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족오’ 상징한 금오산 정상 현월봉 중턱에 자리한 암자의상대사 해탈한 곳에 창건 ▲금오산 약사암. 현월봉 중턱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멀리 금오지와 구미 시가지가 아련하다. 가을은 거스를 수 없는 감동이었다. 기암괴석 곳곳에서도 단풍이 피었다. 구미 금오산 초입에 들어선 의상(625~702)은 감탄했다. 울긋불긋한 나뭇잎이 산을 장엄해서다. 이를 악물고 손을 꽉 쥐었다. 단단한 바위틈에서도 나무는 태양빛을 잎에 물들이고 겨울과 이듬해 봄을 준비 중이었다. 의상은 서원했다. ‘이곳에서 자유자재한 불성을 확연히 꿰뚫어보리라.’ ‘세속에 찌들어 불성으로 향하는 길을 단단히 막아선 벽을 뚫고 연꽃을 피우리라.
생명체 특성은 뜨겁고 차가움개인 인생사에 적용해도 무방 젊어서는 누구나 뜨거운 삶조용히 늙는것도 아름다움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간만에 대구 처형 댁이 왔다. 온 김에 감주 처이모 댁에 들러 보잔다. 골짜기를 몇 개나 돌아 자동차가 지나는 길 끝자락, 하늘만 빠꼼한 그 동네 어귀에 사시사철 몸빼를 걸치는 처이모님이 한결같은 웃음으로 서계셨다. “어여들 와.” 아들네들이 꼭꼭 채운 냉장고를 훌훌 털어 거하게 점심을 먹고 커피까지 한잔씩 마셨는데도 이모님은 뭘 더 먹여야 성에 차실 눈치다. “아이 야들아, 여 술상 좀 봐 와라. 사우들 왔는데 한 잔썩 해야지.” 대낮의 술판
▲티베트의 유목사회는 일부일처(一夫一妻) 보다는 상황에 따라 일부다처(一夫多妻)를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문명세계에서 생각하는 혼인의 잣대로는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한 이유는 우리들의 혼인관계는 사람에 대한 ‘집착’과 ‘소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반면 티베트의 유목사회는 소유 보다는 가혹한 자연환경에서 ‘생존’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티베트 전통사회에서 귀족집단들은 가문의 번영과 지속을 위해 세 가지 영역에 집중하였다. 첫 번째는 자신이 속한 가문에서 대외적으로 관료를 양성하는 것이었다. 근대 티베트사회의 최대 정치기구라 할 수 있는 갈하(噶廈 bkav-shag)에 대다수의 대신(大臣)들이 귀족
옥천암은약수 나오는 곳에 마애불외국인 눈에도 진귀한 풍경이교도 만행으로 우여곡절 냇가에 하얀 부처가 있다.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이다. 서울 서대문구 홍은2동, 발 아래로 홍제천이 흐른다. 부처님 얼굴은 온화하고 근엄하며 자태는 우아하다. 5미터 높이의 부처님을 누가 언제 조성했는지는 알 수 없다. 고려 말 누군가의 간절한 바람이 바위를 쪼았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울 때 이곳에서 기도를 올렸고, 대원군의 부인이자 고종의 어머니인 민씨(閔氏)가 고종의 복을 비는 치성을 드리며 불상에 분을 바르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기록이 아닌 구전이다. 하얀 마애불을 모시고 있는
‘이웃, 눈물 흘리게 말라’오현스님 일언각인 실천 낙산사 복원불사 여념불구화재민 160가구 먼저 챙겨 ▲정념 스님은 ‘네 이웃의 눈에서 눈물 나게 하지 말라’는 신흥사 조실 오현 스님의 일언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 ‘촛불 하나가 다른 촛불에게 불을 옮겨 준다고 그 불빛이 사그라지는 건 아니다./ 벌들이 꽃에 앉아 꿀을 따간다고 그 꽃이 시들어 가는 건 아니다.’ 흥천사를 오르는 길 내내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아마도 그동안 흥천사가 가졌던 내력 때문일 것이다. 복마전(伏魔殿) 흥천사. 숭유억불의 조선시대에도 왕실 보호를 받았던 유서 깊은 산사 흥천사는 1962년 조계종 통합종단 출범 이후
처처가 도량임을 제대로 알아주어진 상황 맞춰 최선 다해야 아만을 뿌리까지 뽑지 못하면 만물 평등한 자리 깨닫지 못해 ▲일러스트레이터=이승윤 광주 번듯한 아파트에 살던 학우형님네가 나주에 촌집을 마련했단다.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픈 법인데, 이건 배앓이 정도로 그칠 일이 아니다. 만사를 제쳐두고 기어코 전라도까지 길을 나섰다. 학우형님, 널찍한 테라스에 거창한 벽난로가 있는 전원주택은 싫단다. 뒷마당 대밭을 매일 들여다보게 쪽문이나 내고, 살던 이들의 냄새 지우기 싫어 비스듬히 기운 흙벽조차 허물지 않을 생각이란다. 나주 곰탕에 밥을 두 그릇이나 말아 후루룩 비우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한동
