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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로마 ‘바티칸 시티’ 조성하려는가?

기자명 법보
  • 사설
  • 입력 2022.09.07 20:13
  • 수정 2022.09.09 08:30
  • 호수 1648
  • 댓글 11

‘서울 정도 600년’ 역사 묻고 
‘천주교 성지화’ 조성에 혈세
가톨릭, ‘박해‧순교’ 코드로
한반도 전역 성지화 꿈꾸나

미켈란젤로의 돔에서 내려다본 성 베드로 광장.  
미켈란젤로의 돔에서 내려다본 성 베드로 광장.  

‘서울 가톨릭 성지화’는 일반 상식의 선을 넘었다. ‘광화문‧서소문 가톨릭 성지화’ ‘서울 일대 가톨릭 성지 명명 간판 설치’ ‘광화문 역사물길 왜곡’ 등 일련의 사업들은 특정 종교편향을 넘어 기존의 문화와 역사까지도 비틀고 묻어 버리는 ‘역사‧문화 왜곡’이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가톨릭교 교황이 2014년 광화문 광장에서 개최한 시복식. TV장면 캡처.
프란치스코 가톨릭교 교황이 2014년 광화문 광장에서 개최한 시복식. TV장면 캡처.

가톨릭과 지자체의 ‘긴밀한 연대’ 속 성지화 사업은 2014년 프란치스코 가톨릭 교황이 내한했을 때부터 노골적으로 추진됐다. 프란치스코 가톨릭 교황은 서울 서소문과 서산 해미읍성을 찾아 그곳에서 처형당한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다. 서울시가 국비‧시비‧구비 596억원을 투입해 조성한 ‘서소문 역사공원’은 ‘천주교 성지’로 완전히 변모됐다. 또한 서울시가 추진한 총 44.1km의 ‘서울 순례길’은 명동성당, 광화문 시복 터, 서소문 역사공원 등이 포함된 ‘천주교 서울 순례길’이 되었다. 해미읍성과 내포 문화권 개발 사업이 연계되며 해미 일대에서는 가톨릭 성지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프란치스코 가톨릭교 교황이 서산 해미읍성에서 청년대회 폐막미사를 드리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미디어폴]
프란치스코 가톨릭교 교황이 서산 해미읍성에서 청년대회 폐막미사를 드리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미디어폴]

교황청은 천주교 서울 순례길과 해미를 2018년 9월, 2021년 12월 각각 ‘한국 국제성지’로 지정했다. 국제성지 지정에 가톨릭 신자들은 ‘영광’으로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일반 시민에게는 ‘성지를 건들지 말라’는 압력으로 느낄 수 있다. 

동아일보 기사 캡처. 가톨릭교 교황 방한 1주년을 맞아 광화문 광장에 바닥돌을 설치했다. 광화문 광장 재구조화 과정에서 더 견고한 금빛 청동으로 변경된 상태다. 
동아일보 기사 캡처. 가톨릭교 교황 방한 1주년을 맞아 광화문 광장에 바닥돌을 설치했다. 광화문 광장 재구조화 과정에서 더 견고한 금빛 청동으로 변경된 상태다. 

국민의 혈세를 들여가며, 그것도 지자체가 앞장서서 특정 종교의 성지를 조성하는 것도 일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데, 서울시는 ‘가톨릭의 가치’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역사마저 왜곡‧비약하고 있다. 광화문 역사물길의 조선시대 연표석이 대표적이다. 

일례로 김대건 신부의 사망은 ‘순교’로, 조선중기 불교중흥을 이끌다 제주 유배 중 입적한 허응 보우 스님은 ‘처벌’이라 기록했다. 김대건 신부는 페레올 주교와 함께 충청도로 잠입해 항로를 그린 지도를 중국 어선에 넘겨주다 연평도 부근의 관헌에게 붙잡혀 처형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허응 보우 스님은 제주목사 변협에게 장살당했다. 스님들의 도첩제와 승려들의 과거시험인 승과제를 부활시키며 전법의 기치를 높이 든 것에 대한 유생들의 불만에 기인한 것이었다. 역사적 추론으로는 김대건 신부가 ‘처벌’, 허응 보우 스님이 ‘순교’로 명시해야 마땅하다.

명동성당 준공(1898), YMCA 창설(1903)을 기록할 정도면 조선의 고등교육기관이자 최고학부인 성균관 한양 이전(1398)도 기억해야 한다. 서소문 역사공원 현양탑에는 나라가 위태로울 때 백성들과 함께 싸운 동학 지도자 이름조차 없다. 반면 서양 신부에게 편지를 보내 “어서 함대를 끌고 와 조선을 쳐부수어 줄 것”을 요청한 황사영 이름은 새겨져 있다. 나라를 넘기려는 사람들까지 천주교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순교자로 둔갑시켜야 한단 말인가? 

‘천주교 서울 순례길’ 일대에 세워진 24개의 성지 명명 안내판은 아연실색하게 한다. 장희빈 등 수많은 왕가 친척들과 백성의 시신이 통과한 광희문도 천주교 신자의 시신이 나갔다는 이유로 성지다. 이런 식이면 죽음에 이른 조선시대의 천주교 신자들은 모두 순교자이자 성인이고 그들이 살았던 집, 걸었던 길, 건넜던 강, 올랐던 산 모두 가톨릭 성지로 명명될 듯하다. ‘순교‧박해’ 코드 하나로 한반도 전역을 가톨릭 성지화하는 ‘터무니없는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건가?

석길암 동국대 교수의 비판을 서울시는 귀담아들어야 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서울특별시가 어쩌다 역사 왜곡에 앞장서는 기관이 됐나. 국가 차원에서는 중국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역사 왜곡 등 주변 국가들의 역사 왜곡을 바로 잡고자 노력하는데 정작 서울시는 역사의 객관성을 완전히 상실하고 민족 내부의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역사를 내부에서 무너뜨리는 행동이 아닌가. 민족의 과거를 지우면 민족의 미래도 사라진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가톨릭 순례길’을 추진했던 경기도 광주시는 비판의 목소리를 겸허히 수용하며 ‘역사문화 길’로 바꾸었다. 서울시도 ‘천주교 역사 순례길’을 천주교 서울 대교구로부터 찾아와 ‘서울 역사문화 순례길’로 다시 디자인해야 한다. ‘서울 정도 600년’을 묻고 로마의 바티칸 시티가 될 이유는 없다.

[1648호 / 2022년 9월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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