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전성기 때 쓰인 향가의 대부분이 불교를 노래했다. 특히 적(笛)을 불어 달을 멈춰 세웠다던 월명사는 향가를 불렀다. 월명사가 향가 도솔가를 지은 때가 진감선사가 귀국한(830) 때보다 150여 년이 앞선다. 그런 월명사가 “나는 성범(聲梵)은 못 한다”고 했으니, 당시에 성범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이 신라에 있었던 것이다. 그 성범이 서역에서 바로 들어온 범어범패였는지, 진감선사 이전에 일부 들어와 있던 중국의 한어범패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한국의 역대 불화들을 보면 고려조의 예술성과 고급스러움이 압도적이다. 그럴 때마다 ‘
하동 쌍계사에 세워진 ‘대공탑비문’에는 진감선사의 선조에 대한 내용, 부친의 수행 성품, 어머니의 태몽, 어려웠던 가정형편, 삭발 후의 수행과정, 선사의 생김새와 용모, 당시 왕들과 진감선사의 일화, 홍법 활동과 의미, 법력과 성품 등 진감선사에 관한 내용이 한 권의 책이라 할 정도로 빽빽하다. 비문에 표시된 ②부분을 보면 진감의 선조는 한족(漢族)으로 산동지방에서 벼슬하던 사람이었으나, 수나라와 당나라의 침입으로 어려움을 겪다 신라로 이주하여 금마(현 익산)에 살았고 아버지는 최창원(崔昌原) 어머니는 고(顧)씨였다. 30세 되던
동진 때부터 강회(江淮) 이남은 불교사상 연구와 문화 발전의 붐이 있었다. 중국 각지 사원의 범패가 강남에서 전해졌고, 의례 율조가 강남 범패로 통일될 정도로 당말·오대시기에 총림 제도가 남방에서 발전하였다. 명·청대에는 율종의 발원지인 바오화산(寶華山)이 영향력 큰 전계 도량이었고, 티엔닝스(天寧寺)와 티엔통스(天童寺)의 법회가 매우 성했으며, 최초로 수륙법회를 설행한 진산스(金山寺)도 여기에 있다. 그리하여 ‘고승전’에서 언급한 ‘음악을 잘하는 승려’의 절반 이상이 강남의 승려들이었다. 속강의 유행 이후 사찰에는 전문 예승(藝僧
역경이 한창 이루어지고 있던 그 무렵, 혜교(慧皎·497~554)는 ‘고승전’에서 “번역가는 많으나 소리를 전한 사람이 별로 없음”을 아쉬워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멱력(覓歷), 백법교(帛法橋), 담약(曇龠), 담천(曇遷), 승변(僧辯), 혜인(慧忍), 소자량(蕭子良), 양무제(梁武帝) 등 승속을 넘나드는 인물이 한어 범패 창달에 기여하였다. 그리하여 도세(道世)는 ‘법원주림’의 ‘패찬편’에서 “조식이 범창(梵唱)을 감득했고, 백법교(帛法橋)가 서원하여 미묘한 음성을 통달하고 …(중략)… 재실(齋室)에서 몽향(夢響)이 발하였다”고 술
붓다의 법언이 중국에 전래된 초기에는 남쪽의 오음(吳音)과 북쪽의 한음(漢音)이 교차해 오다 수·당대에 이르러 통합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 무렵 중국 범패의 핵심 인물은 석도안(釋道安, 312~385)이었다. 도안은 동진(東晉) 16국 시기에 상산(常山) 부류현(현 기주 부류성촌·冀州 扶柳城村)에서 공맹을 섬기는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가 세상을 떠나 사촌 공(孔)의 집에서 자란 그는 얼굴이 못생겼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도안의 초상을 보면 안면이 우락부락하고, 후베이성에 세워진 동상 또한 비슷하다. 그러나 머리가 좋아
일본 학자 마찌하다료오슈(道端良秀)가 “조식의 범패는 오(吳)의 지겸(支謙)과 강승회(?~280)에 의해 계승되었다”고 할 정도로 오나라에서 활동한 역경승들에게 경전은 그 자체가 범패였다. 지겸은 황태자의 스승이 되어 국정에도 참여하는 가운데 ‘대아미타경’ ‘유마경’ ‘무량수경’ 등을 번역하였다. 축율염(竺律炎)은 유기난(維祇難)과 함께 ‘법구경’ ‘아차말보살경’을 번역하였고, 유기난이 세상을 떠난 후인 230년에는 축율염이 단독으로 ‘삼마갈경’ ‘범지경’을 번역하였으며, 지겸과 함께 ‘마등가경’ ‘불의경’ 등을 번역하였고, 지강량
붓다의 말씀이 중국으로 들어온 초기에는 말씀 그 자체를 외는 음성경전이었다. 이들을 한어로 전환하여 기존 율조에 얹어보니 어그러졌다. 붓다의 말씀과 그를 칭송하는 범음이 뜻글자인 데다 고저승강(高低乘降)의 한어 율조와 맞지 않아 겉돌고 있던 그때 천재 시인 차오지(曹植·192~232)를 만났다. 차오지는 10살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시론(試論), 사(詞), 부(賦)와 같은 문장을 읊을(頌) 수 있었으며 스스로 지을 수도 있었다.그러자 부친인 조조가 아들의 재능이 믿기지 않아 다른 사람이 쓴 것을 자신의 것이라 하는 건 아닌지 의심하
호모사피엔스의 진화 단계 중 고등종교의 출현 시기는 생활양식, 정치와 학문, 문화와 예술을 완전히 바꾸어 놓은 혁명기였다. 서기전 500년 전후 세계 각지에서 발현한 이들 종교의 공통점은 ‘말씀’이라는 도그마가 있어 유교·기독교·불교와 같이 ‘교’자가 붙는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고로스요, 그 존재 형식이 말씀이라 구약 성서에서 “태초에 말씀이 있으셨다”고 하며, 그 말씀의 육화가 예수의 탄생이었다. 특정 창시자가 없는 힌두교는 브라흐만의 존재 형식이 ‘말씀’이었고, 말씀을 읊는 사제들의 음성을 신성의 실체로 간주하였다. 그들은 복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