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의 천장(天葬)이라는 장법은 티베트인들이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장례방법이다. 놀라운 것은 천년의 세월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과 방법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사진은 천장의식을 하기 전 망자의 가족들이 모두 모여서 마니차를 돌리며 온전한 의식을 기원하는 종교적 공간. 고대로부터 티베트인들 특히나 불교사원의 라마승들은 인간의 삶과 죽음, 그중에서도 죽음에 관하여 매우 독특한 사유체계를 형성하여왔다. 그들은 ‘영혼불멸(靈魂不滅)’이라는 화두를 붙잡고 스스로의 법력으로 ‘이동하는 영혼’, ‘전이(轉移)가 가능한’ 영혼의 연속성을 위해 평생 동안 명상과 수행에 천착하였다. 실지로 티베트에서 법력이 높은 고승(활
▲ 조장 터 산언덕에 앉아서 육신의 보시를 기다리고 있는 독수리들. 천국의 사자인 독수리들은 티베트인들에게 매우 신성시되는 동물이다. 1989년 달라이라마가 노벨평화상을 획득한 이후 서방세계 특히나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유럽은 티베트 살리기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개인적 여행 혹은 학술적 종교적 성격으로 티베트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서방인도 적지는 않았지만 1989년 이후 시작된 달라이라마의 국제적 종교법회를 계기로 전 세계는 확실히 티베트를 주목하고 동정하고 지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오늘날 서방세계에 점진적으로 번지고 있는 티베트 명상센터나 티베트불교에 대한 이해는 이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오늘은 (인간의)시체가 몇 구나 해부 되려나? 어제는 두 구 밖에 해부가 안 되어 배불리 먹지는 못했다. 점심 한 끼로 하루를 버티기에는 배가 너무 고프다. 내가 거주하는 이 동네는 나와 같은 독수리가 너무 많은 것도 불만이다. 한 200마리쯤 된다. 얼른 언덕(조장터)에 올라가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아야겠다. 해부사(조장사) 스님의 움직임도 보고 망자 가족들의 숫자도 좀 확인해봐야지. 그럼 대충 오늘 몇 구의 시체가 준비되는지 알 수 있다. 아침은 거의 굶기 때문에 점심 무렵에 제공되는 인간의 육신은 아주 맛나다. 환생 도와주는 ‘공행모’의 화신 ▲죽음에서 다시 생명체로 환생할 수 있는 공간이 조장터이다. 그곳은 해부사의 작업장이자 수행
▲티베트에는 인간과 동물의 이분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가 의지하고 기대며 살아가는 생물이고 공생의 동물들이다. 네 번째, 티베트에는 순환 공생형의 경제(삶)를 추구한다. 유목민의 생활이 그러하다. 티베트는 라싸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유목 혹은 농업의 생활 형태를 취하고 있다. 대지가 집이요 초원이 학교다. 오래 동안 성장과 발전이 없는 대초원, 그러나 그곳에는 수학적으로 배우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이루어지는 공생의 경제가 펼쳐진다. 유목민과 야크와의 관계에서 확인 할 수 있다. 초원에서 유목민의 제일 사랑스러운 재산은 ‘야크’다. 야크는 유목민들에게 있어서 물질적 재산의 개념보다는 삶의 동반자이자 초원의 친구이다. 이곳에서
▲티베트인들은 발전이 없는 대지와 초원 속에서도 불행하지 않다. ‘티베트에는 우울증이 없다.’ ‘그래서 자살도 거의 없다.’ 라고 한다면 믿을까. 이 말은 티베트는 우리가 사는 (육지세상)물질문명의 세상보다는 덜 불행하다는 말로 바꿀 수 있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설역(雪域)의 티베트 고원보다도 최소한 지형적으로나 물질적인 면에서 매우 풍요롭고 편리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나날이 우울증과 자살이 늘어 가고 있는 소식을 자주 접하곤 한다. 주위의 사람들(식구들을 포함해서)을 보노라면 십중팔구는 대부분이 병원을 주기적으로 다니고 있다. 이유는 암, 치매, 우울증, 당뇨, 고혈압, 정신질환(
