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위부터)도의 선사 부도로 추정되는 진전사터 부도. 844년 세워진 염거화상탑(사진 가운데). 가장 수려한 작품으로 꼽히는 철감선사탑. 부도(浮屠)란 스님들의 다비장을 치르고 난 후에 수습한 사리를 안치하는 묘의 일종으로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한 불탑과 구분하기 위해 부도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부도 가운데 탑의 형식을 취한 것을 부도탑이라 부르고 있다. 또 다른 석조물과 달리 대부분 부도에 따르는 탑비가 건립돼 있어 부도의 주인공과 그의 생애 및 당시의 사회·문화상까지 엿볼 수 있는 경우가 많은 게 특징이다. 이 부도는 단순하게 스님의 사리를 안치한 묘에 머물지 않는다. 불교의 이상향인 극락세계를 형상화했기에 부도가 만들어진 시기를 살았던 사람들의 불교적 세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불탑인 익산 미륵사지 석탑. 현재 해체 복원작업이 진행 중이다. 서기 48년 5월 인도 아유타국. 꿈속에서 ‘공주를 가락국에 보내 수로왕의 배필이 되도록 하라’는 하늘 상제의 명을 받은 국왕과 왕후는 딸 허황옥을 동쪽의 가락국으로 보냈으나, 바다 신의 노여움을 사 가지 못하고 돌아오고 말았다. 국왕은 고심 끝에 배에 탑을 싣고 가도록 했다. 허황옥은 배에 탑을 싣고 2개월 여에 걸친 항해 끝에 7월 27일 마침내 가락국에 도착해 이미 그녀가 올 것을 알고 기다리던 수로왕을 만나 혼례를 치를 수 있었다. 그리고 호계사를 지어 배에 싣고 온 파사석탑(婆娑石塔)을 세웠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금관성의 파사석탑’조와 ‘가락국기’조에 따르면 우리나라
『삼국사기』열전(列傳) 등 문헌에 따르면 신라시대에 유명한 화가 솔거가 있어 황룡사 벽에 노송도(老松圖)를 그렸고, 고구려 승려 담징과 그 제자들은 일본에 건너가 법륭사 금당의 벽화를 그렸다. 새들이 앉으려다 부딪쳐 떨어지는 일이 잦았다고 할 정도로 뛰어난 작품을 그렸던 솔거는 황룡사 벽화 외에도 분황사의 관음보살과 진주 단속사의 유마거사상을 그리기도 했다. 하지만 담징이 그린 일본 법륭사 금당벽화는 1949년 화재로 소실되기 전까지 남아 있었던데 반해 안타깝게도 솔거가 그린 그림들은 자취조차 알 수 없다. 고구려 장천 1호분 예불도가 최고 이처럼 사찰에 그려진 모든 그림을 불교회화, 즉 불화(佛畵)라고 한다. 그러나 ‘불교의 종교적 이념을 표현한 그림’으로 요약할 수 있는 불화가 언제 어디서 처음 그려
대학생정토회가 벚꽃이 만개한 경주로 역사문화기행을 떠난다. 대학생정토회는 4월 5~6일 경주 분황사, 문무왕릉, 김유신 묘 등을 순례하는 ‘대학생·청년을 위한 경주역사기행’을 개최한다. 이번 역사기행은 신라의 고도 경주에서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인들의 힘과 원동력을 되짚어보고, 이를 통해 현재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비전을 고민하는 시간으로 진행된다. 또 신라인들이 흙과 돌로 쌓은 반월성을 찾아 만개한 벚꽃과 함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는 시간도 갖는다. 특히 이번 순례에는 민족의 역사성과 동질성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조선족과 새터민 학생들을 초청할 예정으로 한민족 네트워크 형성의 기회가 될 전망이다. 역사기행은 대학생 및 청년이면 누구나 동참 가능하며 홈페이지(www.jungto20.
