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46회에 걸쳐 고대국가의 발전과 불교라는 주제로 신라 ‘중고(中古)’ 시기 불교의 수용과정과 사회적 역할을 다각도로 검토해 보았다. 이제 내용을 종합하면서 고대국가의 발전과정에서 불교가 담당했던 역할, 특히 왕권의 신성화와 정통성 확립에 기여했던 불교의 역할을 정리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고자 한다.신라는 3국 중 가장 늦게 발전하기 시작했으나, 선진국이던 고구려와 백제를 병합해 3국통일을 달성하였고, 이어 3국의 문화를 종합하여 고대문화의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그리고 건국한지 992년 만에 멸망하기에 이르렀으나, 다음 시대를
이왕이면 자주 절에 가고 싶어서 집 근처 여여선원으로 새벽기도를 다녔다. 하지만 3년 기도를 회향하던 날 남편은 “새벽에 절에 가는 것을 끝내면 안 될까? 새벽에 외출하는 것 자체가 위험하니까 집에서 기도하면 좋겠다”라며 불편해 했다. 남편의 부탁을 들을 수 밖에 없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동참하던 절 봉사활동도 결국 남편의 요청에 그만두게 되었다. 함께 사는 사람이 싫어하는 것을 나만 좋자고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진정한 해결 방법은 아닌 것 같았다.곰곰이 나 자신을 돌이켜보았다. 어릴 적부터 사람들은 내게 고민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부처님의 깨달음을 실천하는 종교다.” 오늘 불교대학 입학식에 오신 여러분에게 이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부처님을 믿는 것은 두 번째, 세 번째 일이고 첫 번째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부처님의 깨달음을 실천하는 것입니다.이렇게 말씀드리면, “불교는 부처님을 믿는 종교 아닙니까? 믿는 것이 첫 번째 아닌가요?” 하고 질문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많은 분이 그렇게 믿고 계실 것입니다. 저도 출가하기 전 청년 시절 속가 모친의 모습은 항상 손을 합장하고 비시는 것으로 기억됩니다. 모친뿐만 아니라 사찰에
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잘한 일은 부처님 도량에 걸음을 하고 부처님을 공부한 일이다. 불법을 만나고 명상을 한 덕분에 이번 코로나 태풍 속에서도 마음 들뜨지 않으며 지낼 수 있었다. 얼마 전에는 뉴질랜드에 사는 친구가 전화로 내게 물었다.“친구야, 너는 어쩜 그리도 지루해하거나 외롭지 않게 집에서 생활을 잘하니?” “응. 그것은 바로 부처님 만나 수행하고 기도한 덕분이지. 너도 해볼래?”이렇게 누구에게든 가장 먼저 소개하고 싶은 코로나 극복의 비결은 바로 명상수행이다.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공고되기 전부터 스스로 밖으로
우리는 어떻게든 살아갑니다. 몸으로 마음으로 경험하면서 하루하루 매 순간 살아가는 길이 있습니다. 이 길이 한 시간이 되고 하루가 되고 한 달이 됩니다. 그 길로 가면 계속 그 패턴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아무리 긴 시간, 긴 세월, 심지어 여러 생을 살아도 경험하는 방식, 기쁨과 슬픔,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일이 잘 안될 때 짜증이 나고 화가 나는 것은 끊어지지 않습니다. 한없이 갑니다.오늘 시작하는 명상지도사 과정은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갖고 어떤 몸의 느낌을 경험하면서 살아가는지 100일 동안 열심히 보는 연습입니다. 열심히 보면
초하루 불공이나 사시불공 등 기도를 집전하다 보면 가장 신경이 많이 쓰이는 것이 축원할 때다. 기도 올린 모든 분들을 다 축원해 드리려면 긴 시간이 걸린다. 그러면 법회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가버리는 분들이 많이 생긴다. 독송이나 정근은 같이 따라 하지만 축원할 때에는 각자 알아서 그 시간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축원은 기도 시간을 지루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이지만 그렇다고 줄이기도 쉽지 않다.이런 현상에서 벗어나려면 불자들이 축원의 의미와 기도의 마음가짐을 넓고 크게 가지도록 이해시켜야 한다. 기도할 때 축원이란 누군가의 인생이
