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종교인 … 셸리 영문학 전통 이어성자이며 마법사 혹은 시인으로 삶 맹세업에 따라 운명 결정 … 해탈과 윤회 주장 에이츠의 생전모습.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는 1865년에 태어나서, 1939년까지 살다 간 금세기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다. 그와 더불어 이십세기영시의 거장인 엘리엇이 1940년 예이츠의 1주기 추모강연에서 그에 대해 평하기를 “현대에 있어서 최대의 시인-확실히 영어로 쓴 최대의 시인-아니 내가 알고 있는 어떤 말, 그 말을 사용해서 시를 쓴 시인 가운데서 최대의 시인”이라는 최상급의 찬사를 보낸바 있다. 말년까지 인도인과 각별한 친분 그 최상급의 찬사는 생의 최후까지 왕성한 창작욕과 투지로 일관한 열광적이고도, 다양한 면모를 지닌 예이츠의 적극적인 삶의 산
언어 너머에 있는 무의식 구조 통찰당대 최고의 산스크리스트어 전문가“언어는 사회적 규칙의 총체” 가르쳐 서양은 그리스 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실체 중심의 사유를 해 왔다. 반면에 동양은 실체 너머의 허공과 그 사이에 있는 사물들의 관계에 대해 사유한다. 닭이 마당에서 노는 사진을 보여주고 그를 그림으로 재현하라고 하면 서양 사람들은 십중팔구 네모로 마당을 표시한 안에 닭만 그린다. 하지만, 동양 사람들은 닭과 함께 풀과 돌, 개나 오리 등을 그린다. 서양인을 처음 만나면, 그들은 당신은 누구냐에 대해 묻는다. 하지만 동양인들은 스승이나 아버지, 형제가 누구냐고 묻는다. 양의사들은 맹장염이 걸렸다고 하면 바로 맹장을 떼어내는 수술을 하고 퇴화된 장기를 제거했으니 몸이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세상은 사건들의 집합체 일 뿐상대성이론’ 통해 연기법 주창 과학과 종교는 그 영역과 목적이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종교적 진리에 관심을 가진 과학자들도 의외로 많다. 현대물리학의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도 궁극적 실재와 진리를 찾기 위해서는 종교와 과학의 협동과 조화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아인슈타인은 1927년 미국의 한 은행가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의 종교심은 실재에 대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매우 작은 일속에 나타나는, 무한하게 뛰어난 정신에 대해 겸손하게 경탄하는 마음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우주에 우월한 이성적인 힘이 존재한다는, 감정에 깊이 뿌리 내린 이 신념이 나의 신에 대
생전의 엘리엇 모습. 성불한 불타는 최초의 설법에서 “두 가지 극단을 버리고 중도를 배워야 한다. 여래는 바로 이 중도의 이치를 깨달았다. 여래는 그 길을 깨달음으로써 열반에 도달한 것이다”고 설했다. 불타의 교의를 가장 독창적으로 해석하고 체계화한 제2의 불타 용수의 「중론송」에 의하면, 모든 존재는 뭇 인연(관계)에 의해 존재하며, 인연에 의해 생긴 것은 그 자체의 자성을 갖지 못한다, 때문에 인연으로 생겨난 것을 불교에서는 공하다고 말한다[因緣所生法 我說卽是空]. “인연으로 생겨난 모든 것을 공하다고 우리는 말한다./그것은 또한 가설(假說)된 것이요, 이것이 즉 중도이다.” 기독교 시 통해 오히려 ‘중도’ 노래 “4월은 가장 잔인한 달…”로 시작되는 20세기 최고
자연·하늘·고통 조정하는 주인은 나“무오염과 고독 통해서 영성 발현” 주장시 마다 불교를 비롯한 동양 사상 담아 1918년 롱 아일랜드서 탄생 휘트먼(Walt Whitman)은 1819년 롱아일랜드에서 태어나 1892년에 사망한 미국시인으로 『풀잎』이라는 시집을 1855년에 처음 발표하고 이후 이 시집을 계속하여 수정 증보하여 발표했다. 가장 미국적인 시인 중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는 휘트먼의 사상적 형성 배경은 명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휘트먼 스스로 밝힌 바가 없기 때문에 학자들에 따라 영국의 낭만주의나 유럽 철학자 칸트(Kant)에게서 그 원천을 찾는 경우도 있고, 에머슨(Emerson)과 쏘로우(Thoreau) 등의 초절주의자에게서 그 기반을 찾는 경우도 있으며 동양
진여심=보편적 초월자아…현상학으로 내면 통찰객관세계 심층마음에 의해 구성된 가유일뿐후설 현상학은 수행없는 이성적 한계에 멈춰 후설의 모습. 불교는 기원전 6세기경 인도에서 태어난 석가에 의해 창시된 종교이고, 후설(1859~1938)은 20세기 독일에서 태어나 현상학을 주창한 유대계 철학자이다. 짝을 맞춰 비교하자면 ‘석가와 후설’ 아니면 ‘불교와 현상학’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법보신문이 기획한 연재가 불교의 정신을 현대의 여러 서구사상가들과 비교하는 것이다 보니, 2500년 이상에 걸쳐 다양한 모습으로 전개되어온 불교사상을 100년도 안 되는 후설의 사상과 비교하게 되었다. 이 글에서는 불교도 어느 한 경전이나 논전에 국한하지 않고, 후설사상도 전기나 후기로 제한하지 않고
