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소년들의 단기출가의식인 신쀼행렬. 싯다르타 왕자와 같이 화려하게 치장한 소년의 출가를 축하하며 가족 모두가 사원을 참배한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결국엔 처음 출발한 그 자리로 다시 돌아오고야 마는 것이 여행이다. 처음의 자리로 돌아갈 계획이 없다면 그것은 방랑이지 여행은 아닐 터. 순례 또한 마찬가지다. 가고 가다 보면 결국엔 내가 서 있는 곳, 내 마음자리를 발견하는 것 아닐까. 순례를 통해 내 자리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방황일 뿐 순례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이번 미얀마 순례의 마지막 여정에서 처음 출발지였던 양곤으로 향하는 것은 출발의 자리로 돌아가는 여행의 참 의미인 동시에 미얀마 불교의 심장, 그 마음자리로 돌아가는 순례의 마지막 통과의례와도 같다. 양
잔잔한 인레호수의 물비늘 위로 햇살이 눕는다. 한 쪽 다리로 능숙하게 노를 젓는 인따족 어부는 인레의 넉넉한 품에서 오늘도 하루를 보낸다. 꽁바웅 왕조의 마지막 수도 만들레이에서 이륙한 비행기는 불과 30분 만에 혜호 공항에 몸을 내린다. 미얀마 순례 기간 내내 비행기를 이용해 도시 간 이동을 하다 보니 30분 정도의 비행은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아침체조마냥 가뿐하다. 이번 목적지는 인레 호수다. 만들레이, 바간에 뒤지지 않는 미얀마의 성지이자 최고의 휴양지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명소다. 인레호수가 위치하고 있는 냥쉐는 해발 875미터에 위치한 고원도시로 미얀마의 다른 도시들에 비해 선선한 기우를 자랑한다. 덕분에 유럽의 여행객들이 가장 선호하는 휴양지가 바로 냥쉐, 그
밍군행 배가 출발하는 선착장에선 어른 아이 할것 없이 강물에 몸을 씻고 빨래를 한다. 해가 중천에 떠있는 시간, 잔뜩 달아오른 만들레이 시내를 돌아다니는 대신 배에 올랐다. 만들레이에서 약 11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밍군 유적지로 가기 위해서다. 육로로도 갈 수 있지만 직선도로가 아닌 우회로를 이용해 멀리 돌아가야 하므로 가장 애용되는 교통수단은 배편이다. 이라와디강변에서 배를 타고 약 1시간 30분 정도만 가면 밍군 유적에 도착할 수 있다. 선착장은 손님을 태우기 위해 기다리는 배들로 마치 시외버스터미널을 보는 듯 북적거린다. 크고 작은 배들이 어깨를 맞대고 정박해 있는 탓에 이 배들이 과연 어떻게 이 좁은 틈을 비집고 무사히 강 가운데로 나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다. 하지만
160여 년전 만들어진 우빼인 다리. 다리에 사용된 1086개의 티크목은 패망한 어와 왕조의 버려진 궁궐에서 가져온 것이다. 만들레이의 아침공기는 신선하다. 바간에 비해 좀 더 물기를 머금은 상쾌한 느낌이지만 내륙에 위치한 만들레이는 미얀마에서도 가장 더운 지역으로 손꼽힌다. 해가 더 높이 올라가 기승을 부리기 전 서둘러 일정을 시작해야하는 이유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공항을 빠져나와 만들레이 시내로 들어가기에 앞서 아마라뿌라로 먼저 향한다. 만들레이 남쪽으로 약 11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아마라뿌라는 꽁바웅 왕조의 5대 왕인 보도퍼야 치세의 수도였다. 아마라뿌라는 빨리어로 ‘불멸의 도시’라는 멋진 뜻을 갖고 있지만 1839년 대지진으로 수도가 파괴되고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하녀의 시중을 받고 있는 옛 꽁바웅 왕조의 공주들. 책을 한 권 샀다. 『버마 사진 여행 1855~1925』. 버마의 마지막 왕조인 꽁바웅 왕조가 영국의 식민지가 된 1885년을 전후해 촬영된 사진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길거리 노점상의 수레위에서 발견한 책은 오래 동안 팔리지 않았는지 책장을 넘길 때마다 메케한 곰팡내를 풍긴다. 책 먼지 때문에 잔기침이 계속 나오지만 누렇게 빛바랜 사진 속 옛 미얀마의 모습은 도저히 책을 덮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검은색과 흰색만으로 표현된 사진, 그나마도 빛이 바래 황토 빛을 띠고 군데군데 얼룩도 있지만 그 속의 주인공들이 뿜어내는 화려했던 시절의 영화를 덮어버리기에는 그 빛이 너무도 찬란했다. 섬세하게 장식된 웅장한 궁전, 비단옷과
