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기·때 강조…Yes와 No 절묘한 사용합리적이면서 인간적인 면의 조화 추구 원효를 사랑한 민중들은 그의 이름을 신성시 했고 영원히 잊혀지지 않기를 원했다. 북한산 원효봉도 그래서 생긴 이름 중 하나다.원효가 ‘같다’라고 한 것은 ‘서로 다른 것’을 가마솥에 넣어서 부글부글 끓여 똑같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한 마디로 획일화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러면 만약 서로 다른 견해로 다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원효는 이 경우 상대방의 뜻에 맞춰서 예스(Yes)와 노(No)를 하는 ‘순불순설(順不順說)’을 얘기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렵습니다. 예스와 노를 동시에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노면서 예스라는 겁니다. 또 상대방 뜻과 다르게도 말하고 다르지 않게도 말하는 ‘비동
정토에 왕생하고 싶다는 생각은 참으로 많이 하지만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지장경에 등장하는 마야부인과 지장보살님이 나눈 대화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마야부인이 지장보살님께 “우리 중생이 짓는 업의 차별과 받는 응보는 어떠합니까?”하고 묻자 지장보살님은 “천만세계, 모든 국토에는 혹 지옥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혹 여인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혹 불법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성문이나 벽지불도 역시 그러합니다.” 했습니다. 타인 해친 행위가 훼불 ‘지옥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말은 사람에 따라 지옥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즐겁게 살면 지옥은 없습니다. ‘여인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말은 마야부인이 질문 했기에 이렇게 답했을 것입니다
240명의 선거인단을 선출하는 24개 교구종회의 선거인단 선출 기간은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이다. '총무원장 후보들의 자격에 대해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선거인단에 대한 심사 역시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도 함께 일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도공 스님)는 각 교구본사에 반드시 교구종회를 열어 선거인단을 선출할 것과 함께 예비 선거인단(2~3명)을 선출하도록 주문하고 있다. 선거인단에 대한 심사 과정에서 선거인단 중 선거권을 행사할 수 없는 부적격자가 나올 수 있는 데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직할교구 조계사 현고 스님, 탁연 스님(비구니), 현진 스님, 청학 스님, 각연 스님, 법안 스님, 환적 스님, 공운 스님, 용하 스님, 자성 스님 예비 인단 진용
불교의식-현대음악 어우러진 無碍 장 연출 10월8일 불국사에서 열린 영산대재. 10월9일 분황사에서 열린 원효예술제. 천년전 신라의 서라벌도 이와 같았을까? 10월 8일, 9일 33회 신라문화제 행사 일환으로 경주 불국사와 분황사에서 열린 영산대재와 전국불교음악제, 원효예술제는 장중한 불교 의식과 현대적 음악, 흥겨운 한마당이 어우러진 무애(無碍)의 장이었다. 특히 아스라이 어둠이 내린 가운데 범영루 앞에서 열린 전국불교음악제는 5000여명의 인파가 몰려드는 등 불국사의 아름다움과 하모니를 이뤄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했다. 신라문화제 불교 행사는 10월 8일 영산대재로 막을 올렸다. 무설전 앞에서 열린 대재는 석가모니불의 괘불탱이 걸린 가운데 진흥왕, 표훈대사, 김대성 재상