윌리엄 제임스의 모습. 무언가 상당히 좋아하거나 매우 싫어하는 것은 어쨌든 그 무언가에 대해 잘 알고있음을 전제한다. 그렇다면 우리 주변에 미국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고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볼 때, 우리만큼 미국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도 없는 것 같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미국의 정신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아마 대다수는 “미국이라는 나라에 도대체 그런 것이 있기나 한가”라고 되물을 것이다. 그렇지만 답은 “있다”이고, 그것이 바로 프래그머티즘이다. 혹시 이 말을 들어본 사람이 있다면, 프래그머티즘(pragmatism)을 실용주의로 번역하고, 이에 대해 ‘최종적 이익을 위해 수단을 유용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효율성의 주장’쯤으로 여길 것이다. 그런데 프
화이트헤드의 모습불교와 화이트헤드(1864~1949)의 관계를 말하기 전에 과연 동서 철학의 차이는 무엇인가부터 알아보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필자는 동서양 철학의 차이는 논리의 차이에 있다고 보아, 서양을 A형 그리고 동양을 E형이라고 한다. A형이란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와 아퀴나스(Aquinas) 같은 서양의 주류 철학자와 신학자들 이름의 첫 알파벳에서 유래한 것이고, E란 에피메니데스(Epimenides)나 유브라이데스(Eubrides)의 같은 그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전자는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만 후자는 생소한 것이 사실이다. 서양의 논리학이 아리스토델레스의 ‘오르가논’에서 유래 한 것도 잘 알려져 있다. 그가 논리학을 쓴 동기 자체가 바로 이
니체의 초상화.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는 “신이 죽었다”는 말로 잘 알려진 사상가이다. 그는 독일 바이마르 근처의 작은 마을 뢰켄에서 목사의 집안에서 태어나 그리스도교의 세례를 받고 성장했으나 후일 서양의 역사에서 그리스도교를 가장 혹독하게 비판하며 서양의 사유의 역사 전체를 전복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그는 대학에서 신학과 고전문헌학, 철학을 공부하는 가운데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접하고 그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된다. 독일의 목사 집안에서 출생 그는 스승 리츨의 소개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25세에 바젤대학의 고전어와 고전문헌학 교수가 되었는데, 이 젊은 나이에 대학에서 쓴 논문을 통해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가 된다는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과 국보 83호 미륵보살 반가사유상. 기독교는 성과 속의 이원론을 철학적 배경으로 하지만 불교는 성과 속이 융합된 일원론적 세계를 주장한다. 空과 解脫 중심 사상 윤리적 사유 기초될 수 없어서양세계관 대체 위해서는 철학적 문제 보완해야 법보신문이 지난 1월부터 불교와 서구의 대표적 지성들과의 관계를 깊이 있게 조망하는 ‘불교와 지성’을 연재하는 가운데 박이문 포항공대 명예교수가 최근 ‘불교의 서양적 수용’을 보내와 이를 전문 게재한다. 편집자 기독교는 개화, 개혁, 서양화라는 이름의 물결을 타고 한국에 들어 온지 한 세기 반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않았는데도 급속도로 성장하여 전통적 무교는 물론 전통적 불교까지를 훨씬 뒤에 제치고 수적으로는 물
‘동방성서’에 ‘법구경’등 10여권 경전 수록불교 평등·무아사상의 윤리적 탁월성 찬양 막스뮐러의 초상화. 막스 뮐러(Friedrich Max Muler, 1823~1900)는 독일의 낭만주의 시인 빌헬름 뮐러의 아들로 태어나 그의 학문적 생애의 대부분을 영국에서 보낸 산스크리트 언어학자이자 근대 종교학의 창시자이다. 그는 처음에는 시인이나 음악가가 되고자 했으나 1843년 라이프치히대학에서 스피노자의 윤리학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베를린에서 셸링 아래에서 일을 하며 인도학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그는 쇼펜하우어와도 만나 베다와 우파니샤드 등 인도의 고대 경전에 대해 토론하였으며 산스크리트 문헌학을 더 공부하기 위해 1845년 파리로 갔다. 파리에서 그
우파니샤드·불교에 심취…서재에 불상 모셔同苦 사상=보살 사상…고통 벗어나 無 주장삶의 포기’ 주장한 극단적인 염세주의 한계 불교 사상의 탁월함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불교계는 그 사상적·실천적 가치를 살려내기는커녕 구시대적이고 기복적인 이미지조차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이에 본지에서는 각 분야 최고의 연구자를 통해 불교와 서구의 대표적 지성들과의 관계를 깊이 있게 조망함으로써 불교가 현대의 사상, 문학, 예술, 과학에 큰 기여를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불교와 지성’을 격주 연재한다. 편집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 사진)는 염세주의 철학자로 알려진 인물이다. 프로이센 제국의 국가철학자였던 헤겔의 정신철학에 반대하여 ‘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