강순형 창원문화재연구소장 특별 기고왕흥사-사리장치 깊이보기 글 순서 1. 최고·최대 사리그릇 발굴하다2. 왕흥사, 임금이 배타고 들어가는 구조3. 언제 창건 되었나-위덕왕 때 창건?4. 아좌태자 외 역사에 없는 또 한 왕자5. 사리 그릇 차림새6. 유리병 대신 순금 사리병7. 사리장치처의 궁금증8. 금은보화-진단구? 공양품?9. 3알의 사리는 어디로 갔나?10. 40여 종 최고의 세공품들11. 기타 출토품들12. 위덕왕이 세운 두 절과 사리공양 40여 종 최고의 세공품들나무木탑자리의 한가운데 땅밑 심초석 사리홈孔에 사리그릇이 놓인 곁(남쪽)의 흙 속에 흩어진 30여종 8,000점이나 되는 가장 많은 갖가지의 감材質․종류․형태․빛깔로 된, 수많은
오늘 하루 즐거웠습니까? 저도 즐거웠습니다. 어르신 150명을 모시고 표충사에 다녀왔습니다. 가을이라서 단풍도 좋고 경치도 좋았습니다. 그런데 어르신들 말씀이 단풍은 예쁘지만 늙는 것은 싫다고 합니다. 봄에 새싹이 나면 새싹도 예쁘지요. 꽃이 피면 꽃도 예쁘고. 여름에 잎이 무성하면 그것 또한 예쁩니다. 가을에 단풍이 들면 더더욱 예쁜 것처럼, 어린아이는 어려서, 청년은 청년이라서, 장년은 장년이라 좋고 노인은 노인이라서 좋은 것입니다. 늙는 것이 슬프거나 후회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도 저 단풍처럼 예쁘게 늙으시길 바랍니다. 벼랑 끝에 매달린 형국 오늘날 한국불교의 주류는 대한불교조계종입니다. 대한불교조계종은 선종인 동시에 대승입니다. 그리고 불교로서의 종지는 깨달음입니다. 그렇다면 깨달음은 구체적으
글 순서 1. 최고·최대 사리그릇 발굴하다2. 왕흥사, 임금이 배타고 들어가는 구조3. 언제 창건 되었나-위덕왕 때 창건?4. 아좌태자 외 역사에 없는 또 한 왕자5. 사리 그릇 차림새6. 유리병 대신 순금 사리병7. 사리장치처의 궁금증8. 금은보화들-진단구? 공양품?9. 세알의 사리는 어디로 갔나?10. 40여 종 최고의 세공품들11. 기타 출토품들12. 위덕왕이 세운 두 절과 사리공양 4. 아좌태자 외 또 한 왕자 등장 왕흥사 사리장치는 금·은·동 세겹으로 구성돼 있다. 앞서 말했듯, 가장 바깥 사리그릇인 청동원통형 사리합의 몸 거죽에 ‘···爲亡王/ 子立刹本舍/ 利二枚葬時/神化爲三’ 곧, 577해에 죽은 왕자를 위하여 사리를 넣고 탑(찰주)을 세웠다는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9월 10일 경주세계문화엑스포2007를 찾았다. 지관 스님은 이날 불국사 주지 성타 스님, 회주 종상 스님, 총무부장 현문 스님, 재무부장 범여 스님, 사서실장 심경 스님 등과 함께 황룡사 9층탑을 음각한 경주타워를 돌아보고 엑스포문화센터에서 3차원 입체영화 ‘토우대장 차차’를 관람했다. 스님은 이날 “안압지, 첨성대, 분황사 등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신라문화는 불교문화를 주로 한 정적인 문화”라며 “경주세계문화엑스포는 이런 신라문화에 첨단디지털기술을 입혀서 역동성을 부여했다”고 말했다. 스님은 이어 “이번 경주엑스포가 불교포교와 불교문화 창달에 기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주세계문화엑스포2007은 9월 7일 개막해 첫날부터 3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 화제를 모
일본을 대표하는 계율학자 마츠오 겐지 야마가타(山形)대학 교수가 7월 30일부터 8월 3일까지 4박 5일간의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청정계율이 살아있는 한국불교의 현장을 직접 보고 싶어서 왔다는 그는 짧은 방문 기간 동안 동국대 김호성 교수와 동행하며 해인사 율원, 불국사 석굴암, 분황사, 황룡사지, 조계사, 선학원 등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사찰들을 둘러보았다. 또 해인사 율원장 무관 스님, 민족사 윤창화 사장, 정우서적 이성운 사장, 부천대 김광식 교수 등을 만나 한국불교와 일본불교의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 나누는 시간들을 가졌다. “한국의 스님들은 결혼을 하지 않잖아요. 그렇다면 군대 역시 가지 않습니까?” “성행위를 하는 것만이 파계가 아니라 군대를 가는 것 또한 파계행위가 아닙니까?” “군대를
