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1만세운동을 견인한 용성진종 스님의 평전이 3·1만세운동 100주년이 되는 2019년 3월1일을 앞두고 출간된다. 일제 강점의 혹독했던 그 시기에 용성 스님의 수행과 독립운동, 불교 대중화를 위한 전법의 삶은 ‘성철평전’ ‘새벽-김대중 평전’을 펴낸 김택근 작가의 집필로 완성됐다. ‘용성평전’을 탈고한 작가는 용성 스님이 주도했던 3·1만세운동을 인류사에 남을 혁명적 사건으로 평하고 기록했다. 서대문형무소에 있으면서도 한문에 갇혀있는 불교를 대중화하기 위해 경전의 한글화와 지성화를 발원한 대목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법보신문사 출판브랜드 도서출판 모과나무가 용성진종(龍城震鍾, 1864~1940) 스님의 일대기를 담은 평전을 출간합니다. 용성진종 스님은 3·1만세운동의 기둥이었으며 일제강점기 당시 왜색불교로 위기에 처한 조선불교의 수행과 가풍이 이어질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한 선지식입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일반인들이 용성진종 스님의 독립운동과 수행, 일대기에 관해 쉽게 접할 수 있는 이렇다 할 책이 없는 게 현실입니다. 이에 용성 스님의 독립운동 과정과 그를 통한 수행과 깨달음, 전법의 역사를 길이 전할 ‘용성평전’의 출간을 알리며 스님의 가르
만해 한용운(1864~1944)은 근대불교에서 다양한 행보를 걸어간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문학, 독립운동, 불교개혁 등 다방면에서 큰 족적을 남겼다. 그의 명성은 일제하의 불교 그 당시에도 상당하였다. 1932년 불교를 대표하는 인물에 대한 선거를 하였는데 만해가 469명에서 422표로 1등을 하였음은 그를 예증한다. 그밖에도 만해가 근대불교를 대표한다는 당시의 기록은 적지 않다.백성욱(1897~1981)은 만해의 영향을 받아 3·1운동 참가, 상해 임시정부로 망명, 군자금 모집, 의용승군제 추진, 불교의 자주화(종헌 제정 등)
문화재 수집에 일생을 바친 간송 전형필 선생이 이 사업을 할 수 있게 해준 수 많은 인연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외종 형 월탄 박종화와 휘문고보 시절 스승인 춘곡 고희동, 그리고 위창 오세창(葦滄 吳世昌, 이하 ‘위창’)의 역할이 매우 컸다. 특히 위창은 처음 전형필을 만난 자리에서 이 젊은이의 그릇을 알아보고 오늘날 한국 문화재의 상징이 된 간송(澗松)이라는 아호를 지어주었으며 그 뒤 문화재를 제대로 감식하는 눈을 뜨게 해주고 이순황 등 훌륭한 인재들을 연결시켜주었으며 고비마다 자문을 아끼지 않았다.아래 관련 사진은 1938년
“대한독립 만세! 남북통일 만세! 세계평화 만세!”3·1운동 99주년을 맞아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명이었던 백용성 조사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되새기는 자리가 마련됐다. 3·1운동 99주년 맞이해민족대표 용성조사 기려독립정신 등 유훈 새겨장수 죽림정사(조실 불심도문, 주지 법륜 스님)는 3월1일 죽림정사 내 용성교육관에서 ‘제99회 3·1절 기념법회’를 갖고 백용성 조사의 유지를 이어받아 평화통일을 발원하는 시간을 가졌다.조실 도문 스님을 비롯해 주지 법륜, 정토회 지도법사 유수 스님과 신봉수 사단법인 독립운동가백용성조사 기념사업
12세 나이에 송광사로 출가동국대 전신 중앙학림 졸업3·1운동 참여로 일경에 감시송광사로 돌아와 강사로 활동‘송광사사고’ ‘금강경역해’ 등전문 학자도 힘든 저술 남겨총본산 태고사·종단 건설 앞장총무원장·동국대 이사장 등한국불교 근대사 큰 족적 남겨“스님은 송광사를 중흥했고, 중앙의 단일종단 총무원장을 역임했다. 정광고등학교 교장, 동국대 이사장으로 계시면서 종립학원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다. 그처럼 힘겹고 바쁜 일을 하면서도 스님은 전문학자로도 하기 힘든 연구와 저술에 또한 몰두했다.” (김영태 동국대 명예교수)“화상께서는 불교를 다
1919년 민족의 독립을 염원하며 들불처럼 일어나 전국으로 확산됐던 3·1만세운동을 기념하는 행사가 장성 죽림정사를 비롯해 부산 등 전국 곳곳에서 진행됐다. 죽림정사, 용성 스님 추모부산불교계도 ‘독립’ 재연 부산종교인, 부산역서 만세금정중, 추모 다례식 봉행장수 죽림정사(조실 도문 스님)는 경내 용성교육관에서 제98회 3·1절 기념법회를 열었다. 백양사 방장 지선 스님을 비롯해 죽림정사 조실 도문, 주지 법륜, 정토회 지도법사 유수 스님 등 사부대중 1000여명이 동참해 용성 스님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되새기고 평화통일을 발원했다.
