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해심밀경’의 내용들 가운데에서 요품에 해당하는 ‘승의제상품’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법용보살에 이어 이번에는 선청정혜보살이 부처님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세존이시여 참으로 기이합니다. 세존의 말씀대로 승의제상(勝義諦相)은 매우 세밀하고 깊어 제법의 성상과 같고 다름을 뛰어넘었으므로 통달하기 어렵습니다.”앞의 보살들과 마찬가지로 선청정혜보살 역시 승의제상의 심심미묘성을 강조한다. 승의제상은 제법과의 관계에 있어서 같고 다름을 벗어났기 때문에 심심미묘하다는 것이다. 제법(諸法)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세상의 모든
여리청문보살과 해심심의밀의보살의 대화가 끝나자 법용보살이 등장한다.“세존이시여! 제가 과거 세상에 광대명칭이라는 부처님이 계실 때 칠천 명의 외도 수행자들과 승의제(勝義諦)에 관해 의논하고 해석하고 쟁론을 벌였는데 결국에는 무익하며 서로를 괴롭히는 결과만 가져올 뿐이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때 세상에 부처님이 나타나심은 매우 희유한 일인데 이러한 일체의 심사를 끊어 승의제상(勝義諦相)을 통달해야만 불법을 증득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하게 되었습니다.”법용보살의 이 질문은 앞의 해심심의밀의보살의 설명과 궤를 같이한다. 법용보살이
해심심의밀의보살은 부처님의 경지는 상대적 대립으로 이루어진 변계소집의 언어로는 나타낼 수 없고 조금이라도 설한 바가 있다면 이는 모두 진실이 아니라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부처님 설법은 쓸모없다는 말인가? 해심심의밀의보살의 해명을 들어보자.“선남자여 그렇다고 본사께서 일이 없어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모든 성자의 성스러운 지혜와 견해는 명칭과 언어를 벗어난 것으로 중생들에게도 이와 같은 이치를 깨닫게 하기 위해 임시로 명칭과 언어를 세우신 것입니다. 위없는 깨달음을 드러냅니다.”불교의 성자는 부처님과 권현보살들이다. 교리상 소승의
앞서 여리청문보살은 일체법과 둘이 없는 이치에 관해 해심심의밀의보살에게 물은 내용을 설명하였다. 이제 해심심의밀의보살 답변을 살펴보자.‘선남자여 일체법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유위(有爲)요, 또 하나는 무위(無爲)입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유위는 유위가 아니며, 무위 또한 무위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유위란 본사께서 시설하신 가르침은 진실이 아닌 것으로 변계소집(遍計所執)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선남자여! 이는 무위도 마찬가지입니다.’유위는 중생의 번뇌에 의해 드러난 무상하고 차별되고 괴로운 법들이다. 이와는 반대로 무위는 부처
대승 경전들의 서두는 먼저 부처님을 찬탄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법문을 듣는 제자 중에 으뜸 되는 인물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위엄과 덕망을 찬탄하고 공경 예배한다.초기 경전에서도 부처님을 공경 찬탄하지만 대승과 비교할 때 그 강도가 현저히 약하다. 대승에서는 부처님의 몸을 육신만이 아닌 법신, 즉 진리의 몸으로 보고 우주 법계에 두루하다고 여긴다. 멸하는 법이 없이 영원하며 지혜, 자비, 원력, 청정, 신통으로 모든 중생을 항상 교화·제도하신다는 것이다. 부처님을 인간세계에 나타난 위대한 역사적 인물로 여기는 초기불교와는
세상의 모든 일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발생한다. 불교 역시 2600여 년 전 인도에서 태어났다. 부처님의 위대한 여정들과 깨달음·설법·반열반 등 모든 일들이 시간과 공간 위에서 펼쳐진 사건들이다.앞서 밝혔듯 육성취 중에는 경을 설한 시간과 장소가 소개된다. 하지만 경전에서 언급하는 시간은 그리 분명치만은 않다. 막연히 ‘한때’라고만 할 뿐 아침인지 저녁인지 자세한 시간은 알 수 없다. 이렇게 시간을 명확히 말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부처님께서 설법하신 장소와 관련이 있다.경전을 보면 부처님의 설법은 우리가 사는 인간 세상에
부처님이 설하신 모든 경전의 첫머리는 공통적인 형식을 띠고 있다. 육성취(六成就)라고 불리는 서술 방식이다. 육성취란 여섯 가지 조건을 만족하게 갖추었다는 의미이다. 믿음을 나타내는 신성취(信成就), 들음을 나타내는 문성취(聞成就), 시간을 나타내는 시성취(時成就), 설법의 주체를 나타내는 주성취(主成就), 장소를 나타내는 처성취(處成就), 설법 대상을 나타내는 중성취(衆成就)가 그것이다.‘해심밀경’의 경우 첫머리가 ‘이와 같이 내가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 가장 뛰어난 광명으로 장엄한 곳에 머무르시니 이곳에 큰 보살 마하살이 구름처
‘해심밀경(解深密經)’은 깊고도 비밀스러운 마음을 풀이한 경전이라는 의미이다. 대승경전에 속하는 가르침으로 마음을 연기와 공, 무자성에 근거해서 교설이 펼쳐진다. 세상만사는 마음에 의해 구성되고 전개된다는 주장으로 세상엔 오직 마음만 존재할 뿐 외적 대상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핵심 사상이다. 즉 우리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체의 모습과 사건들은 단지 마음의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는 듯 보이지만 진실에 있어서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친다. 당나라 때 현장법사에 의해 번역됐으며 ‘불설해절경(佛說解節經)’ ‘상속해탈지바라밀요경(相
흔히 불교를 마음의 종교라고 말한다. 팔만사천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도 결국은 ‘마음 심(心)’자 하나를 풀이해 놓았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누구라도 불교의 수많은 경전을 접하다 보면 부처님의 일체 교설들이 일관되게 중생 마음에 초점을 두고 설해졌음을 알 수 있다. 초기 경전인 ‘법구경’의 ‘심위법본(心爲法本-마음은 모든 법의 근본이다)’에서부터 대승 원교인 ‘화엄경’의 ‘심외무법(心外無法-마음을 떠난 법이 없다)’에 이르기까지, 또한 불립문자를 강조하는 선가의 ‘이심전심(以心傳心-마음으로 마음을 전할 뿐이다)’ 등 불교 안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