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중앙박물관 전시장 입구에 설치된 사천왕상. 철단조로 제작됐다. 3월 개관을 앞둔 불교중앙박물관에 첫 전시물로 사천왕상이 봉안됐다. 1월 18일 봉안된 사천왕상은 철을 두드려 만든(철단조) 부조로, 이근세(37) 씨의 작품이다. 사천왕상의 기본도안은 직지자 후불탱을 모태로 했으며, 4개로 이루어진 각 부조의 사이즈는 1100cm×2400cm이다. 현재 마무리 작업이 한창인 불교중앙박물관은 3월 개관식과 함께 개관특별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1월 18일 안치된 사천왕상은 박물관 상시전시물로, 전시장 입구에 설치됐다. 문화부 문화국장 혜조 스님과 사천왕상을 제작한 이근세 씨가 함께 사천왕상을 둘러보고 있다. 탁효정 기
“한암은 불교의 외형적 기준 마련이 자신의 역사적 사명이라 믿었다. 한암에게 있어서 주된 관심사는 [선을] ‘똑바로’ 하는데 있었지, ‘왜’ 하는지에 있지 않았다. 이같은 판단이 이후 한국불교가 간화선 본래의 실존적 문제의식에서 비롯한 치열한 분심보다는, 외형적이고 형식적인 면에 치중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영향을 끼쳤다.” 근대 한국의 대표적인 선사로 추앙돼온 한암 스님의 지향점이 ‘깨침’의 구현이 아니라 ‘깨침 전통’[宗統], 즉 불교 수행 전통을 확립에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박재현 서울불교대학원대학 교수는 철학사상 제23호에 ‘방한암의 선적(禪的) 지향점과 역할의식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박 교수는 “한암 스님의 행적을 통해볼 때 한암은 가람과 의례, 법통 등 불교계의 외형적 기준을
고대국가에 있어서 불교는 종교일 뿐만아니라 정치 이데올로기였다. 따라서 고대사회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불교신앙이다. 하지만 백제 불교의 경우 관련 문헌기록이 지극히 소략하며, 그 내용 또한 단편적으로 분산돼 있어 연구에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최근 발간된 충청남도역사문화원 백제사연구소 길기태 연구원의 『백제 사비시대의 불교신앙 연구』는 그동안 구체적인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던 백제시대, 그 중에서도 사비천도 이후의 불교신앙을 살펴보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다.길 연구원은 “성왕대 사비천도가 불교사적으로도 하나의 분기점이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사비천도 이전에는 미륵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계율에 깊은 관심을 보인 반면 사비천도 이후에는 열반경에 기초한 계율에 큰 관심을 보
현향로→매다는 향로금동불감→부처님을 모신 작은 집주악천인상→악기를 연주하는 천인 영산회상도는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불'로 바뀌었다. 금동불좌상과 금동여래좌상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그런데 연가칠년명금동여래입상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박물관 전시실에 초보자들이 느끼는 의문점은 한도 끝도 없다. 한자를 그대로 한글로 번안해 표기란 명칭들은 단지 문화재의 ‘뜻 모를 이름’일 뿐 관람자들에게는 별다른 설명이 되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다. 유물을 안내하는 명칭이나 내용이 너무 학술적이고 한문식 용어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은 박물관 전시용어를 개선·집성한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용어-미술사』를 2005년 12월말 발간했다.