양 극단 긍정-부정 포함하는 논리 전개다른 것 똑같이 만드는 획일화는 反화쟁이번에는 『금강삼매경론』의 한 구절 살펴보고 원효의 화쟁론에 대해 계속 설명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서당화상비편 탁본. 이 비는 신라 애장왕(800~808) 때 원효의 후손인 설중업이 원효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했다.앞의 두 구는 속제를 녹여 진제로 만들어 평등의 뜻을 나타낸 것이요(前之二句 融俗爲眞 顯平等義)아래의 두 구는 진제를 녹여 속제로 만들어서 차별의 문을 나타낸다.(下之二句 融眞爲俗 顯差別門)이것을 총체적으로 말할 것 같으면 진실되다 속되다라고 말하는 것은 둘이 아니고 그렇다고 하나도 아니다. 그러므로 둘이 아니기 때문에 곧 그것은 일심이고 하나를 고수하지 않기 때문에 본체를 들어 둘로 삼아 이와 같이 이름해서
뜬 구름 흩어지니 만리 하늘은 파란 한 모습 마음 안 출렁이는 망상 가라앉혀 당처를 보라 須菩提 如來 悉知悉見 是諸衆生 得如是無量福德 “수보리여, 여래는 다 알고 다 보나니, 이런 모든 중생은 이와 같이 무량한 복덕을 얻느니라.” {冶父}種瓜得瓜 種果得果 오이를 심으면 오이를 얻고, 과일을 심으면 과일을 얻도다. 무량복덕을 얻는 중생은 인과법에 따라 세세생생 심어놓은 인연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뜻입니다. 一佛二佛千萬佛 各各眼橫兼鼻直 昔年 親種善根來 今日 依前得渠力 須菩提須菩提 着衣喫飯 尋常事 何須特地却生疑 한 부처님, 두 부처님, 천만 부처님이 각각 눈은 횡으로 되어 있고 코는 수직으로 되어 있다. 옛적부터 친히 선근을 심어왔으니 오늘날 앞을 의지해서 그런 힘을
화쟁은 단순한 이론이 아닌 실천의 문제당대에도 극찬…고려 때는 화쟁국사 시호 선덕여왕 3년(634)에 창건된 분황사 모전석탑(국보 제30호). 원효는 이곳 분황사에 오랫동안 머무르며 여러 저술을 펴냈다.이번에는 원효의 화쟁(和諍)사상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화쟁에 대한 이해는 참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화쟁은 서로 다치지 않고 화해롭게 지낸다는 것인데 이는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실천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원효의 화쟁사상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 관심을 가져왔지만 정작 원효의 화쟁을 규명해내는 일이 쉽지 않았던 것도, 또 어느 정도 규명해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맴돌고 있는듯 보이는 것도 화쟁이 언어의 문제가 실천의 문제이기 때문입
상생-상극의 상존 원리 밝히는게 화쟁의 핵심변증법 이성의 논리라면 화쟁은 자연의 법칙원효의 사상을 정확히 인식하기가 쉽지 않다. 필자의 짧은 공부에서 가장 어려운 철학자 중의 한 사람이 원효인 것 같다. 지나치게 그가 붕 띄워져 신비화된 측면이나, 또 대강 서술되어 엄밀한 법칙으로 그려진 그의 사유가 안타깝게 가려진 경우가 혹시 없는지 자문해 본다. 우리는 그를 흔히 화쟁의 사유인이라 부른다. 화쟁은 문자 그대로 불법의 다양한 관점상의 쟁점들을 모순적 대립으로 보고 서로 옳다고 다투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쟁점들을 상응하는 관계로서 보게 하는 이법의 발현이겠다. 화쟁의 이법은 상쟁하는 대립의 관계를 변증법적으로 지양하는 제삼의 인위적인 논리의 구성을 뜻하지 않는다. A와 A'(非A)가 논리적 모순대립의 관
원효는 세속에 살되 물들지 않았던 범행장자“작은 규율 어겨도 타인 위해선 적극 실천해야”계율의 굴레에서 자유로웠던 원효와 혜공의 전설이 깃든 포항 오어사 전경.이번에는 먼저 「보살영락본업경소」 서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이제중도(二諦中道)는 곧 건너갈 길이 없는 나루며,현묘하고 현묘한 법문(法門)은 더욱 들어갈 문이 없는 진리이다.갈만한 길이 없기 때문에 유심(有心)으로 행할 수 없고,들어갈 만한 문이 없기에 유행(有行)으로 들어갈 수 없다.그러나 대해에는 나루가 없지만 노를 저어 능히 건널 수가 있고,허공에는 사다리가 없지만 날개 치며 높이 나를 수 있다.이로써 알라.길이 없는 길은 곧 길 아님이 없고,문이 없는 문이 곧 문 아님이 없음을.문 아님이 없기에 일마다 현묘한 곳으로 들어가는 문이
성상현 법사는 욕조단경에서 혜능 스님을 국사로 모시려 하는 장면을 설명하며 “참선을 해야만 선정에 든다는 고정관념이 병을 일으킨다”고 강조했다. 사진=권오영 기자 오늘 이 자리는 법사들의 모임인 만큼 우리나라 불교의 현실적 문제점을 짚어보고자 합니다. 조계종에서는 수많은 포교사를 배출해 냈지만 이를 활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특히 출·재가의 구분이 엄격해 종단에서는 훌륭한 재가 법사가 있어도 그들을 활용하려하지 않습니다. 이렇다보니 우리 불교가 일반인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단순히 점을 치거나 미신을 쫓는 종교’ 정도로 인식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불교는 미신 쫓는 종교? 몇 해 전 다리를 다쳐 국립의료원에 입원을 했는데 몇몇 보살님들이 병문안을 왔어요. 보살님들이 “법사님, 괜찮으세
