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경주 기림사는 신라 때 창건한 사찰이라고 하나 현재 남아 있는 유물은 대부분 조선시대에 제작된 것이다. 아마도 임진왜란 때 대부분의 전각이 불타버렸고 그 후 여러 번의 중수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으로 보인다. 오래된 사찰의 연륜 만큼이나 단청의 색깔이 바래져 있어 유난히 고적하고 예스럽다. 기림사 대적광전에 안치된 소조비로자나삼존불상은 본존 비로자나불상의 복장에서 발견된 ‘불상중수점안기’와 ‘아미타여래중수개금발원문’에 의해 1564년과 1719년에 걸쳐 1차, 2차 중수가 있었으며 좌우 협시불이 약사불과 아
조계종의 소의경전인 ‘금강경’의 온전한 이름은 ‘능단금강반야바라밀다경(能斷金剛般若波羅密多經)’이며, 그 원전에 해당하는 범어로는 ‘와즈라체디까쁘라즈냐빠라미따쑤뜨람(vajracchedikāprajñāpāramitāsūtram)’이란 긴 이름을 갖고 있다. 한문 이름을 해석하자면 ‘금강석(金剛)도 끊어버릴(能斷) 수 있는 지혜(般若)로써 피안으로 건너가는 것(波羅密多)에 대해 설해놓은 경전(經)’이 된다. 이 가운데 ‘반야’와 ‘바라밀다’는 범어를 그대로 소리옮김한 것이다.굳이 범어로 된 경명을 해석하자면 ‘와즈라(vajra)도
우리는 진리(眞理 truth)라는 말을 쓴다. 자연과학도 종교도 진리를 추구한다. 거짓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없다. 심지어 사기꾼들도 사기술의 진리, 즉 사기에 숨겨진 법칙을 찾는다. 진리란 무엇일까? 사람들이 말하는 진리란 ‘절대적인’ 진리를 말한다. 예외 없이 성립하는 진리, 시공(時空)을 초월해서 성립하는 진리, 즉 특정한 시간과 특정한 공간과 특정한 환경에 관계없이 성립하는 진리이다. 그런데 어떤 진리가 시공에 관계없이 성립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항상 어디서나 성립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자연법칙조차 그러한지 증명
“제25칙 : 아미타부처님 대자비원력에 의지해 불생불멸의 즐거움을 누린다.”세간의 모든 것, 우리의 몸과 현재 머물고 있는 세계는 모두 중생의 생멸심에서 비롯한다. 중생이 함께 지은 업으로 감득한 세계와 자신이 지은 업으로 감득한 근신은 모두 이루어지고 무너짐이 있어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몸에는 생로병사가 있고 세계에는 곧 성주괴공이 있다. 사물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한다는 말이나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 슬픔이 생긴다는 말은 이를 가리킨다. 인지에서 이미 생멸이 있어 과지에서도 생멸이 없을 수 없다. 서방극락세계는 아미타 부처
18세기 계몽주의 지식인들은 자연과 동물을 영혼 없는 자동 장치라 여겼다. 얼굴 빛 하나 변하지 않은 채 개를 마구 때렸으며 고통을 느끼는 듯 몸부림치는 생명에 동정심을 느끼는 이들을 비웃었다. 매 맞을 때 내는 비명소리는 마치 시계 속에 있는 작은 스프링의 소음일 뿐, 몸 전체는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여성과 흑인은 도덕적인 공동체 안에 포함되지 않았다. 흑인 노예를 회초리로 때려 고통을 주어도 불법이 아니었다. 공리주의자들은 동물들에게 사고할 능력이 있는가 또는 말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불교 수행의 기본에는 ‘자리이타(自利利他)’라는 보살행이 있다. 이는 나와 남이 모두 이익 되고 행복함을 누리는 수행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불교입문의 근원에 보리심이라고 하는 마음가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리고 불교에는 중도라는 사상이 있어서 어느 한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모두를 이해하고 포용해야 한다. 이러한 중도의 사상으로 자리이타를 실천하여 모두가 보살이 되어 함께 살아가는 것이 우리 불교가 추구하는 이상향에 가까운 모습이다.그러나 사회를 살아가다 보면 나와 다른 사상이나 성격 등에 의해서 누군가를 멀리하거나 차별하
초기 유가행파의 공성에 이해방식은 ‘반야경’의 공사상을 공무소득(空無所得)의 부정적인 설명방식이 아니라, 공성을 무분별지의 대상인 진여와 등치되는 개념으로서 긍정적인 실재(=vastu)로 치환시켜 설명하는 점에서 그 특징을 드러낸다. 이러한 공성의 이해방식은 용수를 비롯한 중관학파의 입장과는 교리적으로 다소 차이를 보인다. 이는 초기 유가행파의 독특한 실재관이나 진리관을 반영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공성의 이해방식을 둘러싼 초기 유가행파의 독특한 사상들은 ‘보살지’ 진실의품에 매우 다양한 형태로 제시된다. 주로 유식적인 공관이나