“한국에는 수천년 전통의 불교계는 있는데, 왜 변변한 불교서적은 없느냐.” 외국인 학자들이 토로하는 한국 불교계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은 한국불교에 접근할 수 있는 루트, 즉 영문서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중국이나 일본과 비교할 때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중국과 일본불교의 경우 기초경전들은 물론 이를 연구한 전문서적들까지 영문판으로 구비돼있는데 비해 한국불교는 원효 스님 저서를 제외한 대부분의 저술들이 서구에 거의 소개돼 있지 않은 형편이다. 이러한 실정은 한국불교에 대한 관심마저 축소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구미와 유럽에 한국불교가 중국불교의 카피본으로 인식돼고 있는 것 또한 중국과 구별되는 한국 승려들의 저서가 거의 소개돼지 않았기 때문에 비롯되는 문제라 할 수 있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
청량산에서 바라본 청량사 전경. ‘문수보살의 상주처’ 봉화 청량산이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1월 9일 봉화 청량산을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으로 지정예고했다. 문화재청은 “봉화 청량산은 낙동강 가에 우뚝히 자리잡은 명산으로 자연경관이 수려하며, 이중환의 「택리지」에 백두대간의 8개 명산 외에 대간을 벗어난 4대 명산 중 하나로 평가되어 온 한국의 대표적 명산으로 역사문화적·민속적 가치가 뛰어나므로 명승으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청량사가 위치한 청량산은 신라 자장법사가 중국 청량산에서 문수보살을 만났다고 한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청량산에는 연화봉, 향로봉, 금강대, 자비대, 의상대, 원효굴, 반야굴 등 뛰어난 봉우리와 굴의 이름 곳
국립중앙박물관이 1월 4일 공개한 한글금속활자.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글 금속활자가 발견됐다. 국립중앙박물관 역사부는 1월 4일 “박물관이 소장한 수십만 점의 금속활자 중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한글 금속활자 752자를 최근 1차로 정리했는데, 이 중 30자는 1461년(세조 7년)에 간행된 ‘능엄경언해’를 찍을 때 사용했던 한글 금속활자 ‘을해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국립중앙박물관 역사부는 소장 역사자료 조사 정리 및 총서 발간 사업의 일환으로 소장 금속활자 가운데 한글금속활자를 정리하여 『한글금속활자』 자료집을 발간하였다. 이 자료집에는 한글금속활자 큰자 232자, 작은자 520자 총 752자의 6면을 모두 촬영하여 소개해 활자의
고려시대 충주지역에서 활동한 고승들을 집중 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열렸다. 충주시와 예성문화회는 ‘충주의 큰스님’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조명된 인물은 법경대사와 홍법국사, 보각국사, 대지국사 등 4명의 고려 승려들이다. ‘법경대사 현휘 연구’를 발표한 이선철 충주시청 학예연구사는 “왕건이 법경대사를 예우한 것은 왕건의 호불정책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중국에 유학한 승려를 우대하여 불교계와 손잡음으로써 후삼국 정세를 좀 더 유리하게 이끌려는 의도가 있었다”며 “선종의 입장에서 교종을 융합하려한 법경대사의 사상이 고려통일기 호족융합책을 추구하던 왕건의 정책과 맞아떨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말선초 중원지역의 고승과 성주산문’을 발표한 김상영 중앙승가대 교수는 신라말 고려초
최근 한국에서는 『겐지이야기』라는 일본의 대서사 문학이 번역되어 예상외의 히트를 쳤다. 수많은 일본 만화와 소설의 소재가 된 책이라는 입소문이 퍼져 일본 만화 매니아층들에게 큰 호응을 얻은 것이다. 중세 일본의 황자로 태어나 당대의 수많은 여인들과 애정행각을 벌이는 『겐지이야기』는 일본의 대표적인 불교문학으로 설명된다. 12세기부터 이 책은 법화경과 천태교학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은 소설이자 헤이안 시대 일본인들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한 글로 설명돼 왔다. 일본 불교문학의 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개설서가 번역됐다. 동국대 일어일문과 교수로 재직중인 김환기 교수와 요시모토 하지메 교수가 오쿠보 료준 등이 엮은 『일본 불교문학의 이해』를 한국어로 번역 출간했다. “불교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 서민들이 친숙하게
안성시 봉업사지 유역 개발 계획발굴 성과 검토 - 주민 여론 수렴 항공사진으로 찍은 안성 봉업사지 전경. 한국 미륵문화의 메카 안성시 죽산 지역이 불교문화 관광특구로 정비될 전망이다. 안성시와 한양대 문화재연구소는 2006년 12월 15일 ‘봉업사지 및 죽산지역 종합정비를 위한 학술 심포지엄-봉업사지 1000년, 그리고 새로운 출발’을 개최했다. 봉업사지가 위치한 안성시 죽산 지방은 고대부터 기호지방과 삼남지방을 연결하는 지리적 요충지다. 죽산은 남한강과 연결되는 청미천이 지나고 있어 한강 수계와 직접 연결될 뿐 아니라 서쪽으로는 서해로 합류되는 안성천, 남으로는 금강의 유역권인 진천지방과 연결돼 삼국시대부터 교통의 중심지이자 군사적 요충지로 주목받았다.