부부애를 別로 규정함은 ‘존경’ 전제한 것광덕·엄장 설화는 ‘정신적 사랑’ 본보기 사람살이란 만남으로 시작된다. 한 생명의 태어남은 부모와 자식이라는 만남의 순간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만남이 없으면 생명의 존재가 형성되지 않는다. 존재의 원리를 인연이라 설명하는 불교적 정의에 머리 숙여짐은 이러한 원초적 지침부터가 틈새 없이 완벽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부모 자식의 존재적 결정이 부부라는 남녀의 결합을 전제하지 않고는 형성될 수 없으니, 인간 윤리의 원초를 부부로 보는 유교적 윤리 규정은 현실적 삶의 근간을 명확히 한 것이어서 역시 시공을 초월하도록 영원한 진리이다. 이러한 만남의 끌림이 되는 힘의 인력은 무엇일까. 이것이 바로 사랑이라는 인간적 지각의 예지일 것이고, 이 지각의 예지가 너와 나의 만남
산불로 소실된 낙산사 원통보전지 발굴현장. 문화재청과 국립중앙박물관이 공동으로 마련한 특별전 ‘발굴에서 전시까지’가 7월 1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최된다. 이번 특별전에는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최근 궁궐, 도성, 왕릉, 사찰 등 27개 유적지에서 발굴한 유물 772점이 선보인다. 신라권에서는 경주 사천왕사 녹유벽전을 비롯해 산불로 소실된 낙산사 원통보전지 출토 유물, 실상사 출토품, 사천왕사·분황사·구황동 원지·인용사지 등에서 출토된 전시품이 선정되었고, 가야권에서는 성산산성·송현동·내산리 고분 출토품이 참가한다. 백제권에서는 풍납토성, 관북리, 궁남지, 왕흥사지, 왕궁리 등에서 대표유물이 출품되었으며 나주를 대표하여 복암리 유물이 전시된다
어린 조카 단종을 죽이고 조선의 왕위를 차지한 세조는 온 몸에 생겨난 종기 때문에 평생을 고생했다. 그 역시 죄업을 씻고자 불사에 매달렸으며 오대산 상원사는 그런 세조의 후원으로 중창됐다. 『장아함경』 「사문과경」 편을 보면 아자세왕 설화가 나온다. 중인도 마다가국의 빈비사라왕은 늙도록 아들이 없어 걱정하며 신에게 기원하였는데, 어떤 관상가가 와서 말하기를 “비부루산에 있는 선인이 죽으면 태자가 탄생한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빈비사라왕이 그때를 참지 못하고 선인을 죽이니, 곧 부인이 아기를 임신하였다. 선인의 원한이 깃들어서인가. 장성한 태자는 새 교단을 조직하려는 야심을 품은 제바닷타의 꾐에 넘어가 쿠데타를 일으켜 부왕을 죽이고 어머니를 가두는 패륜을 범하고 왕
3일간의 사랑으로신라 십현 설총 얻어 고승 파계시킨비련의 여인 비판도 요석(瑤石), 그녀를 떠올릴 때면 사랑이 죄가 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빌던 어느 시 구절이 생각난다. 한국이 낳은 최고의 고승 원효(元曉)대사. 그를 파계시킨 사연 많은 과부 요석공주. 초등학교 시절 읽었던 원효대사 전기의 삽화에 등장한 그녀는 원효의 뒷모습을 보며 옷고름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후일 이광수의 소설 『원효대사』에 등장하는 그녀의 모습 역시 어린 시절 뇌리에 각인됐던 이미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후대인들의 기록에서는 요석과 원효의 관계를 ‘3일간의 사랑’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요석을 원효와 단 3일간을 함께하고 떠나보낸, 평생을 눈물로 살아간 비련의 여인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공주때 불린 ‘덕만’ 석가족 공주 이름분황사-황룡사구층탑 축성, 위엄 과시 여왕 연모했던 지귀, 슬픈 설화로 남아 그녀가 절에 도착했을 때 기다림에 지친 그는 탑 곁에서 깜빡 잠에 빠져 있었다. 여왕을 먼발치에서 보고 그리움이 사무쳐 병이 났다는 그 청년은 여왕이 행차한다는 날을 손꼽으며 며칠 밤낮을 지새웠나 보다. 여왕은 그 곤한 모습이 애처로워 차마 단잠을 깨울 수가 없었다. 탑 부근에서 잠시 머물던 여왕은 발길을 법당으로 향했다. 여왕이 예불을 끝내고 나오는 길에도 그는 여전히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마를 붉게 물들일 정도로 햇볕이 내리쬐고 있건만 이 가여운 사내는 꿈에서 헤어날 줄 몰랐다. 그를 한참이나 내려다보던 여왕은 자신이 끼고 있던 팔찌를 가만히 벗었다. 그리고는 살며시 그의 가슴 위
