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195미터에 이르는 시기리야 록(Rock). 이 바위는 정상에 펼쳐진 바위궁전으로 유명하다. “스리랑카 문화 삼각지라고요?”“아누라다푸라와 폴론나루와 그리고 캔디를 말해요.”“그런데요?”“시기리야는 문화 삼각지 한 가운데 있습니다.”시기리야는 스리랑카 ‘문화 삼각지’라 불리는 아누라다푸라와 폴론나루와, 캔디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높이 195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바위산 정상에 펼쳐진 바위궁전으로 유명한 곳이다. 세계 8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다. 그래서 스리랑카 여행 중 가장 구미(?)를 당기는 곳이기도 하다. 세계 8대 불가사의 중 하나 바위궁전이 있는 일명 시기리야 록(Rock)은 정글 속에 생뚱맞게 우뚝 솟아있었다. 멀리서도 한 눈에 들어오는 이 바위를
아이를 안은 엄마, 할아버지와 할머니, 꽃과 갖가지 과일을 함께 든 청년들 등등. 모두 하얀 사리를 입고 루완웨리세야 대탑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누라다푸라의 6개 마을 사람들이 모여 나라의 발전과 내전이 하루 속히 평화롭게 해결되기를 기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숙연할 따름이다. 아누라다푸라에 우뚝 솟은 순백의 루완웨리세야 대탑은 경이로웠다. 55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탑. 가까이 할수록 탑의 위엄은 순례자를 한 없이 높은 곳에서 내려다봤다. 고개가 아팠다. 합장하고 다시 고개를 들었지만 경건하지 못한 순례자는 이내 고개를 아래로 숙일 수밖에. 처음 루완웨리세야 대탑이 건축될 땐 그 높이가 110미터였다고 하니 그 웅장함을 가히 가늠할 수 없다.그러나 장엄함 뒤에는 숨겨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보리수 주변에는 꽃과 코코넛 등의 공양물이 눈에 띄었다. 옆으로 뻗어 황금 받침대에 의지하고 있는 나무가 최초 보리수. 학식의 많고 적음을 가리지 않고 맑은 마음을 지닌 이에게 그 영혼을 풍요롭고 향기롭게 가득 채워주는 것이 깨달음 아닐까. 한 치의 의심 없는 스리랑카 불자들의 신심 앞에 문득, 가을바람에 이는 황금빛 물결이 전하는 풍요로운 향기가 밀려든다. 온갖 특혜를 누릴 수 있는 한 여인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파르라니 머리를 깎았다. 인도 아쇼카 왕의 딸이었던 그녀는 공주라는 허울을 벗어던졌다.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 세간의 모든 일들이 씨줄과 날줄로 얽혀 있다는 사실을, 온 우주의 법계가 모두 자신 안에 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았
비교적 아담한 모습의 이수루무니아는 바위벽에 부조 형태로 조성돼 있다. 그 옆에는 수영장처럼 보이는 연못과 박물관이 존재한다. 기원전 500년경 스리랑카에 수립된 고대도시 아누라다푸라. 그 곳에 간다. 당시 왕이 불교에 귀의한 이후 스리랑카의 정치와 경제의 중심이 되었던 곳. 바로 그 불교 성지에 2300여년을 거슬러 발을 디디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물어보자. 왜 떠나는가. 수도자의 구도행까진 아니더라도 떠남에는 목적이 있어야하지 않을까. ‘고대 도시이자 불교 성지 아누라다푸라가 거기 있으니 설렌다’는 식은 곤란하다. 아무래도 최초의 승원 이수루무니아가 이끌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패엽경 사찰 알루위하라가 있는 마탈레에서 북쪽으로 향하는 길. 스리랑카에 최초
불교 최초 경전 ‘패엽경’이 탄생한 알루위하라. 아이들의 표정이 천진하다. 같은 강물에 발을 담가도 강물은 그때 그 강물이 아니다. 이 말을 수없이 되뇌었다. 약 2000여 년 전인 기원전 1세기, 세계 최초의 불교 경전이 만들어진 사원 알루위하라를 찾기 전 다진 마음이었다. 남은 유적들을 이제와 둘러본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 싶었다. 그래도 불교 최초 경전 ‘패엽경’을 언제 또 볼 수 있겠는가! 같은 강물에 발을 담가 흘러간 그 때 그 강물의 체온과 감촉, 그 속에 깃들어 내밀히 숨 쉬었던 생명력을 더듬어 보고 싶었다. 첫 경전 제작한 알루위하라 사원 캔디에서 북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마탈레 지역에 위치한 알루위하라로 향했다. 가는 길 곳곳에서 만난 스리랑카 아침 풍경은 한
스리랑카 불자들은 가족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부처님께 주로 꽃을 공양한다. 영국 BBC 방송이 선정한 ‘죽기 전에 가 봐야할 50곳’ 중 41위로 손꼽힌 불교 국가 스리랑카. 지난 7월 짧은 기간이지만 생애 처음으로 스리랑카 순례 기회가 찾아 왔다. 카메라와 운동화, 그리고 수첩과 펜 등 간단한 짐만 배낭에 담고 길을 나섰다. 꽉 찬 배낭엔 스리랑카를 담을 수 없으리라. 짐도 마음도 비운 채 스리랑카 순례에서 만난 그네들의 눈물과 희망으로 채운 배낭을 푼다. 길을 나선다. 낯선 땅 스리랑카로 향한다. 상좌부 불교 국가라는 짧은 지식만 갖고 나선 길. “안 만큼 보인다”는 말은 마음에 두지 않는다. 오히려 낯선 풍경들에 대한 새로움과 두려움만 안고 간다. 비운 만큼 채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