돌사자의복원 전(위)과 후(아래). 분황사 모전석탑 북동쪽에 위치한 돌사자의 좌대와 다리, 발이 복원돼 제모습을 찾았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송의정)는 “분황사의 의뢰로 다리가 망실된 채 기우뚱하게 앉아있던 돌사자는 남동쪽 돌사자를 모델로 새로운 석재를 이용하여 보강했다”고 밝혔다. 복원하기 전 돌사자는 출처불명의 돌기둥과 탑에 사용되었던 모전석으로 앞다리를 받친 데다 좌대의 절반이 결실된 상태였다. 돌사자 원형복원은 이오희 문화재위원, 명지대학교 최명윤교수의 자문으로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보존과학실에서 수행하였다. 탁효정 기자 takhj@beopbo.com
동국대가 개통한 한국불교문화종합시스템에서 '원효'를 검색했을때 뜨는 화면. 한국불교학의 보고인 한국불교전서와 한글대장경의 검색이 인터넷에서 가능하게 됐다.동국대는 12월 22일 중앙도서관 A/V실에서 한국불교종합DB구축사업 완료보고 및 시연회를 개최했다. 동국대 중앙도서관은 지난해 연말부터 한국불교문화종합시스템("http://buddha.dongguk.edu") 구축사업을 진행해왔다. 이는 지난해 10월 정보통신부가 지원하는 2006년도 지식정보자원지정사업에 선정된 사업으로, 2010년까지 총100억원의 정보통신부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올해까지 완료된 데이터베이스는 불교전서 중 고려·조선시대 자료 190책의 원문과 한글대장경 중 대반야바라밀경 10책(1∼3
다솔사 부속 암자인 보안암 석굴.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돼온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39호 다솔사 보안암 석굴(多率寺普安庵石窟)이 신라시대에 창건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경남 사천 다솔사 인근에 머물며 한학을 연구해 온 추전 김화수씨는 “1336년(고려 충숙왕) 이곡(李穀)이 쓴 『서봉사사적』과 1657년(조선 효종) 고성현령 최응천(崔應天)이 쓴 『서봉사기』에 다솔사 보안암 석굴이 신라 신문왕(神文王, 681~691) 때 창건됐다는 내용이 적혀있다”며 “지금까지 알려진 고려시대가 아닌 신라 시대 때 창건된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김 씨에 의하면, 『서봉사사적』에는 “신라 신문왕 4년(684년)에 신문왕의 두 아들이 의명 대사를 스승으로 모시고 수행하며 김일
1910년대 『불교유신론』을 발표하고 정치권의 힘을 빌려 불교개혁론은 단행하려 했던 만해 한용운 스님은 1931년에는 정교를 분리하라며 불교계의 각성을 촉구했다. 만해 스님은 무엇 때문에 정치와 종교의 분리를 선언한 것일까. 김순석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원은 12월 19일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주최로 열린 제229회 월례연구발표회에서 ‘한용운의 정교분리론 연구’를 발표했다. 김 연구원의 논문에 따르면 1910년대 만해 스님이 일본 여행에서 돌아와 조선불교유신론을 집필할 당시 그에게는 일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없었다. 오히려 공부하지 않고, 사회와 괴리돼가고 있는 불교계의 개혁을 촉구했다. 이러한 개혁을 실현하기 위해 만해 스님은 국가 권력의 힘을 빌려 성취하고자 한다. 1910년 3월 중추원에
미륵사지는 백제 古都 익산의 심장모두 해체하면 후손에 돌만 남겨줘 “1층 탑신과 기단부까지 해체되면 1400년전 백제인들이 지은 미륵사지석탑의 원형은 모두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현재의 지식과 기술로 미륵사지석탑의 원형을 찾지 못한다는 판단이 선 이상, 석탑의 해체는 현재에서 중단돼야 한다.” 미륵사지석탑 복원 자문위원인 김삼룡 전 원광대 총장은 “미륵사지석탑의 1층과 기단부는 해체하지 말고, 후대인들의 몫으로 물려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차례 공청회와 심포지엄을 통해 여론을 수렴하고 있지만 미륵사지석탑 복원 방향은 사실상 자문위원회에 의해 결정된다. 현재 자문위원회에서는 완전 해체설과 기단부를 살리는 현상 복원설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백제석탑의 원형이 남아있는 기단부를 살려야 한다
