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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당 김지하가 쓰는 화엄개벽의 길]⑧ 털벌레 삼천, 날짐승 삼천의 모심

기자명 법보신문

화엄경은 촛불 자신들의 가장 중요한 교과서

나홀로 동학당 김지하는 불교계 고승대덕들에게 촛불주역인 어린이와 여인들, 그리고 쓸쓸한 외톨이들에게 화엄개벽의 길을 묻겠다는 해월의 발언을 무시할 수 있는지 물었다.

동학주문의 화엄개벽선(禪)인 ‘모심’의 실천은 수운 단계를 지나 그 두 번째 멘토인 해월 최시형 단계에 와서 민중적 삶의 구체적인 보편형식으로 전면 확장된다.
우리 몸 안에 ‘밥 한 그릇 모시는 일을 화엄개벽의 신령한 비결(食一琬이 萬事知)’로까지 보며 생명탄생의 비밀한 근원을 북극태음(北極太陰)의 물로 보아 부인들 몸의 월경(月經)이 곧 지구와 우주의 경도(經度) 그 자체의 출발점이라고까지 가르친다.
김일부 정역의 ‘기위친정’과 올해 기축년(己丑年) 7월 22일 동북아시아 일대의 일식(日蝕)때 나타나는 ‘윤초’가 바로 365일의 윤달이 없어지고 360일의 무윤력(無潤曆) 즉 정역(正曆)이 시작되는 날이라는 주장과 일치하고 있다.

고승대덕들과 불교 지식인들은
촛불주역인 어린이·여인들에게
화엄개벽의 길을 묻겠다는 말을
감히 코웃음쳐 폐기할 수 있는가

만약 ‘윤초’가 윤달이 전격 완전 폐기되는 날의 증거가 아니라 하더라도 최소한 ‘윤달현상’의 감소 추세와 조금치라도 연관되기라도 한다면 누가 이 후천개벽 현상을 환상이라고 폄하할 것인가? 후천개벽은 그 과정의 관측상 오차가 난다 하더라도 분명한 현실이니 객관적 우주현상이다. 그렇다면 부인들 몸 안의 월경은 어떤 우주생명의 전변(轉變)을 가져올 것인가?

나는 아직도 정역을 정확히 해득하지 못한 처지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부인 몸 안의 월경의 변화, 더욱이 올해 기축년 [정역은 기축(己丑)을 후천개벽의 시작이라고 본다.

2004년 쓰나미 때의 지구자전축 북극 복귀는 바로 기축년 개벽의 합궁(合宮), 즉 음인 해양판과 양인 대륙판의 이른바 대충돌로서 무윤력의 월변(月變)을 잉태하는 초례(初禮)였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북극태음(北極太陰)이 새로운 지구와 우주질서를 탄생한다는 것이니 2004년의 뒤를 이어 나타난 지리극(地理極)-지구 에너지 내부 수렴 축과 자기극(磁氣極)- 지구에너지의 외계 확산 연결고리 사이의 상호 이탈과 재형성으로 북극의 거대 빙산이 본격적으로 해빙하고 동토대 밑에 매장된 수수만년의 메탄 층이 녹아 폭발 하므로서 북극이 더워지고 남반수 해수면은 뜨거운 물과 찬물의 복잡화로 초과상승하며 적도에는 반대로 결빙과 강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것이 결국 기축년 올해 7월 22일에 와서 천지경위(天地傾危) 3천년의 일체 기위(己位) 즉 대황락위(大荒落位), 다시 말하면 지난해 촛불에서 정치전면 즉 친정(親政)이라는 임금자리에 정면으로 도전한 이제껏 동서양 일체 역사에서 피보호대상, 구박덩어리에 불과했던 밑바닥·기독교성격 속의 이른바 ‘네페쉬하야’들인 어린이, 미성년, 여성 그리고 쓸쓸한 외톨이 대중들이 ‘십일일언(十一一言)’이라는 고대화백(古代和白)과 같은 새로운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하며 반찬문제, 물 문제, 교육과 건강, 운하의 생태파괴 문제 같은 이제껏 하잘 것 없는, 그러나 밑바닥 민초들에겐 없어서 안될 일용의 양식을 정치 아젠다로 내어 걸고 광장에서 두 달 이상을 평화적·예술적·풍류적, 그리고 부분적으로 신시(神市) 즉 현대 서방중심으로 폭발한 금융위기, 경제대란의 유일한 해결책인 ‘착한경제’의 대안으로 생각되는 ‘호혜·교환·획기적재분배’의 압축인 신시 호혜시장의 예감적 시위로까지 전개한 것이다.

