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에게 전염병의 두려움은 전쟁을 능가했다. 고대부터 맹위를 떨쳤던 천연두는 치사율이 20~60%에 이르렀고 국가의 흥망을 좌우했다. 전염성이 높고 합병증도 심한 홍역과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도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을 생사의 기로에 직면케 했다.전염병 피해는 부처님 당시의 인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대의왕(大醫王), 약사여래(藥師如來) 등 불보살님 명호와 불경에 ‘약(藥)’과 ‘의(醫)’가 많이 들어간 것은 부처님 위신력으로 질병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들의 간절함과 무관하지 않다.팔리어 율장인 ‘마하박가’에는 마가다
나태주 시인은 ‘쓸쓸해져서야 보이는 풍경이 있다’고 했다. 사람도 그렇다. 우리 곁을 떠나고서야 더욱 소중해지는 이가 있다. 2011년 5월 세상을 떠난 김재일 사찰생태연구소장 겸 사단법인 보리 이사장이 그렇다.김 소장은 사찰생태의 수호자였으며 편파 왜곡 방송을 저지하는 호법신장이었다. 1949년 포항에서 태어난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1973년부터 교사로 재직했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그가 불자가 된 사연도 독특하다. 학생들과 처음 소풍갔던 안성 칠장사에서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 법문을 들으면서부터다. 여러 달을 고민하
최근 사찰넷에 파격적인 부전스님 구인광고가 올랐다. 천일기도를 사분정근으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성만하면 1억원을 드린다는 내용이었다. 게다가 매월 보시금을 따로 준다는 조건이었다. 부전은 사찰에서 예불이나 기도 등 의식을 집전하는 역할을 맡은 스님이고, 사분정근은 새벽, 사시, 오후, 저녁의 하루 4번에 걸친 정진 기도를 말한다.구인광고를 올린 것은 울산 시내 포교사찰인 황룡사 주지 황산 스님이다. 스님들 사이에서야 참선하는 스님을 제일로 치고, 다음으로 강의 잘하는 스님, 그 다음이 절 운영 잘하는 스님, 마지막이 법당에서 기도하
북한산의 한 작은 사찰 주지스님으로부터 연락이 온 것은 지난 12월이었다. 자신을 소개할 일이 있으면 늘 ‘북한산 무명승’이라고 말씀하는 스님은 산중에 머무르며 ‘나무아미타불’ 염불수행에 매진하고 있다. 넉넉지 않은 절 살림에도 등산객들에게 정기적으로 점심을 공양하는가 하면 세간의 어려운 이들을 돕는 자비행을 소리 없이 펼치고 있다.전화통화에서 스님이 한 얘기는 이랬다. 스님은 몇 해 전부터 영월교도소로 법문을 나갔더란다. 언제부터인가 법문할 때 맨 앞자리에 앉은 노인에게 스님의 눈길이 머물렀다. 머리가 하얀데다가 법문을 경청해 듣
12월18일 서울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는 불교출판문화협회가 주관한 불교출판문화상 시상식이 열렸다. 행사장에는 예년과 달리 사람들로 가득했다. 협회장 지홍 스님을 비롯해 관계자들의 표정도 사뭇 밝았다. ‘올해의 불서 10’ 시상이 이어질 때마다 환호와 뜨거운 박수가 이어졌다.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이 직접 참석해 격려한 것도 불교출판인들에게는 큰 힘이었다.올해도 수향번역상과 붓다북학술상이 수여됐다. 이 상들은 개인 원력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 특징이다. 수향번역상은 일평생 불자로 살아오며 불교계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이병두
12월8일 서울 봉은사 법왕루에서는 아주 특별한 법회가 열렸다. 2001년 금강경 독송 10만독을 발원한 동국대 이사장 법산 스님이 최근 금강경 5만독을 성만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봉은사가 이를 기념해 스님을 찬탄하고 법문을 듣는 자리였다.금강경 5만독은 결코 녹록치 않은 숫자다. 금강경 1독에 걸리는 시간이 약 20분, 5만번을 독송하려면 1만6667시간이 소요된다. 매일 2시간30분씩 18년을 한결같이 독송해야 도달할 수 있다. 법산 스님은 그 긴 세월을 하루도 빠짐없이 금강경을 독송했으며 스스로를 비우고 아상을 내려놓으려 정
