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공부를 하면서 간단하지만 정말로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 바로 “자기 자신이 깨달으려고 하는지” 아니면 “자신과 상관없이 항상 깨어 있는 것을 확인하려 하는지”이다. 우리의 본성은 나와 아무런 관계없이 항상 깨어 밝다. 이것은 마치 태양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항상 밝은 것과 같다. 내 노력 여부에 따라 태양이 밝아지거나 어두워지거나 하는 법이 없지 않는가? 하지만 이 이치를 모르면 자신의 노력으로 본성을 밝게 할 수 있다고 믿고 더불어 본성의 깨어있음 까지도 본인의 노력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오해한다. 본성은 이미 완벽해
대자유를 얻겠다고 길을 떠난 구도자들이 스승으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바로 “분별을 내려놓아라”일 것이다. 분별만 멈추면 구도자가 그리던 우리의 본성을 깨달을 수 있다는 가르침을 자주 듣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엔 도대체 분별이 무엇이길래 그렇게도 구도자는 분별을 하지 말라고 귀가 닳도록 가르치는지 그 이유를 자세히 나눠 볼까 한다.우선 분별이라고 하면 나눌 분(分), 다를 별(別)을 써서 무언가를 달리 나눈다는 뜻이다. 우리는 보통 사물이나 사람을 보고 그것에 이름을 붙여 분별한다. 더불어, 옳은 것과 그른 것을 분별 하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진리이지만, 많은 구도자들이 수행의 과정에서 잊고 실수하는 부분이 바로 “왔다 갔다 하는 손님을 주인으로 착각”하는 경우이다. 즉 없었다가 새로 생겨난 신기한 경계 체험을 하게 되면 ‘이것이야말로 내가 기다리던 깨달음의 체험인가 보다’라고 여기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 경험을 붙잡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경계 체험의 내용은 어느덧 변해서 사라지고 만다. 원래부터 있었던 주인이 아니고 객으로 찾아온 경험은 인연이 다하면 언젠가는 떠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진실에 밝지 못한 구도자는 손님
마음 공부에 관심을 두고 오랫동안 구도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에게 누구나 거치게 되는 관문이 하나 있는데 바로 공(空)과 색(色)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이 둘이 따로 노는 현상이다. 생각이 딱 끊어져서 마음의 고요한 맛을 보고 나니 번뇌가 없는 상태가 너무도 편안하게 느껴진다. 이 편안함에서 쉬고 싶은 생각이 들면서, 이와 같은 텅 빈 상태를 ‘반야심경’에서 말한 공이라고 착각하게 된다. 그러면서 아무 생각이 없는 공한 상태에 되도록 오랫동안 머무는 것을 제대로 된 수행이라고 오해하는 것이다. 반대로 다시 마음 안에 생각이 많아지면
대학교를 다니면서 인연 닿은 스님으로부터 화두 참구 방법을 배웠다. 처음 화두를 참구하기 시작했을 때 마음을 그 화두 문구에 두면서 답을 찾으려고 나름 애를 많이 썼던 것 같다. 화두 참구를 하다가 다른 생각이 들면 ‘아차 딴 생각하고 있었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또다시 화두 문구를 마음속으로 돌리면서 이렇게 계속하다가 보면 언젠가는 화두의 의심이 의정이 되고 시간이 지나면 의단으로 변해 화투 타파가 이루어지면서 내가 그리던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지 하고 내심 기대를 했던 것 같다.그러면서 깨달음이라는 것이 내가 얼마나 노력하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행복할 수 있을까? 아무리 오랫동안 궁리해 봐도 방법은 단 한 가지 뿐인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지금 우리가 이미 행복하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 방법이다. 만약 행복하려고 ‘노력’을 하게 되면, 그 노력을 들이는 한 아직은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게 된다. 왜냐면 노력의 결과로 오는 미래의 행복한 상태와 지금 나 사이에는 시간적인 간격이 존재해서, 그 갭이 있는 한 현재가 불만족스럽게 되어 버리거나, 아직은 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즉, 행복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당장 행복할
구도의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가장 크게 오해하는 점 중에 하나가 바로 깨달음을 일체의 번뇌가 없이 고요하고 평온한 어떤 좋은 심리 상태라고 상상하는 것이다. 그래서 수행을 하면서 마음이 좀 편안해지는 것 같으면 수행이 잘 되고 있는 것 같다고 여기고, 마음이 생각들로 인해 괴롭고 시끄러우면 수행이 잘 안되는 것 같다고 분별을 일으킨다.그런데 사실 이런 마음으로 수행을 하는 것은 천상에 태어나 마음 편안하게 잘 살고 싶어 하는 욕망과 별반 다르지 않다. 말로는 수행자라고 하지만 좋은 경계 체험은 붙잡으려고 하고, 괴로운 경계 체험은
나는 고등학생 때 명상 서적들을 우연히 읽다가 처음 발심해 구도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당시엔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진리의 세계라는 것이 있고, 그것을 팔만사천 경전 속에 담아 놓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설하신 진리의 내용을 온전히 깨닫는 날이 올 때까지 나름 부단히 공부하고 정진해야 한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땐 깨달음을 얻었다는 큰 어른이 계신다고 하면, 그분이 스님이든 재가 분이든, 우리나라이든 외국이든 가리지 않고 두루 찾아다녔다. 너무나도 간절하게 진리를 깨닫고 싶었고, 왠지 큰 어른을 만나면 그분이 나에게 깨달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