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가장 널리 읽히는 ‘금강경’ 한문본은 구마라집 스님이 범본을 번역한 것이다. 그것의 구경무아분 뒷부분에 이르러 세존께서 수보리에게 “보살이 한량없는 중생을 멸도케 하리라고 스스로 말한다면 그를 보살이라 일컬을 수 없다. 왜냐하면 보살이라 일컬을 만한 법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붓다는 일체법에 사상(四相)이 없다고 말한다”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등장한다.세존께서 수보리에게 일방적으로 가르침을 전하는 내용으로 되어있는데, 범본과 현장 스님의 번역본을 살펴보면 그 중간에 결역(缺譯)된 부분이 존재한다. 즉, “보살이라
엄격한 회원제도와 매년 개최하는 수련회 등을 통해 단단한 모임의 틀을 만든 마하회(회장 현정 스님)의 저력은 교계 안팎에서 빛을 발했다. 마하회 창립 초기 스님들의 가장 큰 뜻은 재교육이었지만 모임이 꾸려지고 난 후 포교와 복지 활동에서 마하회가 두각을 나타낸 것은 자연스런운 성과였다. 포교, 교육, 재난구호 등 다양한 분야에서 마하회는 통큰 나눔을 실천하며 그 이름을 교계에 각인시켰다.마하회 설립을 제안하고 초기 회장을 역임한 부산 영화사 주지 명준 스님은 “회비로 모은 돈은 타인을 위해서 사용하자는데 초창기부터 뜻을 모았다”며
정규(鄭圭, 1923~1971)는 강원도 고성에서 태어나 서울의 경기공립상업고등학교(현재의 경기상고)를 1941년에 졸업했다. 이어 일본으로 건너가 제국미술학교 서양화과에 입학했으며, 1944년 귀국했다. 해방 후 남북으로 분단되면서 그의 고향인 고성이나 그가 활동했던 원산 지역은 북한에 속했지만 그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월남하여 부산에서 국방부 종군화가단에 속하여 작품활동을 이어갔다. 휴전 협정 두 달 전인 1953년 5월에는 부산의 르네상스 다방에서 첫 개인전인 ‘정규 소품 개인전’을 열고 15점의 작품을 전시했는데, 당시에는
윤회는 오랫동안 불교의 핵심적인 개념이라고들 해왔으나, 정말 그런가? 다양한 의문과 논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나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사실이 있다”는 무아 사상과 윤회는 모순되는 것 아닐까? 윤회를 한다면 생과 사를 거듭하는 주체가 있어야 하는데, ‘나’가 없다면 도대체 무엇이 윤회를 한다는 것일까? 한쪽에서는 윤회를 믿지 않는다면 불교도가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또 한편에서는 윤회는 카스트제도를 뒷받침하는 이론이지 불교의 개념이 아니라거나 방편의 하나일 뿐이라며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다. 부처님은 사람이 죽더라도 ‘나
제17 구경무아분에는 제2 선현기청분과 제3 대승정종분에 걸쳐 나온 문장과 유사한 내용이 등장한다. 우선 선현기청분에서 수보리가 부처님에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낸 이는 어떻게 그 마음을 머물게 하고 항복시켜야합니까?”라고 여쭙자 대승정종분에서, ①모든 중생을 남김없이 제도하겠다는 생각으로 마음을 머물게 하되 설령 중생을 모두 제도하더라도 제도한 중생이 있다고 여겨선 안 된다 하셨다. 그리고 ②사상(四相)에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마음을 장악하라 하셨으니, 내가 제도했다는 아상(我相) 등이 있으면 이미 보살이 아니기 때문이라 답하셨다
봉화사 주지 원상 스님은 어려운 불교를 쉽게 가르치시려 노력하시고 실천하신다. 코로나19로 신도들이 함께 모여 법회를 할 수 없는 요즘 같은 상황에서도 봉화사 밴드 ‘행복가득 염불명상’을 통해 ‘오늘의 자비송 염불 명상’을 올려 주시기를 지속하신다. 매일 새로운 법문을 올려 주시려면 얼마나 힘이 드실까. 항상 봉화사 신도들을 위해 애써주심을 짐작만 할 뿐이다. 우리는 읽고 또 읽으면서 부처님을 생각하고 불법을 생각하고 스님을 생각하며 불자다운 삶의 실천을 발원한다.1박2일의 봉화사 사분정진 체험 이후 환희심과 존경심이 불같이 일어났
1.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머물 때, 어느 제자가 부처님께 “무엇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최상의 행복입니까?”라고 물었다. 부처님이 대답한 내용과 가장 거리가 먼 것은? ① 자신의 혈통을 자부하고 재산을 자랑하고 가문을 뽐내면서 사는 것이다.② 더불어 나누고 정의롭게 살며 항상 감사할 줄 아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다.③ 슬기로운 사람과 가까이 지내며 존경할 만한 사람을 공경하며 사는 것이다.④ 많이 배우고 익히며 절제하고 훈련하여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며 사는 것이다.⑤ 어떤 어려움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슬픔과 번민 없이 안