오강남 캐나다 리자이나대학 비교종교학과 명예교수는 평생 세계 종교들을 연구해온 종교학자다. 그는 종교에 대한 깊은 이해와 박학함으로 세계 여러 종교들의 창시 배경, 주요 경전, 핵심 가르침을 살피고 어떤 역할을 수행해왔는지를 일반에 소개해왔다.‘화엄의 법계연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불교 이해도 깊어 ‘불교, 이웃종교로 읽다’ 등 책을 펴냈으며, ‘종교란 무엇인가’ ‘도덕경’ ‘장자’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 ‘살아계신 붓다, 살아계신 그리스도’ ‘예수는 없다’ ‘그리스도교 이야기’ 등 저술과 번역을 통해 기존 교단의 변
며칠 전 서울행정법원이 사찰에 거주하며 고정 급여를 받고 청소와 정리 등 업무를 하는 이들도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언론 보도에 따르면 2015년부터 불교관련 법인에서 운영하는 사찰에서 생활하던 A씨가 지난해 5월 일방적인 ‘퇴실 통보’를 받았고, 이에 A씨가 부당해고를 주장하며 중앙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냈다. 법인 측은 그가 사찰의 처사로 기거하면서 사찰 업무를 도왔을 뿐이며, 그의 업무는 자율적인 봉사활동에 불과하기 때문에 근로자가 아니라며 소송을 제기했다.그러나 재판부는 “A씨에 대한 구체적인 근무내용과 근무장소를 지정
오랫동안 국립박물관에 보관됐던 불사리(佛舍利) 82과가 11월12일 불교계 품으로 돌아왔다. 2017년부터 올해까지 3년간 전국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사리 129과가 모두 제자리를 찾게 됐다. 단순한 유물로 간주되던 사리가 다시 신앙 대상이 된 것이다.사리는 유골을 뜻하는 범어 ‘샤리라(śarīra)’ 음사로 깊은 수행 경지에서 생긴다는 구슬 모양 유골이다. 이 중 불사리(진신사리)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들며 남긴 신골(身骨)을 의미한다. 기록에 따르면 부처님을 다비했을 때 8말4되의 엄청난 사리가 출현했고 이를 8개 나라에 나
‘흉내’는 그리 좋은 의미로 사용되지는 않는다. 주체성이 결여됐다거나 위선, 가식적, 이중적 태도를 지적할 때 자주 등장하는 단어다. 이런 정서는 불교계에서 유독 두드러진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殺佛殺祖)” “어느 곳이든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면 그곳이 모두 진리다(隨處作主 立處皆眞)” 등 개인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불교의 특징일 수 있다. 손가락을 세우며 자신을 흉내 내는 어린 동자의 손가락을 끊어 일깨웠다는 구지선사 일화처럼 흉내는 남의 다리를 긁는 어리석은 일로 간주된다.하지만 불경에는 흉
10월29일 조계종 총무원을 찾은 권모씨가 민원을 제기했다. 충남 아산에서 올라왔다는 그는 속가 형님인 A스님에 대한 가슴 아픈 사연을 털어놓았다. 그에 따르면 A스님은 1975년 출가했다. 가족들은 수행자로서의 위의를 지키며 성실히 살아가던 A스님을 지켜보는 것이 뿌듯했고 불교에도 자연스레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상황이 뒤바뀐 것은 7년 전 A스님이 뇌경색과 혈액종양으로 쓰러지면서부터다. 대학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지만 완쾌가 쉽지 않은 병이었다. 입원 초기 사형사제들이 병원비를 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스님들 관심도 급격히 멀어
조계종 총무원 승려복지회가 10월14일 승려복지 본인기본부담금제도 관련 공청회를 열었다. 스님들 복지가 정착되지 않고는 출가자로서 본분을 지키기 어렵고 수행과 전법도 활성화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이날 취재를 담당한 기자에 따르면 공청회에 참가한 발표자와 토론자 모두 승가공동체 역할을 비롯해 보다 많은 스님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실질적인 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했다고 한다.‘승려복지 지원을 위한 소임제도’를 다룬 이천시장애인복지관장 동준 스님도 중요한 문제를 제기했다. 종단은 승려복지 대상을 결계신고 및 포살참석 대상에 맞추기보다