“종단은 누란의 위기에 처해있습니다.”태고종 27대 총무원장으로 선출(2019,6)되고도 총무원 폐쇄로 청사 앞 길거리에서 당선증을 받아야했던 호명 스님의 한 마디가 처연하게 울렸다. ‘한 종단 두 총무원장’ 체제라는 현실만을 탄식한 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2000년대의 태고종을 관통하는 핵심어는 ‘갈등’이다. 2000년 19대부터 2017년 26대 총무원장직에 오른 스님들이 약속한 건 한결같이 ‘내분 종식’, ‘추락한 종단위상 회복’이었다. 17년 동안 반목, 비방, 비리, 횡령 등의 사건으로 점철됐음을 반증하는 대목인데 1년
이제 원광의 세속오계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검토할 순서가 되었다. 세속오계의 사상적 배경에 대해 유교나 불교, 또는 유・불・도 3교의 조화에서 구하는 등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어 왔음은 앞에서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 사상적 배경을 지적하기에 앞서 고려할 점은 원광의 가르침을 내린 대상자가 남의 신하와 자식 된 사람이라는 점이다.원광은 가르침을 내리면서 “불교에는 보살계(菩薩戒)가 있어 그 조목이 열 가지가 있으나, 그대들은 남의 신하와 자식 된 몸이니, 아마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세속의 가르침으로 오계가 있다”고 하면서 다섯 가지
나는 기도를 하루도 놓지 않고자 노력했다. 병원에 입원해서 수술하는 당일에도 새벽에 종교실을 찾아 기도했다. 한 보살님의 권선으로 남편과 함께 ‘법화경’ 사경을 했고 인연이 닿아 몇몇 사찰에 대중공양을 올리는 공덕도 쌓을 수 있었다. 특히 지난해 일년 동안은 현의 스님의 도반이신 동찬 스님께서 매주 명상수업을 진행하셨는데 이 수업의 총무를 맡아 봉사도 했다. 지금은 코로나19로 인해 잠시 쉬고 있지만 매달 진행하는 학촌사 사찰 탐방에도 동참하고 있다.지난 3년 동안 기도하면서 나는 불보살님의 가피를 크게 세 가지 받았다고 믿는다.
오늘부터 ‘임제록(臨濟錄)’을 공부합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여파로 두 달 정도 개강이 연기됐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불자님이 함께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임제록이 저술된 당나라 시대에는 훌륭한 분이 출가를 많이 해서 불교를 빛내주셨습니다. 특히 임제 의현(臨濟 義玄, ?~867) 스님의 어록을 모은 임제록은 ‘보배 같은 책’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도 임제록을 처음 봤을 때 ‘내가 왜 이제야 이 책을 보게 되었을까?’라고 생각했을 만큼 감동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일본의 한 선사께서는 “원자폭탄이 투하되어서 잿더미가 되더라도 임
코로나19에 세상이 지배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죽음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했던가.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야 지위고하와 빈부격차가 있을지 몰라도 일개 바이러스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게 생존을 갈망하는 나약한 생명체일 뿐이다. 선진대국이라며 한 세기가 넘도록 어깨 힘을 주고 뽐냈던 서구 문명도 이토록 초라한 모습으로 추락하였다.일상적인 방역과 치료, 경제적 타격 등이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가시적인 변화와 액션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들이 인식하지 못했던 무수한 일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를 엄습
어릴 적 우리 가족은 종교가 없었다. 부활절이나 성탄절에 간식을 받으려고 교회에 간 기억은 있지만 절에는 부처님오신날조차 가본 기억이 없다. 가정환경 조사서의 종교란에는 늘 ‘무교(無敎)’라고 적었다. 종교가 있어야 한다거나 어떤 종교가 좋다는 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러다 대학교 1학년 때, 천주교 신자인 외숙모의 권유로 영세를 받아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성당에 간 것은 절실한 믿음보다는 미사포나 영성체 같은 미사에 대해 갖는 동경과 내가 살던 동네 성당의 보좌 신부님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일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