서부전선 최전방 부대인 제1보병사단 신병교육대대에 나눔과 치유의 만다라가 만개했다. 신병과 불자 장병 등 1000여명을 위해 스님은 힐링과 지혜의 법문을 설하셨고 불자 어머니들은 정성스레 마련해 온 짜장면과 간식, 햄버거를 보시했다. 청소년 불자들은 형과 오빠들에게 평소 갈고 닦은 춤과 노래를 자랑하듯 선보였다.화정 스님, 장병들에 치유 법문인연 공덕 공영공생의 길 강조“반야 지혜 가득한 연꽃 되길”10대부터 80대까지 90여명 불자손수 마련한 짜장면 간식 보시청소년 불자들은 춤 노래공연훈련으로 참여 못한 장병위해성금 500만원 별
죽림정사, 3·1운동 기념법회도문 스님 등 1000여명 동참3·1만세운동 정신 구현 발원 3·1운동 97주년을 맞아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었던 백용성 조사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되새기는 자리가 마련됐다.장수 죽림정사(조실 도문 스님)는 3월1일 용성교육관에서 ‘기미년 3·1만세운동 97주년 기념법회’를 봉행했다. 법회는 97년 전 민족대표들과 함께 일제에 항거하고 독립의지를 만방에 외쳤던 백용성 조사의 정신을 이어가겠다는 발원의 장이었다. 조실 도문 스님을 비롯해 주지 법륜, 정토회 지도법사 유수, 법현 스님과 신봉수 사단법인
국내외 존경받는 기업인으로 손꼽히는 동국제강 창업자 고 장경호 거사, 일본 교세라 창업자인 이나모리 가즈오,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경영철학과 불교와의 관계가 조명돼 눈길을 끈다.안종상 감성硏 대표 발표장경호·가즈오 회장 조명자비·불이 등 경영에 활용“정주영도 저잣거리 선객”안종상 감성경영연구소 대표는 불광연구원이 11월6일 잠실 불광사에서 개최한 학술연찬회에서 ‘불교경영의 실제와 사례’를 발표했다. 데이콤테크놀로지 사장 등 경영자로도 활동했던 안종상 대표는 이날 연찬회에서 불교사상이 성공적인 경영철학이 될 수 있음을 구체적
"영주는 날을 잡아 백련암으로 올라갔다. 훗날 자신이 그곳에 머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지만 처음 본 백련암은 정겨웠다. 동산은 영주에게 여러 가지를 물었다. 영주의 답을 들으며 동산은 고개를 끄덕이고 지긋이 쳐다봤다. 이윽고 나직이, 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중이 되시게. 감전된 듯 아무 말을 못하고 있는 영주에게 동산은 몇 마디를 보탰다." 해인사 퇴설당에서도 화두를 들었다. 선방 대중들의 묵언이 호통보다 무겁고, 고함보다 예리했다. 죽비소리에 자신만의 마음을 펼쳤다. 그러면 ‘눈 쌓이는 집’ 퇴설당에 보이지 않는 눈이 내렸
▲스님은 한국불교정화에 자신의 신념을 다 바쳤다. ‘성불을 한 생 미루더라도 한국불교 정화는 기필코 완수하겠다’는 신념으로 불교정화에 앞장섰던 청담 스님은 1902년 진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봉부차제라는 한문사숙에서 처음 글을 배운 후, 18세에 이르러 보통학교에 입학해 신학문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숨겨진 재능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3·1만세운동이 들불처럼 번질 때는 앞장을 서기도 했다. 그 때문에 경찰서에서 7일 동안 훈계를 받다 풀려났고, 이는 진주농업전문학교 불합격 이유가 됐다. 이때 스님은 낙방 이유가 만세운동에 앞장섰던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교장을 찾아가 며칠간이나 부당함을 역설한 끝에 입학 허가를 받았다. 이처럼
1925년 뷔르츠부르크 대학서 ‘불교순전철학’ 학위이기영 박사는 1960년 벨기에의 루뱅대학서 취득 백성욱 박사 박사(博士)는 본래 중국의 진(秦) 나라 때 학문을 맡은 관직으로 처음 설치됐고,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고조선 때 박사라는 관직이 처음 등장한다. 그리고 삼국시대에 이르러 고구려에 태학박사가 있었고, 백제에는 오경박사, 의박사, 역박사, 노반박사, 와박사 등 다양한 박사가 있었다. 박사는 이처럼 고대의 전문 학자나 기술자들에게 주던 벼슬 이름이었다. 그러나 근현대들어 박사는 대학교에서 줄 수 있는 가장 높은 학위나 특정 분야의 전문가를 일컫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교의 역사가 짧았던 1970년대까지만 해도 박사는 그 수가 많지 않았다. 따라서 한때 박사학위
실물이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잡지는 ‘조선불교월보’만해 스님의‘유심’은 1918년-‘불교’는 1924년 창간 1912년 창간된 조선불교월보. 사진제공=불교와 문화 시대의 단면을 그대로 읽을 수 있는 논설을 비롯해 수필, 소설, 시 등 문학작품까지 다양한 글들이 한 권의 책으로 엮여 정기간행물로 발간되는 잡지(雜誌)는 1663년 함부르크의 신학자이자 시인인 요한 리스트가 세계 최초로 『계발 월간 토론』을 발간하면서 역사가 시작된다. 이후 각국에서 여러 형태로 발전해왔고, 우리나라에서는 1896년 2월 ‘대조선인 일본유학생친목회’가 발행한 『친목회회보(親睦會會報)』와 같은해 11월 30일 발간된 『대죠션독립협회보』가 잡지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불교잡지는 언제 처음