1. 『삼국유사』 ‘흥법편’에는 삼국에 불교가 전래되는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이에 관한 설명으로 틀린 것은? ① 고구려는 소수림왕 2년(372년)에 전진왕 부견이 승려 순도를 시켜 불상과 경문을 보냈다. ② 고구려는 소수림왕 2년 (372년)에 동진에서 승려 아도를 시켜 불상과 경문을 보냈다. ③ 백제는 제15대 침류왕때 서역에서 승려 마라난타가 동진에서 오니 그를 궁중에서 머물게 하고 예로써 공경하였다. ④ 신라는 제19대 눌지왕 시대에 사문 묵호자가 고구려에서 일선군(경북선산)에 왔다 사문 묵호자는 ‘사문 아도’화상과 동일인이다 2. 『삼국유사』 기록에 의하면 법흥왕과 진흥왕이 만년에 출가한 사찰로, 신라불교의 전래자 건설자, 완성자 등 10聖을 모셨던 사찰은? ① 표충사 ② 흥
한국불교사상 가장 자유로운 계율 해석계를 알기에 오히려 계를 넘나들 수 있어 서당화상비가 발견된 경주 고선사지. 지금은 수몰되어 3층탑만이 경주박물관에 옮겨져 남아있다.오늘 살펴볼 내용은 원효가 윤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윤리라는 것은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지켜야 할 도리에 관한 문제입니다. ‘윤리’를 가장 현실적으로 다뤄온 종교는 유교라 할 수 있습니다. 유교는 그야말로 사람과 사람사이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유교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종교가 소위 ‘계(戒)’를 통해서 이를 매우 강조해왔습니다.그런데 대체적으로 계나 윤리라는 것이 자칫 잘못하면 아주 박제화되고, 정예화되고, 교조주의로 흘러 도그마에 빠질 우려가 있습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거의 대부분의 종교가 이
1981년 9월 8일 입적 59년 동국대 사학과 교수 신라정토사상연구로 박사 역사-불교 학제간 연구 하정 안계현 박사는 1960∼70년대 국사학자로서 한국불교에 천착하면서 한국불교사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인물이다. 당시 한국불교사 연구가 주로 고승들의 전기나 사상 혹은 종파 및 중요 사찰에 국한된 연구에 초점이 맞춰진 반면 안계현 박사는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국불교사의 사회적, 시대적 배경과 토착적 전개 과정에 주목하면서 거시적 관점에 한국불교사를 이해하려는 새로운 연구 방법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1944년 경북 공립중학교와 45년 춘천사범학교 강습과를 마친 안 박사는 학업에 대한 열정을 늦추지 않기 위해 그 해 동국대 문학부 사학과에 입학했다.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왜곡된 한국
1. 신라 스님으로 원효 스님 다음으로 많은 저술을 남겼으며, 유식사상과 정토사상에 정통하여 신라정토 이론체계를 정립한 스님은? ① 경흥 스님 ② 대현 스님 ③ 도의 스님 ④ 범일 스님 2. 아미타 정토사상은 아미타 48원을 통해 이해가 가능하다. 그 중 정토왕생의 因을 밝히는 원은 48대원중 제18, 19, 20의 3원이다. 이 원들의 내용으로 맞지 않는 것은? ① 제18원(십념왕생원) : 나의 이름 십념함에 왕생정토 원입니다. ② 제18원(장엄무량원) : 극락정토 제장엄이 한량없기 원입니다. ③ 제19원(임종현전원) : 중생들의 임종시에 마중함이 원입니다. ④ 제20원(회향개생원) : 공덕회향 왕생발원 이루기가 원입니다. 3. 당나라 사천성 정중사에서 주석하였으며 두타행과
번뇌 원인인 의식주 효율적 제어 小食-재활용-환경보호도 두타행 두타(頭陀, dhuta)는 범어로 ‘흔들어 털어버리다’는 의미로 곧 인간의 모든 집착과 번뇌를 버리고 수행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오늘날 두타는 가섭존자를 일컫는 말이나 또는 과거 부처님 당시에나 있었던 수행법의 한 가지로 간주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경전에는 ‘계정혜 삼학의 근간’ ‘무생법인’이 두타의 과보’라고까지 강조하고 있다. 그럼 두타행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하는 것이며 현대적으로 어떻게 재해석할 수 있을까. 조계종 단일계단 교수사 경성 스님은 최근 『불교수행의 두타행 연구』(장경각)란 책을 통해 부처님의 두타행의 위상, 종류, 가섭존자의 두타행 방법, 경전상의 두타행 등 다각적인 면에서 두타행을 조명했다. 스님에 따르
