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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흥사터 학술 발굴조사 착수해야 한다

기자명 법보
  • 사설
  • 입력 2022.04.22 21:09
  • 수정 2022.04.22 21:20
  • 호수 1630
  • 댓글 0

기와 발견…최소 조선 후기의 ‘절터’
주변 사지 감안 신라·고려까지 가능
“사지는 문화유산의 보고” 인식 절실

북악산 법흥사터 연화문 초석을 깔고 앉아 인증사진을 찍는 탐방객이 급증했다고 한다. 종교 성역에 대한 작은 배려심만 가져도 이러한 행동은 서슴지 않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절터의 훼손을 우려한 문화재청이 법흥사터 출입을 통제했다고 한다. 

법흥사터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속출하고 있다. 문화재청이 세운 안내판에는 ‘이곳은 신라 진평왕 때 나옹 스님이 창건한 법흥사라고 전해지던 곳으로, 조선 세조가 호랑이를 사냥한 연굴사 터로도 추정된다. 또 절터 주변에서 15세기 상감분청사기 조각들이 발견돼 조선 전기부터 건물이 있었음을 추정하고 있다’고 적혀 있다. 법흥사에 대한 문헌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고, 현재 사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유물 또한 한정적이므로 정확한 연혁을 알 수는 없으니 문화재청도 추론만 가능한 상황이다. 

연화문 초석과 관련해 불교문화재연구소 유적연구팀은 “일제강점기 이후 사찰 복원을 위해 옮겨온 초석일 것”이라고 보았다. 조선 후기의 것으로 보이는 기와도 발견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일단 사지의 역사를 조선 후기로 올리는 데는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최병헌 서울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절터 위치로만 봤을 땐, 신라나 고려시대부터 사찰이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고 보았다. 신라·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추론인데 법흥사터 인근에 통일신라 직전 세워진 장의사(藏義寺)가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면 설득력 있다. 법흥사터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학술 발굴조사를 통해서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학술적으로 조사된 폐사지만도 5700여곳이라고 한다. 조선 후기 창건되어 근대에 접어들기 전에 폐사된 사찰이 있고, 신라·고려 시대에 창건되어 6·25 한국전쟁 때까지 유지됐던 사찰도 있다. 이 중 국가지정 40개소(사적), 지방지정 84개소(기념물) 총 124개소가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로 지정됐다. 불교문화재연구소는 지난 11년간 전국의 폐사지에서 4만5000여점의 불교문화유산을 확인했다. 최근 불교문화재연구소장 제정 스님이 천명했듯이 “폐사지는 버려진 절터가 아니라 문화유산의 보고(寶庫)”인 것이다. 

이 보고는 우리나라 역사·문화사를 올곧이 써내려가게 한 원동력이기도 하다. 땅에 묻혔던 과거의 흔적이 당시의 사회상과 문화의 정수를 전해주기 때문이다. 6층으로 남아 있던 미륵사지 서탑이 원래 9층 탑임을 알아낸 건 학술 발굴조사를 통해서였다. 여기서 선화공주의 발원이 아닌 좌평 사택덕적의 딸인 왕후에 의한 발원에 따라 건립됐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백제 문화의 우수성을 한눈에 보여주는 백제금동대향로 역시 사지 발굴을 통해 세상의 빛을 보았다. 불교와 도교를 혼합한 창의성과 금속을 다룬 기교성이 워낙 뛰어나 백제 최고의 금속공예 걸작품으로 손꼽히는 이 향로는 절터 서쪽 지역에서 발견됐다.

물론 삼국시대·고려·조선을 대표할 만한 국보·보물급의 문화유산이 법흥사터에 매장돼 있다고 단정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현재 비지정 문화유산만 눈에 보인다고 해서 법흥사터의 가치가 없을 것이라 단정해서는 더더욱 안 된다는 얘기다. 문화재 사지 대부분 학술 발굴조사를 통해 지정됐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더욱이 청와대 측의 바람대로 북악산 일대를 문화유산으로 가꿔가려면 사지 발굴조사는 더욱 면밀하게 이뤄져야 한다. 

2006년 청와대 경호처와 두 차례 북악산 문화유산 조사에 나섰던 문명대 동국대 미술사학과 명예교수는 “북악산에는 절터가 한두 군데가 아니”라며 “골짜기를 올라가면서 계속 절터다. 어림잡아도 5~6군데”라고 전했다. 당시 조사 때만 해도 일제강점기 유물들이 다수였다고 하니 본격적인 조사가 이뤄지면 어떤 유물들이 쏟아져 나올지 그 누구도 쉽게 예측할 수 없다.

조계종 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이자 문화재청 동산문화재위원인 덕문 스님은 “대구 비슬산 중턱의 대견사지의 경우 폐사지가 된 곳을 지자체에서 관광 활성화 차원에서 복원했지만, 법흥사는 정치적 이유로 불사가 무산됐기에 발굴조사와 복원에도 국가 차원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리 있다. 학술 발굴조사가 이른 시일 안에 착수할 수 있도록 현 정부와 문화재청의 적극적인 행보를 기대한다.

[1630호 / 2022년 4월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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