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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박 대 성

기자명 법보신문

명료-생동 속 그윽함 禪詩 음미하듯 청아해

<사진설명>작품 '불보의 세계' 종이에 먹 29.5 x 1025

80년대 초 박대성의 산수를 처음 보았을 때는 서양화에서 이원희의 초기 풍경을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은 유사한 느낌이었고(둘 다 대구 화단출신이자 한국적 정취가 가득한 풍경화라는 점에서 밀접한)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그림을 좀더 접하게 되면서 점차 강도가 올라가 권옥연의 인물상이나 권진규의 자소상, 오윤의 목판화, 육명심의 사진 백민시리즈 등을 만났을 때와 같은 놀라움을 갖게 되었다.

사실 이들은 내게 일종의 ‘경계’에 해당하는 작가들이다. 이들의 작업이 기준점이 돼서 이전의 상투적이고 관습적인 그림들과 차별화되는 안목을 키웠고 질적인 차이를 읽을 수 있는 눈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70년대에 유행한 실경산수 붐의 영향권 내에서 활동한 박대성은 점차 그들과는 다른 감각으로 자신을 인상지웠다.

경주서 동양문화 정수 체득

철저하게 독학으로 자수성가한 그는 혼자만의 시각과 단련을 통해 자연을 대면하면서 얻어진 생생한 현장의 사생감각과 감각적 표현을 통해 신선하고 감동적인 맛을 전해주는 대표적인 산수화가로 꼽히고 있다. 철저하게 현장사생을 중시하면서 이를 통해 종합적인 화면구성을 꾀하고 있는 그의 그림이 보여주는 구도감각과 구성능력은 전통회화와 흡사하면서도 그것을 지금 당대의 감성과 감각으로 끌어올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있다. 간결하고 기품이 있으면서도 무척이나 세련된 절제들이 여운과 문학적 내음을 풍기는 그의 산수풍경은 그만큼 매력적이었다.

그는 작품성과 상업성에서 모두 성공한 몇 안 되는 작가다. 작가란 자신의 감각을 독자한 형식으로 드러내는 이들인데 사실 우리가 미술수업을 받고 제도권에서 훈육되다 보면 그 감각이나 취향이라는 것이 획일화되거나 박제화 되는 경우를 빈번히 본다. 그 작가만의 내음, 취향, 감각이 살아있는 작품, 다른 작품들과 함께 걸어놨을 때 훅하고 달려드는 그 설명할 수 없는 개별성, 개인성을 지닌 작품이 좋은 작품의 특징이다. 박수근이 그렇고 권진규가 그럴 것이다.

<사진설명>작품 '천년신라의 꿈-원융의 세계' 종이에 수묵담채 250 x 440

현대 산수화에 오면 박대성이란 존재가 그런 예에 당한다. 박대성의 근작은 경주문화를 마음껏, 자기 화폭으로 불러들여 그 정수를 음미하고 있는 그림들이었다. 경주는 한국미술문화의 보고이자 전통문화의 핵심이자 결정들의 초상이다. 불교문화의 찬란한 흔적들이 주렁주렁 열매처럼 매달린 곳곳을 탐사하고 다니면서 이를 화폭에 종합적으로 추려낸 그림들은 맑고 신묘한 기운들로 묘연하다.

그의 손에 의해 경주의 불교미술의 산실들은 새롭게 환생했다. 이 땅에 경주가 있어 전통은 여전히 살아 자기 존재의 근엄하고 깊은 얼굴을 보여준다. 경주가 아니고서야 이런 풍정을 접할 데가 어디있겠는가? 그가 그린 경주의 풍경은 단순한 경주풍경의 재현이나 그곳 불교유적지의 사생에서 훌쩍 벗어나있다. 구체적인 장소와 문화유적, 불교이미지로부터 시작하지만 그림은 이상적인 경지로 지향되어 있다. 종합적인 시선과 자의적인 공간 구성에 의해 불교의 유적은 그야말로 불국토의 한 상징으로 체화되어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가 서울생활을 접고 경주로 옮긴지 6년의 세월이 지났다. 불의의 사고로 손 하나를 상실한 그는 어린 시절 고독하고 외로운 시간을 보내면서 오로지 그림 그리는 일로 그 괴로움을 덜어냈다고 한다.