이것을 나는 이미 수차에 걸친 인터넷신문 프레시안 기고문을 통해 현대문명사뿐 아닌 전인류문명사의 근원적 대전환 즉 후천개벽으로 인식할 것을 누누이 강조해 왔었다. 더욱이 촛불세대는 그들 나름의 독자적인 인터넷 통신 과정에서 디지털네트워킹의 특성인 활발한 쌍방향 소통에 의한 전반적 합의인 ‘집단지성’을 도출하여 이 지성의 동의하에 자발적·자율적·우발적·혼돈적·개체적·분권적인 역사상 전혀 신 개념의 군중행동 양식을 창조하게 된 것이다.

이같은 행동양식은 다름 아닌 불교역사 최고 최대의 결집인 서기 1세기에서 7세기 사이의 중앙아시아 대규모 ‘화엄결집’과정의 산물인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의 현대적 전개라고 나는 확신한다.

‘달이 천 개의 강물에 모두다 서로 다르게 비침(月印千江)’이나 ‘작은 먼지 한 톨 안에도 우주가 살아있음(一微塵中含十方)’ 또는 『화엄경』 후반 집중적 강조부분인 ‘인드라망’의 놀라운 대광경을 방불케 하는 이 사태가 오로지 기축년인 올해 7월 22일의 일식 때의 ‘윤초’, 그 무윤력(無潤曆)의 천지변동의 사회적 복승(復勝) 현상이었던 것이다.]의 ‘무윤력’은 ‘잉여에 의한 막강한 불로소득’을 자랑하며 거드럭거리든 카지노 자본주의의 전세계 7만여 속성자본, 이른바 ‘헤지펀드(hedge fund)’를 일거에 몰락시키고 무수한 어린이를 떼죽음시키는 이스라엘 마구니들을 패망으로 이끌며 예수의 간절한 ‘섬김의 사랑’을 팔아 장삿속을 챙겨온 거짓 기독교인들의 신학적 위선을 징벌할 것이다.
이들이 바로 ‘윤달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디 그뿐이겠는가.
자기 몸 안에 잉태된 어린 생명을 강제로 갈퀴로 긁어내는 어머니들의 잔혹한 ‘잉여처리(쓰레기처리)’, 자기 목숨을 함부로 아무렇게나 내던지는 자살자들! 이들의 도덕적·생리적·사회적 몰락이 흉흉한 괴질(怪疾)의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바로 이것이 7월 22일 일식인 ‘윤초’ 현상의 무윤력 사태, 정역 사태다.

나는 해월 선생이 부인 몸 안의 경도가 곧 우주의 화엄개벽의 모심이라고 강조한 것을 수천년 인류 지혜의 역사 가운데 최고의 수승한 가르침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그 스스로 또 하나의 새 천지요 한 한울님인 아이를 자기 몸 안에 모시고(胞胎) 키우고(胎敎) 낳고(出産) 기르고(育兒) 가르치고(敎育) 또 나아가 건강한 몸으로 출가(出嫁)하여 자손을 번성하게 하는 어머니야말로 이 후천개벽시대, 이 화엄개벽시대의 최고의 도사(道師)라고 선생은 가르쳤다.

그리하여 선생 자신은 어두운 저녁 길을 잃고 헤매일 땐 가르치는 스승인 그 스스로가 어린이와 부인들에게 길을 묻고 가르침을 구한다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어린이는 후천 화엄개벽 시대의 한 새로운 한울님, 한 신인(神人)이니 변우동자요 미혼 여성은 구파(瞿波) 여인이며 부인은 그 우주신명이자 신(神)이요 부처인 어린이들, 촛불에서 우리가 보아온 그 어여쁘고 슬기로운 장엄한 비로자나불의 어머니, 바로 그 마야(摩耶)부인이기 때문인 것이다.

정치적 약자였던 청소년들은 쇠고기 정국에서 전면에 나서는 과감성을 보였다.

이쯔음에서 어디 한번 실례를 무릅쓰고 질문하겠다.
존경하는 고승대덕들, 학덕 높은 불교 지식인들에게다.
조그맣고 가난한 이 조선 땅, 976번이나 외국의 침략아래 짓밟힌 이 어수룩한 민족, 그것도 지지리도 못생긴 민초들과 어린이, 여인들, 쓸쓸한 외톨이들(바로 그들이 촛불의 주역이다!), 바로 그들 앞에 해 저무는 이 문명의 밤, 무릎을 꿇고 참 한울의 진리, 화엄개벽의 길을 묻겠다는 해월 선생의 이 발언을 당신들은 감히 코웃음쳐 폐기할 수 있을 것인가?
『화엄경』은 자타가 공인하는 불교 최고 최대의 진리 결집의 경전이다. 그리고 전 인류의 지성사에 가장 웅대하고 높고 깊고 다양한 통합성의 진리의 대 백과사전인 것이다. 어느 누가 『화엄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이 『화엄경』에서 이러한 경우를 두고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입법계품」에서 여성, 어린이, 그리고 모성과 포태가 지닌 화엄개벽적 의미에 대하여서 이미 지난번 글에서 이야기하였다. 이미 엠네스티 인터네셔널의 촛불관도 소개하였다.
이제 무엇이 필요한가?

