때까지 불법 홍포1980년대 중국의 거대한 경제 성장 물결과 여배우로서 널리 알려졌던 그녀의 명성 덕에 그녀가 세운 광고 회사는 어느덧 말 그대로 가장 잘 나가는 광고 회사 중 하나가 되었다
1980년대 중국 유명 고전 문학작품이었던 ‘홍루몽, 붉은 누각의 꿈’이 TV 드라마로 제작돼 방영됐다. 소설로도 이미 많은 인기를 얻어온 작품이 안방극장에서 방영되자 중국 영토 전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 작품 속 주인공은 ‘린 대유’라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높은 학력을 배경으로 지성미가 넘치는 매력적인 여성으로 그려졌다. 드라마 속 주인공을 맡은 여배우는 천샤오쉬(Chen Xiaoxu)다. 그녀는 당시 중국에서 가장 이상적인 여성으로 대우받았다. 홍루몽의 엄청난 성공과 인기 덕분에 그녀는 배우 인생에서 절정에 올랐다고
아야 케마는 1978년 호주 시드니 근처에 정통 남방불교를 교육하는 ‘왓 붓다 다르마 센터(Wat Buddha Dharma)’를 설립했다. 스리랑카 파라부두와 센터와 왓 붓다 다르마 센터 두 센터 모두에 많은 서양인 불자들이 참여하기 시작하며 그녀는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국적의 불자들과 교류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독일에서 온 불자들 몇 명을 만나게 된다. 어린 시절 도망치듯이 떠나면서 감춰왔던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독일인을 만나며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독일 출신 불자들의 격려를 받으며 그녀는 어린 시절 떠난 이후
아야 케마(Ayya Khema)는 상좌부불교의 긴 역사에 크나큰 업적을 남긴 여성으로 여겨진다. 1923년 독일 베를린의 평범한 유태인 부모 아래 태어난 아야 케마는 1960년 불교를 접하고 불자가 되기까지 그 누구보다도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호주 여행서 상좌부불교 인연불자들과 공동 모임 참여하며마음 속 어두운 그림자 사라져불교가 빈 마음 채울 대안 확신20세기 초 나치즘 운동이 독일 전역에 점점 확산되기 시작하자 유태인 출신이었던 그녀의 부모는 공포에 빠져 독일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지구의 가장 끝이라고 믿었던 중국으로
1980년 보름달이 뜬 1월의 어느 날, 미얀마 수도 양곤에 불자 수백명이 모여들었다. 경전을 외우고 행진을 하던 이들 사이에 30대로 보이는 서양 여성 한명이 자리했다. 치렁치렁했던 그녀의 머리카락이 한 올도 남김없이 밀어졌다. 삭발식이었다. 그녀는 그 자리에서 비구니계를 받았다. 흔치 않은 광경에 불자들은 그 비구니를 주목하기 시작했다.미얀마서 정식 비구니 된 후불교 속 남녀 차별 표면 올려“수행에는 다른 잣대가 없다”변화 이끄는 교육자로 활동그녀는 미얀마 불교계에서 크게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저 인도와 동남아시아 각국에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와중에도 데이드르 브럼필드는 불교와 전혀 접촉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쵸걈 트룽파 린포체(Chogyam Trungpa Rimpoche)가 쓴 글을 읽고 그녀의 인생은 다른 길로 접어들게 된다. ‘부인하고 부정하는 것에는 잘못된 게 하나도 없다’라는 글을 읽은 데이드르 브럼필드는 마침내 그녀가 오랫동안 고통받아 왔던 고민들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사실 그녀는 그런 일들을 겪으며 남편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을 원망하고 모든 상황에 대해 후회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다른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인 스스로 자신의 감정을 다스릴 수 있을 때 우리는 마음 내면의 평화를 찾을 수 있다.” -페마 초드론가톨릭 신자였던 부모 밑에서행복한 유년기·학창시절 보내남편의 일방적 이별 통보 받고마음 부서지고 인생 멈춘 느낌데이드르 브럼필드 브라운(Deirdre Bromfield Brown)씨는 1936년 7월14일 미국의 뉴욕에서 태어났다. 신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브라운씨는 태어난 지 세 달이 되던 날 뉴 져지 주 시골에 위치한 작은 농장으로 이사를 갔고 그 곳에서 즐겁고 평화로운 어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