서방정토 봉화사를 향해 아미타 부처님께 108배를 올린다.나는 원래 구경을 다녔던 사람이다. 무엇인가 부족한 사람 같아 선뜻 불교에 다가서지 못했고 불법이 너무 어렵고 무슨 뜻인지 몰라 법문을 따라 읽기에 급급했다. 그런 이에게 가을 들판의 햇살처럼 하동 봉화사 주지 원상 스님이 나타나셨다.친정아버님의 49재 인연으로 스님의 법문을 듣고 또 듣게 되었다. 연이어 어머님의 49재까지 지내다 보니 봉화사와의 인연도 깊어지며 불심도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부모님께서 내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봉화사는 친정같이 편안하고 부모님같이 존경스
전통적으로 우리는 인간을 몸과 마음으로 이루어진 존재로 여겨왔다. 한국어에서는 “몸과 마음”이라는 표현이 일상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몸과 마음을 언급하는 순서가 흥미롭다. 영어권에서는 “mind and body”라고 하지 “body and mind”라고는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혼과 마음을 동일시해 온 서구인들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마음이 몸보다 더 중한가 보다. 몸과 마음이 한자어로는 심신(心身)인데, 중국어로도 마음이 몸보다 먼저 오기는 한다. 그런데 ‘心’자가 마음을 뜻하지만 원래 그리고 지금도 몸의 일부인 심장
불교의 핵심 수행은 ‘선(禪, dhyāna,jhāna)’이다. 붓다는 ‘부정‧자비‧수식‧인연‧염불’의 ‘5정관법’을 설하셨다. ‘선정’의 과정은 생각을 ‘멈춤’과 ‘집중’으로 ‘연기‧고통‧무상‧무아’의 ‘법성’을 깨닫는다. 중국은 안세고(148~180)와 구마라집(334~413)이 ‘선경(禪經, Dhyāna-sutras)’을 한역한 후 인도 달마(382~536)대사가 ‘선법’을 전했다. 인도에서는 10세기 이슬람교도 침략 후 쇠퇴하였고, 18세기 미얀마에서 ‘마음챙김경(Satipaṭṭhāna-sutta)’과 ‘청정도론(Visuddh
“내가 정의하는 깨달은 사람이란, 불교적으로 표현하면 세상의 본질이 무아와 연기임을 명백하게 이해하고, 자기 삶에 적용하여 생로병사에 걸림이 없게 되며, 이에 관련한 더 이상의 공부가 필요 없게 된 사람이다.”깨달은 사람을 이렇게 규정하면서 “나는 지금 그렇다”고 자신의 깨달음을 고백한 시골 농부가 깨달음에 대한 진입 문턱을 낮추고, 깨달음이란 것이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심하게 어려워서 공부를 많이 해야 하며 직업을 버릴 정도로 전념하는 수행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고 나섰다.불교계에서 금기
범부와 성자는 어떻게 다른가? 범부의 삶과 성자의 삶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초기경전의 여러 곳에 범부와 성자의 차이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 중에서 마하깟짜나(Mahākaccāna, 大迦旃延) 존자가 동료 비구들에서 설한 것이 가장 명료한 것 같다. ‘웃데사위방가 숫따(Uddesavibhaṅga-sutta, 總說分別經)’(MN138)에서는 범부와 성자의 차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한다.“도반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성자들을 존중하지 않고 성스러운 법에 정통하지 않고 성스러운 법으로 인도되지 않고, 바른 사람들을 존중하
수산성념선사에게 어떤 납자가 물었습니다.여하시불법대의(如何是佛法大意)닛고?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초왕성반(楚王城畔)에 여수동류(汝水東流)로다초나라 왕성 주변의 여수(汝水)는 동쪽으로 흐르느니라.수산성념(首山省念)선사는 풍혈연소 선사의 법을 이었으며 여주(汝州)땅에 머물면서 임제 종풍을 널리 선양하였습니다. 당나라가 망하고 송나라가 등장하기 전 오대십국(五代十國) 시대의 초(楚)나라가 이 법문의 배경입니다. 여수(汝水)는 하남성(河南省)을 흘러 회수(淮水)로 들어가는 강입니다. 회수는 양자강(揚子江)과 황하(黃河) 사이에 있는
