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속가 동생 성호에게 출가를 권하다
21. 속가 동생 성호에게 출가를 권하다
  • 법보신문
  • 승인 2007.06.27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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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가르침 배우고 익혀
전하는 것처럼 좋은 일 없다”

성숙이 야심한 밤에 운허를 만난 곳은 광릉천변 3·1만세운동을 주도했던 당시 ‘조선독립단 임시사무소’명의의 격문을 등사하기 위해 일행과 함께 등사기를 짊어지고 왔던 봉선사 뒷산 약수터였다. 운허와 단둘이 마주한 성숙은 “월초 화상께 독립운동을 하다가 출가인연을 맺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저 역시 독립운동의 꿈을 갖고 집을 나섰다가 이렇게 출가하여 절에 있으나, 아직 그 꿈을 접지 못했기에 잠시 뵙자고 했습니다”며 운허를 찾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성숙과 특별하게 가까이 지내던 사이가 아니었기에 잔뜩 긴장했던 운허는 그때서야 경계심을 풀고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나도 아직은 쫓기는 몸이라 이렇게 스님의 모습으로 살고 있으나, 언젠가 때가 되면 다시 독립운동에 나설 생각입니다.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동지를 만나게 되어 반갑소”라고 자기 속내를 내 놓은 운허는 성숙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날로부터 성숙과 운허는 대중들 모르게 가끔씩 만나면서 독립운동에 대한 의지를 다지기도 하고, 안팎의 돌아가는 정세를 논하기도 하면서 우의를 다졌다. 봉선사 강원에서 공부를 하며 가끔씩 산문밖에 나가 자신이 몸담은 무산자동맹회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던 성숙은 어느날 가족들이 살고 있는 고양을 찾았다. 성숙은 가족들이 처음 고양으로 왔을 때 찾아본 이후 이따금씩 찾아보기는 했으나, 자주 보지 못했기에 속가의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면 언제나 서먹했다. 이날 집을 나서던 성숙은 문 밖까지 따라나온 동생 성호의 손을 꼭 잡았다. 철산을 떠나 고양에 처음 왔을 때 열 세 살이었던 성호의 나이도 벌써 열 일곱이었다.

성호 역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성숙이 그랬던 것처럼 어려서부터 한문을 배우고 익혀 또래의 청년들에 비해 학식이 출중했으나, 가정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를 도와 농사일을 하면서 그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동생이 늘 마음에 걸렸던 성숙은 이날 작심하고 동생에게 새로운 삶을 살아보라고 제안했다.

대문 밖에서 마주 선 성호를 한참이나 바라보던 성숙은 “성호야, 젊은 나이에 이렇게 꿈도 없이 살아서야 되겠느냐. 내가 보기에 마땅히 다른 계획이 없는 것 같은데 스님이 되어 부처님 공부를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내가 지금 그 공부를 하다보니 부처님이 전했던 가르침을 배우고, 배운 것을 다른 이에게 전하는 것처럼 좋은 일도 없을 것 같구나”하면서 출가를 권했다.

형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성호는 놀란 표정으로 “형님, 진심이오”하고 되물었다. 그러나 더 이상 아무런 말없이 그윽하게 바라보는 성숙의 눈과 마주친 성호는 “한번 생각해 볼게요”하고는 고개를 떨궜다. 스스로도 지금의 모습이 제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돌파구를 찾지 못하기는 했으나, 형의 갑작스런 출가 권유에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머지 않아 다시 올 것이니 그때까지 생각해 보라”는 말을 남기고 봉선사로 돌아온 성숙은 동생이 출가 결심을 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했다. 머지 않아 떠나야겠다는 마음을 굳히고 있었던 성숙은 강원 공부는 물론 사회주의와 민족주의에 대한 사상도 그 전보다 깊이 있게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산문을 드나들면서 보아온 바깥세상은 이념과 주의주장에 따라 파당을 짓고 있었고, 그래서 독립운동에 직접 뛰어들더라도 사상적 무장이 되어 있지 않고는 기존의 활동가들과 대화가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숙은 강원에서 비구계를 받기에 앞서 공부해야 할 과목들을 배우고 익히는 한편 일본의 사회주의자들의 번역해 놓은 책들을 열독하기 시작했다.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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