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 시인은 『벽암록』을 보면서 무지함(?)을 깨달아 글을 마치게 됐다고 연재 중단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불교계가 화엄의 입장에서 다양한 사상·문화를 수용해 새로운 시대에 맞는 대안을 제시해 줄 것을 주문했다. 자칭 ‘나홀로 동학당’ 김지하 시인은 「법보신문」에 연재해온 ‘화엄개벽의 길’을 통해 인류문명의 중심이 서에서 동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기존의 입장을 바탕으로 불교에서 새 문명의 중심사상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때 불교의 중심 사상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 융합하는 『화엄경』이어야 하며, 화엄사상을 중심으로 동학을 실천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불교가 동학을 비롯해 개벽 사상을 갖춘 ‘남쪽’의 모든 사상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점을 상기시켜왔다
나홀로 동학당 김지하는 화엄을 모시는 수련과 실천 자체가 곧 개벽이고 확충에 의한 자기치유 행위라고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운 20만 불교도들의 열정이 바로 화엄의 실천이며 곧 불교계 내부의 모순을 치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역학(易學)의 지혜를 따른다면 남조선 화엄개벽 운동은 당연히 북쪽과 연결된다. 남쪽의 흰 빛(離)은 제 안에 반드시 북쪽의 검은 그늘(坎)을 길러야 길(吉)하기 때문이다. 물론 원만한 화엄실현에 의해서만 북쪽 은하수의 기위친정, 즉 후천개벽은 이루어지는 것이다. 역시 ‘흰 그늘’이다. 육당 최남선의 ‘불함문화론(不咸文化論)’의 오늘의 향방이 심상치 않다.현대문명의 대세가 서쪽에서 동쪽으로 옮겨오고 있고, 그 동쪽의 신문명
나홀로 동학당 김지하는 문둥이, 각설이, 걸뱅이 타령인 품바를 최고의 율려로 보고 있다. 그는 4500년 전 황제 이래 최대 우주질서의 체계인 율려가 곧 ‘화엄개벽정인 밑바닥의 모심’이라고 강조한다. 1894년 갑오동학무장혁명 즉 동세개벽(動世開闢)에 대한 상대적 평가와 그 복합적 이중성, 그 겹겹의 그늘에 관해서는 비교적 상세한 역사연구가 있어온 셈이다. 갑오년의 제1차 기포(起包)와 제2차 기포에 걸친 해월의 고뇌는 뒷날 강증산(姜甑山)의 비폭력·평화를 통한 정세개벽(靖世開闢)으로, 일종의 ‘흰 그늘’의 차원으로 승화된다.정세개벽이 곧 진정한 화엄개벽이다. 더욱이 증산은 여인 중심의 개벽, 즉 ‘음개벽(陰開闢)’을 후천개벽의 당면 목표이자 가장 정당한 실천 방편이며 참된
나홀로 동학당 김지하는 불교계 고승대덕들에게 촛불주역인 어린이와 여인들, 그리고 쓸쓸한 외톨이들에게 화엄개벽의 길을 묻겠다는 해월의 발언을 무시할 수 있는지 물었다. 동학주문의 화엄개벽선(禪)인 ‘모심’의 실천은 수운 단계를 지나 그 두 번째 멘토인 해월 최시형 단계에 와서 민중적 삶의 구체적인 보편형식으로 전면 확장된다.우리 몸 안에 ‘밥 한 그릇 모시는 일을 화엄개벽의 신령한 비결(食一琬이 萬事知)’로까지 보며 생명탄생의 비밀한 근원을 북극태음(北極太陰)의 물로 보아 부인들 몸의 월경(月經)이 곧 지구와 우주의 경도(經度) 그 자체의 출발점이라고까지 가르친다.김일부 정역의 ‘기위친정’과 올해 기축년(己丑年) 7월 22일 동북아시아 일대의 일식(日蝕)때 나타나는 ‘윤초’가 바로 365
김지하 시인은 철거민이나 비정규직 등 쓸쓸한 대중의 소외와 불행의 문제는 『화엄경』 「입법계품」의 ‘보덕정광주야심’에서 해법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사진은 용산 철거민 참사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천도재를 마친 불교계 시국법회추진위원회가 “생명보다 소중한 가치는 없다”며 거리를 행진하는 모습. 다시 말한다.왜 이런 말을 할까?바로 서양의 그 위험한 히스테리 소동을 한국의 거대언론과 대학과 지식인들이 마치 큰 구세주나 만난 듯이 환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파는 우파대로, 좌파는 좌파대로, 자칭 엉터리 중도파는 중도파대로.앞으로 필연코 다가오고야 말 생명위기 기후혼돈에 부딛쳐 그들은 서양의 이 소동을 핑계 삼아 저 몸서리나는 에코·파씨슴을 상륙시키겠다는 음모라도
