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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실상부 ‘서소문 역사공원’으로 바로 잡아야

기자명 법보
  • 사설
  • 입력 2022.09.23 21:04
  • 수정 2022.09.23 21:12
  • 호수 1650
  • 댓글 3

가톨릭, 성지화에만 혈안
이웃종교 역사마저 왜곡
다문화‧다종교 의식 부재
‘집착‧탐욕‧독단’만 키워

조선불교 중흥을 이끈 허응 보우 스님의 순교를 ‘처벌’로 인식하게 하는 왜곡된 역사관이 광화문광장에 이어 ‘서소문 역사공원’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 가톨릭이 운영하는 역사박물관 상설전시관 불교 섹션에 첫 번째로 전시된 건 율곡 이이의 ‘율곡집’이다. 수많은 불서를 놔두고 굳이 조선시대 대표 척불론자가 쓴 ‘율곡집’을 내세운 이유가 궁금한데 전시 안내판에서 그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서소문 역사박물관 측은 당대 최고 선지식 보우 스님을 요승으로 폄훼하는 내용이 담긴 ‘논요승보우소(論妖僧普雨疏·요망스러운 보우를 논박하는 상소문)’를 명기하고 거기에 빨간 줄까지 그어가며 ‘율곡집’에 실려 있음을 알리고 있다. 

아울러 ‘불교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유교국가로서의 조선을 바로 세우고자 하는 의도로 쓰여졌다’고 설명해 놓았다. 전시관을 찾는 시민들에게 ‘보우=요승’ ‘불교=이단’ 프레임을 각인시키려는 의도가 농후해 보인다. ‘서소문 역사공원’에서 가톨릭을 부각하려 왜곡하고 걷어낸 건 불교 역사문화만이 아니다.

서소문은 한양과 의주를 잇는 의주로와 연결되어 있고, 용산‧마포 등 삼남지역으로 향하는 관문 역할도 담당했던 교통 요지였기에 각 지역의 물자들이 모였다가 흩어졌다. 관영 창고가 설치되었을 뿐만 아니라 칠패시장(七牌市場)이 활기를 띠며 종로, 이현과 더불어 한양을 대표하는 시장으로 우뚝 섰다. 

서소문 일대 개발 계획에 따른 ‘의주로종합개발계획’(1973)이 세워지며 근린공원의 형태로 변모(1976)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청과도매시장은 용산으로, 수산시장은 노량진으로 이전됐고, 그 자리에는 공원과 대형 건물 등이 들어섰다. 또한 별무반을 창설하며 9성을 쌓아 여진을 평정하고 남경(지금의 서울) 조성에 공로가 혁혁한 윤관 장군의 동상이 1979년 세워졌다. 그로부터 5년 후인 1984년 ‘순교현양탑’이 세워졌다. 이후 기존의 순교현양탑은 약현성당 경내로 옮겨지고, 1999년 지금의 순교현양탑이 새로 조성됐다. 

‘서소문 역사공원’은 서울대교구의 사업 제안을 서울 중구청이 전격적으로 받은 2011년 추진됐다. 2012년 당시 염수정 대주교는 제19대 국회 가톨릭신도위원회 창립총회에 참석해 이 사업의 필요성을 역설했을 만큼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서소문 일대가 가톨릭 성지로 변모한다는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2014년 1월 ‘서소문역사공원 바로세우기 범국민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이름만 ‘역사 공원’이었지 사실상 ‘순교 성지’였던 이 사업은 강행됐고 2016년 7월 지금의 순교자현양탑을 제외한 기존 서소문 공원 부지 철거작업이 진행됐다. 윤관 장군의 동상도 이때 철거됐다.

서민들의 쉼터이자 삶터였던, 그들의 피와 땀이 배인 시장의 역사를 지금의 ‘서소문 역사공원’은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가? 단 몇 문장이라도 기록해 두었으니 “문제 없다”고 강변할 것인가? 나라가 위태로울 때 백성들과 함께 싸운 동학 지도자의 이름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반면 서양 신부에게 편지를 보내 “어서 함대를 끌고 와 조선을 쳐부수어 줄 것”을 요청한 황사영 이름은 순교자현양탑에 새겨져 있다.

동학농민운동 지도자들의 숭고한 정신은 지우면서 나라를 넘기려 한 ‘죄인’마저도 천주교인이라는 이유로 순교자로 만드는 가톨릭의 행태는 역사 왜곡 행위에 가깝다. ‘가톨릭 성지화’에만 혈안이 되어 있으니 서민의 삶과 이웃 종교의 역사가 눈에 들어올 리 없다. 

2020년 1월 종교투명센터가 서소문 역사공원을 주제로 개최한 ‘종교와 재정 좌담회’에서 당시 김유철 경남민주언론시민연합 이사가 가톨릭계에 전한 일침은 지금도 유효하다. 

“서소문 역사공원 설립을 추진한 서울대교구가 우리 사회의 다종교, 다문화를 비롯한 다양한 관점을 인식했다면 자신들의 노력이 집착으로 바뀌는 것은 경계했을 것이다.”

김 이사의 제언처럼 지금이라도 바로잡아 “이웃 종교와 시민단체의 우려를 적극 반영 하여 민족 역사를 드러낼 수 있는” 명실상부한 ‘서소문 역사공원’을 조성해야 한다. 그러려면 가톨릭만을 위한 시설과 이미지부터 걷어야 한다.

[1650호 / 2022년 9월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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