바간에서도 최고의 석양을 만날 수 있는 장소로 손꼽히는 쉐산도파고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가려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탑의 나라 바간이라고 해서 하루 종일 파고다나 사원만 순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실 바간은 미얀마 최초 통일왕국의 수도라는 명성에 걸맞게 화려한 문화와 예술의 역사를 자랑하는 무형유산의 보고이기도 하다. 특히 바간의 칠기공예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데 바간 거리 곳곳에서 쉽게 눈에 띄는 간판 역시 바로 이 칠기공예를 소개하는 간판들이다. 햇볕이 뜨거운 한 낮에 파고다를 돌아보는 것은 고역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낮 시간 동안 잠시 순례를 멈추고 바간의 이국적인 예술을 감상하곤 한다. 미얀마의 칠기공예를 보기위해 찾아간 작업장에는 10대로
이라와디 강변의 저녁. 황금빛 불탑 아래서 바간의 주민들이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다. 본격적인 바간 순례를 시작하려니 막막함이 앞선다. 현재 바간 지역에는 2227개의 파고다가 남아있다. 아노라타왕이 불법에 귀의한 후 바간 지역에는 약 5000여 개의 파고다와 사원이 세워졌지만 바간 왕조는 불과 240여년 만에 쇠락하기 시작, 당시 세력을 확장하고 있던 몽골의 쿠빌라이칸에게 1287년 정복당했다. 수많은 파고다와 사원들이 훼손당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1975년 발생한 진도 6.5의 강진으로 많은 사원과 파고다가 무너지거나 파손됐다. 하지만 그 오랜 풍파를 견디고 지금까지 남아있는 파고다와 사원 가운데 영국 식민지 시대 이전에 세워진 것만을 헤아린 숫자가 무려 2227
수천개의 사원과 파고다가 흩어져 있는 탑의 나라 바간. 1044년 아노라타왕이 미얀마 최초의 통일왕조를 세운 후 바간은 통일 왕조의 수도가 되었다. “내일 아침 기상 시간은 새벽 4시입니다. 늦지 않도록 준비해주세요.”미얀마의 관문 양곤에 도착한 첫 날, 밤새도록 아름답게 불을 밝히고 있는 쉐다곤 파고다의 장엄한 모습에 매료되어 잠이 오지 않을까봐 가뜩이나 걱정인데 다음날 스케줄을 알려주는 가이드의 말엔 한 치의 양보도 없을 기세다. 그도 그럴 것이 아침 6시에 출발하는 미얀마 국내선 비행기를 타지 못하면 순례의 전 일정이 엉망이 되기 때문이다. 미얀마는 남북으로 길게 자리 잡고 있는 나라다. 전체 면적은 678,330㎢로 한반도의 약 3.5배, 남한의 6배다. 동남아시아
‘미얀마’라는 말에 앞뒤 가릴 틈도 없이 마음은 벌써 짐을 꾸리고 있었다. 그래서인가, 정신을 가다듬었을 때는 이미 국제선 비행기에 몸을 싣고 난 후였다. 왜 그토록 다시 가고 싶었는지, 처음도 아닌데 말이다. 그곳에 무엇을 떨구고 온 것도 아닌데…. 그 의문이 풀린 것은 미얀마 공항에 다시 발을 딛고 난 그 후였다. ‘시간이 멈춘 땅.’누군가는 미얀마를 그렇게 불렀다. 한때 미얀마는 동남아시아의 맹주였다. 1962년 쿠데타가 일어나고 군사정권이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심지어는 신생국가였던 싱가포르의 리콴유 총리가 “버마(당시의 미얀마 국가명)만큼 잘 살게 해 주겠다”는 말을 했을 정도로 미얀마의 경제발전은 동남아시아국가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영국과 일본의 식민 지배를 차례로 거치며 치열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