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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남불’ 머물 곳이 청와대여야 하는 이유

기자명 법보
  • 사설
  • 입력 2022.05.27 21:44
  • 수정 2022.05.28 15:52
  • 호수 1634
  • 댓글 6

이거사지, 사유지이자 발굴조사 답보
보존정책 전무 상황서 이운은 ‘방치’
인파 향한 ‘상생 법설’ 끊을 이유 없어
서울 시민에 통일신라 보물 향유 배려

청와대 미남불. [문화재청]
청와대 미남불. [문화재청]

‘청와대 미남불’ 경주 이전 논란이 2017년에 이어 또다시 불거졌다. 문화재제자리찾기를 중심으로 한 경주 지역 단체들은 “하루빨리 고향인 경주로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조계종은 “보존 정책·환경 마련이 우선”이라며 신중론을 펴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경주로 가기엔 아직 이르다.

2018년 확인된 사료 ‘신라사적고’를 통해 ‘청와대 미남불’이 본래 경주 이거사에 봉안돼 있었다는 사실은 확인됐다. 그러나 현재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사지가 이거사터인지는 증명되지 않았다. 더욱이 현재 이 사지는 사유지이다. 이에 따라 발굴조사도 답보 상태에 있어 학술 조사가 언제 마무리될지조차 예측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구체적인 사지 복원 계획이 서 있을 리 만무하다. 

경주 이거사터. 
경주 이거사터. 

‘미남불’ 관리 주체와 방안도 전무한 상황에서 사지에 불상만 갖다 놓는 건 얼토당토않다. 심각한 훼불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이다. 또한 완벽한 보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파손·변색 되어갈 게 분명하다. 작금의 상황에서 무작정 사지로 간다는 건 ‘문화재 제자리 찾기’가 아니라 ‘문화재 방치’에 가깝다. 국립경주박물관, 황룡사출토유물전시관으로의 이운도 대두되고 있지만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예경의 대상이 아닌 관람의 대상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환지본처(還至本處)’ 이유 하나만으로 이 모든 문제를 덮을 수는 없다.

부처님께서 입멸에 들자 불자들은 사리를 봉안한 탑이나 금강보좌, 보리수 등을 예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석가모니 부처님을 기억하기 위함이자 가르침을 새기려는 신앙심의 발로다. 그런데 왜 불상을 조성하지 않았을까? 정확히 말하면 할 수 없었다. 인간적 형상의 상에 신성함도 깃들어야 하는 부처님의 상호를 그 누구도 감히, 쉬이 그려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무불상(無佛像) 시대는 무려 500년을 지속한다. 

대승불교가 흥하는 기원 후 1세기 즈음 인도의 마투라 지방과 간다라 지방에서 불상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불모들의 끊임없는 노력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불상을 조성한 이유는 명확하다. 불법을 전파하기 위함이다. 그 법은 고구려·백제·신라 땅에도 전해졌다.

청와대 불상의 가장 유력한 봉안처인 경주 이거사터. 사진은 2015년 때 촬영본으로 2020년부터 절터를 발굴하고 있다. [불교문화재연구소]
청와대 불상의 가장 유력한 봉안처인 경주 이거사터. 사진은 2015년 때 촬영본으로 2020년부터 절터를 발굴하고 있다. [불교문화재연구소]

학계에 따르면 삼국시대 초기 불상은 희소하지만 ‘불상 황금시기’라 불리는 통일신라시대에 다수의 걸작이 탄생했다. 궁극의 깨달음 경지를 표현하려 했기에 근엄함 속 우아함이 특징적으로 나타나는데 경주 석굴암의 본존불이 대표적이다. ‘청와대 미남불’은 9세기 작품으로 추정하는 데 석굴암 본존불을 닮았다.

불상은 ‘깨달은 사람을 조형적으로 형상화한 상징물’이자 ‘조각이란 양식을 통해 불교의 진리를 표현한 성보’다. 한국 불상이라면 우리 민족의 생활양식과 면면히 이어온 우리의 순수한 신앙심까지 농축돼 있다. 성보 가운데에서도 불상이 유독 신성한 예경의 대상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청와대 개방으로 수많은 인파가 몰려오고 있다. ‘청와대 미남불’은 남녀노소, 불자, 비불자를 구분하지 않고 ‘심심미묘의 법문’을 설하고 있다. 탐욕에 집착하지 말라고, 서로 도우며 살아가라고,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귀중하다고 천둥보다 더 큰 울림으로 전하고 있다. 현대인들이 귀담아들어야 할 그 법설을 지금 당장 끊을 이유는 없다.

‘금강경’ 첫 머리에 ‘환지본처(還至本處)’가 나온다. 부처님께서 탁발을 마치시고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셨다는 대목인데 ‘장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잃어버린 참마음, 불성을 찾는 것이다. ‘부모미생전 본래면목’ 화두와도 맥이 닿는다. 그러고 보면 불상이 봉안되어야 할 ‘본래의 자리’는 가능한 많은 대중에게 법을 펼 수 있는 곳이며, 그곳이 바로 불상이 머물러야 할 여법한 환지본처의 자리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사람들이 몰려드는 지금의 서울 청와대 공간과 참배객 한 명 보기 어려운 경주의 절터를 감안하면 논쟁의 중심에 있는 여래좌상이 머물러야 할 곳은 시민의 문화공간으로 거듭난 청와대이다.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서울 시민에게 베푸는 것도 경주 시민의 배려일 수 있다. 불산(佛山)의 상징 ‘남산’을 품은 경주 아닌가!

[1634호 / 2022년 6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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