기도하면 정말 이뤄질까? 기도를 많이 한 불자도, 초보불자도 확신이 잘 안서는 분이 많다. 눈으로 보여지는 것이 아니니 믿음이 점점 엷어져 기도하는 불자도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자본만능주의 시대이니 어쩔 수 없다고 치부할 문제가 아니다. 자본주의라 하더라도 일을 많이 해 생산능력이 좋다고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마음의 영역에 있는 아이디어·지식·지혜·운영능력·투자능력 등에 따라 재산의 양이 결정되는 사회이다.기도의 사전적 의미는 절대자에게 소원을 비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불교의 기도는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이 있다. 소
반갑습니다. 나무아미타불. 합장하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시방삼세 부처님과 팔만사천 큰 법보와 보살 성문 스님들께 지성 귀의하옵나니 자비하신 원력으로 굽어살펴 주옵소서. 여러 생 지은 업장 크고 작은 많은 허물 삼보전에 원력 빌어 일심참회 하옵나니 바라옵건데 부처님이 이끄시고 보살님네 살피옵서 고통바다 헤어나서 열반 언덕 가사이다.”사찰에서 조석으로 올리는 ‘이산 혜연선사 발원문’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방금 얘기했듯이 “열반 언덕 가사이다.” 여기에 있습니다. 불교 수행을 하는 목적입니다. 열반 언덕에 이르는 길은 두 가지가 있
뿌연 매연이 눈을 따갑게 한다. 수많은 차들이 내 앞을 지나간다. 익산에서 교통량이 가장 많은 원광대사거리에서 나는 지난주부터 피켓을 들었다. 아침 8시에서 9시 무렵, 대중의 출근길목인 이곳에서 직접 호소하기 위해서다. 저번 주는 ‘1.5℃를 기억하자’, 이번 주는 ‘기후 위기⇒인류 멸종’이다. 말 대신 행동으로 나서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기후 문제의 원인은 드러났다. 화석연료사용으로 인한 온실가스 현상이다. 한 마디로 지구가 더워지고 있다. 북극의 만년설과 빙하가 녹고, 호수에서 물고기가 떠오르며, 남태평양의 작은 나라가
51장은 “‘예배(禮拜)’는 ‘공경’과 ‘굴복’이다. ‘참된 자성(眞性)’을 공경하고, ‘무명’을 굴복한다”로, 신수(神秀, 606~706)의 ‘소실육문’ 내용이다. ‘진성’이란 ‘능엄경’에서는 “‘색‧성‧향‧미‧촉’의 허망한 생각이 너의 ‘진성’을 미혹하게 한다”고 했고, ‘육조단경’에서 “지혜는 ‘자성’을 따라서 생하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뜻’을 잘못 쓰지 말라. ‘진성’은 ‘스스로 쓰는 것’을 말한다”고 하고, ‘지월록’에서 파사사다(Póshèsīduō, 인도 25대 조사, ?~325)는 “나는 지금 ‘진성’을 깨달
“관자재보살께서는 심오한 반야바라밀다의 수행을 실천하시면서 세간[五蘊]을 확실하게 잘 가려서 객관적으로 관찰하시었다. 그리하여 오온이 있는데, 그것들이 실체가 공하다[없다]고 확실히 보시고서, 모든 괴로움과 재앙을 극복하신다.…”‘반야심경’ 첫 구절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조견 오온개공 도일체고액’에 대한 번역이다. 대부분 번역이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다를 행하실 때 오온이 다 공함을 비추어보고 일체의 고액을 건넜다.…”로 시작되는 것과 차이를 보이는 이 해설은 15년 동안 미얀마의 여러 수행센터에서 위빠사나와 사마타
2020 만해축전 제24회 만해대상 시상식이 8월12일 인제하늘내린센터 대공연장에서 개최됐다.만해축전추진위원회(위원장 곽채기·동국대 교무부총장)가 주최한 만해대상 시상식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 윤성이 동국대 총장, 최상기 인제군수, 주호영 국회의원 등 사부대중 300여명이 동참했다. 제24회 만해대상 평화대상은 태국 아속공동체 창시자 포티락 스님, 실천대상은 계명대 대구동산병원(병원장 서영성)과 산악인 엄홍길씨, 문예대상은 김주영 소설가와 신달자 시인이 수상했다.시상식은 국악인 남상일씨의 ‘님의 침묵’ ‘춘향가’ 식전공연을
“이 소리를 알아들으면 눈이 있고 이 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면 눈이 어두운 것이라, ‘봉두유안(棒頭有眼)’이다 하는 것은 주장자에 눈이 있다, 주장자에 눈이 있는데 그 눈을 보았느냐 이겁니다.”태고종 종정 지허 스님이 8월3일 종도들에게 종정을 수락하는 법어를 내렸다.지허 스님은 종정 수락 법어를 통해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생사해탈”이라며 “불교가 불교다워지려면 생사해탈을 한 사람이 많아야 되고, 생사해탈을 한 사람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스님은 이어 생사해탈을 위해 내야 할 구체적인 마음으로 나도 생사해탈을 할 수 있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