▲티베트의 불교사원은 체계적인 인적구조와 역할분배가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조직사회다. 히말라야 저편에 누워있는 티베트를 생명력 있는 하나의 ‘인간’이라고 가정해볼까. 그렇다면 티베트라는 인간은 어떤 신체구조를 가지고 있을까. 우선 머리 부분은 불교사원이 차지해야 한다. 티베트 정교(政敎)의 동력이자 브레인이기 때문이다. 몸통(오장육부를 포함하는)은 티베트 귀족집단이 해당되겠다. 중추기관이기 때문이다. 팔과 다리는 티베트 유목민에 해당될 것 같다. 그리고 기타 기관은 티베트의 농노계층이 짝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티베트라는 인간은 불교사원-귀족집단-일반 티베트인(유목민 포함)-농노라는 덩어리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티베트 라싸의 대표적 겔룩파 사원인 대조사 앞은 오체투지로 자신을 죽이는 신자들로 언제나 가득하다. 사원은 이들에게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가까운 이웃에 존재한다. 티베트에는 불교사원이 참으로 많다. 중국이 문화대혁명 시기(1966~1976)에 그토록 많이 파괴하고 라마승들을 몰아냈는데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마을의 중심이나 높은 산언덕에는 황금빛을 뽐내는 사원과 라마승들이 건재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진행되는 종교의식과 영적수행은 여전히 티베트인들의 삶을 주관하고 있다. 수행 공간이자 정치의 핵심 그렇다면 티베트에서 불교사원은 어떤 역할과 기능을 담당하고 있을까? 일차적으로는 사원은 불교경전(밀교)을 보존하고 전승하는
▲오늘날 포탈라 궁은 입장객을 하루에 천 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이유는 여기저기서 보수공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궁은 지금 몸살이 나서 죽을 지경이다. 우리 인간계(人間界)에서 금생의 인간이 내생에 어떠한 형태를 가진 생명체로 다시 태어 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공기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환생(還生 reincamation)에 관한 이야기이다. 환생이란 생명체를 통하여 영혼이 돌고 도는 순환의 과정이다. 즉 영혼의 연속성을 말한다. ‘(올바른)믿음이 인생을 좌우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우리의 삶을 규정하는 요소 중에 ‘믿음’이 가장 강력한 요소 중 하나라는 의미일 것이다. 따라서 믿음
▲중원에서 육로를 통해 티베트로 들어가는 일반적인 방법. 중국 안에서 티베트 권역은 다음과 같다. 티베트자치구(西藏自治區), 쓰촨(四川), 칭하이(靑海), 간쑤(甘肅), 윈난(雲南) 등이다. 이 지역은 역사적으로 고대에서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티베트인과 티베트민족[藏族]이 집단적으로 정체성을 유지하며 불교문화를 계승하고 있는 지역들이다. 이 지역들의 특징은 한족과의 ‘민족경계선(Boundaries)’을 오래 동안 유지해왔으며 여전히 비(非)한족화의 ‘심리구도(schema)’를 견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이 지역들에 건재 하는 불교사원과 그 사원에서 수행하고 있는 라마승과
▲라싸에서 시가체 가는 길. 황량함과 척박한 생존공간은 티베트 불교문화 태동의 자연적인 조건이었다. 그러나 이곳에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순환하고 있으며 생명체가 유기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여름이면 휴가를 간다. 산과 바다로. 그리고 그 속에서 수영, 일광욕, 서핑, 음식을 즐기며 한 여름의 짜증과 무더위를 날려버린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대단히 욕먹을 말이지만 ‘적게는 수만, 많게는 수십만이 배출해낸 오염물질이 득실대는 바닷가에서 물장난을 치면 휴식이 될까’라는 생각을 매번 한다. 여기에 관하여 나의 아내의 어디서 빌려온 주장에 의하면 “어떤 여행이라도 철학은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그 북새통에도 스트레스는 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