민중들에 의해 신통력 갖춘 도인으로 찬양-윤색한중일에 지대한 영향…日 원효 생애 다룬 저술도무덤에서의 하룻밤은 훗날 원효 스님을 동아시아 불교사의 위대한 성사(聖師)로 만들었다.(『화엄연기회권』中) 원효의 대중교화는 그의 학문적 성과나 사상적 깊이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황량하고 거친 세상이라는 들판에서 삶에 지친 사람들의 묵정밭을 일구고 가꾸는 일이란 보살행의 실천이기 때문입니다. 원효가 만난 사람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밭가는 노인과 산골의 몽매한 사람, 그리고 광대, 백정, 술장사 등 시중사람들과도 어울렸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거리의 아이들이나 부인들까지도 원효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의 익살과 웃음, 노래와 춤 등은 삶에 지친 거리의 사람들에게는 신나는 일이었고, 잠자는 영
1. 신라 불교사상에 있어서 당나라에 유학하여 중국의 법상학계를 이끈 원측법사의 유식사상을 이어받은 신라유가 사상의 기반을 세운 스님은? ① 태현 스님 ② 무상 스님 ③ 경흥 스님 ④ 진표 스님 2. 신라불교에서 가장 두드러진 사상이 화엄사상의 전개이다. 우리나라 불교교학의 근본이 된 화엄사상이 신라불교에서 그 꽃을 피우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두 스님은? ① 자장 스님, 의림 스님 ② 의상 스님, 원효 스님 ③ 태현 스님, 경흥 스님 ④ 무상 스님, 진표 스님 3. 신라시대 화엄사상에 대한 설명으로 바르지 않은 것은? ① 의상 스님의 새로운 화엄사상은 초기에 보수적 왕실, 귀족적인 유가계통에 비해 서민적 불교성격을 가진다. ② 신라 화엄사상이 대표적으로 적용된 사찰은 불국사와
철학은 대상의 학문 아닌 사유의 학문. 서양철학 공부했지만 내가 품은 의문 해결해 주지 못할 때 과감히 떠나. 불교 통해 세상을 아름답게 보고 나의 마음을 아름답게 만들 터. 나지막한 목탁소리와 함께 노교수의 방에서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천수경 독경소리가 분당 운중동(雲中洞)의 미물들을 일깨운다. ‘운중사 조실 스님’의 사시 예불 시간. 수년전부터 한국학중앙연구원 북재의 아침은 김형효 교수의 고요한 목탁소리와 함께 시작돼 왔다. 몇년전 벽에 청화 스님과 숭산 스님의 사진을 붙이고 미륵반가사유상을 달더니, 요즘은 아예 매일 10시면 직접 목탁을 치며 염불을 하고, 발표하는 글이나 강의 내용도 거의 법문 수준이다. 염불선 수행 3년 3년전부터 김형효 교수는 염불선 수행을 해왔
100부 240권 저술…각권마다 불교사의 명저의천은 ‘용수-마명 보살만이 원효의 짝’ 극찬사람들과 어울려 거문고를 연주하고 있는 원효 스님. 그는 성과 속을 넘나들며 수많은 중생들을 불법의 세계로 이끌었다. 『화엄연기회권』원효의 여러 모습 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것은 그가 뛰어난 학승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비문에는 “그가 일체의 도리를 모두 다 통달하려고 하는 마음가짐으로 은밀하고 미묘한 이치를 연구하고 분석했다”고 썼습니다. 그리고 『송고승전』의 저자 찬녕(贊寧)은 학승으로서의 원효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기도 했습니다.원효는 진리의 성을 용감하게 공격하고, 문진(文陣)에서 종횡무진 당당히 분투해서, 나아갈 뿐 물러서는 일이 없었다. 삼학(三學)에 두루 통하여 그 나라에서는 만인지적(萬人之敵)이라고 했
윤 명 철 동국대 겸임교수 “인류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탐험가는 석가모니입니다.” 아주 오래 전 인터뷰할 때 한 말이다. 사람들은 탐험가하면 늘 콜롬부스나 아문젠이나 피어리 같은 서양인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탐험이란 범선이나 뗏목을 타고 미지의 바다를 항해한다든가, 깊고 깊은 동굴을 찾아 들어간다든가, 혹은 아마존의 정글이나 북극 남극 등 낯설고 신비로운 자연을 대상으로 활동하는 일을 뜻한다. 물론 남들이 생각하는 통념을 깨뜨리고, 육체적으로 힘들고 때로는 생명을 파기하는 것을 감수하는 것은 고귀하고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하고, 물리적으로 고통스럽고, 자신과 인류를 위해서 바람직한 행위는 진리를 구하고, 그것을 펼치는 작업이다. 즉 인간탐험이다. 우리역사에는 알려지지 않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