종교토론회가 있었다. 토론 주제는 ‘각 종교에서 말하는 선과 악’이었다. 나는 불교 측 입장에서 선악 문제를 다루고 타종교 견해가 불교와 어떻게 다른지를 밝히기 위해 참석했다. 각 종교마다 주제발표가 있고 다음으로 자유토론과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각자 자신의 종교입장에서 타종교의 주장을 비판 수용하는 가운데 민족종교 발표자가 갑자기 토론 주제와 벗어나는 주장을 했다.“각 종교의 형태는 달라도 그 뿌리는 같습니다. 결국은 하나의 근본을 말하는 것이고, 그 근본을 가르치는 방법이 다를 뿐입니다. 기독교의 하나님, 불교의 법, 유교의 도
저의 일상은 죽음과 매우 친근합니다. 신도나 가족, 이웃 등 인연들은 그물망처럼 이어져, 그들의 병고(病苦)와 죽음을 함께 합니다. 병문안을 시작으로 장례식장, 입관 등 항상 기도를 하게 됩니다. 가장 가까이 보기에, 죽음은 항상 제 옆에 붙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의 고통이 저를 아프게 합니다. 제 기도가 모자란 듯해서,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힘들 때도 있습니다.때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그만 듣고 싶어 도망가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죽음'이란 그림자가 짓눌러 숨을 쉬기 힘들면, 새벽빛이
주말이면 차를 몰고 성주 소성리로 간다. 2차에 걸쳐 사드(THAAD)가 들어간 길목에서 구도길을 열라며 원불교 출재가들이 24시간 지키는 진밭교 앞 평화교당에서 그들과 함께 한다. 2년 전인 2017년 3월18일, 수천 명의 전국사드반대행동 참가자들은 맨땅 위 찬바람 속에서 밤새 기도하는 그들에게 천막을 쳐주었다. 나도 그날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평화의 관을 씌워주기 위해, 저지하는 경찰을 온 몸으로 막으며 안간힘을 쓰는 그들 앞에서 울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이곳은 이제 평화의 상징이 되었다. 여전히 소성리의 하늘
며칠 전 어느 문중의 시제에서 참석자들에게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 사상자를 낸 사건이 있었다. 문중 재산에 대한 갈등이 원인이었다. 이는 극단의 문제이지만, 시제 철을 지내면서 어떻게 시제의 전통을 유지해 가야 할지 고민한 문중이 많을 것이다. 선대부터 대대로 이어오던 풍속을 잘 이어가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현실적 여건은 간단치 않다.그간 문중의 전통을 이어온 것은 시제와 족보 편찬이었다. 상강이 지나 입동이 가까워 오면 웬만한 집안에서는 정해진 날에 시제를 모신다. 4대조까지는 집안에서 기제사를 모시고 5대조부터는 묘소에
1983년 12월22일, 서울 조계사 담장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속초 신흥사 폭력사건으로 출범한 비상종단 총무원장 서운 스님 측이 총무원을 접수하기 위해 뚫은 구멍이었다. 서운 스님 측은 인수인계를 거부한 진경 총무원장 측이 버스를 동원해 조계사 출입문을 봉쇄하자, 쇠망치로 가로세로 1m 크기의 구멍을 뚫었다. 이 구멍을 통해 서운 스님 등은 조계사에 진입했고, 경찰과 법원 집달관을 앞세워 총무원 청사를 접수했다. 이로써 1983년 9월8일 종정 성철 스님으로부터 조계종 22대 총무원장에 임명된 서운 스님은 봉은사 총무원을 나와
55세부터 시작된 제주도 귀양살이는 63세가 되어서야 해배가 되어 드디어 뭍으로 올라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서울 장동 월성위궁은 이미 안동 김씨가 차지해 예산 향저에 몸을 추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여의치 않아 서울 한강 노량진 건너편 용산 쪽에 작은 거처를 마련하여 지냈습니다. 이 시기를 강상(江上)시절이라 부르는데 경제적으로 궁핍하여 제수음식조차 타인의 도움으로 마련하는 시절이었지만 왕성한 예술적 활동으로 추사하면 떠오르는 명작들이 이 시기에 쓰고 그려집니다. ‘잔서완석루(殘書頑石樓)’ ‘불이선란(不二禪蘭)’ 등이
月面吉祥觀世音(월면길상관세음)救難救苦大慈心(구난구고대자심)楊枝甘露隨緣灑(양지감로수연쇄)盡爾精誠致降臨(진이정성치강림)‘달 같은 얼굴 길하고 상서로운 관세음, 어려움과 고통에서 구해주시는 큰 자비심이여. 버들가지 감로수 인연 따라 뿌려 주시니 이 정성 다하오니 강림해주소서.’ 지운영(1852~1935)의 ‘백의관음상찬(白衣觀音像贊)’.1918년, 67세의 지운영은 같은 해 조선문예사 사장으로 재임한 민병석(閔丙奭, 1858~1940)에게 한 장의 그림을 그려주었다. 넘실거리는 물결 위에 커다란 분홍 연잎을 딛고 선 백의관음이다. 살짝