김지하 시인은 서구유럽이 자신들의 사상을 그 밑뿌리부터 완전 허무화 시키기 시작한 불교와 명상열에 짙은 컴플렉스를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유럽과 아메리카의 심장 안에는 불교 일반과 참선의 강렬한 매혹이 그 정신계 일반을 휩쓸고 있다고 강조한다. 나의 최종학력은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 미학과 졸업이다.당시 정부가 ‘직업적 학생운동가를 자임하는 고의적 장기 학적 보유자’라는 중상을 서슴치 않을 만큼 대학을 오래 다니면서도, 사실은 ‘꾼’보다는 ‘벌레’로서 서양과 동양을 넘나드는 많은 공부를 하였다.졸업할 무렵에 한 결론을 얻었으니 이것이다. ‘서양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또 배워야 한다. 그러나 그것으로 우리를 포함한 현재와 미래의 세계를 결정적으로
김지하 시인은 수운 최제우가 가진 화엄개벽사상의 첫 씨앗이 원효〈사진 왼쪽〉로 부터 시작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 의상〈사진 오른쪽〉의 ‘몸’ 발언이 『묘법연화경』과 함께 이제 시작되는 현대세계의 비전이 화엄개벽 모심의 핵심이자 기본내용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모심(侍)’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동학사상의 개벽실천의 브랜드다. 그리고 그 내용의 깊이와 그 실천의 광활함은 수운 선생 자신이나 천도교에서 계속 강조하고 있는 대로 인정한다고 했을 때 문자 그대로 ‘금불문 고불문 금불비 고불비(오늘에도 못 들어보고 옛날에도 못 들어본, 오늘에도 비교할 바 없고 옛날에도 비교할 바 없는)’의 그야말로 적극적인 윤리요 개벽적인 사상이다. ‘그렇다’이다. 그러나 동시에 ‘아니다’이다.똑같은
김지하 시인은 지난해 5·6월 어린이·청소년·여성들이 시작한 첫 촛불과 7월 천주교사제단과 불교의 스님들이 밝힌 새 촛불 사이의 관계가 주역에서 말하는 전형적인 ‘삼팔동궁’ 이라고 설명했다. 법보신문 자료사진 촛불이 바로 그 별이다.촛불도 별도 하나의 빛, 무수한 털구멍 속에서 열리는 저 숱한 부처님의 광명의 하나다.별을 찾는 우리는 이 촛불을 먼저 잘 살펴야 한다.촛불이 과연 무엇인가?나는 그동안 수많은 박학다식한 지식인과 고명한 관련 전문가들을 만나 끊임없이 촛불 이야기를 나눴다.그러나 참으로 기이하게도 그들 중 단 한 사람도 촛불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이는 없었다. 촛불에 직접 참여한 사람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기이하고 또 기이한 일이다.그럼에도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김지하 씨는 지난해 서울시청광장에 켜진 촛불을 인류역사에서 처음으로 켜진 ‘화엄개벽’으로 보고 있다. 법보신문 자료사진 선재의 소명은 ‘묻는 것’이다.지금 여기 우리가 먼저 할 일도 ‘묻는 것’이다.선재가 남쪽으로 끊임없이 떠난 것은 문수(文殊)의 가르침이다.선재의 선세(先世)의 신종(信種), 조상의 믿음의 씨앗도 다름 아닌 문수다.지금, 여기, 우리의 화엄개벽의 길을 찾는 우리에게 문수, 그 문수 아닌 문수는 어디 있는가? 그 별은 어디 있는가?역시 『화엄경』 안에 있다.화엄을 개벽할 경륜이 다름 아닌 『화엄경』 안에 있다는 말이다.선재에게 남쪽을 가르킨 문수의 손가락. 그 별은 바로 초발심(初發心)인 것이다.‘초발심공덕품(初發心功德品)’에 ‘초발심한 보살의 공덕은 헤아릴
김지하 씨는 진안 운장산에서 바라본 대불리가 곧 화엄개벽 자체의 실물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운장산으로 향하는 입구에서 객을 맞는 운일암반일암을 마치 사천왕과 같다고 설명했다. 사진제공=진안군 홍보실 다시 묻는다.선재동자의 구법여행은 왜 항상 남쪽을 향하는가?물론 믿음, 정진, 염력, 선정, 지혜의 다섯 힘을 얻어 중생을 이롭게 하겠다는 것이겠지만 그것이 왜 하필이면 우선 남쪽으로부터만 얻어지는가?결론을 불교학쪽으로부터 간단히 얻기 이전에 인연 따라, 구체적 경험을 통해서 오늘날, 이 땅에서, 나라는 사람, 또 우리라는 사람들이 수운의 이른바 ‘남쪽 별자리(南辰)’-화엄개벽의 조건인 남조선의 그 원만한 별-의 정체성을 직접 터득하기 위해, 조성된 현실에 부딛쳐보는 문자 그대로의 남쪽여
유신독재에 저항했던 김지하 시인은 불교의 화엄사상과 동학의 접목을 통해 새로운 문명의 대전환을 맞이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화엄개벽의 길’로 명명하고 있다. 「법보신문」은 2009년 1월 1일자부터 한없이 넓고 깊은 화엄사상에 푹 빠져 동학의 실천적 양상을 화엄으로 풀어낸 김지하 시인의 ‘화엄개벽의 길’을 매주 연재한다. 편집자 김지하 시인은 오대산 월정사 뒷방에서 ‘화엄세계 전체에서 남쪽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에 사로잡혔다. 사진은 월정사 전경. 박경리 선생은 나의 장모님이다.장모님 사십구재가 오대산 월정사에서 있었다.그날, 예정에도 없던 유족 인사를 내가 하게 되었다. 인사 중에 불쑥, 그야말로 예정에 없던 촛불이야기가 잠깐 나왔다. 불교의 원만 중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