“모두 해체해 원형 찾자”“후대의 몫으로 넘겨야”학계 전문가도 의견 엇갈려 현재 1층 탑신부와 기단부를 남겨놓고 있는 미륵사지석탑은 더 이상 해체할 것인지 현상태에서 중단할 것인지 기로에 서있다. 한국 최고(最古)의 석탑인 익산 미륵사지석탑(국보 제11호) 해체 복원작업이 ‘딜레마’에 빠졌다. 2001년부터 해체를 시작한 미륵사지 석탑은 현재 1층 탑신부와 기단부의 해체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채, 조선시대에 설치된 석축들의 잔석을 걷어내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현재 미륵사지 석탑 자문위원회에서는 1층 탑신과 기단부의 해체를 앞두고 의견이 양분되어 있다. 1층과 기단부까지 모두 해체를 해서 한국 최초 석탑의 원형을 찾아보자는 주장과 1층과 기단부는
양주 회암사지 출토유물 소유권 확인 2차 소송에서도 회암사가 승소했다. 서울고법 민사 15부는 12월 15일 대한불교조계종 회암사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회암사지 출토 유물에 대한 소유권 확인 청구소송’에서 ‘항소 기각’을 내렸다. 의정부 지법 민사합의 12부는 지난 2월 1일 회암사가 문화재청과 경기도 양주시를 상대로 낸 회암사지 출토 유물에 대한 소유권 확인 청구소송에서 원고승소를 판결한 바 있다. 1차 소송에서 패소한 문화재청은 판결에 불복, 항소를 제기했다. 이번 2차 승소에서 서울고법 민사 15부는 “현재 회암사와 구 회암사가 동일 사찰인 것이 인정되며,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회암사지 출토 유물이 모두 현 회암사의 소유”라는 판결을 내렸다. 따라서 현재 회암사에서 출토 27만여점의 유물뿐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한국과 일본으로 이어진 범패는 우리시대 최고의 문화유산이다. 그러나 이런 문화유산을 몇몇 어장 스님들에게만 맡겨둔 채 전승 보존하라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따라서 시급히 영산재를 세부 종목으로 분할, 예능보유자를 지정해 전승보존에 힘써야 한다.” 동방대학원 대학교 겸임교수 능화 스님은 12월 11일 신촌 봉원사 범음대학 세미나실에서 열린 ‘중요무형문화재 제 50호 영산재보존회 제 4회 학술세미나’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능화 스님은 ‘범패의 전승’이라는 주제 논문을 통해 “범패는 석존의 공덕을 찬탄하는 노래로 삼국시대 이래 일제시대까지 명맥이 유지돼 왔던 우리의 문화유산”이라며 “그러나 범패는 무형문화재로 보존하는 정도의 정책으로 일관할 뿐 행정적 지원이 미미해 그 명맥이 단절될 위
국립문화재연구소는 12월 14일 ‘황룡사복원기본계획 공청회’를 개최했다. 이번 공청회는 황룡사 복원을 앞두고 복원정비사업의 타당성과 추진계획에 관한 각계 전문가들과 시민단체의 의견을 수립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경주역사문화도시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황룡사 복원을 국책사업으로 설정하고 황룡사 복원을 위한 준비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날 공청회 발표자로 참가한 양윤식 한얼문화유산연구원장과 홍성걸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그리고 배병선 국립문화재연구소 건조물연구실장은 황룡사 복원과 관련한 사례분석과 추진절차, 응용기술 방안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여전히 복원 불가의 목소리 또한 높았다. 이날 종합토론자로 참여한 강우방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은 ‘복원 불가하다’는 입장을 내세우면서 “현재 황
정병국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주최하고 (재)명원문화재단과 (사)다도총연합회가 주관한 2006년 국제차문화학술세미나가 12월 5일 대한민국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한국 차문화의 부흥’을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국내외 차 전문가들이 참석해 한국 차문화의 역사와 앞으로의 발전방향을 논의했다. ‘한국 차문화 부흥운동의 역사와 현대적 가치’를 발표한 이승원 국민대 재단이사는 “문헌상으로는 한국에 처음으로 차가 전래된 기록이 삼국사기에 기록된 선덕여왕대로 알려져 있지만 중국 길림상에서 발견된 6세기 후반 고구려 무덤에서 발견된 선인진다도에는 공작을 탄 공자선인이 대접 모양의 검은 그릇을 받쳐들고 있는 그림이 등장한다”며 “이 다완의 모양이 신라나 고려의 다완과 크게 다르지 않음으로 볼 때 이미 고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