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를 답사한 문화재위원들이 “미남불 이전 논의는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최응천 문화재청장에 이어 문화재청 심의·자문기구인 문화재위원장들까지 청와대 미남불 이전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면서, 불상의 경주 이전은 원봉안처가 밝혀질 때까지 사실상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전영우 문화재위원장과 김영운 무형문화재위원장 등 분과위원장들이 6월17일 청와대를 공식 답사했다. 74년 만에 전면 개방된 청와대에 하루 평균 2만4000명의 관람객이 방문하면서 ‘제2의 창경궁’ ‘관광지 전락’ 등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어 분과위원장 12명이 영빈관부터 녹지원, 침류각, 오운정, 미남불, 본관을 둘러보면서 문화재를 점검하고 활용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문화재위원장들은 일명 ‘청와대 미남불’로 불리는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보물) 이전 논란에 대해 “원 봉안처가 명확하지 않은 시점에 이전 논의를 하는 것은 성급하다. 충분한 역사적, 문화적 점검이 우선돼야 한다”고 뜻을 모은 것으로 확인됐다.
청와대 미남불 보존과 관리·활용에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동산분과 문화재위원회의 박정혜 위원장(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은 6월20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일제강점기 자료인 ‘신라사적고’만으로 원봉안처를 이거사터라고 확정하는 건 위험하다. 미남불 이전 논의에 앞서 고증이 우선돼야 한다. 일제강점기 당시 총독부가 우리 문화재를 마구잡이로 옮기면서 벌어진 문화재 수난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미남불 이전에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청와대 미남불은 1912년 데라우치 마사타케 조선총독이 경주 고다이라 자택에서 본 뒤 이듬해 서울 남산 총독관저로 옮겨졌다. 원위치를 두고 그간 이거사터와 경주 남산을 주장하는 견해가 팽팽하게 맞서왔지만 2018년 일제강점기 자료인 ‘신라사적고’에 도지리(道只里) 이거사터 항목에 다이쇼 2년(1913) 중에 총독부로 불상을 이전했다는 항목이 있어 원봉안처가 이거사터라는 주장이 우세한 경향을 보여왔다. ‘신라사적고’(1913)는 경주 금관총 발굴에 관여했고 1933년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 초대 관장을 지낸 모로가 히사오가 다이쇼 5년(1916)에 자비 출판한 책으로 알려져 있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638호 / 2022년 6월2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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