반야산 관촉사는…울음 터뜨리며 태어난 바위38년 대역사로 미륵불 조성미간서 밝은 빛 뿜어 ‘관촉’황산벌 바라보며 중생 위로 ▲천년 세월 변함없이 한 자리를 지키고 계신 충남 논산 관촉사의 은진미륵. 투박하지만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의 미륵부처님은 백제와 신라의 처철했던 전투가 벌어졌던 황산벌이 내려 보이는 언덕에서 오늘도 수많은 중생들의 소원을 묵묵히 굽어보고 계신다. 여인이 봄날 반야산에서 고사리를 꺾고 있었다. 갑자기 갓난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울음소리를 나는 곳을 찾아가니 아기는 보이지 않고 큰 바위가 막 땅에서 솟아올랐다. 바위가 태어나며 울고 있었던 것이다. 여인이 기이한 광경을 마을에 내
▲총무부장 지현 스님은 8월30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주지 시몽 스님 민형사상 고발조치 등의 백양사 정상화를 위한 총무원의 결정을 발표했다. 조계종 총무원이 백양사 주지 시몽 스님과 주요 소임자들에 대해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민형사상 고발조치할 것을 결정했다. 또 백양사 거래 은행에 대해서는 지급정지 등을 요청할 방침이다. 총무부장 지현 스님은 8월30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의 백양사 정상화를 위한 총무원의 결정을 발표했다. 스님은 “백양사는 5대 총림 중 하나로 조계종 18교구를 관할하는 교구본사의 위상을 지니는 사찰”이라며 “이는 단순히
① 스님 향한 불신·맹목 이중성② 불목하니 전락 ‘재가종무원’③ 사찰운영 아웃사이더 ‘신도’④ 비판 기능 퇴색 ‘재가단체’⑤ 멀어진 지계 흔들리는 정체성⑥ 전문가 대담 본지는 한국불교 재가불자들의 역할과 과제를 모색하기 위한 ‘불교개혁의 키워드 재가불자’ 특별기획을 마무리하면서 전문가 대담을 진행했다. 8월21일 본지 지대방에서 김형규 편집부장의 사회로 진행된 대담에는 조계종 교육원 교육부장 법인 스님과 손석춘 건국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이영철 콘텐츠개발원장이 참여했다. 편집자 ▲조계종 교육원 교육부장 법인 스님과 손석춘 건국대 교수, 이영철 콘텐츠개발원장이 8월21일 본지 지대방에서
① 스님 향한 불신·맹목 이중성② 불목하니 전락 ‘재가종무원’③ 사찰운영 아웃사이더 ‘신도’④ 비판 기능 퇴색 ‘재가단체’⑤ 멀어진 지계 흔들리는 정체성⑥ 전문가 대담 삼귀의·오계 외면하고보시바라밀에도 인색 종교소속감 가장 낮고 불교관련 서적 안 읽어 생활서 계율실천해야참다운 재가불자 가능 ▲종교에 대한 소속감 한국의 불자는 1000만이 넘는다는 게 통설이다. 통계청이 2005년 발표한 인구주택총조사 결과에서도 전체 인구의 22.8%인 1072만6000명이 자신의 종교로 불교를 꼽았다. 불교계 행사에서는 “2000만 불자”라는 말도 종종 들을 수 있다. 그러면 불자란 어떤 사람을 지칭하는 말일까. 어머니나
▲비봉산 자락이 품고 있는 포란사에는 번듯한 법당도 유려한 전각도 없다. 화재로 전소된 대웅전 자리엔 온갖 야생초들이 무성히 자라고 있지만 그 속에서 정법도량 복원의 원력도 함께 자라고 있다. 충남 청양 포란사는 비봉산 자락에 앉아 있다. 늘씬한 소나무들이 열 지어 서있는 오르막길을 오르면 작은 평지가 나타난다. 하지만 경내에 들어서도 도무지 사찰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아담한 기와집 앞에 ‘큰 법당’이라고 써 붙였다. 보고 있으면 안쓰럽다. 비봉산 포란사는 원래 천태산 약수암 절집을 그대로 옮겨왔다. 약수암 일대가 광산으로 개발되자 비봉면 주민들이 부처님을 ‘알을 품는 곳’으로 모셔왔다. 주민들의 힘을 모
아이들에겐 호흡 명상법배울 수 있는 능력 충분틱낫한 스님의 마음챙김응용한 ‘껴안기 명상’도숫자 세는 것 만큼 쉬워 ▲수미런던의 네 살배기 아들 선재가 차 안에서 안정된 자세로 명상을 하고 있다. 내가 일곱 살 적에 아버지는 남동생과 나를 여름 요가캠프에 등록시켰다. 하루는 강사가 야외 풀밭으로 우리 반 학생들을 데리고 나갔다. 원을 그리며 둘러앉게 한 뒤 각자에게 땅콩을 하나씩 주었다. 그는 “매우 천천히 씹어요”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입 속에서 땅콩버터를 만들 수 있는지 알아보세요.” 5분 후에도 다른 여러 감각들 중에서, 특히 씹히는 느낌의 변화와 여러 종류의 맛, 건조한 상태, 기름성분, 용해상태 그리고, 혀의 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