<사진설명>작품 '불밝힘굴' 종이에 수묵담채 236x143

중학교만 마친 그는 이후 독학으로 그림의 세계로 들어가 이미 약관의 나이로 기성 작가 군으로 진입해 활약을 했다. 어린 시절 집안 제사에 쓰이던 병풍그림과 글씨로부터 시작한 그의 그림 공부는 이후 ‘개자원화전’을 거쳐 우리 산하의 직접적인 사생, 중국대만의 고궁박물원에서의 학습, 한국 전통문화와 유산에 대한 체득, 그리고 서예 및 추사 김정희의 서화세계에 대한 공부가 쌓이고 쌓여 오늘의 그림세계를 형성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이제 비로소 종합되어 개화되는 장소가 경주가 된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럽고 당연한 여정으로 보인다.

그는 가족과 떨어져 경주에서 다소 불편한 삶을 자청해 홀로 밥 짓고 그림 그리는 일로 온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지금 그는 스스로 세상으로부터 일정한 벽을 치고 그 안에 칩거, 그간 해왔던 모든 것을 종합해보려는 이상을 꿈꾸고 있다. 그는 종국에 동양미술이란 서(書)에 있음을 깨닫고 서와 화의 결합과 새로운 조화를 도모하는 한편 무엇보다도 추사의 세계가 그가 궁극적으로 가닿고자 하는 세계임을 절실히 깨닫고 있다. 그래서인지 근작은 그 영향관계가 좀더 선연히 드러난다.

그림-글씨 조화 모색도

글과 그림이 조화를 이루고 힘차고 함축적이면서도 극적인 연출을 도모하는 그림으로 완성되고 있음을 본다. 그러니까 추사의 그림과 글씨를 최고의 기교로 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추사를 일월(日月)과 같은 분이라고 말한다. 시와 그림, 문자와 이미지가 적절히 배분된 공간에 압축적인 대상이 시적으로 자리하고 있는 화면은 더없이 간명하고 군더더기 없이 그윽하다. 문득 추사의 세한도가 어른거린다. 그래서인지 그의 붓질도 추사체 마냥 얇은 종이의 단면에 깊고 오묘한 공간감을 남기는 한편 힘차고 생동감이 있다. 그림 사이로 적절히 들어간 글자들은 그대로 그림과 혼연일체가 되어 떨고 있다.

근작의 제목은 ‘천년 신라의 꿈-원융의 세계’, ‘불밝힘굴’, ‘십대제자상’, ‘분황사’, ‘불보의 세계’ 등이다. 그가 경주의 불교유적지를 둘러보고 그 불국토의 정신과 이상의 경지를 한 화면에 종합해서 그려놓은 것이다. 새삼 그림이란 것이 작가들이 세상과 자연, 문화를 보고 이해하는 그런 폭넓고 깊이 있는 인문학적 공부를 진정으로 필요로 한다는 사실, 동양문화의 전통을 올바로 체득하고 이를 완전히 내 것으로 한 연후에야 비로소 무엇인가가 나올 수 있음을 웅변하고 있는 셈이다. 그가 경주에 간 까닭이 여기에 있었음을 알겠다.

(경기대교수·미술평론)

 


박대성 ‘천년 신라의 꿈’

가나아트센터 10월 1일까지

박대성 화가〈사진〉는 현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천년 신라의 꿈-원융의 세계’주제의 개인전을 통해 작품 50여점을 선보이고 있다.

그의 이번 개인전은 ‘불교미술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주제와 소재, 구성과 기법 면에서 신선한 조형의 특징을 과감하게 보여주고 있는 전시회를 통해 그는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기초로 한 동양화의 새로운 길을 새롭게 보여주는듯 하다.

석굴암 본존불과 십대제자를 그린 작품 ‘법열’을 비롯해 청음, 수음, 화음, 백운 등의 작품 앞에 묵묵히 서있어 보라. 점차 자신의 내면으로 깊이 빠져들며 정화되는 느낌을 분명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전시회는 10월 1일까지 열린다. 02)720-1020

채한기 기자 penshoo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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