우리는 이제 다음과 같은 결정적 판단이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
“『화엄경』은 이제 촛불 자신들의 가장 중요한 교과서다.”
“정역 등의 개벽사상은 촛불 자신들의 참고서다.”
“동학과 해월의 내측(內則) 내수도문(內修道文)은 촛불 자신들의 수련 지침서다.”
그리고 또 하나 반드시 촛불들이 잊지 말아야 할 외국 필독서는 “예수 복음서”이다.
해월 선생은 동서남북 전인류정신사, 문화사의 기나긴 불변의 전통 핵심 영역인 제사(祭祀) 방법, 벽 저쪽(彼岸)에 멧밥과 신위(지방)를 차려놓고 이쪽(此岸)에 있는 상제(喪制)인 나, 즉 주체가 끊임없이 그쪽을 향해 절하고 비는 ‘향벽설위(向壁設位)’를 단연코 거꾸로 뒤집어(바로 이것이 후천개벽이요 기위친정이요 인류문명사 전체의 근본적 대전환이다!) ‘향아설위(向我設位)’, 즉 멧밥과 신위를 저 벽쪽에서 번쩍 들어다 이쪽 제사지내는 상제인 나 자신 앞에 갖다 차려놓고 내가 나 자신을 향해 절하고 비는 향후 오만 년 내내 결코 바꾸지 못할 대 문화혁명을 단행한다.

정역의 개벽사상은 촛불 참고서
동학의 내수도문은 수련지침서
그리고 촛불들이 잊지 말아야 할
외국의 필독서는 예수복음서다

1895년 4월 5일 오전 11시다.
그 시간 제사 때에 해월 선생은 다음의 말씀을 남긴다.
‘만약 조상이나 수운 선생이나 한울님이 제사에 오신다면 하필 생명 없는 저 벽 근처에서 서성이겠느냐! 반드시 살아 있는 대낮의 신령인 내 안에 오시지 않겠느냐! 생명의 밥은 당연히 바로 이 산 신령에게 바쳐야 당연하지 않겠느냐! 이로써 우주 억천만년의 세월과 수수억천만의 신령과 온갖 수수억천만 사물들과 간 사람, 올 사람 온갖 동식물, 갖은 물건들, 생각들, 경우들, 일과 티끌들이 바로 지금 여기 내 안에 생생히 살아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니, 지금 여기로부터 옛날로 훗날로, 수수겹층의 우주로, 우주 그 밖의 또 수많은 우주로 나아가고 다시 내 안에 끝없이 지금 여기로 되돌아오는, 마치 들숨 날숨과 같은 산 한울님인 내게 바치는 밥의 참다운 뜻을 또한 알게 될 터이다. 한울님의 그 한울다운 신령한 활동을 불붙이는 바로 그 한울의 힘이 다름 아닌 밥이 아니겠느냐!’
정리하겠다.

바로 이것이 다름 아닌 ‘화엄개벽’이요, ‘화엄개벽선’으로서의 ‘모심의 예절’이다.
모심이 이러해야만 또한 화엄개벽의 주동력일 수 있지 않겠는가!
바로 이 모심의 사상은 나아간다. 사방팔방 시방으로 성큼성큼 나아간다.
선생은 ‘사람을 대접하고 물건을 접하는 일(侍人接物)’에서 다음의 말씀을 남긴다.
‘어찌 사람만이 홀로 한울님을 모셨다 이르리오. 천지만물이 다 한울님을 모시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저 새 소리도 또한 시천주(侍天主)의 소리니라. 우리 진리의 뜻은 한울이 한울을 먹고 한울이 한울을 융화할 뿐 아니라 만물이 낳고 낳는 것이 마음과 기운을 받은 뒤에 그 생성을 얻기 때문에 우주만물이 모두 다 한 기운과 한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다. 우주만물은 하나같이 한울의 영기(靈氣)를 받고 태어났기 때문에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러한 연결은 털벌레 곤충에까지 이어진다. 날짐승 삼천도 각각 그 종류가 있고 털벌레 삼천도 각각 그 목숨이 있으니 물(物)을 잘 모시면 그 덕(德)이 만방에 미치리라.’
나는 이쯔음에서 동학이 다름 아닌 화엄개벽의 모심선, 몸으로의 선적 모심의 길임을 확실히 깨닫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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