운주사 와불님을 뵙고돌아오는 길에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풍경을 달고 돌아왔다먼데서 바람 불어와풍경소리 들리면보고 싶은 내 마음이찾아간 줄 알아라…산사의 풍경소리, 바람소리, 시냇물소리, 목탁소리, 범종소리, 예불소리, 독경소리 등은 아무리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 향기로운 소리(香聲)이다. 특히나 풍경은 바람소리와 짝이 되어 밤낮으로 잠도 자지 않고 임을 기다리다가 바람이 먼저 기척을 하면 곧바로 쟁그랑쟁그랑 반가이 반응을 한다.11월 대학입시기도 하려 경내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풍경소리가 반가이 맞이한다. 법당에서 졸고 계신 부처님
“제 22칙 : 사바세계를 싫어하여 떠나고 극락세계를 좋아하여 구할지라.”‘아미타경’에서 말씀하시길 “여기에서 서쪽으로 십만 억 불국토를 지나가면 극락이라 이름하는 세계가 있고, 그 세계에는 명호가 아미타인 부처님께서 계시나니, 지금 그곳에서 안온히 주지하시면서 법을 설하시고 계시느니라”하셨고 또 말씀하시길 “저 국토를 어떤 인연으로 극락이라 하는가? 저 국토의 중생들은 어떠한 괴로움도 없고 오직 온갖 즐거움만 누리나니, 이러한 인연으로 극락이라 하느니라”고 하셨다.극락세계에는 일체 괴로움이 없고 온갖 즐거움만 누리는데 이는 극락세
전라남도 구례 화엄사 대웅전에는 비로자나불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노사나불상과 석가불상을 배치한 목조삼존불상이(보물 제1548호) 봉안되어 있다(사진). 이런 법신, 보신, 화신으로 구성된 삼존불 형식은 조선 후기 불화에서는 많이 볼 수 있으나 불상에서는 그 예가 드물다. 특히 보관을 쓰고 두 손을 양 어깨 위로 올려 손바닥을 벌리고 있는 노사나불상은 조선 후기의 삼존불상 중에서는 거의 유일한 예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일반적으로 조선 후기의 대형 삼존불상은 노사나불상 대신에 약사불상이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목조삼존불상의 복장에서 조
만년필이라.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이다. 만년필이란 말만 들어도 왠지 가슴이 설레며 아련한 추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요즘은 하도 필기구들이 많아 만년필이란 것을 구경조차 못한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가장 많이 쓰는 볼펜도 예전에는 쓸 때마다 찌꺼기가 묻어나와 옆에 따로 똥(?)닦는 종이를 두어야 했다. 이제 대부분의 글은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 종이가 아닌 기계 속에다 저장하는 시대가 되었다. 맘대로 썼다가 지우고 손가락 한번 까딱하면 복사해서 옮기기도 하니 이 얼마나 편리한 도구인가. 문명의 이기에 밀려 손으로 쓰
오래전에 발생한 인도의 고전의학체계인 아유베다는 자연세계의 질서뿐만 아니라 개인과 사회의 건강을 유지 발전시키는 의학으로서 지금도 널리 시행되고 있다. 이 아유베다에 따르면 우주만물은 ‘구나’라는 세 가지 속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모든 물질과 관계, 모든 행위는 세 가지 속성이 결합하여 나타나고 그중 하나의 속성이 지배적인 성질이 된다. 열매에 대한 욕망이 없는 순수하고 맑은 마음의 사트바, 열매에 대한 욕망을 품은 열정·율동·폭력을 대표하는 라자스, 열매가 없는 행위인 어리석음·게으름·죽음을 상징하는 타마스가 그것이다. 물론
북극성을 중심으로 일곱 개의 별이 국자 모양을 한 채 변함없이 한 자리에서 회전하는 북두칠성은 어느 한 민족이나 한 문화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래서 인도문화에도 중국문화에도, 심지어 중국문화권에 포함된 우리의 전통문화에도 제각기 고유한 칠성신앙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칠성신앙의 근원을 인도문화로 보는 까닭은 북두칠성에서 기인한 일곱이란 숫자가 문화전반에 폭넓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바로 인도문화이기 때문이다.인도문화에서 숫자 일곱은 ‘영원성(永遠性)’을 상징하는데, 그 연원이 북쪽 하늘에서 자리를 이탈하지 않고 영원히 회전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