돌사자의복원 전(위)과 후(아래). 분황사 모전석탑 북동쪽에 위치한 돌사자의 좌대와 다리, 발이 복원돼 제모습을 찾았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송의정)는 “분황사의 의뢰로 다리가 망실된 채 기우뚱하게 앉아있던 돌사자는 남동쪽 돌사자를 모델로 새로운 석재를 이용하여 보강했다”고 밝혔다. 복원하기 전 돌사자는 출처불명의 돌기둥과 탑에 사용되었던 모전석으로 앞다리를 받친 데다 좌대의 절반이 결실된 상태였다. 돌사자 원형복원은 이오희 문화재위원, 명지대학교 최명윤교수의 자문으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실에서 수행하였다. 탁효정 기자 takhj@beopbo.com
‘보수우익’을 표방하는 ‘불교뉴라이트’가 창립 발기인대회를 봉행했다. 그러나 발기인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일부 스님들이 아직도 단체의 정확한 성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불교뉴라이트 창립준비위원회는 11월 6일 오후 하림각에서 창립 발기인대회를 개최, 교계 스님 57명과 재가자 63명이 불교뉴라이트 운동에 동참을 발원했다. 발기인대회는 정인악 조계종 중앙신도회 고문의 개회선언에 이어 여의도불교포교원 원장 현진 스님의 발기취지문 낭독이 이어졌다. 종교편향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뉴라이트전국연합 상임의장 김진홍 목사는 격려사를 통해 호국불교를 운운하며 불교계의 뉴라이트 운동 동참에 대한 격려를 보냈다. 이날 창립준비위원회 위원장에는 만장일치로 추대된 대각사 주지 장산 스님은 “핵실
강남구청 공무원불자들이 천년의 고도 경주로 순례를 떠났다. 강남구청 불심회(회장 강용호)는 10월 27일부터 3일 간의 일정으로 경주 일대에서 성지순례를 봉행했다. 27일 청사 근무를 마치고 밤 10시에 순례를 출발한 불심회 회원 30여 명은 순례기간동안 세계문화유산인 불국사와 석굴암을 비롯해 분황사, 골굴사, 감은사지, 문무대왕암 등 경주 곳곳에 위치한 불교문화유적을 참배했다. 정하중 기자
저는 조계종에서 호계원장 소임을 맡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께 계율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호계원이 어떤 곳인지를 말씀드려야겠습니다. 한국불교의 장자 종단인 대한불교 조계종에서는 행정기관인 총무원, 입법기관인 중앙종회, 그리고 사법기관인 호계원이 있습니다. 호계원에서는 종단의 안정을 지키고 기강을 확립하며 승풍을 진작하고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종헌 종법을 바탕으로 법조문을 엄정히 정해서 잘못된 행동, 즉 계행을 지키지 않거나 종헌 종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출가자에 대해 적절한 징계와 규제를 가합니다. 제가 그런 일을 맡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잘잘못을 따져 징계를 내리는 것이 좋은 일은 아니지만 부처님의 계율에 따라 승단의 구성원들이 올바르고 맑고 깨끗해야만 승단이 살아있을 수 있습
작품 '불보의 세계' 종이에 먹 29.5 x 1025 80년대 초 박대성의 산수를 처음 보았을 때는 서양화에서 이원희의 초기 풍경을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유사한 느낌이었고(둘 다 대구 화단출신이자 한국적 정취가 가득한 풍경화라는 점에서 밀접한)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그림을 좀더 접하게 되면서 점차 강도가 올라가 권옥연의 인물상이나 권진규의 자소상, 오윤의 목판화, 육명심의 사진 백민시리즈 등을 만났을 때와 같은 놀라움을 갖게 되었다. 사실 이들은 내게 일종의 ‘경계’에 해당하는 작가들이다. 이들의 작업이 기준점이 돼서 이전의 상투적이고 관습적인 그림들과 차별화되는 안목을 키웠고 질적인 차이를 읽을 수 있는 눈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70년대에
북촌미술관(관장 전윤수)이 심혈을 기울여 기획한 ‘천년의 황금도시 경주전’이 9월 5일 국립경주박물관 특별전시실에서 개막됐다. 경주 남산, 불국사, 석굴암, 분황사 등 역사적 문화유산과 아름다운 풍광을 담은 한국화, 서양화, 판화 100여점이 선을 보였다.한 지역을 주제로 한 기획전은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일. 경주전을 시작으로 유서 깊은 고도의 기획전이 다양하게 연출되기를 기대하며 전시된 100여점의 작품 중 일부를 선정해 경주전의 일편을 전한다.경주국립박물관에서 이 전시회를 본다면 천년의 시공을 뛰어넘은 경주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