김연일의 제주 법정사 봉기가 불교계 첫 무력항쟁비구니 상근은 자금조달 … 신상완은 日 회담 동행 왼쪽부터 불교계 독립운동의 핵심 만해 스님, 민족대표로 3·1운동 참여한 용성 스님, 한성임시정부 불교대표 한영 스님, 의병활동 후 출가해 독립투신한 운허 스님. “아등은 기(起) 하였노라. 대한의 국민으로서 대한국가의 자유와 독립을 완성하기 위하여 2천년 영광스러운 역사를 가진 대한불교를 일본화와 절멸(絶滅)에서 구하기 위해 아 7천의 대한 승니(僧尼)는 결속하고 기(起)하였노니 시사보국(矢死報國)의 발원과 중의경생(重義輕生)의 이 의기(義氣)를 뉘 막으며 무엇이 막으리오. 한번 결속하여 분기(奮起)한 아등은 대원(大願)을 성취하기까지 오직 전진하고 혈전(血戰)할 뿐인저.”
화상이 “중도 잃지 마라” 당부운허·성호에게 북경유학 알려 운암 김성숙은 1923년 경기도 양주군 소요산 자재암에서 비구계를 수지했다. 사진은 당시 받았던 계첩. 월초 화상은 성숙의 계획을 알고 있었다는 듯,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둘 사이에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의 고요함이 이어졌다. 짧은 시간의 침묵을 깬 이는 월초 화상이었다. “그렇다면 네 가슴속에서 그토록 용솟음치고 있는 그 뜨거운 용암을 한 번 원 없이 분출해 보거라. 하지만 성숙아 네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승려라는 점은 잊지 마라. 언제 어디서나 중도의 도리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고, 항상 백성의 편에서 민족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화상의 눈가에는 비칠 듯 말 듯한 물기가 고였
“부처님 가르침 배우고 익혀전하는 것처럼 좋은 일 없다” 성숙이 야심한 밤에 운허를 만난 곳은 광릉천변 3·1만세운동을 주도했던 당시 ‘조선독립단 임시사무소’명의의 격문을 등사하기 위해 일행과 함께 등사기를 짊어지고 왔던 봉선사 뒷산 약수터였다. 운허와 단둘이 마주한 성숙은 “월초 화상께 독립운동을 하다가 출가인연을 맺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저 역시 독립운동의 꿈을 갖고 집을 나섰다가 이렇게 출가하여 절에 있으나, 아직 그 꿈을 접지 못했기에 잠시 뵙자고 했습니다”며 운허를 찾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성숙과 특별하게 가까이 지내던 사이가 아니었기에 잔뜩 긴장했던 운허는 그때서야 경계심을 풀고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나도 아직은 쫓기는 몸이라 이렇게 스님의 모습으로 살고 있으나, 언젠가 때가 되면 다시 독
1920년 불교 인재양성 위해 총독부 권유로 설립신상완·백성욱·김법린 등 걸출한 인재들 배출상해임시정부와 연결된 불교계 항일지사 배출구 당시 숭일동 지금의 명륜동 북묘 터에 있었던 중앙학림. 근대 불교계의 당면 과제는 포교·교육·역경사업이었다. 지금도 이 세 가지 사업은 다른 사업에 비해서 종단에서 역점을 두고 있다. 이 세 가지 사업은 형식은 다르지만 모두 하나로 연결된다. 세 가지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업은 포교 사업이다. 왜냐하면 불교의 목적이 깨달음을 통하여 해탈을 얻는데 있고, 모든 사람들이 그 목적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에 교리를 전파하는 포교 사업이 우선이다. 불교계의 교육 사업은 유능한 포교사를 양성하기 위해서 필요하며, 역경사업은 어떤 방법으로
만해와 경봉이 나눈 선문답의 완결편동국대 도서관, ‘동국 백년전’에 전시 동국대가 건학 100주년을 맞아 공개한 만해의 심우시 병품. 이 시는 만해 스님이 경봉 스님에게 준 것으로 이 시를 경봉 스님으로 부터 받은 정재철 전 장관의 부인 전금주 씨가 보관하다, 부인이 작고한 후 정 전 장관이 동국대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동국대에 기증한 것이다. 만해 한용운 스님의 친필 한시 ‘심우시(尋牛詩)’가 최초로 공개됐다. 동국대학교는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동국대의 100년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동국백년전을 마련했다. 특히 이번 전시회에는 만해 스님의 친필 한시가 쓰여진 10폭짜리 병풍이 공개돼 화제가 됐다. 이 시는 만해 스님이 평소에 아끼던 후배 경봉 스님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